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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적 제383호 | ||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遯巖書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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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번지 외 5필지 |
분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 |
면적 | 64,699㎡ | |
지정연도 | 1993년 10월 18일 | |
제작시기 | 1633년 | |
위치 |
|
<colbgcolor=#7a3a2c> 돈암서원 영상 |
|
돈암서원 전경 |
[clearfix]
1. 개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서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634년 건립된 서원이다.1993년 사적 제383호로 지정받았고, 2008년에는 응도당(凝道堂)이 보물 제1569호로 지정받았다.
2019년 7월 6일에는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받았다.
2. 역사적 흐름
1557년 김계휘가 정회당을 건립하고 강학활동을 하였고, 이후 1634년, 김계휘의 아들인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정회당 자리에 돈암서원이 건립되었다. 1660년 사액받았다.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개소 중 한 곳이다. 1881년에 침수피해로 인해 서원을 현재 자리로 옮긴 기록이 있다.
3. 구조
보물 제1569호인 응도당은 고대 예서의 제도를 충실히 따라 건축된 것으로 유명하다. 중당과 동서상, 중당 뒤 중실과 좌우방과 동서 협실을 두고, 지붕은 맛배지붕 형태에 양 측면에 덧지붕의 일종인 영을 두고 있다.4. 제향 인물
사당에서 모시고 있는 인물이다.- 사계 김장생
- 신독재 김집 - 김장생의 아들이다.
- 동춘당 송준길
- 우암 송시열
5. 향사
제향 인물들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돈암서원은 매년 음력 2월 중정일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중정일이란 10일에서 20일 사이 처음 맞이하는 정일을 말한다.행사는 오전에 주로 진행된다. 대략적인 향사 준비와 절차는 아래와 같다.- 향사준비 및 입재
- 입재
- 집사분정 및 축문 작성
- 설기, 진설
- 향사 절차
- 변복, 취위
- 전폐례
- 초헌례
- 아헌례
- 종헌례
- 음복례
- 철변두
- 망예례
6. 목판 목록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는 목판 목록이다.서명 | 저자 | 판수 | 내용 | |
1 | 사계전서 | 김장생 | 1973판 | 김장생의 시문집 |
2 | 황강실기 | 김혜휘, 김집 | 1238판 | 황강실기는 사계의 부친인 김계휘가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책 |
신독재전서/유고 | 신독재전서/유고는 김집의 시문집 | |||
3 | 사계유고 | 김장생 | 4168판 | 사계 김장생의 유고집 |
경서변의 | 유교 경전의 의심되는 부분 해석 | |||
가례집람 | 가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일람서 | |||
상례비요 | 상례에 필요한 각종 예법 정리서 |
7. 관람
입장료는 없고 월요일을 제외하고 사전 예약을 통해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8. 교통
연산역에서 육교를 건너 청동리 정류소에서 301, 302, 303, 304, 304-1, 305, 312, 313, 315, 317, 320, 321, 323번 버스를 타고 임리2리에서 내려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 해 있다.9.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논산 돈암서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논산 돈암서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논산 돈암서원
-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유교건축: 돈암서원
- 대한민국 구석구석: 돈암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두산백과: 논산 돈암서원
10. 사적 제383호
김장생(1548∼1631)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인조 12년(1634)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은 훌륭한 분들의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양성하던 지방교육기관이며,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은 예학의 대가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힘쓰고 이후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양성을 하였다. 후세에 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우고 김장생을 추모하여 후학에 힘썼다.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추가로 모시었다.
이 서원에는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사우(祠宇), 응도당, 장판각 등의 건물들과 하마비, 송덕비가 남아 있다.
이 서원은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있는 곳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힘쓰고 이후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양성을 하였다. 후세에 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우고 김장생을 추모하여 후학에 힘썼다.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추가로 모시었다.
이 서원에는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사우(祠宇), 응도당, 장판각 등의 건물들과 하마비, 송덕비가 남아 있다.
이 서원은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