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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9 21:48:37

제월빈

단비(후궁견환전)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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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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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D700> 후궁견환전 등장인물
단황귀비
제월빈
파일:견환전_단비.jpg
이름 제월빈 (齐月宾)[1]
배우 이의연
민족 한족
거주지 연경전[2]
가족관계 남편: 옹정제
자녀: 온의공주[3]
파벌 중립 → 견환파
품계 측복진
단(端)비
단황귀비
단황귀태비
{{{#!folding [ 이외 정보 펼치기 · 접기 ] <rowcolor=#FFD700> 원작 품계 정3품 정2품 정1품 태비
<rowcolor=#000,#fff> 단(端)귀빈
단비
[4]
단귀비
단강귀태비(端康貴太妃)
}}} ||
1. 개요2. 출신3. 작중 행적
3.1. 빈사 직전의 비(妃)3.2. 후궁들의 1인자, 황귀비
4. 성격5. 황제와의 관계6. 원작에서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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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의 등장인물.

소설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제월빈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5].

2. 출신

황제가 가장 먼저 들인 측복진으로, 후궁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다. 가장 오래 함께 한 후궁인 탓에 옹정이 황제가 되었을 때 비의 직위를 받고, 황제에게서 상당한 존중을 받고 있다. 황후를 제외하면 후궁들 중 유일하게 순원황후와 면식이 있는 사이로[6] 연씨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어지간한 집안은 일단 깔고 들어가는 화비마저 그녀를 '장군의 딸'이라고 했던 것이나 보통 황족, 그 중에서도 황자의 측복진들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높은 신분과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을 가진 집안의 여식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명문가 출신으로 추정된다.[7][8]

3. 작중 행적

3.1. 빈사 직전의 비(妃)

1화부터 "황후, 제비, 단비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기대할 수 없다"라는 태후의 대사에서 첫 언급된 후 황후와 제비는 바로 얼굴을 비춘 반면, 단비는 이곳저곳에서 스쳐지나가듯 언급만 되고[9] 꽤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던 인물이었으나 온의공주 돌잔치에서 처음 얼굴을 보여 실질적인 첫 등장을 한다.

왜 단비가 신비주의 컨셉을 해야 했는지, 왜 화비는 단비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그 직후에 드러난다. 단비의 궁에 쳐들어간 화비가 패악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그때 한 번이 아니라 화비는 성질이 날 때마다 그의 궁에 쳐들어가 난동을 피웠던 것이다. 화비의 무자식 컴플렉스[10]를 생각해 보면 그 빈도는 상상에 맡긴다. 단비는 화비가 왕부 시절 유산했을 때 약을 갖다준 일로 유산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그는 화비 때문에 강제로 홍화[11]를 마시게 되어 불임이 되고 지속적으로 괴롭힘 당하며, 변변한 치료나 시중도 받지 못해 병 든 몸으로 조용한 자신의 궁에서 죽은 듯 칩거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화비의 유산을 주도한 것은 황제와 태후로[12] 단비는 진심으로 화비를 유산시킬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지만 유산된 자신의 아들에 대한 분노에 반쯤 미친 화비에게 그것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 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에게 패악을 부리는 화비를 향해 '죽일 테면 죽여 보라고, 차라리 죽는 게 지금 상태보다 낫다'고 자조하며 "너는 아이 하나를 잃었지만 나는 평생 낳을 수 없다!"는 울분을 토해내고, 냉소를 던지는 등 화비에 대해 증오만 남게 되었다.
단비: 대체 몇 년째 이러는 것이냐? 성질이 날 때마다 내 궁에 쳐들어와 화풀이로군.

화비: 몇 년이든 내 죽은 아이가 생각날 때면 널 죽여서 씹어 먹고 싶다!

단비: 나를 죽여서 씹어 먹고 싶다고? 그동안 쭉 그래왔었지 않았느냐?

화비: 너만은 내 손으로 꼭 죽여야겠어!

