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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1:24:34

김광석 사망 사건/의문사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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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다큐멘터리)
, 김광석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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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光石 | Kim Kwang-s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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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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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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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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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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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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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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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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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관련 음모론 다큐멘터리

1. 개요2. 타살설 제기와 문제점
2.1. 언론의 기본 윤리 문제2.2. 유리한 증언 채택2.3. 전문가 견해를 전혀 참조하지 않은 상태로 발언을 한 문제
3. 자살 자세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는 이유
3.1. 전문가들의 견해3.2. 초동수사가 미진했다?3.3. 손목 흉터
4. 심리상태
4.1. 자살이 불가능한 심리상태라는 주장은 비전문적인 허술한 주장인 이유 4.2. 김광석의 심리상태
5. 타살설
5.1. 2017년 재점화
5.1.1. 딸의 죽음과 재산 다툼5.1.2. 아내에 대한 의혹
5.2. 서해순의 반박
5.2.1.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5.2.2.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5.2.3. 한겨레와의 인터뷰5.2.4. 경찰 조사 후 인터뷰
6. 결과
6.1. 이상호, 서해순에 1억2천만원 배상 확정 판결6.2. 이상호 형사소송서 무죄 확정
7. 기타

1. 개요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광석 사망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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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김광석이 사망한 지 20년 뒤 이상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된 후 본격적으로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이 많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본 문서는 당시 본격적으로 제기된 여러가지 의문점과 의견들을 다루고 있다.

2. 타살설 제기와 문제점

영화를 개봉한 후 다양한 주장이 쏟아졌다. 김광석 일기 공개…"서해순, 美서 이틀밤 낯선 남자와 술 마셨다"

그러나 타살이라는 주장의 핵심적인 근거로 ▲자살 자세, 목에 난 삭흔 ▲김광석이 절대 자살하지 않을 심리상태라는 주장 등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왔으며 자살 혹은 타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개인 사생활인 불륜 관련 의혹까지 나왔다.

이상호 쪽에선 서해순의 불륜을 주장했고 서해순도 김광석에게 내연녀가 있었으며 김광석의 여자 문제와 폭력성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다고 주장하였다. #

2.1. 언론의 기본 윤리 문제

그러나 영화에선 자살이라는 근거에 비해 타살이라는 주장의 핵심 3가지 근거는
  1. '자살 자세가 자살하기에는 힘들다.'
  2. '자살할 이유가 없다'
  3. '목에난 삭흔'
인데 이걸 뒷받침한 전문가의 증언 같은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오직 이상호의 개인적 상식선에서 단정지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김광석의 사망 당시 직접적으로 사망 현장과 시신을 조사한 전문가들은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을 모두 배제하고 사망 현장에도 없었고 사망을 조사한 전문가의 증언도 없이 김광석 가족과 지인의 감정적 인터뷰만을 내보냈다. 타살이라는 실질적인 증거 없이 오직 김광석 가족과 지인들을 출연시켜서 감성에 호소하기만 했다.

영화 개봉 후 각종 방송 언론 등에 출연해서도 관련 전문가의 증언을 제시하지 않은 걸로 봐서 오직 이상호 개인의 상식에서 단정지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내용은 그냥 술자리에서 썰로 퍼뜨리는 수준이면 몰라도 이것을 근거로 영화에서 타살설을 주장하고 각종 언론에 기자라는 이름 걸고 출연해서 타살설을 퍼뜨렸으며 이 영화의 흥행으로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으니 이상호의 기자로서의 양심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더군다나 이런 주장들이 이상호의 기존 다이빙벨 영화에서 그를 옹호했던 좌파 성향의 오마이뉴스 한국일보에서도 나왔다.

[편집국에서] 김광석, 언론의 윤리 (한국일보)
'김광석 부녀 살해범', 위태로운 추론(뉴시스)
<김광석>이 던진 유의미한 질문, 그러나 영화는 허술했다(오마이뉴스)
“영화 ‘김광석’은 진실규명과 거리가 멀다”며 “다큐는 부인 서 씨와 그 오빠를 겨냥하지만, 김광석이 살해됐음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근거는 사실상 없다”고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발견된 담배꽁초 ▲목에 난 삭흔 ▲부부 사이의 불륜문제 등은 타살을 입증하거나 자살을 배제할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진실규명을 위한 저널리즘 콘텐츠로 본다면, 이 다큐는 그저 부족한 게 아니라 확인해야 할 여러 팩트를 간과한 문제가 많은 영화”라며,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부검의-수사관-검사 등 중요한 취재원을 배제시킨 반면, 서 씨에 적대적인 취재원 위주로 콘텐츠가 편성됐음을 거론했다. 이상호 기자에게 던지는 “따끔한 충고”

아니면 말고 식 폭로 기사도 문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항목에서 다룬다.

