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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상북도 안동시의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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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 대한민국 사적 제170호 | |
<colbgcolor=#315288> 안동 도산서원 安東 陶山書院 | Dosanseowon Confucian Acade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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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토계리) |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 |
수량 / 면적 | 506,355㎡ | |
지정연도 | 1969년 5월 31일 | |
건축시기 | 1575년 ( 선조 8년) | |
소유자 (소유단체) |
도산서원 | |
관리자 (관리단체) |
안동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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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a3a2c> 도산서원 영상 |
1.1. 개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언적을 주향한 경주시 옥산서원과 함께 영남 남인의 양대 서원이다. 하회마을과 함께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랜드마크.1969년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서원의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 상덕사와 삼문(출입문)은 보물 제211호에 지정되어 있다.
1.2. 역사
고향으로 내려간 퇴계 이황이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세운 도산서당으로 시작했으며 그의 사후인 1574년( 선조 7년) 제자들과 유림( 선비들의 집단)이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서당 뒤편에 사당을 추가로 세웠다. 1575년에는 석봉 한호의 글씨로 된 현판을 사액받았다.엄밀히 구분하면 이황이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사후에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서당 영역의 건물로는 도산서당, 농운정사, 역락서재, 하고직사 같은 건물이 있으며 서당 뒤쪽의 진도문을 기점으로는 서원의 영역이다. 서원에는 강당 시설인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 전교당(典敎堂)과 박약재, 홍의재 등이 있고 제향을 위한 시설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기와집인 상덕사(尙德祠), 기타 부속 건물들이 있다.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있었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정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25년 도산서원 양반이 소작료를 내지 않은 소작농에게 태형을 때리는 사적제재 사건이 일어났다. 그 다음에 안동 시민들이 중심으로 전국적인 도산서원 철폐운동이 일어났다.
1969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해체 복원하였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에서 이의 비판점 몇 개를 지적했다.
1980년 공자의 77대손이자 마지막 연성공이었던 쿵더청 박사가 방문하여 추로지향(鄒魯之鄕)[1]이라는 휘호를 남겼으며 도산서원 원장을 역임한 바가 있다.
1.3. 기타
2022년 안동 시내버스 개편 이후로 급행3번이 일 5회 운행한다(내살미 출발 첫차는 경유하지 않는다). 독립된 노선이 생겼고 터미널까지도 이어주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예전에는 교보생명에서 출발하는 567번(현 512번) 버스가 특정 시간대 한정으로 일 4회 경유하는 것이 전부여서 그야말로 호그와트 같은 접근성을 자랑했으며, 도산서원 경유 막차를 놓치면 얄짤없이 기어서 퇴계로까지 나가야 됐다.1~2차 천원권 지폐(구권) 뒷면의 도안이 도산서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