단비: (웃음을 터트리다가 갑자기 기침을 한다.) 지금 난 병석에 누워서 죽느니만도 못하게 살고 있으니, 그냥 죽이는 것보단 통쾌하지 않으냐?

화비: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잃은 고통에 비하겠느냐? 폐하께서 등극하신 후 너를 비로 책봉하고 목숨을 살려 두시다니 정말 원망스럽구나! 너처럼 악독한 년은 사지를 잘라버려야 하는데!

단비: 내가 정말로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면 폐하께서 아직까지 날 살려 두었겠느냐?

화비: 폐하께서는 믿으실진 몰라도 난 죽어도 믿을 수 없어! 그 보약은 네가 갖고 온 거였어. 왕부에서 너만큼은 내 편이라고 믿었었는데...[13] 이토록 사악한 년이었다니... 그 약 때문에 내 아이가 죽어버렸단 말이야! (화비와 단비 둘 다 눈물을 흘린다.) 불쌍한 내 아기... 사내아이였는데 너 때문에 죽었다고!

단비: 넌 앞뒤를 따지지도 않고 모든 죄를 씌우더니 한밤중에 내 처소로 쳐들어와서는 다짜고짜 내 입에 홍화를 쏟아 부었지. 넌 아이 하나를 잃었지만, 난 영원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화비: (다시 기침을 하는 단비를 보면서) 그게 뭐가 대수냐? 네 집안의 대를 끊고야 말겠다!

단비: 증거만 있었더라면 당장 나를 죽여 없애지, 왜 그렇게 가만히 서있기만 하느냐?

화비: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는 단비의 손을 잡으며) 네가 궁에 있는 한, 난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화비가 단비의 손을 뿌리친다.)

단비: 네가 용서하든 말든... 난 상관 없다. 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결국엔 네 손에 죽게 되겠지. 날이 늦었는데 태후께서 알면 좋지 않을 게다.

화비: 내가 겁낼 줄 아느냐?

단비: 겁날 텐데? 태후께서 알게 된다면 폐하도 알게 될 테니까. 그동안 총애를 받았으니 폐하의 마음을 잃게 될까 두렵잖느냐? 오늘도 부찰귀인에 이어서 완귀인이 회임하였으니 질투가 난 거지? 이 일이 알려지면 당연히 폐하께서 의심하지 않으실 테지? 부찰귀인의 유산이 다 네 탓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되면 알게 되겠지. 폐하께 네가 먼저인지, 황손이 먼저인지...

화비: 오늘 일은 나랑 무관해!

단비: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폐하의 생각이니까. 내가 네 아이를 죽였다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날 괴롭히는 것과 똑같은 이치가 아니더냐?

화비: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죽여주지. 네가 죽지 못해 사는 꼴을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온의공주의 돌잔치 때 순원황후를 닮은 견환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에[14] 온의공주의 돌잔치 때 노래를 부르던 안릉용을 뒤로 한 채 하나뿐인 시녀인 길상[15]과 밖으로 나온 상황에서 "화비가 내 입에 쏟아부은 홍화의 쓴맛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이제는 증오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지. 그 사람이라면 본궁을 도울 수 있을 텐데..."라 확신해, 마니옥 사건 때는 갑작스레 나타나 견환을 도와주게 된다.[16][17] 이후 견환에게 몇 가지 충고를 해주고, 견환이 첫 회임을 하자 아기 신발을 떠다 줄 정도로 관계가 발전한다. 완빈 시절의 견환이 그가 힘들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 태의 온실초를 보내서 돌보게 하고 시종도 몇 붙여 준다. 경비와 더불어 견환을 지지하는 큰 축이 되지만, 화비가 살아있던 1부 특성상 큰 역할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화비가 견환에 의해 몰락하고 사사되면서 화비의 심복인 조귀인도 토사구팽되자, 그토록 아꼈던 온의공주를 직접 양육하게 된다.