2.2. 유리한 증언 채택

김광석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하거나 직접 조사한 관련자에 대한 어떤 식의 인터뷰도 없었다.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이상호는 김광석의 죽음을 당시 수사했던 경찰, 검찰, 부검의에 대한 일체의 인터뷰나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영화에서 김광석의 죽음의 범인으로 몰고 갔던 서해순에 대해서 기본적인 인터뷰도 안 했다.

그들이 잠적하거나 찾을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형사나 부검의는 당연히 쉽게 찾을 수 있을 뿐더러 서해순도 2008년에 딸이 죽었던 그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하며 당시 경찰, 부검의 등도 김광석이란 영화 개봉 이후에야 다른 기자들이 찾아가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찾기 쉬웠다. 사실 이상호는 서해순을 고발할 당시 서해순이 해외도피하려고 하니 출국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만큼 서해순의 동태를 신경쓰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즉, 충분히 인터뷰가 가능한데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 김광석은 이상호가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인만 취사선택해 인터뷰하여 그걸 영화라는 매체로 만들었다. 달 착륙은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만 모으면 최소한 그 영화 속에선 달착륙은 조작이 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정말 기본적인 일조차 회피한 것이다.
진실 규명을 위한 저널리즘 콘텐츠로 본다면 이 다큐는 그저 부족한 게 아니라 문제가 많은 영화다. 서씨 동의 없이 부검소견서를 볼 수 없었다는 점 등 취재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확인해야 할 여러 팩트를 간과했다. 당시 부검에 참여했던 의사, 수사했던 수사관, 사건처리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는 검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 기자의 발언과 서씨에 적대적인 김광석의 가족, 팬들의 발언이다. 타살 입증에 반하는 전문가 해석도 일부 생략됐다. 김광석 언론 윤리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부검의-수사관-검사 등 중요한 취재원을 배제시킨 반면, 서 씨에 적대적인 취재원 위주로 콘텐츠가 편성됐음을 거론했다. 이상호 기자에게 던지는 “따끔한 충고”
시아버지에게 막말을 하고 시가(媤家) 식구들과 사이가 나쁘다는 사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남편과 불화가 심한 아내가 시가와도 이런저런 이유로 충돌해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감정적으로 거칠어지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특별하거나 희귀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크린으로 목격되는 광경은 물론 추하지만 집안의 분규가 어느 쪽에 귀책사유가 있는지는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집안 내에서 서씨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영화는 서씨 사정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반영이 없다.양쪽 입장을 다 제시하면서 관객이 판단토록 하는 게 아니라, 기계적 균형으로나 실질적 균형으로나 형평성 측면은 거의 고려되지 않고 시종 한쪽 입장에 치우쳐 있다. '김광석 부녀 살해범', 위태로운 추론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영화에 김광석의 타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든 발언을 실은 것도 아니다. 그들의 발언도 맥락을 잘라 생략했다.

게다가 영화 김광석에서는 '김광석이 절대 우울하지 않았으니 자살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했다. 영화에 출연한 박학기도 김광석이 우울해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김광석이 자살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내용만 편집되어서 나온다. 그러나 사실 박학기가 다른 매체에서 당시 김광석이 우울해했다는 주장을 했다는 걸 생각하면 영화 속의 박학기의 주장은 이상호 기자의 타살 주장에 맞는 주장만이 편집되어 나온 것이다.
이내 김광석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박학기 씨가 등장한다. 이 기자는 나레이션으로 "박 가수는 (김광석이) 자살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중략 ... 1996년 1월 7일자 <한겨레> '가수 김광석 씨 자살, 유학 고민 조울증 겹쳐' 기사를 보면 '김광석 친구인 박학기 씨는 광석이가 최근 심신 피로와 음악적 한계를 토로하며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사에선 이 말이 김광석의 자살을 뒷받침하는 '멘트'로 나온다. 그러나 이 기자는 박씨로부터 김광석 사망과 관련해 구체적인 말을 끌어오질 않는다. 대신에 외부인의 입을 빌려 '타살인 것 같다'는 말로 의혹을 증폭해 나간다. <김광석>이 던진 유의미한 질문, 그러나 영화는 허술했다

