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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16 12:38:56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이름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영어: Diodorus Siculus, 그리스어: Διόδωρος Σικελιώτης)
출생 기원전 90년 (추정)
사망 기원전 30년 이후
직업 역사가

1. 개요2. 생애3.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Βιβλιοθήκη Ἱστορικ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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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세기의 시칠리아 출신 그리스 역사가.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의 저자로 유명하다.

2. 생애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칠리아의 아기리움(Agyrium) 출신이라고 한다. 그 외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서 확실하지 않지만, 대강의 추정은 가능하다. 그는 서문에서 옥타비아누스가 "토우로메니움의 시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송시켰고, 도시는 식민지가 되었다."라고 기록했다. 이 사건은 기원전 36년경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전쟁이 끝난 직후에 벌어졌다. 그는 이 사건 후에 사망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시대에 마케도니아인들이 여전히 이집트의 통치자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옥타비아누스가 클레오파트라 7세를 물리치고 이집트를 정복한 기원전 30년 이전에 저서를 출간했음을 암시한다.

한편,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을 때 이집트인들이 우연히 고양이를 죽인 로마인을 린치하는 걸 목격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이 때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정관이었던 시절에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59년 집정관이었으므로, 그는 이 시점에 이집트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여행을 광범위하게 다녔다는 언급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테네, 밀레투스, 에페소스, 안티오키아와 같은 중요한 도시들의 지리를 잘못 기록했으며, 티그리스강변에 있는 니네베 유프라테스강변에 있다고 오기했고, 그리스 북동부의 할키디키 반도가 헬레스폰트 근처에 있다고 잘못 기록했다.

한편, 그는 문학적 후원자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고, 별다른 공직을 맡은 흔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20년이 넘게 저서를 집필했으니, 부유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아기리움의 묘지에서 "아폴로니우스의 아들 디오도로스"라는 문구가 새겨진 묘비가 발견되었지만, 이 묘비의 주인공이 역사가 디오도로스와 동일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3.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Βιβλιοθήκη Ἱστορική)

디오도로스의 유일한 저작으로 알려진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Βιβλιοθήκη Ἱστορική: 역사 총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대부터 기원전 60~59년경까지 지중해 전역의 역사를 다뤘다. 그는 40권을 집필했다고 밝혔지만, 1~5권, 11~20권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다른 역사가들이 인용한 문구만 남았다. 기원전 60년경부터 집필을 시작했고, 기원전 35년~30년 사이에 출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 책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권: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왕들
2권: 아시리아, 인도, 스키타이, 아라비아
3권: 에티오피아 리비아
4권: 그리스 신들과 영웅들
5권: 서방의 섬들과 사람들
6권: 그리스 신화(실전됨)
7권: 트로이 전쟁(실전됨)
8권: 고대 그리스(실전됨)
9권: 고대 그리스의 7현자(실전됨)
10권: 고대 그리스(기원전 540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
11권: 페르시아 전쟁 아테네 - 스파르타의 갈등.
12권: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아르키다모스 전쟁(기원전 450년부터 기원전 416년까지)
13권: 이오니아 전쟁(기원전 415년부터 기원전 405년까지)
14권: 코린토스 전쟁(기원전 404년부터 기원전 387년까지)
15권: 테베의 부흥
16권: 필리포스 2세
17권: 알렉산드로스 대왕
18권: 디아도코이(기원전 323년부터 기원전 318년까지)
19권: 디아도코이(기원전 318년부터 기원전 311년까지)
20권: 시라쿠사 참주 아가토클레스(Agathocles)의 카르타고 침공, 디아도코이의 끊임없는 전쟁.
21권: 아가토클레스의 죽음을 포함하여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2권: 마케도니아 델포이에 대한 갈리아인의 침략, 메시나에 대한 마메르티니와 로마의 잔혹한 행위를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3권: 제1차 포에니 전쟁에 관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4권: 제1차 포에니 전쟁에 관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5권: 카르타코의 용병 전쟁, 하밀카르 바르카의 이베리아 진출을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6권: 실전됨.
27권: 스파르타 왕 나비스와 제2차 포에니 전쟁에 관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8권: 필리포스 5세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29권: 로마-셀레우코스 전쟁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30권: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후반기를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31권: 카파도키아 왕국의 성장을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32권: 카르타고와 코린토스의 멸망을 포함한 부분적인 기록만 남음.
33권~40권: 실전됨. 하지만 포티오스, 콘스탄티노스 7세 등 역사에 조예가 깊은 동로마 제국의 학자들이 인용한 문구가 몇 개 있는데, 기원전 59년 집정관을 마친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에 돌입할 때를 서술한 게 디오도로스가 남긴 마지막 기록이었던 것으로 추정됨.

디오도로스는 서문에서 '세계'의 모든 역사를 다루었다고 주장했지만,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의 초반 내용은 그리스와 시칠리아의 역사 위주로 다루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발발 후에는 카르타고와 로마 공화국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6권에서는 트로이의 몰락으로 끝나는 그리스의 신화, 그리스의 지리, 민족에 대해 다루었다. 7~17권은 트로이 전쟁 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할 때까지의 그리스 역사를 다뤘으며, 18~40권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 발발 직전까지 이어진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을 위해 길을 닦아준 선대의 역사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를 집필하는데 큰 도움을 준 작가들에게 감사드려야 함이 마땅하다. 그들은 개인의 노력으로 인간 사회에 큰 도움을 줬다.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가르침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은 수많은 사건의 전시를 통해 독자들이 가장 훌륭한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역사가들을 상세하게 밝혔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정보는 밀레투스의 헤카타이오스(기원전 550년경 ~ 기원전 476년경)의 기록을 참고했으며, 시칠리아와 그리스의 역사에 대해서는 티마이오스(기원전 350년경 ~ 기원전 260년경), 메가스테네스(기원전 350년~ 기원전 290년)의 역사서, 외교사 등을 참고했다고 하였다. 또한 로마 공화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폴리비오스의 저서를 참고했다고 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디아도코이의 전쟁은 키메의 에포로스, 포시도니오스의 기록을 참고했다고 하였다. 이들 역사가들의 기록은 현존하지 않으나, 디오도로스 덕분에 부분적으로나마 전해질 수 있었다.

디오도로스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을 개시하기 직전의 상황을 다룬 뒤 글을 마무리했다. 아마도 그 후의 이야기, 즉 카이사르의 내전, 제2차 삼두정치와 원로원파의 전쟁,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전쟁까지 다루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성공적으로 정복했다는 건 인정했지만, 노예 전쟁 때 시칠리아를 잔혹하게 짓밟은 과거 때문인지 로마를 무자비하고 잔혹한 정복자로 묘사했다. 그는 소수의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가혹한 세금과 강제 징집으로 인해 빈민으로 전락했다며, 풍요로웠던 시칠리아를 절망과 빈곤으로 가득한 불행의 땅으로 만든 로마를 원망했다.

단순한 편집자일 뿐 독창적인 역사가는 아니었으며, 여러 오류와 왜곡, 특히 그리스에게 편향된 방향으로 왜곡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의 기록은 고대 지중해 역사를 연구할 때 필수적인 자료로 인정받는다. 특히 시칠리아의 역사는 전적으로 그가 제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연구되고 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빌론에서 생애 마지막 한 주를 보낼 때의 묘사는 문학적으로도 수준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