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내가 히틀러라니!
1. 개요
대체역사물인 내가 히틀러라니!의 개변된 역사를 정리한 문서.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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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맹
실제 역사에서는 추축국이 패배했기에 연합국 위주의 기구인 국제연합이 대체했지만 여기서는 독일이 재가입하며 존속되어 국제연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임이사국으로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소련, 중화민국(후에 중화인민공화국에 강탈당한다.), 이탈리아가 있다. 중화민국은 다행히 상임이사국 자리만 뺏기고 회원국 직위는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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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히틀러(주인공)가 죽기 전에 실제 히틀러가 자살한 날을 기념으로 장난 삼아 실제 역사에서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후임자로 카를 되니츠와 괴벨스를 지명한 문서를 남긴 것을 흉내내어 그대로 써놓은 것이[1] 히틀러가 암살된 후 측근들에게 '진짜 유언장'으로 받아들여져 일단 되니츠가 대통령, 괴벨스가 총리가 되나 실권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있다고 묘사된다. 그 후 나치당 고관들은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하게 되자 아직도 프로이센 황실에 향수가 있는 융커 계급이 주도하고 있는 육군과 타협하게 되어 빌헬름 2세의 아들 프리드리히 4세를 카이저로 모시는[2] 독일 제4제국이 수립된다. 하지만 모든 실권은 하이드리히가 쥐고 있었으며, 1979년 하이드리히가 노환으로 사망한 후에야 원래 반나치주의자였던 프리드리히 4세의 아들 페르디난트 1세 황제[3]가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현실 역사에서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했던 것처럼 점진적 탈나치화 과정을 밟아간다고 묘사된다. 히틀러는 1차대전 패전의 혼란을 수습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독일의 구세주이자 영웅이라는 전설이자 독일의 국부로 남게 되었고 나치는 더 이상 정치 집단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정치 정당과 국민 운동 같은 개념으로 변하며 네오 나치 같은 강경파들의 대부분이 소멸했다. 90년대부터는 유대인에게도 독일 입국 허가를 내준다고 한다. 국기는 2016년에도 여전히 하켄크로이츠.
유럽 최대의 강대국인 것으로 보이며 핀란드,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이 독일의 위성국이거나 동맹국인 듯. 이탈리아령 리비아에서 핵실험을 해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 한국의 핵무장을 돕는다.
한국은 독립을 지원한 나치 독일과는 현실의 한미관계 수준으로 우호 관계를 지켜서, 현실의 주한미국대사관 자리에 독일 대사관이 위치하고, 한국군의 장비와 교리 등도 독일군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는다.
로켓 기술은 미국보다 나은 수준[4]이라고 표현된다. 1965년 세계 최초로 우주공간에 사람을 올려보냈다고 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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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평화조약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독일에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기에 국가적 위상이 크게 흔들렸고 유럽 대부분이 독일의 영향권으로 넘어가버린다. 그러자 대영제국의 잔재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으며 인도처럼 큰 식민지들은 독립시켰지만 다른 작은 식민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는 듯. 국력이 현실에서보다 약해졌고 독일과 소련이 쌍으로 가상적국이라서 현실에서보다 더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인 것 같다. 한국과 중국의 간도 영토분쟁에서는 홍콩이 위협받을까봐 중국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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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전 중에는 페탱의 비시 프랑스와 드골의 자유 프랑스가 치고받고 싸웠으나 영국과 소련이 독일이 평화협정을 맺어버리고 자금을 대주지 않자 자유 프랑스는 돈줄이 막혀버린다. 이후 강경파 드골은 계속 투쟁할 것을 주장하나 협상파 다를랑은 전쟁이 끝났으니 프랑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와중에 드골파 청년이 다를랑을 암살해버린다. 다를랑 암살을 계기로 다를랑을 따르던 자유 프랑스 해군이 알제를 포격해서 쑥대밭을 만든 뒤 페탱 정부에게 투항해버리면서 자유 프랑스는 폭망. 현대의 프랑스는 페탱 정부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적 분쟁에서는 항상 독일 편을 든다고 하고 독일의 도움으로 핵무장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 독일의 위성국과 동맹국 사이 정도의 취급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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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공기. 독일의 위성국인 것으로 보인다. 상임이사국 7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도 있는 핵무기가 없으며 독일은 이탈리아령 리비아 땅에서 핵실험을 해놓고 이탈리아가 핵무장을 하려고 하자 입을 싹 씻었다고 한다. 워낙 언급이 적어서 잘 알 수 없지만 무솔리니는 실각했다고 하며 독일처럼 탈파시스트화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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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중공)[6]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는 건 기존 역사 그대로지만, 독일 제4제국의 존재로 소련을 견제하는 말로 중국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진 미국과 화해도 못하고, 소련과는 실제 역사보다 더 박터지게 싸운데다, 변화된 대한민국과의 관계 때문에[7] 서방 기술과 자본도 들여오지 못하며, 대중국 포위망을 기치로 한 서태평양 조약기구[8]까지 존재해서, 경제, 사회, 군사력 등등 국가배경 전반이 현실의 7~80년대 수준이다. 그야말로 덩치만 큰 북한. 그래서 미세먼지는 현실보다 덜한 모양. 그래도 대국은 대국인지라 핵개발도 했고, 중화민국으로부터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자리도 빼앗았다.