배상훈 교수는 영화에 중요 자문 역으로 나왔지만 타살의 핵심 증거인 삭흔을 타살 증거가 아니란 말은 이상호가 영화에 싣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얘기되는 게 (목에 남은) 삭흔 이야긴데 이게 좀 위험하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거든. 이상호 기자 얘기대로 삭흔이 수평이면 타살이고, 위로 올라가 있으면 자살일까? 이건 또 아니다.... 중략... 그래서 (그걸로 타살에 무게를 싣는 건) 위험하다고 개인적으로 이상호 기자에게 조언도 했었다." 영화 김광석 출연한 자문교수 배상훈

2.3. 전문가 견해를 전혀 참조하지 않은 상태로 발언을 한 문제

김광석이 타살이라는 주장의 핵심적인 이유는 2가지다.
  1. 김광석의 정신적인 면에서 자살한 이유가 없다.
  2. 김광석의 자살 방법이 자살이 불가능하다.

2번에 관해선 그나마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조언이라도 들었다. 물론 배상훈이 타살의 근거가 아니라고 하자 조언을 무시했다. 어쨌든 살인사건 관련 전문가의 견해를 모아서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했으면 몰라도 아예 전문가 견해 따윈 없다.

1번은 더욱 문제인데 만약 "김광석의 심리상태를 보면 절대 자살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굉장히 무리수를 둔 것이다. 왜냐하면 제3자가 20여년 전의 김광석의 심리상태를 100%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살고 심지어 다음날 약속까지 잡아놨다가, 어느날 자살해 버리는 경우는 일반인이든 연예인이든 너무나 많다.[1] 어떤 사람이든 가족이나 친구에게까지 자기의 모든 정신상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애초에 어떤 심리학자나 정신과 전문의도 자기 환자가 100% 자살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자살하기 오래 전부터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가 환자를 정신적인 문제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거나 상담받는 경우에도 그 사람이 자살은 절대로 안 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정 정신상태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었으면, 죽은 지 20년 지난 김광석에 대해서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나 자살 사건 전문가에게 김광석에 대한 광범위한 여러 정보를 준 다음 전문가들의 견해에서 어느 정도 일치되게 자살할 가능성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면 법정증거로는 부족해도 기사로는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호는 그런 전문가 의견을 전혀 묻지 않은채 본인 상식선에서 무작정 김광석 정신 상태로 자살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의인지, 기자로써 자질이 부족한 것인지 전문가에게 어떤 문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 김광석이 제작되었다.

3. 자살 자세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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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는 집안 계단에 비스듬히 기댄 괴이한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자살하기가 어렵다고 이상호를 비롯한 의문을 가진 이들은 주장했다.

자살 방식을 보면 문고리, 샤워기 줄, 하다못해 침대에 줄을 걸어 자살하는 형태까지 흔하게 발견된다. 게다가 군 자살 케이스 모음집에는 의무대 침대 밑에 누워서 철제 침대에 군화줄로 목메달아 자살한 케이스도 있다.

김광석의 계단에서 자살은 그런 방식에 비하면 오히려 그다지 힘든 자살 형태도 아니다.
이렇게 목을 매어도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이윤성 교수/서울대 법의학연구소장] : 심지어는 앉아서도 (가능하고), 더 심하게는 침대에 누워서 머리만 침대 밖으로 매달아도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요.]
김광석, 타살 가능성 없는 이유?..부검기록 따져보니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매듭이 쉽게 풀리고 끈의 긴장도가 낮아질 텐데 자살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다리가 꼿꼿히 선 채로 자살하거나 끈이 느슨한데 자살로 판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목을 묶어 그 상태에서 목이 살짝 조인 채로 허혈성 뇌손상이 계속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영상에서 알려진 방법대로 자살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타살에 대한 수사는 해야 하지만 목을 묶고 의자를 발로 차야만 죽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의 자살에 대한 자료는 흔히 구하기 힘들지만 널리 알려진 유명인의 자살 방법만 따져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의 발달로 유명인의 자살 방법이 널리 알려지자 자살 방법을 따라하는 모방 자살이 꽤 생겼다. 모방 자살이 많았던 대표적인 사례가 배우 최진실 자살이다.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대표적인 자살 사건인 데다 샤워부스에 압박붕대로 목을 맨 자살 방법이 굉장히 힘든 방식이었다. 이게 각종 음모론을 낳았지만 모방 자살이 잇따르면서 충분히 가능한 방식인 게 입증되었다. 박용하는 침대 틀에 전선으로 목을 매었는데 여긴 매달리기가 힘든 곳이다. 침대가 2층침대도 아니었음에도 결국 죽음까지 갔다. 안재환의 자살 방식도 유족이 불가능한 자살이라고 주장했으나 금방 모방 자살이 여러 번 터지면서 최소한 자살 방식에 대한 논란은 잠잠해졌다.
위의 방식들은 김광석보다 더 힘든 방법들이다. 이상호의 주장인 김광석의 자살 방법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뉘앙스의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보여주는 근거는 될 수 있다.

