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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세기 한국 정치계의 거물급 민주투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종교계의 거물급 민주화 인사였던 문익환이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린[1] 계기라고 알려진 사건. 허나 실상은 사실관계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도시전설이다.2. 배경
자세한 내용은 김영삼 단식 농성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3. 내용
세간에 퍼진 사건의 골자는 이하와 같다. 단식투쟁 중이던 김영삼을 걱정한 문익환 목사가 사전 연락 없이 김영삼을 방문했는데 방문을 열면서 "여~ 김영삼 동지. 수고가 많습니다!"라고 외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보름달빵과 우유였다는 것이다.이는 꽤 유명한 카더라 통신이 되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출처는 존재하지 않는다.
4. 출처와 논란
4.1.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
“경남 김영삼 도련님께서 전두환 독재에 항거하면서 20며칠간 단식투쟁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83년도인가? 가택연금 당할 때 말이죠.) 문성근이네 아부지(문익환)는 걱정도 되고 하셔서 김영삼 집을 방문하셨답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단식투쟁을 한다던 김영삼이 너무나 배가 고프신 나머지 몰래 너도 나도 잘 알고 있는 보름달 빵을 맛있게 드시고 계셨습니다. 들킨 김영삼이 비서들에게 손님을 잘 모시지 못한다고 괜히 화를 냈고, 문 목사는 어이가 없어 다시 돌아왔답니다. 그때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갑자기 우스워지는군요?”
현재 세대에 널리 퍼진 이야기는
김구라가
딴지일보 인터넷 방송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에서 이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본 소스가 되며 그 문장은 이상과 같다.5. 문성근의 "나는 꼼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이 2012년 1월 나는 꼼수다에 출연해서 김용민의 질문에 이 사건은 사실이라고 밝혔다.하지만 문성근도 문익환이 상술한 가택연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고 들어갔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못 했으며 김용민의 질문에 대해서 문성근이 한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어, 그건 사실이지"
이거 하나였다. 이후 김용민이 나는 꼽사리다 3화에서 언급한 것에 따르면 서울대학병원에서 만났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00%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다. 5.1.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2012년 8월 31일 팟빵에 올라온 8회 김영삼 특집에서 소개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95분까지 전략)
이작가 : 단식을 하는 거야. 안 먹어 이런 거야. 그래가지고 이제, 그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체크를 하니까 진짜 물하고 소금만 먹었대. 더 이상 하면 위험할 거 같다고. 그래가지고 한... 2주가 지났어. 단식한 지. 2주가 지났는데 5월 31일날 인제 뭐 함석헌 선생, 홍남순 선생, 이문영 선생, 예춘호 선생 등등 기독교회관에서 동조단식에 들어갑니다. 야 잘 봐 기독교회관에서의 동조단식. 그러면 누가 있어야 돼?
이박사 : 문익환!
이작가 : 문익환 목사가 당연히 들어가야지! 근데 이 명단에 문익환 목사가 없어? 왜 그럴까?[2]
이박사 : (ㅋㅋㅋㅋㅋ)
이작가 : 아 이거는 설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세작 : 지금부터는 전부 픽션입니다 픽션
이작가 : 우리가 만들어 내는 거야~
이작가 : 저 문익환 목사가, 얼마나 불쌍하고 가엾고 용기를 주고 싶잖아. 밥도 안 먹고 저렇게 열흘이 넘게 단식투쟁하는 YS형이. 또 민주화 동지니까. 이제 찾아갑니다. 찾아갔는데, 하필 그날 일이 있었어. 너무 영삼이 형이 자기 신세가 처량하잖아. 배도 고프고. 보좌진들한테 쉰소리 하는 거지. "야 이러다 내 진짜 죽는 거 아이가~" 이렇게 쉰소리 한 거야. 그러니까 보좌진들이 또 뭐 막 응원해줄 거 아니야.
세작 : (보좌관)"총재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힘내십시요. 저 썩어빠진 전두환 정권을 물리쳐야 안되겠습니까?"
이작가 : 아마 그렇게 했겠지. 뭐 영삼이 형도 "그래 뭐 힘들어서 안 그러나. 물은 됐고." 물은 맨날 마시니까 "우유라도 한 컵 좀 마셨음 좋겠다" 이렇게 얘기한 거야. 그러니까
이박사 : (보좌관 일동)으흐으으으으~~(우는 연기)
이작가 : 보좌관들이 씨발 얼마나 가슴이 아파? 그걸 이제 못 보고 (보좌관이) 밖에 인제 병실에서 빠져나가서 담배 한대 필려고 탁 나온 거지. 나가서 담배 한대를 피는데 밖에 매점에 씨바 우유가 또 시원하게 타악~ 그때 서울우유도 병우유야 병우유! 얼마나 시원해보여~ 그걸 딱 보니까 "아 우리 영삼이 형한테 사줘야겠네" 얼마나 좋아? 그러면서 씨바 일단 한 개 사! 근데 그것만 사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우유를 사니까 또 세트로 빵이
이박사 : 그치!