이런저런 여건[9] 탓에, 중국으로서는 간도에 대해 명시적으로 포기할 수도 무력으로 탈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조공 세력을 지원해주고 있다. 군대에 재입대하게 된 주인공의 경험담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10] 중국의 도움으로 게릴라식으로 잦은 테러를 일삼는 조공 때문에 간도 지방은 거의 아프가니스탄 수준으로 국군 병력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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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원래 역사에서 독일이 패망하여 흘러들어온 인재 풀도 없는데다, 바뀐 역사의 독일,[11][12] 미국, 중국이라는 강력한 적들의 존재로 페레스트로이카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악착같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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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공)
소련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끝난 후 한반도 공산화를 위해 김일성을 간도로 보내서 만든 이름뿐인 괴뢰정부로 시작되었다. 간도에서 김일성의 수상 취임식을 진행하던 중 정탐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파견된 광복군 출신 요원이 김일성의 개소리에 빡친 나머지 지시도 없이 독단적으로 수류탄을 던지는 테러를 벌여 김일성의 부인인 김정숙과 차남 김슈라가 사망한다. 원래는 간도에서 내정을 정비하며 한반도 탈환을 위한 힘을 기를 계획이었으나 아내와 아들을 잃은 김일성이 미쳐 날뛰면서 테러집단화되어 한만국경을 침범해 테러 행위를 일삼는다. 1953년 한국 국방군이 간도를 침공하자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패주한다. 한국이 간도를 발해도란 이름으로 합병하자 근거지를 둔화로 옮겼고 2016년까지 간도 지역에서 계속 테러를 벌이는 중.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탄테러로 폭파시키자 한국군이 보복으로 둔화를 폭격하는 일도 있었다. 일개 테러집단이 무려 60년이 넘도록 게릴라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중공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 한국의 간도 점유를 인정할 수도 없으나 그렇다고 무력으로 간도를 침공하자니 한국군과 비교해도 전력이 밀리기에 중공이 할 수 있는 것은 조공을 앞세워 대리전을 벌이는 것뿐이다. 간도에서는 매년 조공의 테러로 백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시간상 2016년 시점에 김일성은 이미 사망했을 것이 확실하나 누가 조공의 지도자인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어차피 중공의 괴뢰정부라서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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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몰락 작전으로 본토 전체가 초토화되며 여기서도 결국 원자폭탄을 두 발 맞는다.[14] 전쟁 이전 인구가 7000만이었으나 몰락 작전 이후 2500만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무려 4500만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국가 기반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 종전 후, 맥아더 치하에서 농업국가로 재건되었다. 전쟁 중 유일하게 초토화되지 않은 교토로 수도를 이전했다. 한국에 대한 배상금도 금속자원 등 원자재로 지불하였으며,[15]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달리 카라후토(남부 사할린) 및 치시마( 쿠릴 열도)를 아직 가지고 있지만, 오키나와가 류큐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영토가 축소되었다.[16]
대소 견제 및 대중 군사동맹의 일환으로 군이 재건되어 30만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해외파병 보낼 여력은 없어 미국이 일본 젊은이들을 고용하여 전장에 투입하는 것을 승인. 제포이(Japan+Sepoy=Jepoy)[17]라는 속어로 불리며 위험한 전장에서 죽어나가고 있지만 앞길이 없다고 느낀 젊은이들이 많이 지원한다는 듯. 이 신생 일본군은 한국에 대한 배상금과 군 재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한국제 무기를 원조받아서 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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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이쪽 세계엔 이스라엘이 세워지지 않고,[18] 그 지역은 요르단에 넘어갔다고 한다.[19] 그리고 중동에서는 각 열강이 지원하는 국가들[20] 간에 피튀기는 중동대전이 벌어진다.패가르기가 불명확한 게 귀찮았나보다. 중동 배틀로얄?
3. 시간흐름
날짜 | 내용 |
1941년 8월 12일 전 | 이전의 역사는 실제와 같다. |
1941년 8월 13일 | 주인공이 히틀러에 빙의되다. |
1941년 8월 13일~ 1941년 8월 15일 |
주인공이 히틀러에 빙의된 충격으로 사흘간 방에 틀어박힌다. |
1941년 8월 16일 | 주인공이 히틀러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대외적으로는 히틀러가 이때부터 변한 시기다. |
1941년 8월 17일 | 주인공이 24시간동안 잠을 잤다. |
1941년 8월 18일~ 1941년 8월 20일 |
주인공이 총통 관저 근무자 전원의 인사기록부를 읽으며 사흘간 방에 틀어박힌다. |
1941년 8월 21일 | 주인공이 부관실 및 경호실 인원을 완전 교체한다. |
1941년 8월 25일 | 주인공이 동부 전선에 있는 전 병력에게 유대인과 포로를 임의로 사살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정치장교 처형명령도 철회한다. |
1941년 9월 8일 | 주인공이 유대인 문제 처리를 연기하고 슬라브인에 대한 대우를 향상,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다. |
1941년 9월 말 | 히틀러가 변화한 것에 대한 부관들의 잡담이 나온다.[21] |
1941년 10월 1일 | 독일해군 유보트가 최초로 미국 구축함을 공격한다. |
1941년 10월 3일 | 주인공이 모스크바 공략 포기를 선언한다. 폴란드 총독을 한스 프랑크에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로 교체한다. 미국 주재 대사를 재파견한다. |
1941년 10월 10일 | 주인공이 1940년에 붙잡은 프랑스 포로 190만명을 전원 석방한다. 국민 총동원을 개시한다. |
1941년 10월 20일 | 독일 정부가 스탈린의 소련이 감행한 카틴 학살을 전세계에 공표한다. |
1941년 11월 15일 | 독일군이 모스크바까지 64km가 남은 상태에서 진격을 중단한다. |
1941년 11월 18일 | 영국군이 북아프리카에서 반격을 개시한다. 아프리카 군단이 트리폴리 인근까지 밀려난다. |
1941년 11월 28일 | 주인공이 아민 알후세이니와 회담한다. |