3.2. 후궁들의 1인자, 황귀비

파일:제월빈.gif
이후 견환이 출궁했다 희비로 환궁했을 때는 온실초 덕분인지, 화비의 구박이 끊긴 덕분인지 이전에는 자리에 앉아있기도 힘들어했던 것과 달리 많이 건강해져서 입김도 세진다.[18] 경인궁에 아침 문후 인사도 가고 내명부 통솔 권한도 생겼다. 사실 황제가 단비에게 내명부 통솔권을 주지 못하겠다고 말한 이유가 병약한 것 외에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었던 걸로 보아 그 이전부터 적임자였던 듯하다.[19] 또한 안릉용의 승급을 견제하려는 견환 덕에[20] 품계가 단비에서 단황귀비로 뛴다. 이는 섭답응 → 녕귀인과 더불어 2계급 특진한 유이한 사례이며 게다가 화비조차도 생전에 되지 못한 황귀비 자리에 올랐다. 황귀비는 한 명밖에 못 들이므로 후궁으로서 최고의 자리이자 사실상 황후를 뺀 내명부의 1인자 자리에 올랐다고 봐도 좋다. 실제로 법적으로는 견환보다 높아서, 황제의 장례식 때 실질적인 권력에서 자신보다 훨씬 앞서는 견환보다 앞에 섰다.[21]

이후 마찬가지로 귀비의 자리에 오른 경귀비 희귀비와 함께 황후 세력에 맞선다. 친자 확인 사건 당시에는 워낙 공식 석상에서 과묵한 그녀 성품 탓에 그 비중이 미미했으나 경비가 롱월공주 일 때문에 황후의 꼬임에 넘어갔을 때는 견환 파벌의 내분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고, 황후의 숨겨진 죄악을 밝혀내는 데 일조했으며,[22] 특히 안릉용의 몰락 과정에서 견환이 각본을 짜고 배후에 있을 때 얼굴마담을 맡아 공식적으로 황후를 몰아붙이고 황제를 설득한 것이 그녀였다. 또한 양녀로 들인 온의공주가 경비의 롱월공주, 견환의 령서공주와 자주 놀고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경비와 견환과는 각별히 더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초반에는 하루 이틀 할 것 같던 모습이었으나 정작 황제가 그녀보다 먼저 죽고 경귀비, 흔빈과 더불어 최후까지 살아남는다. 또 상심한 나머지 몸져 누웠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이젠 온의공주가 곁에서 간호하고 있으니 다시 괜찮아질지도.