이작가 : 보름달빵을 산 거야 그걸 산 거야! 몰래 올라와가지고 인제 영삼이 형이 아파가지고 누워있는데 보좌관이 영삼이 형한테 그러지
세작 : (보좌관)"저... 총재님. 이거 지금 아무도 없고 총재님 이러다가 정말 잘못 되실 수도 있습니다."
이작가 : (김영삼)"이 뭐꼬? 이거 지금 나보고 먹으라고 주나 이거? 아니 안된다 이거 이거!" 이러면서 당연히 거절했겠지. YS가~
세작 : (보좌관)"총재님 일단 사셔야, 사셔야 투쟁도 하고 할 거 아닙니까. 쫌만..."
이작가 : (김영삼)"안되는데~ 이럼 안되는데~"
세작 : (보좌관)"괜찮습니다! 저희들 말고 누가 있습니까?"
이작가 : 이러면서 YS형이 못 이기는 척 보름달 한 봉지 딱 깨무는 순간!!!!!
쾅쾅쾅!
이작가 : (김영삼)"누꼬? 누꼬?"
이박사 : 그때 당시에 밖에는 그가 있었겠죠.
이박사 : (문익환)"하나님 아버지 우리 김영삼 총재를 살려주시고 도와주시고 이 나라의 민주화와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많은 은총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하나이다 아멘~"
이작가 : (김영삼)"야 치워! 치워!"
이박사 : (문익환)"김총재~ 김총재~"
이작가 : (김영삼)"야 씨바 우유 치워!"
이박사 : (문익환)"김총재~ 안에 있습니까? 내 문익환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이작가 : 그런데 덜 치운 거야. 그게 딱 걸렸지.
세작 : 문이 쫙~ 열리고!
이박사 : 끼익! 하는데 (문익환)"아 몸조리 잘 하십쇼"
이작가 : 그러니까 익환이 형이 얼마나 얼굴이 빨개지고. 이거 뭐야 이거 문병 왔는데!
이작가 : 그래가지고 그런 설이야.
세작 : 지금까지는 픽션입니다.
(이하 후략)
미리 픽션이라고 깔고 했지만 상당히 코믹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2013년 7월 30일 팟빵에 올라온 46회 문익환 목사 특집에서도 당시의 일이 다시 언급됐는데 이때는 아들인 문성근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는 꼼수다 시절보다 디테일한데 뭔가 다르게 증언했다.
세작 : 가장 중요한 건 그거죠 보름달! 오늘 오셨으니까! 말씀해주셔야죠!
문성근 : 아니 아니 근데 그거는 그 얘기를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있는데 문목사[3]께 여쭤보지도 않았고 문목사께서도 저에게 어땠었다 라고 얘기 해주신 적도 없어요.
이작가 : 아니 근데 제가 책에다가는 그렇게 썼어요. 김대중 vs 김영삼 책에서는 "인터넷에서는 문익환 목사에게 걸렸다"고 했고, 책에는 그렇게 못 쓰니까 신군부 애들이 만들어 낸 구라다 이렇게 했는데
이박사 : 그렇지 않았을까?
이작가 : 그렇게 썼는데, 사실은 뭐 저 그 제 책보면 나옵니다. 왜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근데, 사실 어...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은 문목사님이 실망을 할 수밖에 없어. 왜냐면은 YS가 23일인가 단식했거든. 근데 문목사님이 21일인가? 그 정도 단식을 했었잖아요. 감옥에서. 그러니까 그거 봤다면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 같아.
문성근 : 근데 그 단식은 워낙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단식이였죠. 전환점이였으니까. 그 정치적인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걸로 정리를 해야죠.
어째 뭔가 명쾌하지 않게 끝난 것이, 그러면 나는 꼼수다 시절 때 이야기는..?
6. 논란
6.1. 현실성이 있는가?
