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Никола́й Кузнецо́в | Nikolai Kuznets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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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쿠즈네초프 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Кузнецо́в Nikolai Ivanovich Kuznetsov |
아명 |
니카노르 이바노비치 쿠즈네초프 Никано́р Ива́нович Кузнецо́в Nikanor Ivanovich Kuznetsov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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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1년 7월 27일 |
러시아 제국
페름현
예카테린부르크구 지랸카 (現 러시아 우랄 연방관구 스베르들롭스크주 탈리차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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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4년 3월 9일 (향년 32세) |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 르보프주 졸로체프군 브로디 근처 | |
복무 | 내무인민위원부 |
1938 ~ 1944년 | |
최종 계급 | 중위 (내무인민위원부) |
주요 참전 | 독소전쟁 |
주요 서훈 |
레닌훈장 (2회) 소비에트 연방 영웅 (사후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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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소전쟁 당시 소련의 유명 간첩.2. 생애
2.1. 학업
러시아 제국 페름현 예카테린부르크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언어학에 재능을 보여 독일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하게 됐다. 15세에 튜멘 농업대학에 지원했지만 아버지의 부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기타 지역 대학에 지원했지만 반혁명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강제 제명됐다. 두 차례 불행을 겪은 뒤 원어민들도 놀랄 정도의 독일어 구사능력 덕분에 NKVD 소속 합동국가정치국 부서에 채용됐다.1938년 모스크바로 이주해 정식으로 NKVD 대원이 되는 데에 성공했다. 나치 독일 국적을 가지고 외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첫 임무였다.
2.2.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 당시 나치 독일 점령하 우크라이나에 고립된 소련군과 합류하도록 파견됐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령이 이끄는 게릴라 부대에 들어가 우크라이나 중서부에서 전투를 치렀다. 독일 국방군의 주요 간부들을 납치, 암살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 또한 그는 쿠르스크에서 벌어질 대규모 전차 부대 공격 계획, V2 로켓에 대한 정보, 테헤란 회담 암살 시도를 알아낸 최초의 인물이다.[1]2.3. 사망
인민을 위한 복수자
유리 가가린
유리 가가린
하인리히 뮐러의 보고서에 따르면 쿠즈네초프는 독일 국방군복을 입고 잠입하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에 의해 구금 후 총살됐다고 나왔는데[2], 일부 공개된 소련 보고서엔 전장에서 포위되자 수류탄으로 자살했다고 기록됐다. 아직까지 공식 사인은 후자인 셈.
쿠즈네초프는 우크라이나 르비우주 르비우에 매장됐다. 2003년부터 러시아는 그의 시신을 러시아로 인도하길 원했지만 시도는 번번히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