4. 성격

전체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성격이다. 공식 석상에서는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아 말을 아낀다. 그래서 황제"과묵하지만 입을 열면 옳은 말만 한다."라고 평가했다. 황제나 다른 이에게 진언할 때도 독대할 때를 골라서 말하고, 그리고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만났다는 사실 자체를 알리는 것을 꺼린다. 때를 보아 참고 기다리고, 아는 일에도 웬만하면 입을 다물며, 조용히 뒤에서 훈수를 두는 타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극적이지 않은 성격이기에 대외적으로는 분쟁에 전연 관심이 없는 중립파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황제 왈 그게 단비의 최대 장점이라고. 바로 이 이미지를 사용해서 마니옥 사건 때 견환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소배성과 최근석을 구명했으며, 리비 시절의 안릉용을 몰아넣었다.[23] 그래서 아랫사람에게 착하고 지혜롭다는 점은 같으나 보다 적극적이고 어딘가 경쾌한 맛이 있는 경귀비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점잖고, 온화하고, 착하다. 화비가 "너만큼은 정말 믿었었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왕부에서 그나마 화비와 친밀한 관계였던 듯 하다. 일단 신중한 그 성격상 쉽사리 적을 만들 사람도 아니거니와 화비가 임신했을 때 약을 가지고 간 걸 보면 어느 정도의 교류는 있었던 듯. 연갱요 태후가 말했듯 화비는 유산 이전에도, 아니 왕부에 갓 들어왔었던 시절부터 성격이 아주 더러웠는데, 그런 성격의 소유자와 친하게 지낼 수 있으려면 보통 친화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경비를 구명해달라고 온의공주와 자신의 관계를 언급하며 견환에게 부탁한 것, 그리고 황제에게 고사를 언급하며 소배성× 근석 스캔들이 터져 난처해하는 견환을 구명해달라며 에둘러 말했고, 이 두 충고 다 큰 효과를 보았다는 것으로 보아 자비로움에 지혜로움까지 겸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냥 착하지만은 않고, 한 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집념에 대해 인내심과 참을성이 강하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뒤끝이 엄청난 것이다. 평생 당한 일을 생각하면 뒤끝이 없는 게 더 이상하긴 하다. 화비에 의해 불임이 된 후 화비에게 싸움을 걸지는 않고 이쪽이 먼저 피하고 있었지만[24] 화비에게 내내 뒤끝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아야 한다는 대사가 특히 많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화비 때문에 치를 떠는 견환에게 찾아와 "화비의 몰락을 차분히 기다려야지, 나는 평생을 기다렸다네. 자네는 그 짧은 시간을 못 기다리는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독기가 서려 있다. 또한 희비로 환궁한 견환이 롱월공주가 자기에게 안 온다고 마음 아파하자 "자네는 이제 희비 뉴호록씨이고 롱월은 완빈 견씨의 딸이니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네."[25]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참아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견환의 첫 유산 사건에서도, 소배성× 근석 스캔들 당시에도, 부찰귀인 유산 사건에도, 친자 확인 사건에서도 사건의 중심에서는 언제나 한 발짝씩 물러나 있었지만 신중하고 차분하여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경우가 많다. 황후가 말하기를, "그 눈썰미는 여전하군."이라고 인증한 바가 있다. 여기에 관찰력이 뛰어난 것도 한 몫 한다. 그윽한 눈매를 지닌 배우의 외모와 차분하고 가라앉은 목소리 톤을 지닌 성우 연기 덕분에 이 면모는 더욱 부각되었다. 후궁들이 단순히 사고라고만 생각한 부찰귀인 유산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견환에게 조심하라고 충고한 것도, 조귀인의 무서움에 대해 견환에게 충고한 것도 단비였다. 화비 때문에 견환이 유산했을 때도 화비가 정말 고의로 견환을 유산시킨 것이 아니었다는 의도를 가장 정확히 파악한 유일한 인물도 단비였다. 또한 순원황후의 사산된 자식인 2황자 홍윤을 직접 본 적이 있으며, 순원황후와 현 황후 사이에 얽힌 일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순원황후의 죽음에 황후가 엮였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견환 경귀비에게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드라마판 기준으로) 딱히 황후에게 당한 일이 없음에도 황후를 꺼리는 것을 알 수 있다.[26] 친자 확인 사건 당시 "본궁은 황후인데 뭐가 부족해서 희귀비를 음해하겠느냐?"라는 황후에게 "그렇습니다. 이미 마마께서는 황후이신데 뭘 더 원하십니까..."라고 차분하게 맞받아치는 장면에서 그녀가 황후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이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을 귀여워한다. 조귀인 소생의 온의공주는 특히 귀여워해서 잘 나다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화비가 있음을 알면서도 생일날에 아픈 몸을 이끌고 나타난 것도 모자라 온의에게 자신이 황제에게 시집 올 때 갖고 왔던 혼수품인 목걸이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세상과 담 쌓고 지내다가 온의공주가 자꾸 토한다는 (마니옥 사건) 말을 시녀에게 전해듣고 공주를 보러 가기도 했고, 온의공주가 눈밭에서 시녀들과 놀다 미끄러지자 온몸을 던져 구해줄 정도이다. 그리고 뽀뽀해달라고 하기도 하고. 이후 온의공주의 양육권을 넘겨받은 후 경비 때문에 근석이 신형사로 보내져 곤란해하는 견환에게 나타나 "나도 양빈이 살아돌아와 온의를 내놓으라고 하면 경비 같은 기분일 걸세."라고 이야기하면서 인증했다. 그 정도로 온의공주의 생모인 조귀인을 염두에 뒀는지 "어린 것이 보고 크는 게 있는데, 친어미처럼 교활해지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네."라고 말한 적은 있다.