3.1. 전문가들의 견해

이상호 기자는 8월 3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확인해보니 목 뒤쪽에는 삭흔이 없었다"며 뒤에서 목을 졸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이건 대단히 유력한 (증거). 일단 자살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호 기자 삭흔이 타살의 중요한 근거다

이런 주장은 사실상 이상호의 희대의 삽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 한 명의 반대 의견을 내놓은 전문가도 없이 현재까지 모든 전문가가 일치되게 김광석의 자살 당시 여러 가지 증거로 자살이 맞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당장 영화 김광석에 출연하고 이상호에게 조언을 해 준 자문교수였던 배상훈 교수마저 목의 삭흔을 타살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얘기되는 게 (목에 남은) 삭흔 이야긴데 이게 좀 위험하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거든. 이상호 기자 얘기대로 삭흔이 수평이면 타살이고, 위로 올라가 있으면 자살일까? 이건 또 아니다. 삭흔이 수평으로 있어 타살이라는 건 두 사람 모두 서있을 때다. 근데 꼭 서있을 수 있나 술 먹고 앉아 있는 걸 뒤에서 걸었으면 삭흔이 다르게 나지. '이태원 살인사건' 때 (진범 규명에) 실패한 이유가 키가 큰 사람만이 죽일 수 있다고 확정해 놓고 가서다. 당시 가방 손잡이를 간과한 거지. 20년 지나서 또 다른 가능성이 나왔잖나. 삭흔이 그런 부분이 있다. '일반적으로'라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거다. 일반성이 개별 사건을 증명해 주진 않거든. 그래서 (그걸로 타살에 무게를 싣는 건) 위험하다고 개인적으로 이상호 기자에게 조언도 했었다." 영화 김광석에 출연하고 이상호에 자문한 배상훈 교수 인터뷰

각종 변호사, 수사전문가, 법의학 전문가들이 일치된 견해로 목의 삭흔이나 자살 방법으로 타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김광석 타살 주장이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 이후) "이러한 점(의살과 교살의 구분)은 일반인 수준의 수사 초보자라도 금방 그 차이를 안다. 다시 말해 교살인데 의살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 부러진 화살 박훈 변호사
일부에선 "끈 흔적이 목 앞쪽만 진한 것은 누군가 뒤에서 끈으로 김 씨의 목을 잠아 당겼기 때문"이라며 타살설을 제기한다. 자살을 하면 줄이 목을 한 바퀴 휘감으며 조이기 때문에 흔적이 목 앞뒤로 골고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법의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서 전 원장은 "스스로 목을 맸을 때 앞쪽만 선명한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했다. 서 전 원장은 "타살 혐의점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더 있다"며 두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김 씨에게선 골절이나 출혈이 없었다고 한다. 서 전 원장은 "누군가 끈으로 목을 졸랐을 때, 목에 가로줄이 나타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골절·출혈이 수반된다. 김씨의 경우 이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해된 피해자의 목에는 끈 자국이 2~3개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른바 '저항흔'이다. 그런데 김 씨 목에는 끈 자국이 하나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전 원장은 "당시 부검 결과를 다른 법의관들이 검토했지만, 아무도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것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의관들 김광석 삭흔은 자살근거다.

