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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19:35:06

대백색함대

파일:Great White Fleet Artwork.jpg

1. 개요2. 상세3. 기항지4. 의의5.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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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reat White Fleet, 대백색함대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1907년 12월 16일부터 1909년 2월 22일까지 세계 일주를 행한 미합중국 해군의 함대이다.

2. 상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전황의 변화에 따라 미합중국 해군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코네티컷급 전함, 미시시피급 전함 등이 건조된 상태였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를 활용해 일종의 해군력 과시와 포함외교를 계획한다.

또한 미 해군의 세계 일주에는 원양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항해, 통신, 석탄 보급 및 함대 기동 등 여러 분야에서 당시 미 해군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석탄을 보급해줄 함선이 턱없이 부족해 영국 상선과 계약을 해서 함대에 석탄을 보급해야 했다.

세계 일주를 행하게 되는 함선들의 선체를 흰색으로 도색했기 때문에 편성된 함대는 Great White Fleet, 대백색함대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전함 16척을 포함해 함대 총 톤수가 22만 4천여 톤이었던 거대한 규모의 대백색함대는 1907년 12월 16일에 버지니아 주 햄프턴 로드를 떠났고, 네 단계에 걸쳐 세계를 일주한 뒤 1909년 2월 22일에 햄프턴 로드로 돌아왔다.

3. 기항지

파일:Great White Fleet Map.png

4. 의의

미국은 대백색함대를 통해 미국의 국력을 전세계에 과시할 수 있었다. 특히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을 경계하던 서부의 미국인들은 대백색함대를 보면서 자긍심을 높일 수 있었고, 중남미 지역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당시 대백색함대를 본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대백색함대에 자극을 받고, 별도의 예산을 투자해 자국의 해군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편 당시 영국의 안보 우산이 사라질까 우려하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대백색함대의 기항을 계기로 미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일본 제국에서는 미국의 이민 제한, 샌프란시스코 시의 일본인 차별 등의 문제로 인해 당시 대미개전을 외치던 여론이 있었지만, 당시 해군대신 사이토 마코토가 함대 입항에 대한 정식 초청을 제안하고 미국이 대백색함대의 입항을 선택한 계기로 여론이 쏙 들어갔다. 일본은 연합함대를 편성해 대백색함대와 나란히 요코하마 항에 입항하는 행사를 치렀고, 반 년 동안 예행연습을 치른 어린이 5만 명이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 국가를 부르고 메이지 천황이 대백색함대의 장교들을 초청해 오찬을 베푸는 등 극진한 대우를 했다. 또한 미해군 함정들이 입항할 때 새로운 시대의 미국이 주도할 해군력을 제대로 과시했는데 이 때의 일본은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의 압승으로 인하여 해군력의 자부심이 강했으나 미해군 대백색함대의 위용의 충격을 받아( 흑선 내항 사건과 비교하여 일본에서는 '백선 내항 사건'이라고 한다.) 일본제국이 미국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해군 증강에 노력하게 되는 계기로 이어진다.

반면에 청나라는 대백색함대에게 불만을 가졌다. 다름아닌 함대의 절반만이 샤먼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한편 대백색함대는 미합중국 해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대백색함대의 항해를 계기로 진주만이 미국 해군의 석탄 보급 기지로 각광받게 되었고, 향후 전함 건조에 있어서도 여러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다. 특히 함선의 규격이 너무 제각각이라는 지적에 따라 표준형 전함의 건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해군의 훈련도 역시 높일 수 있었고 대백색함대의 항해를 통해 해군력 확대가 의회의 지지를 받으면서 미국 해군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퇴임 당시 해군 강국이던 영국 독일에 버금가는 규모의 거대한 함대를 보유할 수 있었다.

후일 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하는 체스터 니미츠, 레이몬드 스프루언스는 초급장교로 대백색함대에 속해 일본을 방문 했었는데 이 때 당시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의 주역이자 일본제국 해군의 영웅이자 당시 군령부장이었던 도고 헤이하치로 대장을 축하연에서 만났던 경험이 있다.

5. 후일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받은 훈장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둘리틀 특공대의 도쿄 공습 당시 폭탄에 매달린 채로.

냉전이 시작되고 나서, 당당히 세계 최대의 해군이 된 미국 해군에서는 핵추진 선박의 작전 능력을 검증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된다. 정확히는 연료 보급 없이 대백색함대가 행했던 세계 일주를 다시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이 계획을 제안한 당사자가 바로 존 매케인 3세 상원의원의 아버지이자 당시 대서양함대 상륙군사령관을 역임하던 존 매케인 주니어 해군 중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였던 존 매케인 시니어는 대백색함대의 세계일주 당시 코네티컷함의 승조원 중 한 명으로 세계일주에 참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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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매케인의 제안으로 인해 엔터프라이즈함, 롱비치함, 베인브리지함으로 이루어진 제1기동부대(Task Force One)가 선배들의 뒤를 이어 1964년에 무보급으로 65일 동안 세계일주(Operation Sea Orbit)를 하게 된다.

최초의 핵추진항공모함인 USS 엔터프라이즈함 위에있는 공식은 질량-에너지 등가식인데 엔터프라이즈의 별칭이 BIG E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