1941년 12월 1일 | 카틴 학살 조사보고서가 미국에서 출판된다. |
1941년 12월 3일 | 헤르만 괴링 공군원수가 암살당한다. |
1941년 12월 7일 | 일본군이 진주만을 공습한다. |
1941년 12월 8일 | 독일정부가 태평양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한다. |
1941년 12월 10일 |
일본군이 괌을 함락하다. 영국 전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가 일본군에게 격침당한다. |
1941년 12월 11일 | 소련군이 전면 반격을 개시한다.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데미얀스크-르제프-오렐-스탈리노를 잇는 선까지 후퇴한다. |
1941년 12월 15일 | 주인공이 북부집단군 사령관인 리터 폰 레프 원수를 육군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
1941년 12월 20일 | 주인공이 알베르크 케셸링 공군 원수를 남부 전구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
1941년 12월 23일 | 일본군이 웨이크 섬을 함락하다. |
1941년 12월 25일 | 일본군이 홍콩을 함락하다. |
1941년 12월 26일 | 영국군 코만도가 로포텐 제도와 복셰이 섬을 습격한다. |
1941년 12월 28일 | 셸렌베르크, 아브라함, 슈테른과 회견한다. |
1942년 1월 20일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유대인 처리 방법 결정을 위한 반제 회의를 주최한다. |
1942년 1월 26일 | 독일해군이 유보트로 영국 본토에 첫 로켓 공격을 가한다. 한 달 뒤부터 본격적인 공격이 개시된다. |
1942년 2월 7일 | 주인공이 무솔리니와 페네뮌데에서 전쟁 지도 방향에 대한 회담을 한다. |
1942년 2월 15일 |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하여 말레이 반도를 석권한다. |
1942년 2월 24일 | 독일해군 최초의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이 취역한다. |
1942년 3월 7일 | 블라소프가 지휘하는 소련 제2충격군이 레닌그라드 포위망 돌파를 시도한다. |
1942년 3월 8일 | 독일공군에서 분리된 해군 항공대가 정식으로 발족한다. |
1942년 3월 9일 |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주둔 네덜란드군에게 전면 항복을 받아 인도네시아를 점령한다. |
1942년 3월 27일 | 영국 코만도가 생나제르 항을 습격하려다 실패한다. |
1942년 4월 3일 | 소련이 해체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국방군이 재창설된다. |
1942년 4월 5일 |
영국 공군이 쾰른을 폭격한다. 일본 해군이 실론(스리랑카)를 공습한다. |
1942년 4월 18일 | 둘리틀 특공대가 일본을 폭격한다. |
1942년 4월 19일 | 주인공이 장개석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군사고문단이 충칭에 도착한다. |
1942년 5월 8일 |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이 일본군에게 승리한다. |
1942년 5월 12일 | 하르코프 탈환을 노리고 티모셴코가 지휘하는 소련군이 공세를 벌여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이 시작된다. |
1942년 5월 14일 | 주인공이 찬드라 보스와 회견한다. |
1942년 5월 15일 | 독일-이탈리아 연합군 공수부대가 몰타 섬에 강하한다. |
1942년 5월 19일 | 독일해군이 1차 케르베로스 작전으로 브레스트에 있던 샤른호르스트-그나이제나우-프린츠 오이겐을 생나제르로 옮긴다. |
1942년 5월 20일 | 일본군이 영국령 버마를 거의 점령한다. |
1942년 5월 25일 | 독일군이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대승을 거둔다. |
1942년 5월 26일 | 롬멜이 가잘라 방어선을 우회하여 공세를 벌인다. |
1942년 5월 28일 | 독일해군이 2차 케르베로스 작전으로 본토에 있던 그라프 체펠린,티르피츠를 생나제르로 옮긴다. |
1942년 5월 30일 | 영국 공군이 쾰른 폭격을 시도하다가 대규모 타격을 입는다. |
1942년 6월 2일 | 만슈타인이 11군을 거느리고 세바스토폴 공략전을 시작한다. |
1942년 6월 7일 |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이 일본군에게 승리한다. |
1942년 6월 10일 | 아프리카군단이 비르 하케임을 함락한다. |
1942년 6월 20일 | 소련 제2충격군이 북부집단군에게 섬멸된다. |
1942년 6월 22일 |
몰타 섬이 추축군에게 함락된다. 롬멜이 토브룩을 함락한다. |
1942년 6월 28일 | 독일군이 아스트라한까지 진격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동부전선에서 전면적인 하계 공세를 시작한다. |
1942년 6월 30일 | 주인공이 롬멜을 서부전선 방어를 맡은 서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
1942년 7월 6일 | 주인공이 핵과학자들과 핵무기 개발 결정에 대해 회의를 가진다.[22] |
1942년 7월 9일 | 만슈타인이 세바스토폴을 함락한다. |
1942년 7월 12일 | 제2충격군 사령관 안드레이 블라소프 중장이 포로가 되어 주인공과 회담한다. |
1942년 7월 14일 | 시리아를 통한 유대인 추방이 시작된다. |
1942년 7월 23일 | 파울루스가 지휘하는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한다. |
1942년 7월 27일 |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를 함락한다. |
1942년 8월 7일 | 과달카나 전투가 시작된다. |
1942년 8월 13일 | 육로를 통한 유대인 추방이 중단된다. |
1942년 8월 18일 | 독일의 괴뢰군인 우크라이나 저항군과 벨로루시 방위군이 창설된다. |
1942년 8월 19일 | 영국군이 디에프 상륙작전을 시도한다. |
1942년 8월 23일 | 이탈리아군 사보이아 기병연대가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한 소련군 보병연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
1942년 8월 26일 | 해로를 통한 유대인 추방이 시작된다. |
1942년 8월 30일 | 유대인을 태운 채 돌아오던 '마르세유 호'가 격침된다.[23] |
1942년 9월 2일 | 팔레스타인 행정당국이 키프로스에 임시 유대인 수용소를 설치한다. |
1942년 9월 15일 | 블라소프가 반공 러시아군을 조직하고 본인이 사령관에 취임하는데 동의한다. |
1942년 10월 4일 | 해로를 통한 유대인 추방이 영국군의 폭격으로 중단된다. |
1942년 10월 5일 | 유보트가 영국 전함 HMS 바람을 격침시킨다. |
1942년 10월 13일 | 미국이 중립법을 폐기한다. |
주인공의 명령에 따라 발터 셸렌베르크가 일본에 대한 군사정보를 미국에 흘리기 시작한다. | |
1942년 10월 23일 |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이 핸더슨 비행장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한다. |
1942년 11월 2일 | 영국군이 토치 작전을 개시하여 북아프리카에 상륙한다. |
1942년 11월 11일 | 툴롱에 있던 프랑스 함대가 영국군을 요격하기 위해 해군 사령관 다를랑 제독의 지휘하에 출격하여 영국군에 투항한다. |
1942년 11월 12일 | 주인공이 리비아 국경에 있는 아프리카 군단에게 튀니지까지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