표창원은 SNS에서 김광석의 죽음을 ‘의사’(목매어 죽는 죽음)의 소견이 확실하며 ‘의사’이면서 타살의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으며 아주 직설적으로 확실한 자살의 증거, 자살을 가장한 타살인 의사의 가능성을 없애준다고 해서 증거가 확고함을 표현했다.
부검소견서 상 가장 확실한 자살의 증거는 '의사' 소견들입니다. '의사'는 누군가의 힘으로 목을 조르는 '교사'와 달리 스스로 목에 무엇인가를 두르고 그 끝을 다른 곳에 고정시킨 채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 질식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되는 죽음을 말합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김광석 시체에 대한 부검 결과 '교사'에서 나타나는 설골 등의 골절이나 압흔, 표피박탈이나 피하출혈 및 손톱 및 살점 등 저항흔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반면에, 목의 전면부에서 귀밑을 거쳐 올라간 삭흔(혹은 색흔, 줄이 살에 눌린 흔적)이 뚜렸했습니다. 물론, '의사'이면서 타살일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무기 등을 이용한 협박을 통해 피해자 스스로 목을 매도록 하는 경우, 혹은 술이나 약물에 취한 사람을 이미 준비된 줄에 목을 매단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하겠죠. 하지만, 영화나 언론 등에서 제기하는 '계단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가 오히려 이런 자살을 가장한 타살인 '의사'의 가능성을 없애 줍니다. 이런 자세에서는 스스로 자살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강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고 약물 등에 취한 상태라면 질식 자체가 불가능하죠. 스스로 목에 감은 줄에 체중을 싣고 몸을 아래로 늘어트려야 질식과 사망이 가능한 위치와 자세니까요. 표창원, 김광석 목매서 자살의 확실한 근거가 있다.

이후 부검감정서가 공개되었을 때 그것을 검토한 법의학교수도 타살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는데 "끈으로 목을 졸라서 죽이려고 했다면 반항했을 것"이라며 "막 움직이고 손발 잡아서 끌려고 하고, 손으로 줄을 풀려고 하고, 아니면 목을 조르는 사람을 어떻게든 끌려고 하고, 이런 정도의... 방어흔이 남게 되는데 (김광석의 몸에서는) 그런 방어흔이 없다"고 설명했으며 '방어흔이 없어도 타살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그런 상황이 되려면) 독극물에 중독 됐거나, 그런 (비슷한) 상황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김광석에게는) 그런 상황이 없고, 목에 있는 줄(자국)은 얌전하고 그러면 타살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광석 부검감정서' 검토한 법의학자 "타살 가능성 낮다..방어흔 없어"

삭흔과 자살 자세에 관한 것도 법의학자들은 자살이 맞다고 일축했다.
故 김광석 씨는 발견 당시 늘어진 전깃줄에 목이 감긴 채 계단에 기대 누워 있었습니다. 먼저 스스로 목을 맨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은 부검감정서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사망 직후와 발견 당시 모습은 달랐다는 겁니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김 씨의 목에는 줄 자국이 있는데 목젖 오른편의 자국은 수평으로 나 있었지만 왼편의 자국은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즉, 숨진 순간에는 발견 당시보다 조금 더 몸이 세워져 있었다는 겁니다.
[이숭덕 교수/서울대 법의학 교실] : (왼쪽 귀 뒤편에서) 이렇게 매달려도 이런 삭흔이 나오고요. (줄을) 짧게 해서 이렇게 매달려도 이런 삭흔이 나옵니다.]
이렇게 목을 매어도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이윤성 교수/서울대 법의학연구소장] : 심지어는 앉아서도 (가능하고), 더 심하게는 침대에 누워서 머리만 침대 밖으로 매달아도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요.]
김광석, 타살 가능성 없는 이유?..부검기록 따져보니