사실 민주화 투쟁 당시 두 사람의 위치를 감안해 보면 당시 문익환이 김영삼 가택을 기습 방문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부터가 의문스럽다. 5공 시절 서울엔 절대 도둑이 없는 동네가 두 군데 있었는데 바로 김영삼이 살던 상도동과 김대중이 살던 동교동이다. 저 2명 감시한다고 전경이 수백 명 단위로 동네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 중이던 ' 고바우 영감'에도 김영삼 저택 근처에서 강도와 마주친 고바우 영감이 가택연금 중인 김영삼 저택 근처에 잠복해 있던 경찰들에게 구조된다는 다시 말하면 경찰서 못지않게 경찰들이 철통으로 감시 근무한다는 사실을 비꼰 묘사가 있을 정도다.[4]두 사람이 이렇게 격의 없이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며 진짜로 단식을 깨고 보름달 빵을 먹었다면 신군부 측의 감시자가 못 알아채는 게 이상하다. 되려 신군부는 음식 냄새를 풍겨 김영삼의 단식을 깨려고 노력하다가 이에 열받은 김영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는 말도 있다.
또 문익환 목사가 김영삼이 누워 있는 방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것도 아니고 만약 김영삼이 실제로 단식 기간에 보름달빵이나 우유 등의 음식물을 섭취하고 있었다면 대문과 현관 방문을 거치는 데까지 가족들이나 측근들의 제지가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런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가서 음식물을 목격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6.2. 의학적으로 가능한가?
김영삼이 자택에서 단식 끝에 중태에 처한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소금과 물만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즉, 의학적으로 단식을 한 것은 분명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오랫동안 단식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보름달 빵과 우유를 먹으면 급체나 소화기관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있다.[5][6] 이는 단식 말미에 김영삼이 보름달 빵을 먹고 있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확신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된다.[7]
6.3. 루머인가?
이런 루머가 언제 어떤 식으로 유포되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다만 단식투쟁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1990년대부터 확산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1990년대 말 YS를 대상으로 한 유머들이 유행할 때 같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것으로는 ' 제주와 목포를 간통해 이 도시를 국제적인 강간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 애무장관은 애무나 잘해'[8]도 있다. 즉, 유머를 겸비한 일종의 해학물이다.여담으로 이와 유사한 사례로,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기수 함석헌도 살아 생전에 자칭 '먼 조카'라는 이의 고발 회고록인 '웬일인가 함석헌'을 통해서 "단식 때 통닭에 인삼차를 처묵처묵했다"와 같은 고발을 당한 전력이 있는데 그런 류의 루머라고 볼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위의 문성근의 증언을 토대로, "3당 합당 이후 관계가 틀어진 문익환 목사가 김영삼에게 앙심을 품고 헛소문을 퍼트렸다" 라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6.4. 가능성?
사실 여러 추측성 갑론을박이 있지만 이 사건이 현실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요는 시간의 문제다. 시간 순으로 설명하자면,- 5월 18일, 김영삼은 성명을 발표하고 단식투쟁을 선언한다.
- 5월 25일, 정부는 김영삼을 서울대학병원에 강제입원시킨다. 이때 김영삼은 치료를 거부하고 단식을 계속한다.
- 5월 29일, 정부는 가택연금 해제를 발표하고 상도동 자택과 병원에 있던 정보원들을 모두 철수시킨다. 그리고 국내외 기자들과 동조자들이 김영삼을 만나게 된다. 이때 단식으로 마른 김영삼의 모습이 방송과 언론을 타게 된다.
- 6월 9일, 김영삼은 기독교계와 그 외 인사들의 설득을 받아들여서 23일간의 단식을 중단하게 된다.
즉, 5월 29일부터 6월 9일까지의 기간 동안은 감시자도 없고 예고 없이 만날 수는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문익환이 김영삼을 방문했다면 보름달빵 사건이 성립될 여지는 충분하고 이것은 위의 병원 기록과 문성근의 증언(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있었던 일)과도 상충되지 않는다. 다만 단식 문서에도 나와있듯 단식이 끝나고 바로 빵 같은 걸 먹었다가는...
다만, 단식 초기에는 (물과 소금을 제외한) 아무것도 안 먹었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 정황도 있다. 김영삼민주센터의 연보에는 김영삼 회고록의 내용을 인용하여 '현기증이 나고 배가 아파 빵과 우유를 먹고 서예를 중단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민주센터 해당 기록에 따르면 단식은 3일차에 일시 중지되었으며 이후부터 제대로 된 단식 투쟁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회고록 원문을 잘못 옮긴 것이다.
김영삼민주센터의 연보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현기증이 나고 배가 아파 서예를 중단하다. 가족들은 음식 냄새가 날까봐 우유와 빵으로 식사하다." 회고록 본문과 대조 확인한 결과 회고록 원문은 다음과 같다. "가끔 현기증을 일으켰고 배가 아팠다. 가족들은 음식 냄새가 나에게 전해질까봐 마음을 졸이다가, 우유나 빵으로 식사를 때웠다. 서예를 중단했다." 사실 모든 일이 진실이라는 전제하에 이 글대로만 추리해 보면 가족들이 먹던 보름달빵을 문익환 목사가 착각했다고 볼 수도 있다.