1942년 11월 13일 | 발터 네링 대장이 튀니지에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
1942년 11월 14일 |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전 추축군에게 튀니지로 철수라하는 명령을 내린다. |
1942년 11월 19일 | 스탈린그라드 방면에서 소련군이 반격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아스트라한까지 80km가 남은 A집단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다. |
1942년 11월 22일 |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된다. |
마지막으로 남은 비시파 프랑스군이 튀니지에서 연합군에게 항복한다. | |
1942년 11월 30일 |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미 해군이 일본 해군에게 대패한다. |
1942년 12월 1일 | 르제프 공방전이 개시된다. |
1942년 12월 2일 | 영국인들이 키프로스에 있던 유대인들을 인도로 옮긴다. |
1942년 12월 18일 | A집단군이 돈 강 방어선으로 철수를 완료한다. |
1942년 12월 20일 | 만슈타인 휘하 돈 집단군이 치르 강 방어선으로부터 6군 구출작전을 개시한다. |
1942년 12월 31일 | 파울루스가 탈출작전을 개시한다. |
1943년 1월 5일 | 스탈린그라드에서 탈출한 일부 6군 병력이 돈 집단군 선두부대인 57기갑군단과 조우한다. 57기갑군단은 진격 한계에 도달한다. |
1943년 1월 9일 | 돈 집단군이 더 이상의 구출을 포기하고 치르 강 방어선으로 철수한다. |
1943년 1월 14일 | 루스벨트, 처칠, 드골, 지로가 카사블랑카 회담을 한다. |
1943년 1월 20일 | 주인공이 처음으로 페르비틴을 복용한다.[24] |
1943년 2월 3일 | 과달카날 섬에서 잔여 일본군 전체가 포위된다. |
1943년 2월 25일 |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여세를 몰아 공세를 펼치던 소련군 3개 야전군이 만슈타인에게 섬멸당한다. |
1943년 3월 10일 | 제9군이 르제프 돌출부에서 철수를 완료한다. |
1943년 3월 31일 | 주인공이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해방을 제안하며 1주일의 휴전과 함께 평화를 요청한다. |
1943년 4월 3일 | 페탱 정권이 정부를 비시에서 파리로 옮긴다. |
1943년 4월 5일 | 충칭에서 찾아온 이범석이 주인공(몸은 히틀러)과 회담한다. |
1943년 4월 13일 | 주인공이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해방을 제안하며 1주일의 휴전과 함께 평화를 요청한다. |
평화 제안에 대한 답으로 영국이 베를린을 공습한다. | |
1943년 4월 14일 | F1(V1)을 사용한 런던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개시된다. |
1943년 4월 18일 |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이 미군 특공대에게 격추되어 전사한다. |
1943년 4월 24일 | 맥아더, 니미츠, 킹이 태평양에서의 진격 방향을 결정한다. |
1943년 5월 4일 | 독일군 공세 정보를 입수한 소련군이 선수를 쳐서 레닌그라드 구출작전을 개시한다. |
1943년 5월 17일 | 소련군이 북부집단군을 물리치고 레닌그라드 구출에 성공한다. |
1943년 5월 24일 | 주인공과 히틀러의 정부 에바 브라운 사이에 대규모 감정 충돌이 일어난다. |
1943년 6월 15일 | 독일군이 쿠르스크 공세를 개시한다. |
1943년 6월 22일 | 프로호로프카 대전차전에서 독일군이 대승을 거둔다. |
1943년 6월 24일 | 독일군이 쿠르스크 포위망을 완성한다. |
1943년 6월 25일 | 오토 슈코르체니를 지휘관으로 하는 군사고문단이 광복군을 돕기 위해 파견된다. |
1943년 7월 5일 | 쿠르스크 전역이 독일군의 승리로 완결히 종결된다. |
1943년 7월 7일 | 타라와 전투가 시작된다. 일본군 방어거점인 베티오 섬에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이 가해진다. |
1943년 7월 8일 | 미 해병대가 베티오 섬에 상륙한다. |
1943년 7월 9일 |
일본군 수비대가 전멸하고 베티오 섬이 함락되어 타라와 전투가 종결된다. (여기서 킹 제독이 독일의 의도를 의심한다.) |
1943년 7월 12일 | 독일과 소련이 스톡홀름에서 단독강화를 위한 비밀접촉을 시작한다. |
1943년 7월 17일 | 처칠이 항전 의지를 강조한 성명을 발표한다. |
1943년 7월 21일 |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가 카이로 선언을 발표한다. |
1943년 8월 5일 | 아투, 키스카 두 섬의 일본군 수비대가 전멸한다. |
1943년 8월 13일 | 마샬 군도가 함락된다. |
1943년 8월 15일 | 일본군 소속으로 타이위안에 머무르던 이우가 슈코르체니에게 도움을 받아 광복군으로서 탈출한다. |
1943년 9월 28일 | 제트전투기인 Me262가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다. |
1943년 10월 9일 | 콰잘레인이 함락된다. |
1943년 10월 12일 | 이우와 슈코르체니가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하여 김구와 회견한다. |
1943년 10월 14일 | 에니웨톡이 함락된다. |
1943년 11월 1일 | 독일이 점령한 네덜란드, 노르웨이에서 신정부 수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투표 결과 두 나라 모두 현 망명정부를 지지했다. |
1943년 11월 11일 | 광복군의 활동을 제약했던 <광복군 9개 전승>이 폐지되었다. |
1943년 12월 9일 | 광복군 제4지대가 일본군에 대해 적극적으로 게릴라전을 개시한다. |
1943년 12월 13일 | 소련군이 벨라루스 일대에서 전면적인 공세를 감행한다. |
1944년 3월 8일 | 사이판이 함락된다. |
1944년 3월 11일 | 티니안이 함락된다. |
1944년 3월 16일 | 이우가 슈코르체니와 함께 방역급수부, 일명 731부대를 급습한다. |
괌이 함락된다. | |
1944년 4월 1일 | 조제프 스틸웰 중장이 고문단장 직에서 해임되고 앨버트 웨더마이어 중장이 임명된다. |
1944년 4월 4일 | 독일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정부를 승인한다. |
1944년 4월 5일 | 아프리카 군단이 튀니지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
1944년 4월 9일 | 힘러가 베른하르트 작전을 개시한다. |
1944년 4월 14일 | 필리핀 해전이 열렸다. |
1944년 4월 18일 | 레이테에 상륙했다. |
1944년 4월 24일 | 레이테 해전이 열렸다. |
1944년 5월 4일 | 대만 항공전이 열렸다. |
1944년 6월 3일 | 루손에 상륙했다. |
1944년 6월 23일 | 마리아나 제도에 주둔한 미 육군 항공대 폭격기들이 본격적으로 일본 본토를 폭격하기 시작한다. |
1944년 7월 8일 | 이오지마에 상륙했다. |
1944년 7월 15일 | 마닐라가 함락되었다. |
1944년 7월 16일 | 21폭격기사령부 사령관이 커티스 르메이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
1944년 7월 25일 | 이오 섬(이오지마)가 함락되었다. |
1944년 7월 31일 |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
1944년 8월 1일 | 도쿄 대공습이 일어났다. |
1944년 8월 3일 | 광복군 유구공작대가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다. |