3.2. 초동수사가 미진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서연 양 타살설은 추측에 근거할 수밖에 없는 게, 이상호는 영화개봉전 각종 인터뷰에서 서연양이 감금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사망 사실이 드러나자 갑자기 타살설을 주장해 아무 근거 없이 서해순을 딸 살해범으로 몰았다. 이상호와 자문교수인 배상훈은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진했고 부검도 대충 했을 것이며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경찰과 담당자들이 서해순 편을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 사안의 논점이 흐려진다는 뜻인지.
"맞다. 그렇게 강하게 얘기하면 누군간 동조하게 돼 있다. 이 문제의 핵심은 김광석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수사와 부검의 소홀함을 주장해야 하는데 그러면 당시 경찰과 담당자들이 발끈하지 않겠나. 경찰이든 부검의든 서해순의 동조자가 나오게 된다. 자동적으로 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서씨가 매우 잘 아는 거다. 나 아니라도 대신 싸워줄 사람이 있는데 뭐 하러 구체적인 걸 얘기하겠나. 국민들은 이걸 아셔야 한다. 당시 부검의 첫 마디가 절대 김광석은 타살일리 없다 였잖나. (의도했든 아니든) 서씨를 대변하는 거지. 20년 전에 수사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거다. 이처럼 자길 대변할 사람이 많으니 서씨 입장에선 논리정연하게 말할 필요가 없지."
(중략)
김광석 사망과 딸 서연 양의 사망 원인을 알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배상훈 교수는 부검소견서와 당시 수사진들의 수사보고서가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걸 바탕으로 수사의 적정성을 파악하고 부검 때 특이점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는지 여부도 알 수 있다"며 배 교수는 "그 다음은 판단의 문제"라고 운을 뗐다. (중략) "수사가 그때 적정했나를 보는 거지. 그래서 이 문제가 어려운 거다. 당시 수준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판단할 수도 있다. 김광석 문제는 공소시효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고, 그때 수사가 미흡했다 할지라도 타살을 입증하기 어렵다. 서연 사건은 재수사가 가능한데 119 측의 기록과 병원 기록을 봐야 한다. 이미 사망했는데 서씨가 병원에 가자고 우긴 건지, 사망자에게 왜 강심제를 15번이나 투여했는지, 그것도 서씨가 우겨서 한 건지 등 말이다. 급성 폐렴 역시 발병 시 고의적으로 병원에 안 데려간 단서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어렵고, 다른 방증을 찾아야 할 거다. 경찰은 전문가들이니 작전을 짜 놨을 거다."
- 서연 양의 죽음에 대해 의심스럽거나 더 확인해야 할 것들은 없는지.
"그 부분은 잘 몰라서 정황상으로 말할 수 있겠다. 서연 양이 장애가 다소 있는 건 저도 이상호 기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게 가부키 증후군인진 몰랐다. 누가 돌보지 않으면 혼자선 살 수 없는 상태인 건데 잘 돌보지 않았다는 게 도덕적 비난은 가능할지언정 범죄는 아니잖나. 딸을 실제로 방임 학대했는지 알기는 어렵다. 서씨는 이걸 알고 그런 비난을 다 감수한다는 거다. 당시 수사관들이 학대 문제를 수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장애 문제로 죽었다고 결론 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부검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현장 수사관들이 은유적으로 하는 표현에 따르면) 부검을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정말 의심이 가서 뭔가 찾기 위해 하는 것과 형식상 하는 게 있다. 특히 가족 등의 관계인이 진술했을 때 후자가 될 수 있다. 아내 혹은 부모가 눈물 흘리며 진술 하는데 수사관들이 '거짓말! 네가 죽였네!' 하진 않지. 다만 그냥 처리하기엔 부담이니 부검은 해보는 거다. 그게 불법은 아니거든. 그래서 독극물 이야기가 나오는 건데 아니잖나. 서씨가 아이를 제대로 보살폈냐가 중요한데 독극물은 사실 바로 증거가 나오니까. 부검의는 유기에 의해 서연양이 죽었다는 걸 알기 어렵다. 몸에 난 상처들은 기록하겠지만 어디서 난 줄은 모르지. 서씨 입장에선 꿀릴 게 없는 거다."
영화 김광석 출연한 자문교수 배상훈

하지만 배상훈의 답변은 문제가 있다.
  1. 배상훈은 부검감정서를 전혀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저런 내용이 나올 텐데, 그건 서해순이 이렇게 저렇게 변명할 것이라는 식으로 추측으로 진행한 인터뷰라는 것이다.
  2. 더욱 놀라운 것은 배상훈이 목의 삭흔이나 자살자세 등이 타살의 근거가 아니라고 이상호에게 말했는데 이상호는 자문교수의 자문을 무시하고 그걸 타살의 2대 근거 중의 하나로 영화에 제시한 것이다. 결국 자기 편마저 증거가 안 된다고 하는 내용을 대중에게 증거랍시고 영화에 내보낸 것이다.