5. 황제와의 관계

황제는 단비를 상당히 존중했다. 여기에는 황제가 단비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것이 상당히 작용한다. 황제가 직접 자기 입으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하는 몇 안 되는 사례가 단비의 사례였다. 그러나 황제가 견환이 첫 번째로 유산했을 때 도리어 얼굴을 안 보고 죄책감을 혼자 삭혔던 것처럼, 단비 또한 그녀를 보는 것 자체 자신의 잘못을 되새기는 일이기 때문에 찾아가서 위로해주거나 좀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일단 온의공주의 돌잔치나 마니옥 사건 등 단비가 공식석상에 나타나면 잘해주며, 또한 원명원에 누구를 데리고 갈까 의논할 때 몸이 안 좋은 단비도 데리고 가려는 등 잊지 않고 꼬박꼬박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단비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목걸이를 알아보기도 하는 걸 보면 완전히 아웃 오브 안중은 아닌 듯. 그러나 눈에 띄게 잘해주면 단비에 대한 증오가 절절 끓고 있는 화비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이기 때문에... 실제로 내명부의 통솔권을 지니고 있는 화비가 단비의 시녀와 태감을 뻬버리고 태의를 보내지 않는 등의 횡포를 부려도 황제는 어떠한 제지도 하지 못했다.

2부에서는 화비도 사라졌겠다, 단비가 몸이 좋아져서 죄책감이 희석된 모양인지 독대하거나 같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물론 사이는 여느 중년 부부처럼 좋아 보인다.

황제가 죽고 우느라 눈이 나빠졌다는 언급이 있는 황후와 더불어 황제의 죽음을 유이하게 슬퍼한 여자. 얼마나 슬퍼했는지 그만 몸져 누웠다고 한다. 많지는 않지만 견환을 위해 황제를 설득할 때 황제가 그녀를 존중한다거나 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감정을 얼핏 엿볼 수 있다. 몸을 조심하라고 하며 살짝 스킨십을 하고 돌아선 황제의 손길이 남은 자기 어깨를 쓱쓱 매만져 본다든지 하는 아련돋는 장면이 있다. 궁 내의 현실을 알지만 그래도 황제를 사랑했던 모양이다. 이 부분으로 보아 견환이 단비를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황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경귀비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단비는... 단비가 황제에게 복수하려던 견환의 의도를 알았다면 당연히 견환을 증오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견환은 구제의 여지가 없다. 자신에게는 원수라 하나 착한 사람을 속여 그녀가 사랑하던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엄연한 잘못.

추측이지만 화비와 단비가 말싸움을 할 때 단비는 "날 죽이고 싶으면 죽여봐라, 폐하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폐하는 날 벌하지 않으시고 비(妃)의 품계를 주셨고, 그것은 폐하가 내 결백을 믿어 주신다는 증거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며 화비를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이 장면으로 보아 단비는 다른 모두가 그녀의 죄라고 생각할 때 그 와중에 자신이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실을 마지막까지 믿어 주었기에 자신이 궁중에 있을 최소한의 자리[27]나마 확보해 준 황제에게 고마움을 가졌는데, 그것이 황제에 대한 좋은 감정의 일부를 형성한 것처럼 보인다. 정작 그 죄를 뒤집어씌운 게 황제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황제가 고의로 화비를 유산시키고 그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 씌웠고, 그로 인해 자신이 불임이 되고 화비의 괴롭힘을 받게 된 것을 알면 단비의 그 사랑도 과연 계속되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고, 실제로 그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황제에게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도 황제를 사랑한 얀데레 황후가 건재하기 때문에 까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