1944년 8월 4일 | 나고야 대공습이 일어났다. |
1944년 8월 7일 | 오사카 대공습이 일어났다. |
1944년 8월 10일 | 고베 대공습이 일어났다. |
1944년 8월 15일 | 야마토가 침몰했다. |
1944년 8월 30일 | 광복군 제4지대 잔여병력 전원이 오키나와에 도착했다. |
1944년 9월 1일 | 중부집단군이 스몰렌스크 방면에서 전면 공세를 개시했다. |
1944년 9월 9일 | 중부집단군이 진격으로 포기하고 공세 이전 전선으로 철수한다. |
1944년 9월 22일 | 오키나와가 함락된다. |
1944년 9월 28일 | 독일에 양보하고 강화를 맺기에 거부하던 소련 서기장 스탈린이 암살당한다. |
1944년 10월 1일 | 소련 지도부가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된다. |
1944년 11월 11일 | 미국이 규슈 상륙작전인 올림픽 작전을 개시한다. |
1944년 11월 20일 | 광복군 일본지구공작대가 규슈에서 활동을 개시했다. |
1944년 11월 28일 | 주인공이 우울증과 의부증이 심각해진 히틀러의 정부 에바 브라운을 정신병자 수용시설로 보낸다. |
1944년 12월 8일 | 미군이 시코쿠 상륙작전인 파스텔 작전을 개시한다. |
1945년 2월 13일 | 미군이 혼슈 상륙작전인 올림픽 작전을 개시하여 도쿄 일대에 맹렬한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을 시작한다. |
1945년 2월 28일 | 미군이 도쿄 일대에 상륙한다. |
1945년 3월 7일 | 이우와 슈코르체니가 미키마우스 작전을 결행하여 아키히토 황태자를 납치한다. |
1945년 4월 12일 |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가 사망한다. |
1945년 4월 13일 | 남부집단군 구역에서 소련군이 마지막 대공세를 펼친다. |
1945년 4월 16일 | 이우와 슈코르체니가 조선 주둔 일본군의 항복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경성에 도착했다. |
1945년 5월 8일 | 중부집단군이 전면 공세를 개시한다. |
1945년 5월 11일 | 남부집단군 방어선을 돌파한 소련 2개 전선군이 만슈타인에게 철저히 궤멸당한다. |
1945년 5월 26일 | 중부집단군이 스몰렌스크를 함락한다. |
1945년 6월 12일 | 오사카가 미군에게 함락된다. |
1945년 6월 15일 | 조선군 수뇌부와 이우가 7차 협상에서 항복 조건을 타결한다. |
1945년 6월 20일 | 서해에 들어온 미국 항공모함들이 만주 및 중국에 있는 일본군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
1945년 6월 22일 | 스몰렌스크에서 독일 외무장관 리벤트로프와 소련 외무인민위원 몰로토프가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
1945년 6월 24일 | 독일관 소련 사이에 종전이 발효된다. |
1945년 6월 29일 | 조선군 수뇌부가 정식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한다. 미 24군단이 광복군 일본지구공작대와 함께 조선에 진주하여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진행한다. |
1945년 7월 1일 | 건국준비위원회가 지방 행정권을 조선총독부로부터 인수한다. |
1945년 7월 5일 | 영국 총선거에서 전쟁 종결을 내세운 노동당이 전쟁의 지속을 내세운 보수당에게 압승을 거둔다. |
1945년 7월 16일 | 마츠시로 대본영이 미군에게 함락된다. |
미국 연구진이 뉴멕시코 로스 앨라모스에서 인류 최초의 핵폭탄 폭발 실험을 실시했다. | |
1945년 7월 25일 | 소련이 일본 정부가 소멸하여 일소중립조약이 무효화되었다고 선언하고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실시한다. |
1945년 8월 1일 | 이우가 대한제국군 해산 38년만에 국군 재건을 선언하면서 대한방위군이 창설된다. |
1945년 8월 6일 |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로 핵무기가 실전 투하된다. |
1945년 8월 15일 | 주인공과 영국 수상 애틀리가 강화조약을 체결한다. |
미 육군 항공대가 한반도에 설치한 기지에서 만주 및 중국에 있는 일본군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 |
1945년 8월 18일 | 주인공이 독일로 압송되지 않은 유대인은 전원 현재 체류국가에 신병을 넘기라고 명령한다. |
1945년 9월 1일 | 독일군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에서 철군을 개시한다. |
1945년 9월 8일 | 대한방위군 지원자가 5만명을 돌파한다. |
1945년 9월 9일 | 미군이 제공한 항공편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입국한다. |
1945년 9월 10일 | 김구가 "임시정부가 국권을 잡아야 하며 광복군이 해방된 조국의 유일한 군사력이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한다. |
1945년 9월 18일 | 독일외무장관 리벤트로프가 국제연맹 재가입 의사를 공표한다. |
1945년 9월 23일 | 압록강을 넘어 침입을 시도하던 관동군 부대가 대한방위군에게 격퇴된다. |
1945년 10월 1일 | 벨로루시 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수립된다. |
1945년 10월 3일 |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정식으로 수립된다. |
1945년 10월 6일 |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이 군무장관에, 총창모장 이범석이 대한방위군 총사령관에 취임한다. 이우는 총참모장에 머무른다. |
1945년 10월 16일 | 이승만이 미국에서 귀국했다. |
1945년 10월 20일 | 센다이에 두 번째로 핵무기가 투하되었다. |
1945년 10월 22일 | 미군 및 대한방위군이 압록강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한다. |
1945년 11월 1일 | 국제연맹 사무국이 일본을 제외하고 1939년 이전 탈퇴 국가 전체를 재가입한다고 공표한다. |
1945년 11월 8일 | 뮌헨에 가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가 슈타우펜베르크에게 폭파당하면서 주인공(몸은 히틀러)이 요들과 함께 암살당한다.[25] |
1945년 11월 9일 | 속전파가 일으킨 쿠데타가 진압되고 슈타우펜베르크를 비롯한 주동자들이 사살된다. |
1945년 11월 12일 | 주인공이 남긴 유지에 따라 해군 총사령관 되니츠 대제독이 대통령에, 선전장관 괴벨스가 국무총리에 취임한다. |
1945년 11월 24일 | 도쿄 이서 일본 전역 미군에 점령된다. |
1945년 12월 24일 | 일본 본토 잔여 일본군이 미군에 항복한다. |
1946년 1월 17일 | 관동군 및 만주군이 한반도에서 북상한 미 24군에게 항복한다. |
1946년 2월 3일 | 일본군의 중국 파견군이 중국 국민정부군에게 항복한다. |
1946년 2월 5일 | 싱가포르에 사령부를 둔 일본군 남방총군이 항복한다. 이후 2주일에 걸쳐 남방 각지에 산재한 일본군이 항복한다. |
1946년 2월 6일 | 미군이 국부군에게 만주 진입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
1946년 2월 18일 | 중국 주재 독일군 고문단이 한국으로 이동을 마친다. |
1946년 3월 1일 | 독일정부가 시베리아 철도 미 해로를 통한 대한국 군사원조를 개시한다. |
1946년 3월 31일 | 미 점령군 사령부가 시행한 일제조사에서 일본 본토 잔여 인구가 2542만 3893명으로 발표된다. |