그리고 김광석 측 교수인 배상훈의 이런 예측이 대부분 엉터리로 드러났다.
1. 딸이 당연히 학대를 당했으니 몸에 상처가 있을텐데 부검에서 그냥 유야무야 별 문제 삼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
몸에서 학대의 증거인 상처를 찾았봤으나 몸의 상처는 없었다.고 명확하게 기록됨
2. 급성 폐렴 당시 고의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단서는 나오겠지만, 그걸로는 유죄가 힘들다는 주장
폐렴 당시 학교 앞 동네 병원에가서 진찰받고 감기약을 타서 먹였다는 증거가 나왔고, 1주일 동안 동네병원 3번 내원[2]
1주일 동안 동네병원 3번 내원했지만 의사가 일반 감기이니 3일 후에 또 오라고 했다. 즉, 의사가 병이 심각하니 큰 병원이나 응급실 가라고 권유한 게 아니라 그냥 일반 감기다라고만 말했다. 그날 밤이 지나고 새벽에 서연양이 사망했으니 동네병원에서 24시간 지나기도 전에 사망한 것이다. 즉, 동네 병원에서 일반 감기라고 말해서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지 않은 것이며 고의로 대형병원에 입원을 안 시킨 게 아니다.[3] 게다가 다른 학대의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3. 초동 수사나 부검이 부실했기 때문에, 즉 부실한 수사와 부검의 책임을 지기 싫어서 서해순 편을 들어줄 거라는 추측
→ 당시 부검 관련 인사들도 당연히 서해순의 무죄를 증언했지만 당시 부검과 무관한 법의학대학교수나 범죄전문가, 변호사 등이 모두 서해순 측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초동수사나 부검이 부실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이상호가 의도적으로 누락했을지도 모르는 진실은 김광석의 죽음 당시에 이미 김광석 친가에서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펄펄 뛰어서 당시에도 수사기관에 엄청나게 압박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초동수사나 부검이 부실할 수가 없다.

부검 부실이 헛소리인 것은 부검 장소에 김광석 가족들이 다 따라갔다고 한다. 당국에서도 부담스러웠는지 부검의를 6명을 넣는 등 부실하지 않고 열심히 부검했을 수 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당시 부검 등에 친가가 참여했다는 서해순의 말에 이광복 씨는 실제로 친가 처가 모두 부검에 참여했다고 답했다. 자살한 김광석에 대해서 사회의 관심이 크고 김광석의 친가에서 자살이 아니라고 펄펄 뛰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은 부검의를 보강해서 부검했던 당시 상황에서 김광석의 부검이 대충대충 이루어졌을 거라는 주장이 과연 맞을까.

이런 내용이 김광석의 형 김광복의 인터뷰에서도 나오는데 수사 초기부터 경찰 수사에 일일이 간섭하고 반발하던 유족의 모습이 잘 나온다. 게다가 김광석의 친가쪽에서는 초기부터 타살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부부의 불화만으론 타살 의혹을 제기하기 어렵지 않나.
▲ 현장에 있던 서씨의 진술은 계속 바뀌었다. 광석이를 최초 발견했을 때의 모습, 광석이네 건물 마당 컨테이너 박스에 살던 서씨의 친오빠가 사건 당일 집으로 올라왔을 때의 정황도. 현장감식 등 경찰의 초동 수사도 미흡했고, 서씨 측의 진술만 듣고 자살로 수사를 진행하는 인상을 줬다. 추가 조사 지시를 받고 광석이 서재에 온 수사관들이 부실하게 수색하는 모습, 또 경찰이 '유족들이 여기 있는데 누가 재수사를 요청했느냐'며 신경질적으로 대화하는 전화 통화 등 수사팀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수사팀을 교체해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 당시 부검감정서를 본 법의학자들은 타살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서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부검에 "(광석 씨) 형, 매제들, 우리 친오빠랑 작은아버지가 들어가셨다"라고 하던데.
▲ 우리 가족 중에는 매형만 들어갔다. 그런데 부검의들이 뒤에 앉아있으라고 해 멀찍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SBS에 공개된 부검감정서를 보니 목에 '단선의 삭흔'(폭 0.5㎝ 정도)이라고 돼 있던데, 서씨가 또 다른 언론에 공개한 사망진단서의 의사소견에는 '폭이 약 1~1.5cm 되는 두 줄의 자국'이라고 돼 있었다. 왜 다른지 모르겠다. 목을 맨 채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천장을 바라본 자세였다는데 그럼 목 뒷부분에 삭흔이 생겨야 한다. 이상호 기자는 사건 당시 경찰서에서 본 사진에서 등에 계단에 눌린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서씨가 공개를 원치 않아 우린 부검감정서나 사망진단서를 볼 수가 없다. 김광석형 김광복의 인터뷰