단비가 황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그녀 입장에서 황제에게 당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는데,[28] 당한 것이 없으면 사랑한다는 공식에는 어폐가 있고 그 반례로 흔상재를 드는 경우가 있다. 황제가 흔상재를 보고 "흔상재가 짐을 따른 지 오래 되었다." 이러면서 간신히 품계를 올려줄 정도인데 흔상재는 황제 사후에 매우 멀쩡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황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흔상재는 황제로부터 단순히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그 때문에 여답응이나 기귀인으로부터 구박과 천시를 받았음에도 황제는 전혀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묵인했다.[29] 그 서러움이 얼마나 심했던지 입궐한 후 화비의 압제 속에서도 꿋꿋이 중립을 지킨 흔상재가 견환파로 돌아설 정도였다. 흔상재에게 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선 순간 황제에 대한 오만정이 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황제가 죽었을 때 흔상재가 멀쩡했던 것이 오히려 당연하며 단비와는 경우가 다르다.

다만 황제를 사랑했던 것과는 별개로, 황제를 제법 속였다. 대외적으로는 온화한 중립파 이미지를 구축했기 때문에 황제의 신뢰를 받았고, 이런 이미지를 이용해서 견환 쉴드를 상당히 쳤다. 마니옥 사건에서 알리바이 증인이 되어준 것부터가 위증이고, 소배성과 최근석의 사건에서도 견환의 부탁으로 사정을 빌었음에도 누구랑 만났냐는 황제의 물음에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또 의외로 황제를 혹평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화비가 죽은 뒤 황제가 돈숙이라는 시호를 내린 것에 대하여 견환은 황제가 아직도 화비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단비는 황제가 자신의 각박함을 감추려 한다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6. 원작에서

파일:후궁견환전.원작.단비.jpg

앞에 있는 아이는 막 입궁했을 때의 단귀빈. 화비에 꿀리지 않는 상당한 미인이지만 고생을 많이 해서 얼굴이 좀 상했다고 한다. 창백하고 차가운 인상으로 묘사된다.

7. 기타

특기는 비파. 황제의 말에 의하면 비파 연주가 궁에서 제일이라고 한다. 황귀비(단비)와 희귀비( 견환, 칠현금)를 언급하며 영귀인의 쟁 연주를 칭찬했다. 취미는 독서일 가능성이 있다. 장군의 딸이라서 집안에서 교육을 많이 시켰는지 불경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있고, 심지어 맹자 주자를 읽고 황제에게 의견을 말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다. 희비 시절의 견환과 바둑을 두는 모습이 나오는 걸로 보아 바둑도 좀 하는 듯.[31]

또한 태후처럼 독실한 불교 신자일 가능성이 있다. 마니옥 사건 당시 견환의 알리바이를 서 주며 한 말이 견환과 불교 경전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황제에게 야자를 깔 수 있는 유일한 후궁이다. 옹정황제의 여인/설정 오류 문서 참조.