1946년 6월 10일 | 회원국에 대한 보다 강력한 제재 권한과 탈퇴 금지를 명시한 새 국제연맹 규약이 발표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소련, 중화민국 7개국이 상임이사국으로 취임한다. |
1946년 6월 16일 | 미군이 주둔한 주요 도시와 철도망을 제외한 만주 전역이 사실상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
1946년 8월 28일 | 일본군 무장해제 및 점령지 인수를 놓고 갈등을 빚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시작한다. |
1946년 9월 16일 | 미국 정부가 중국 내전에 불개입을 선언한다. |
1946년 9월 17일 | 미 극동군 최고사령부가 만주에 주둔한 대한 방위군에게 중국 내전에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
1946년 9월 18일 | 미 극동군 최고사령부가 만주 전역에서 일본군으로부터 압수한 무기를 현지에서 파기하라고 명령한다. 미24군은 대한방위군에게 파기업무를 위탁한다. |
1946년 11월 | 중국 국민정부군이 만주 진입을 시도하다가 미군의 저지로 실패한다. |
1946년 12월 12일 | 일본인이 소유한 부정 취득 자산에 대한 몰수가 완료된다. |
1947년 3월 1일 | 제헌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이우를 받드는 해동평화당이 상원 140석 중 76석, 하원 300석 중 197석을 차지하여 4년 임기의 첫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1당이 된다. |
1947년 3월 16일 | 만주 주둔 대한방위군이 한반도로 철수를 완료한다. 압록강과 두만강에 위치한 모든 하중도는 대한방위군이 점거한다. |
1947년 3월 23일 | 만주 주둔 미군이 한반도로 철수를 완료한다. |
1947년 3월 25일 | 국민정부군이 미군이 철수한 만주로 진입한다. |
1947년 4월 | 국민정부군이 남만주 전역의 대도시를 제압한다. |
1947년 4월 28일 | 이탈리아의 통치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하야한다. |
1947년 5월 1일 | 미 점령군 사령부가 전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추후 수립할 정치체제 선택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투표율은 97%였으며 서구식 입헌군주제 87%, 서구식 대통령제 8%, 서구식 의회내각제 4%, 공산정부 2%가 나와 아키히토 황태자를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수립이 결정된다. 아키히토가 성년이 될 때까지 왕위는 공석으로 둔다. |
1947년 7월 17일 | 교전권을 포기하고 국왕을 단순히 상징으로 하는 서구식 입헌군주제 수립을 명시한 일본국 신헌법이 공포된다. |
1947년 8월 29일 | 제1회 대총통 선거가 간선제로 실시된다. 이우가 임기에 중임이 가능한 대총통에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다. |
1947년 9월 8일 | 서유럽에 주둔한 독일군의 본토 철수가 완료된다. |
1947년 9월 23일 | 대한방위군이 대한민국 국방군으로 정식으로 개편된다. |
1947년 10월 9일 |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에게 한국인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한다. |
1947년 10월 26일 | 조선 주둔 일본군 소속의 일본군 장교 및 하사관 2만명이 단체로 대총통에 대한 충성서약을 실시하고 대한민국 국방군에 입대한다. |
1947년 10월 | 공산군이 벌인 총공세로 만주에 진입한 국민당군이 괴멸된다. |
1947년 11월 7일 | 식민지 시기 매국행위자에 대한 조사를 위해 식민지청산특별조사위원회가 설립된다. |
1947년 11월 8일 | 독일연구진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핵폭탄 폭발 실험에 성공한다. |
1948년 2월 10일 | 홍군이 베이징을 점령한다. |
1948년 2월 16일 | 국무총리 괴벨스가 원인 불명의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다. |
1948년 4월 12일 | 미국 정부가 파기하라고 지시한 일본군 장비가 대부분 대한방위군 내 좌익분자에 의해 유출되어 공산군에게 넘어갔음이 밝혀진다. |
1948년 4월 21일 | 공산군이 화북 일대를 완전히 장악한다. |
1948년 5월 14일 | 터키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이란이 이라크 지원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이라크 북부 쿠르드인 거주지역이 터키에 병합된다. |
1948년 5월 15일 | 영국이 국제연맹 결의에 따라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트랜스요르단에 양도한다. 요르단 국왕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동등하게 대우하기로 약속한다. |
1948년 8월 20일 | 군부와 나치당 내 알력다툼에 지친 독일 대통령 되니츠가 업무를 강당하기 힘들다는 명분으로 사퇴한다. |
1948년 8월 23일 | 독일제국의회가 군주제 복귀를 의결하고 빌헬름 2세의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독일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4세로 추대한다. |
1948년 9월 9일 | 만주 연길에서 김일성이 친일세력을 배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
1948년 10월 23일 | 공산군이 난징을 점령한다. |
1948년 11월 28일 | 압록강 연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임시저우 소속 조선인민군과 대한방위군 사이에 첫 교전이 발생한다. |
1948년 12월 12일 | 조선인민군이 파쇼 정부 타도를 외치며 국경 일대에 대한 습격작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
1948년 12월 15일 | 습격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 국방군이 조선인민국 및 중국 홍군을 상대로 월경작전을 시작한다. 이후 상호 월경과 무력충돌이 계속된다. |
1949년 1월 6일 | 공산군이 상하이를 점령한다. |
1949년 3월 11일 | 공산군이 광저우를 점령했다. |
1949년 5월 9일 | 공산군이 충칭을 점령했다. |
1949년 6월 26일 | 김구가 좌파 테러로 암살당한다. |
1949년 6월 30일 | 한국에 주둔하던 미24군 잔여병력이 일본으로 완전히 철수한다. |
1949년 8월 24일 | 국민당이 대만으로 탈출한다. |
1949년 8월 29일 | 소련이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다. |
1949년 9월 8일 | 공산군이 위구르를 점령했다. |
1949년 10월 1일 |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언한다. |
1949년 10월 9일 | 독일이 모든 비핵무장 유럽 국가에 대한 핵우산을 선언한다. |
1950년 1월 11일 | 독일, 핀란드,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가 방공협정을 체결한다. |
1950년 1월 12일 |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대한민국을 마셜 플랜 지원 대상국에 포함한다고 발표한다. 후일 원조액은 누계 2억 1천만 달러에 달한다. |
1950년 3월 8일 | 마셜 플랜 지원금을 재원으로 해서 3정보 이상 보유 농지에 대한 유상몰수 무상분배를 실시하는 농지개혁이 입안된다. |