7. 기타
- 순풍산부인과에서 오지명 원장이 동문회 부회장 자격으로 모교 학내 분규에 개입하는 에피소드에서 비슷한 연출이 나오기도 했다. 오지명이 후배들의 단식투쟁에 동참하게 되는데[9] 단식하면서 너무 힘들어하자 아내인 선우용녀가 몰래 통닭과 김밥, 곰국 등을 챙겨온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보자 오지명은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고 빈속에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밀어넣은 것이 탈이 되어 쓰러져 버린다. 오지명이 쓰러진 것을 본 단식투쟁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 병원에 데려갔는데 급체라는 진단이 나오고 오지명의 친구 원장님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행히 그 순간 회사 측에서 백기를 들었고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들이닥친 사람들이 오지명을 연호하며 단식투쟁 승리를 축하한다. 덕분에 진실은 알려지지 않고 묻히게 된다.
-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이 사건이 패러디된 적이 있으며 이 내용은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도 소개되었다.
- 선거 특집이었던 무한도전 선택 2014에서 간헐적 단식 중인 후보자 정형돈의 지지자들이 형돈에게 강제로 보름달빵을 먹이는 모습으로 패러디되었다.
- 사실 뭘 몰래 먹다 들키는 류의 클리셰는 비교적 흔한 이야기긴 하다. 외국의 만화 등에서도 종종 보이니...
- 코렁탕 문서에도 나오지만 나는 꼼수다 20회에서는 2010년대 국가정보원에서는 코렁탕 대신 피자를 쓴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코로 피자를 집어넣는 게 아니고 단식하는 피조사자에게 피자 냄새를 풍긴다는데 왕재산 사건 피의자들에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 크로닌의 1941년 소설 '천국의 열쇠'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성모님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는 소녀의 일이 기적인가로 지역교회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주인공 신부가 '기적을 믿을 수 없다니 나도 역시 믿음이 부족하군' 하고 뉘우치며 소녀의 집을 불시에 방문하자 소녀가 한밤중에 남들 몰래 푸짐한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기적을 둘러싼 가톨릭 교회 내부의 소동과 주위 사람들의 야심이 꽤나 유머러스하게 그려진 대목이다.
-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유래한 낚시글 중 하나인 '귀암 김정덕 선생님은 모든 것을 알아요'의 모델이 된 김정덕은(2015년 사망) 원래 국어교사였는데 가르친 건 절대로 시험에 안 내는 기행을 저질렀고 이내 빡친 학부모와 학교가 내쫓으려고 했는데 단식투쟁해서 결국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왜 전설이냐면 단식투쟁 중 수위실에 숨어서 짜장면 시켜먹다가 딱 걸려서라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근무한 고등학교 창립자와 연이 깊은 소위 낙하산 인사여서 잘리지는 않고 전공과는 상관없는 중국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 2003년 11월 26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이 10여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는데 이와중에 곰국을 마셨다는 의혹이 있었다. 확인 결과 쌀뜨물이었지만 이 일로 한동안 쌀뜨물 다이어트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런데 2012년에 나꼼수에 문성근이 나왔을 때 주진우 기자가 최병렬이 마신 건 그냥 쌀뜨물이 아니라 아침햇살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것도 한 끼에 3병이었다고.[10][11]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단식 8일째를 맞은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를 찾아가 "나도 23일간 단식을 해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라며 단식을 말리기도 했다고 한다.
- 2013년 4월, 김영삼 대통령은 폐렴 악화로 31년 전의 그 병실(특실)에 다시 1년간 머물렀다. 중환자실을 오가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퇴원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1983년 5·18 3주년을 맞아 단식투쟁 했을 당시 입원했던 방이 바로 지금 있는 곳
- 모바일 게임 '서울 타이쿤'에서 편의점을 건설하고 방문하면 방문할 때마다 뭔가 먹는다. 가끔 빵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시장의 대사는 '역시 빵은 보름달이지!'(...) 그런데 이 보름달빵이 피로를 줄여주는 기능이 있어 피로도 관리가 중요한 이 게임에서 상당히 자주 보는 대사다.(...)