[1] 바이두 백과에서는 제월빈이 원작 소설 이름, 드라마판 이름은 경월빈이라 표기되어 있다. 실제 역사에서 옹정제의 황귀비는 돈숙황귀비 연씨(드라마 속 화비)와 순의황귀비 경씨 뿐이라 순의황귀비를 단비의 모티브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경씨는 옹정제가 사망한 후에야 황귀태비가 되었고, 생전 봉호도 유(裕)라서 단비와 겹치는 점이 없기 때문에 경씨를 모티브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2] 서육궁이나 동육궁에 속하지 않은, 자금성 북서쪽의 작은 전각으로 서육궁과 우화각 사이에 있다고 한다. [3] 조귀인 사후에 온의공주를 양녀로 삼았다. [4] 견환이 숙비로 봉해질 때 경비와 함께 종1품 부인의 대우를 받는다. 품계를 주지 않은 이유는 화비와 여남왕 현제의 생모(옥액부인)가 부인으로 있을 당시에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에 가능한 부인 자리를 주고 싶지 않아서다. [5] 실존 인물인 순의황귀비 경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는 말도 있으나, 황귀비라는 점 빼고는 겹치는 점이 없는데다가 경씨는 사후 황귀비로 추증된 것이기에 순의황귀비를 모티브로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낮다. [6] 화비 제비, 경빈, 여빈, 조귀인, 흔상재도 왕부 시절에 들어왔으나 순원이 죽은 이후였다. [7] 단비의 모티브가 된 원작의 제월빈도 개국공신이자 무장 집안의 여식이라는 설정이다. [8] 화비의 경우 황제 생일 축하연에서 단비가 어의를 청했다는 말에 그런 천한 것에게 은혜를 베풀 수 없다며 막아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냥 욕한 것이다. 굳이 우리 말로 바꿔보자면 썅년이라고 한다고 해서 실제로 천민 출신의 여자를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원문은 천인(賤人)으로, 신분의 미천함과는 무관하게 여자를 욕하는 말인데, 말투가 옛스러워서 사극이나 고전소설 위주로 사용된다는 점만 제외하면 의미 자체는 쌍년과 같다. 여답응이나 기귀인 견환을 보고 천한 것이라고 욕한다. [9] 화비가 새해맞이 축하연에서 의사를 보내지 말라고 했던 5화, 여빈이 태감 강록해의 출신을 말하며 단비를 모셨던 놈이라고 하는 8화, 원명원에 누구를 데려갈까 하는 장면에서 12화. [10] 연세란 문서의 성격 문단 참고. [11] 중국 민간에서 사용되는 장홍화(사프란)액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후궁에서 황제가 동침한 궁녀를 임신시키고 싶지 않을 때 궁녀를 물구나무 세우고 씻어냈다고 한다. 사프란은 워낙 귀해서 요리에 사용할 때 아주 소량 넣지만, 독성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독성이 적고 향이 좋아 식용으로 쓰는 암술도 20g 정도 먹으면 반 치사량이 되며, 다른 부분을 과량 섭취하면 유산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임산부는 식용 사프란도 가급적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12] 진상은 연세란 문서 참조. [13] 참고로 오역이다. 원문은 "너는 누구와 다투지 않는 성격이라 나도 너를 조금은 믿었다" 정도의 의미다. [14] 순원과 견환은 외모부터 너무 닮았기에 단비는 바로 눈치를 챈 것이다. [15] 화비의 각종 패악질 때문에 단비 곁에 남아있는 단 하나뿐인 시녀다. 때문에 수석 상궁인데도 혼자 연경전의 모든 일들을 도맡아서 해왔다. [16] 이때도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황제 황후는 단비가 나타나자 인사는 필요 없고 당장 앉으라고 닦달했다. [17] 견환이 연회 자리를 슬그머니 빠져나와 청량대로 가서 온의공주의 죽에 마니옥을 넣었다는 혐의를 받았을 때, 그는 사실 윤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황제가 윤례에게 열등감을 품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그것을 알리바이로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비가 "완귀인은 그때 신첩과 불경에 대해 이야기를 했사옵니다."하고 실드쳐준 것. [18] 사실 이건 화비가 없어져 그런 것이다. 화비는 단비가 준 약을 먹고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해서 단비를 증오했기 때문에 밥도 좋은 거 주지 말고, 약도 주지 말고, 옷도 주지 말고, 빨래도 해주지 말고, 아무튼 다 해주지 말라고 툭하면 깽판을 피웠다. 