1950년 4월 17일 | 국제연맹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제출한 가입 신청을 기각한다. |
1950년 6월 1일 | 중공군이 금문도에 대한 전면공세를 실시해 2주 동안 강공을 펼치나 실패한다. |
1950년 6월 25일 |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이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적 행동을 전제로 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
1950년 10월 28일 | 식민지청산특별조사위원회가 3년간의 활동을 종료한다. |
1951년 4월 25일 |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진주한다. |
1951년 6월 23일 | 유상매입 무상분배 원칙을 규정한 농지개혁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
1951년 7월 20일 |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황태자인 루이스 페르디난트가 루이스 페르디난트 1세로 즉위한다. |
1952년 3월 1일 | 농지개혁 법안이 시행되어 농지 소유권이 각 농민에게 넘어갔다. |
1952년 4월 28일 |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된다. 일본에 대한 군정통치가 끝난다. 일본이 국제연맹에 다시 가입한다. |
1952년 5월 10일 | 헌법 개정으로 대총통 선거를 직선제로 바꾼다. |
1952년 10월 3일 | 영국이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다. |
1953년 1월 17일 | 한독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다. |
1953년 4월 29일 | 루이스 페르디난트 1세가 온건파 반공 정치인인 콘라트 아데나위를 수상으로 임명한다. |
1953년 6월 1일 | 아데나워가 영국과 진실로 화해하고 미국과의 보다 깊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
1953년 7월 27일 | 한국 국방군이 간도 출병을 개시한다. |
1953년 8월 29일 | 제2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우가 지지율 95%로 무난하게 재선된다. |
1953년 12월 23일 | 20세가 된 아키히토 황태자가 일본국왕으로 즉위한다. |
1954년 1월 4일 |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다. |
1956년 8월 30일 | 중공군이 금문도에 대한 제2차 전면공세를 실시해 3주 동안 강공을 펼치나 실패한다. |
1956년 10월 29일 | 이집트와 대립하던 요르단이 영국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를 침공하여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시나이 반도가 요르단 영토가 된다. |
1958년 8월 23일 | 금문도를 둘러싸고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대규모로 충돌한다. 교전은 10월 5일까지 계속된다. |
1959년 5월 16일 | 이우가 제3회 대총통 선거를 앞두고 친위쿠데타를 일으켜서 대총통 중임 제한을 없애도록 상하 양원에서 투표를 거쳐 헌법을 개정했다. |
1959년 7월 13일 | 1965년 출생자부터는 군 복무를 하지 않으면 대총통 선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한다. |
1959년 7월 27일 | 1965년 출생자부터는 남녀 불문하고 징병하도록 병역법을 개정한다. |
1959년 8월 29일 | 제3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우가 지지율 85%로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한다. |
1959년 11월 30일 | 중국이 주도하는 공산세력 확대를 막기 위한 서태평양 조약기구가 발족한다. 회원국은 미국, 한국, 중화민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말레이시아 연방이다. |
1960년 2월 3일 | 프랑스가 독일의 지원을 받아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다. |
1963년 5월 16일 | 이우가 개헌으로 총통 임기를 12년으로 연장한다. |
1963년 11월 29일 | 조기에 치러진 제4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우가 지지율 79%로 당선된다. |
1964년 8월 2일 | 통킹만 사건으로 제2차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한다. |
1964년 10월 6일 | 남베트남 정부가 대한민국을 비롯한 서태평양 조약기구 가맹국에 조약에 따른 파병을 요청한다. |
1964년 10월 16일 | 중화인민공화국이 핵무기 실험에 성공한다. |
1964년 11월 16일 | 대한민국 정부가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다. |
1965년 1월 7일 |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방군에 해외파병 전문 신속대응군이 창설된다. |
1967년 6월 5일 | 이란, 이라크 연합군이 터키령 이라크를 공격하여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터키와 연합한 사우디가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연합군이 철수한다. |
1968년 10월 20일 | 대대적인 반전운동이 발생하며 이를 유혈진압하는 일이 이루어진다. 정부가 베트남 철군을 약속한다. |
1971년 3월 12일 | 반전운동의 여파로 해동평화당이 사상 첫 총선 참패를 기록한다. |
1971년 10월 25일 | 중화민국이 국제연맹에서 축출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그 위치를 차지한다. |
1972년 10월 17일 | 이우가 또다시 개헌을 하여 10월 유신을 실시한다. |
1973년 1월 27일 | 파리 평화 협정으로 베트남 전쟁이 일단 종결되고 외국군이 철수한다. |
1973년 3월 23일 | 베트남에서 한국군 철수가 완료된다. |
1973년 10월 6일 | 시리아, 이집트 연합군이 요르단을 공격하여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터키가 이 틈을 타 시리아를 배후에서 기습하면서 시리아가 전열에서 이탈하나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를 되찾는다. 터키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인 거주지역을 병합한다. |
1975년 4월 30일 |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의 베트남 공화국이 붕괴한다. 이후 라오스, 캄보디아가 연쇄적으로 공산화된다. |
1975년 6월 13일 | 태국이 서태평양조약기구에 가입한다. |
1975년 11월 28일 | 이우가 민족대회의에서의 간선으로 5대 대총통으로 당선된다. |
1975년 12월 5일 | 국방군 장교로 있던 이우의 차남 이종이 부총통으로 임명된다. 장남 이청은 미국 유학후 돌아오지 않는다. |
1980년 5월 16일 | 쿠르드 반란을 진압중인 터키를 이란이 침공하고 이라크, 시리아가 연이어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5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터키가 48년 이후 획득한 영토를 전부 상실한다. |
