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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5 14:59:25

김성회(1965)

파일:대한민국 대통령실 심볼.svg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윤석열 정부
신설 초대
김성회
사회공감비서관
전선영
<colbgcolor=#00205c><colcolor=#fff> 윤석열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김성회
金性會 | Kim Seong-hoi
파일:김성회전비서관.jpg
출생 1965년 ([age(1965-01-01)]세)
충청북도 괴산군
학력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 행정학 / 학사)
소속 정당

약력 전국연합 교육선전국장
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이인제 국회의원실 보좌관
뉴라이트전국연합 집행위원장
자유일보 논설위원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 (초대 / 윤석열 정부)

1. 개요2. 생애3. 논란4. 소속 정당5. 여담

[clearfix]

1. 개요

2005년 뉴라이트 운동에 관여하며 사상적으로 전향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386 운동권으로 살아온 이념의 양극단을 다 포함하는 삶의 소유자다. 정권 교체기마다 유력 대선후보에 붙었던 선거 전문가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초대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1]에 내정되는 등 비상을 꿈꿨지만 자신의 발언들로 인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2. 생애

1965년 충청북도 괴산군 출생.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82학번으로, 대학생 시절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을 주도했던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 연세대학교 위원장을 지냈다.

연대 민족자주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1985년 4월 집시법 위반으로 처음 구속됐다. 1986년 5월 출감한 그는 곧장 노동현장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언론 <레디앙>에 따르면 인천과 수원 등에서 노동운동을 했지만, 이 과정에서 1987년 5월 위장취업이 들통 나 구속되었다가 두 달 만에 석방됐다.

석방도 잠시, 노동자들의 파업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또 다시 구속돼 1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1990년 복학해 졸업한 후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교육선전국장을 맡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국민승리21에서 권영길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인 1999년 6월 제2건국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거 경선 당시 이인제 캠프에 합류한다. 대부분의 운동권 출신들이 김근태 노무현 캠프로 가는 분위기에서 이례적인 선택이었는데,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이인제 의원처럼) 충청도 출신이고, 당시만 해도 이인제가 대세였다. 그러니 민주당 후보는 당연히 될 줄 알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부터 정치적 신념 같은 것은 개나 줘버리고 흔한 정치 낭인이 되어버린 셈.

이후 정치적으로 급격하게 우향우 했다. 2005년 뉴라이트 창립에 직접 관여했다. 당시 <충청리뷰>의 보도에 따르면 장일 전 자민련 국장과 함께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모체가 되는 '뉴라이트 충청포럼'을 결성했다. 2007년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이승만을 칭송했다. 이 때 했던 말이 "박정희 대통령은 능동적인 산업화를 위해 국민적 힘을 모았다. 굉장한 것이다. 박정희의 국가동원 능력은 대단했다", "이승만에 의해 토지개혁이 강도높게 이뤄졌다. 또 국민 너나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인제가 민주당을 탈당한 뒤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민주당(2007년),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으로 당을 갈아타는 동안 함께 했다. 2007년에도 이인제 캠프에서 대통령선거 운동을 했다. 2014년에는 새누리당 청원군 당원협의회장 공모에 응모하였으나 탈락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팬클럽이라는 '반딧불이' 중앙회장을 맡았다. 반기문이 중도 하차하자 이번에는 안철수 지지를 선언했다. #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5월16일 인터넷신문 <제3의길>에 이준석 대표 등을 폄훼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의 제목은 '자칭 개혁보수들의 운동권 외경심과 컴플렉스’로, 그는 이 칼럼에서 “오렌지 우파들의 운동권 외경심과 콤플렉스는 국민의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이런 정신상태를 가지고는 결코 운동권을 이겨낼 수도 없다. 기껏해야 운동권 아류밖에는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준석 대표, 김웅 의원, 김세연 전 의원 등을 ‘오렌지 우파들’로 규정하면서 “잘난 부모 덕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장한, 운동권 콤플렉스의 소유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수 주류와 소통가능한 잘난 부모들, 화려한 스펙 중심의 인재를 영입하다보니 계속해서 오렌지족들만 영입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보수진영 인재양성의 근본적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칭 개혁보수들인 오렌지 우파들이 보수의 주류인 양 나대서는 국민의힘은 결코 미래가 없을 것”, “초선이라고 당 대표 못할 게 무엇이냐고 떠들기 이전에”, “내공이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운동권에 대한 외경심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개혁보수입네’ 떠드는 모습을 보면, 어이없고 가소롭기 그지 없다”고 비판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4월에는 비슷한 취지의 강남좌파 지고 오렌지우파 다시 뜨는 대한민국?이라는 칼럼도 썼다. #

전광훈이 창간한 <자유일보>[2]에 김건희를 찬양하는 칼럼을 여러 차례 기고했다. #1 #2 #3 2021년 12월 21일에는 김건희를 인터뷰한 기사를 올렸고, 닷새 뒤에는 “윤석열이라는 시골 검사를 대선 후보의 반열에 올려세운 것은 ‘평강공주 김건희’였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기고를 게재했다. 대선 당일인 3월10일자 칼럼에서도 “고구려 귀족집단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을 선택하고 키웠듯이, 김건희 대표는 파격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를 찬양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종교다문화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에 대해 위인설관[3]이라는 지적과 함께 # 김건희가 개입한 인사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

2022년 5월 13일, 본인의 과거 발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비서관직을 자진 사퇴했다. #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고향인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괴산군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 하지만 경선에서 컷오프되어 출마가 좌절되었다.

3.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성회(1965)/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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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건설국민승리21|
파일:건설국민승리21 글자.svg
]]
1997 - 1999 창당
정계 입문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9 탈당[4]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9 - 2000 입당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2 합당[5]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2 탈당[6]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02 - 2005 입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5 - 2006 탈당[7]


[[국민중심당|
파일:국민중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6 - 2007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7 탈당[8]


[[민주당(2005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복당


2007 합당[9]


[[민주당(2007년)|
파일:민주당(2005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당명 변경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10]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8 - 2011 탈당[11]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 입당


[[자유선진당|
파일:자유선진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1 - 2012 합당[12]


[[선진통일당|
파일:선진통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당명 변경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 2017 합당[13]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14]


2020 - 현재 당명 변경

5. 여담

윤석열 정부 인사가 대부분 친이계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1956년생 김성회로 잘못 추측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이 인물의 정보가 알려지고 나서는 헷갈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1]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1급 상당 [2] 범투본의 기관지 역할을 했다. [3]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든다'는 뜻. 과거 대통령비서실에는 종교나 다문화를 특별히 전담한 조직이 없어 이번에 신설된 직제였다. [4]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위한 탈당 [5]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 [6] 자유민주연합 입당을 위한 탈당
( 이인제의 대선경선 불복)
[7] 국민중심당 창당을 위한 탈당 [8] 민주당 복당을 위한 탈당 [9]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 [10] 대통합민주신당과 신설 합당 [11] 당시 총선 공천 불복한 이인제와 함께 탈당 [12] 국민중심연합과 신설 합당 [13]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 [14]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