덕분에 아파서 발작을 일으켜도 태의를 부르지도 못했고, 진맥을 받지 못하니 정확한 약을 받는 게 아닌 꼴랑 보약 수준의 약만 먹으니 그동안 골골거리며 낫지 않았던 것이다. [19] 은근히 간과하는 사실인데, 순원황후를 알고 있었다는 점은 후궁에서 거의 최고참이라는 뜻이다. 화비와 경비는 순원황후 사후 비슷한 시기에 입궁했고, 제비도 순원황후와 견환이 닮았다는 걸 모르는 걸 보아 짬밥이 딸린다. 따라서 단비와 견줄 만한 후궁은 황후 뿐이다. 원작에서는 아예 어려서부터 태후가 양육했다고 언급되었으니 황후보다도 더 고참이다. [20] 기빈 황후의 장기말 노릇을 하다가 친자 확인 사건으로 인해 폐서인되어 비 오는 날 시위들에게 맞아 죽고, 이제 황후의 편에 남아있는 후궁은 안릉용 하나였는데, 안릉용의 아버지가 황제가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부정축재를 저질러 집안 전체가 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황후는 안릉용을 띄워주기 위해 낳지도 못할 아이를 억지로 임신시키고 승급시켰다. 견환도 이에 맞서 황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고 후궁들의 충성을 단결시키기 위해 자기랑 친한 후궁들을 죄다 승급시켰다. 게다가 이때 먼저 죽어버린 후궁들도 죄다 추승되었다. 화비 제비가 바로 그러하다. [21] 작 중 언급으로 황귀비는 부황후나 다름없는 자리라고 하는데, 사실 순원황후의 사망 사건이 밝혀져서 황후가 실각하기 전까지 단황귀비는 좀 애매한 감이 있다. 황귀비가 부황후 대우를 받는 상황은 대개 황후 자리가 공석이거나, 황후가 있어도 이런저런 원인으로 허수아비인 경우에 황후 권한대행 및 예비 황후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황후가 멀쩡해 있던 시점에서 황귀비는 그냥 의전만 높고 권력은 없는 자리였다. 오히려 귀비인 견환이 황제로부터 6궁 통솔에 동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실권은 이쪽이 더 높다. [22] 언니인 순원황후 때문에 적복진 자리와 남편의 사랑을 잃고 병마로 아이까지 잃어 의수가 순원에게 맺힌 게 있다는 것, 순원이 임신하자 의수가 태의와 함께 순원의 음식과 약재를 관리한 것, 순원은 아이를 사산했는데 아이의 몸에 푸른 반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제공했다. 단비가 말해준 왕부 시절 이야기와 안릉용의 유언인 "황후가... 황후를 죽여요!"라는 말을 통해 견환은 순원황후와 복중 태아가 의수에게 독살 당했다는 사실을 유추해냈다. [23] 원 대사는 "황후마마, 신첩은 딱히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의 편도 아닌데 왜 리비를 음해하겠습니까." [24] 온의공주 돌잔치에서는 화비를 의식해서인지 먼저 나와 버리는 등. [25] 훗날 견환은 이때의 일을 떠올렸는지 황제의 죽음이 임박하자 황제가 4랑이라 불러달라며 부탁하자 "신첩은 뉴호록 견환입니다."라면서 일침을 가한 적이 있었다. [26] 황후의 착하고 현숙한 사람 연기는 눈치 빠르거나 궁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수많은 궁중 암투를 겪은 최근석 안릉용은 물론 견환조차 황후에게 제대로 당하기 전까지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27] 비(妃)의 지위와 단정할 단(端)의 봉호, 화비와 동일한 위치이다. 또한 출신 성분도 좋아 연씨 가문에 꿇릴 정도도 아니다. [28] 나이 많고 병 들고 애도 못 낳으니 관심이 멀어지는 정도인데, 이 정도면 다른 후궁들에 비하면 약과다. 당장 3황자를 낳고도 황제에게 사랑 받지도, 존중 받지도 못하는 제비를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29] 견환이 입궁하기 직전 흔상재는 아이를 유산한 바 있는데 정확히 누가 한 짓인지 나오지 않았지만 정황상 황후일 가능성이 아주 높고, 황제도 황후가 자신의 아이를 여러 명 유산시키는 걸 알고도 묵인했으니 이것 또한 흔상재에게 심한 상처였을 것이다. [30] 견환은 이 연주가 동생에 의해 죽게 된 순원황후를 위해서인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 자기 자신을 위해서인지 궁금해했지만 단비의 감정이 묘사되지는 않았다. [31] 공교롭게도 단비와 견환의 취미가 비슷하다. 견환도 독서와 바둑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