- '헌법의 풍경'의 저자 김두식 교수는 그의 저서 '헌법의 풍경'에서 이와 비슷하지만 더 어처구니없는(?) 일화를 기록했다. 1994년 군법무관으로 임관되기 위해 육군3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군법무관 후보생들의 기강과 분위기가 개판(...)인지라 교관들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반발하고 훈련을 제끼거나 처벌을 무시하는(이를테면 교관이 후보생들에게 얼차레를 지시하자 대놓고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든가)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와중에 훈련 도중 훈련소에 주류가 반입된 일이 적발되어 처벌을 하려고 하자 당시 군 법무관 후보생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여 단식투쟁이라며 식사 거부를 감행했는데 말이 단식투쟁이지 식당에서의 식사만 거부하고 후보생 자치회에서 초코파이라든가 초코바를 준비해 이것으로 식사를 대신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사관학교 측에서는 그냥 다 퇴소시키고 싶었겠으나 당시 희귀하디 희귀한 군법무관들이 없어진다면 누가 이 업무를 대신할 수 있겠냐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후보생들 대다수가 정치계 및 재계, 그리고 법조계와 어떻게든 연관을 가진 이들이고 훈련생들 대다수가 판검사가 될 수 있는 데다 선배들 역시 군 내에서 사법권을 가진 군법무관들인지라 군대에서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런 단식투쟁 이틀만에 학교 측에서 두손두발 다 들고 처벌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한다. 더 웃긴 건 이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두식 교수의 기수들이 그 이전 기수들보다 그나마 가장 훈련에 충실한 측이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행군 도중에 다수가 이탈하여 목욕탕을 갔다가 택시를 타고 복귀한다던지, 야전삽이 무겁다는 이유로 쇠로 된 부분을 잘라내고 나무 손잡이만 군장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고...
8. 관련 문서
[1]
문익환이 YS보다
DJ를 지지했던 건 맞다. 실제로
1987년 대선에서도
김대중을 공개 지지했다. 다만 그때는 문익환 뿐만 아니라 재야 민주화 운동 세력 다수가 비판적 지지론에 입각해서 김영삼보단 김대중을 밀었고 정작 문익환은 자신의 옥중서간집 등에서 YS의 단식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한동안 YS의 측근 비슷하게 활동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2]
이건 이 작가가 잘못 안 것이다. 문익환도 동조 단식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단식 투쟁 지지 성명서 전문 사본 김영삼의 연보가 정리된 김영삼민주센터 연보에서도 문익환은 동조 단식에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
[3]
문성근은 대외적으로 자기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를 항상 사람들이 부르던 호칭인 문목사로 불렀다.
[4]
2020년대에도 이런 식으로 수많은 경찰들이 상주하면서 지키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당시 그들을 가둔 집권자였던 전두환의 사저 주변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 정도가 아니라 고정 초소까지 지어 놓고 지켰다. 언제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5]
이건 금식기도회 등을 가 본 이들은 알 것이다. 최소 3일을 금식해도 금식 후 주의 사항에 "급작스러운 일반 음식 섭취 자제"가 대놓고 나와있다. 3일만 금식한 뒤 급한 섭식을 해도 위장에는 데미지가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20일 넘은 금식 상태는 더 위험하다.
[6]
오래전부터 단식투쟁을 종종 선택해야 했던
운동권 계열에선 이런 말이 전해져 오곤 했다. "단식(斷食)보다 복식(復食)이 중요하다!" 독재정권 시절 많은 이들이 단식투쟁을 하면서 쌓인 노하우인데 단식을 풀고 나서 정상적인 식사로 돌아오는 과정이 단식투쟁보다 더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7]
단, 이론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보름달 빵을 우유째로 녹인 뒤 개어서 죽처럼 먹으면 가능은 한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오히려 쉽게 발각될 가능성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조금 극단적이나마 비슷한 사례로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줄거리 문서를 참고할 것.
[8]
김영삼 대통령의
동남 방언 발음을 소재로 한 개그.
[9]
원래는 동문회장(성우 겸 배우
최병학 이 맡았다)이 하기로 했는데,
당뇨가 있다고 동문들이 만류하면서 부회장인 오지명이 울며 겨자먹기로 동참하게 되었다.
[10]
주진우 기자가 시사저널 시절에 한나라당 취재 갔다가 나온 이야기인 듯 싶다.
[11]
그런데 아침햇살의 칼로리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아침햇살 500ml 기준으로 300kcal, 가장 작은 사이즈인 180ml 기준으로도 95kcal이다. 180ml 작은 병 3병으로도 한끼에 285kcal이다. 만일 마셨다는 병 기준이 500ml 패트라면 하루 권장 칼로리를 넘어가는 수준이 될 정도고 180ml라면 하루 권장 칼로리의 1/3 정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