1980년 5월 18일 |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로 계엄이 선포되고 평양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
1987년 4월 13일 | 정부가 유신헌법은 계속 유지된다고 선포한다. |
1987년 6월 10일 |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다. |
1987년 6월 29일 | 대한민국 정부가 총통 직선제 및 자유 입후보, 국회의원 임명권 대폭 축소를 규정한 새 헌법 제정을 약속한다. |
1987년 8월 18일 | 총통 임기를 6년 중임제로 되돌리고 대총통이 임명하는 국회의원을 150명에서 40명으로 줄이는 새 헌법이 공포된다. |
1987년 12월 16일 | 6대 대총통 선거에서 야권 지지표가 분산되면서 현 부총통 이종이 47%의 지지를 받고 대총통으로 당선된다. |
1988년 9월 17일 | 24회 올림픽이 서울에서 성공리에 개최된다. |
1988년 10월 2일 | 올림픽이 무사히 막을 내린다. |
1991년 4월 7일 | 이우가 노환으로 사망한다, |
1991년 4월 14일 | 이우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진다. |
1993년 12월 15일 | 7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종이 62%의 지지를 받아 대총통에 재선된다. |
1997년 12월 18일 |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로 승인된 경우 대총통이 3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란 끝에 통과된다. |
1998년 12월 30일 | 제9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종료하면서 국가 주도 경제개발 계획을 중단한다. |
1999년 8월 9일 | 이종의 3선 출마 여부를 뭍는 국민투표에서 유효 투표의 50.4%가 찬성한다. |
1999년 12월 15일 | 8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종이 58%의 지지로 대총통에 다시 당선된다. |
2005년 12월 14일 | 9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종이 54%의 지지로 대총통에 다시 당선된다. |
2011년 12월 14일 | 10대 대총통 선거에서 이종이 51.6%의 지지로 대총통에 다시 당선된다. |
2012년 6월 6일 | 군대와 관계에서 두루 이력을 쌓아 온 이종의 장남 이헌이 부총통으로 임명된다. |
2016년 8월 13일 | 주인공이 낮잠을 잤다가 깨어난 날이다. |
진짜 히틀러가 현실의 주인공에 빙의되어 깨어난 날이다. |
[1]
그냥 써둔 것도 아니고 여부관인 엘사와 베르타 둘을 데리고 피크닉 갔다가 흥에 취한 차에 문득 생각나서 휘갈겨 쓰고 엘사 속옷에 꽂아뒀는데 엘사가 중요한 문서라도 되는 줄 알고 잘 보관해두는 바람에 진짜 유언장으로 착각되었다.
[2]
실제로는 빌헬름 2세의 장남인 빌헬름 황태자가 있었고 프리드리히 황자는 2남이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황자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꼭둑각시로 세우기 더 쉽다고 판단해서 프리드리히 황자를 황제로 추대한 듯.
[3]
실제로는 프리드리히 황자는 자식이 없었고, 페르디난트 황손은 프리드리히 황자의 형 빌헬름 황태자의 아들이었다. 이 역사에서는 양자로 입적되어 계승했다고 설정한 듯.
[4]
독일이 미국까지 날아가는 탄도탄을 만들었을 때, 미국은 겨우 프랑스까지 날아가는 미사일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미국과 소련이 종전 후 폰 브라운 등 독일의 로켓 기술자들을 데려와서 보니 기존에 연구하던 로켓 기술은 완전 장난감 수준이라 싹 갈아엎고 그들이 가져온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5]
물론,
돈을
퍼붓고
있는 미국이 앞지를 지도 모른다고 표현된다.
[6]
중국에 대한 호칭은 보통
중공(공산중국)인 듯. 주인공은 의외로 입에 딱딱 붙는다나.
[7]
대한민국은 작중 7위권 이내의 경제대국이며 중국과 준전시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간도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고 국교 정상화와 경제협력부터 하자고 애걸하지만 한국은 간도 지역을 한국 영토로 인정하기 전에는 그 어떤 국교 정상화나 경제 협력도 없다고 딱 잘라 버려서 망했어요. 게다가 한국은 세계 각국에 압력을 넣어 중국에 투자하거나 거래하면, 특히 군용무기 거래하면 재미없을 거라고 경제재재를 가해서
덩샤오핑은 외화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그런데 외화 있어도 외국에서 팔지를 않으니 진짜 망했어요.
[8]
미국, 한국, 중화민국, 류큐, 월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호주 등이 회원국. 주력은 미국이 지원하는 한국.
[9]
재래식 무기는
6
~
70
년대 수준이라
말할 것도 없고, 핵폭탄을 쓰는 수단은 폭격기에 싣고 오는 방법뿐인 반면 한국은 독일제 탄도탄, 순항미사일도 있다고 한다.
[10]
처음엔 소련의 주도로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소련과 중국이 갈라섬에 따라 중국만.
[11]
핀란드,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등과 중부유럽방어동맹이라는 집단안보체제를 수립한다.
[12]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전후 복귀한 왕실이 독일과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독일의 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한 크로아티아는 그 대가로 확실히 분리독립했다. 월경지가 된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 합병을 승인하고 나머지 영토만 가지고 있다.
[13]
중부유럽방어동맹의 구성국도 그렇고, 주인공이 그나마 거느린 떨거지들이 없으니 부담은 도리어 줄어든 듯 하다고 하는 걸 보니, 원래 역사의
위성국가 개념은 없는 듯.
[14]
한 발은 실제 역사대로
주고쿠 일대를 지키는 방어기점이었던
히로시마, 한 발은 실제 역사와 달리
도호쿠 지방 방어를 위한 수비대가 집결해 있는
센다이. 순전히 원자폭탄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투하했다고 한다. 일본이 핵 맞는 내용은 세 권짜리 책에는 안 나온다.
[15]
작중에서 한국 외무장관이 일본의 원자재를 제대로 값을 쳐 주고 사줄 나라가 한국 정도밖에 없다고까지 언급한다.
[16]
오키나와에 비해 사할린과 쿠릴 열도의 면적이 훨씬 넓기에 정작 현실의 일본보다는 영토가 넓다. 작중의 영토가 축소되었다는 표현은 전쟁 이전 일본과 비교한 것.
[17]
귀화한 일본계 교수가
Sepoy에서 나온 거냐며 한탄한다.
[18]
홀로코스트가 없었으니 국제 여론도 딱히 유대국가 설립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탓이다....라고 서술.
[19]
팔레스타인은 독립국이었을 텐데 뭔가 사정이 있겠지....라고 서술.
[20]
터키 -
나치 독일,
이란 -
소비에트 연방,
사우디아라비아 -
미국,
요르단 -
영국,
레바논 -
프랑스국.
[21]
외전 "우리 총통이 변했어요!"
[22]
외전 "우란프로젝트"
[23]
이 사건으로 유대인 4천여명이 사망한다.
[24]
필로폰으로 당시 독일에서는 '페르비틴'이라는 이름의 피로회복제로 상용화됐다.
[25]
역사에는 아돌프 히틀러(
1889년
4월 20일~
1945년
11월 8일, 향년 56세)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