수사 상황에서 김광석 친가가 타살을 확신하고 수사팀에 압박을 준 정황은 여럿 드러난다.
  1. 김광석 친가는 타살을 확신하고 수사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2. 김광석의 시망 현장에서 수사 상황과 서해순의 진술을 계속 관찰했다.
  3. 수사가 미진하다고 여겨서 재수사를 요청해서 형사들이 추가 조사지시를 받고 추가조사를 했다.
  4. 그럼에도 수사가 미진하다고 여겨서 수사팀을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5. 부검에도 친가며 처가가 참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팀이 대충 수사하고 대충 부검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또 이상호의 현장 훼손 주장마저도 고의적인 왜곡이다. 현장에서 서해순이 사망한 김광석에게 인공호흡 등 여러 처치를 가하는 과정을 현장에 훼손됐다는 식으로 왜곡했는데, 이상호의 주장대로라면 살해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죽은지 살았는지 모를 남편을 인공호흡도 안하고 그냥 놔두는 게 정상인가? 응급 현장에서 인공호흡을 현장훼손이라는 프레임으로 모는 것을 봐도 자살 현장에 대한 기본도 모르고 타살로 왜곡하기 위한 억지 주장이다.

이상호 기자의 주장이 진실이려면 현장 조사에 참가한 경찰, 이후 부검한 부검의, 그 결과를 수사선상에 처리한 수많은 수사인력들 등등이 모두 결탁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3.3. 손목 흉터

전문가들은 칼로 벤 듯한 상처가 양쪽 손목에 우연히 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합니다.
[이윤성 교수/서울대 법의학연구소장] : 손목 앞쪽에 여러 개의 선상 반흔(흉터)이 있으면 전에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는 됩니다. 손등 쪽이면 또 그런 걸 추측하긴 어렵고 그렇습니다.
오래된 흉터는 김 씨의 사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데 당시 부검의는 왜 굳이 감정서에 서술했을까.
[이윤성 교수/서울대 법의학연구소장] : 수사에 도움이 되게 이 사람이 과연 전에 그런 (자살) 시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일 걸로 생각합니다.
손목의 오래된 상처를 자세히 기술한 부검감정서는 김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SBS 뉴스

4. 심리상태

이상호는 김광석이 자살 아닌 타살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사실 자살이 아니라는 근거가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증거 수준도 못 되는 증거를 핵심 증거로 내세웠다.

김광석이 타살이라는 주장의 핵심적인 두 가지 이유
  1. 김광석의 정신적인 면에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
  2. 김광석의 자살 방법이 자살이 불가능하다.

첫 번째 주장은, 김광석은 정신적 고통을 겪지 않았으므로 절대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억지 주장이다.

영화 김광석의 내용을 보면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김광석은 평소에 우울증을 앓지도 않았으며 우울증 약을 복용한 사실도 없다고 한다. 그의 지인들 중 어느 누구도 우울증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소 음악 행사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었으며 사망한 날도 새벽까지 팬미팅을 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죽기 직전에도 왕성한 활동을 계획했던 것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절친한 친구였던 박학기는 그가 사망한 날 자신에게 '내년에 같이 멋진 공연 해 보자'고 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자살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 친구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광석의 형이 군대에서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본인은 결코 부모님보다 먼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평소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이유 없이 자살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 영화 김광석의 주장이다.[4]

그런데 이 지인들은 박학기의 증언을 거론했는데 정작 1996년 1월 7일자 <한겨레> '가수 김광석씨 자살, 유학 고민 조울증 겹쳐' 기사를 보면 '김광석 친구인 박학기씨는 광석이가 최근 심신 피로와 음악적 한계를 토로하며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사에는 이 말이 김광석의 자살의 원인을 뒷받침하는 '멘트'로 나왔지만 이 기자는 박씨로부터 김광석의 사망과 관련해 구체적인 말을 끌어오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어쨌든 최소한 박학기는 언론에 김광석의 안 좋은 정신 상태를 증언했으므로 지인들 중 어느 누구도 김광석의 우울증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상호의 주장은 거짓이다.

또 이상호는 '만약 자살이라면 평소 메모광인[5] 김광석의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분명히 유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글들이 전혀 없다.'[6]고 주장하였다

4.1. 자살이 불가능한 심리상태라는 주장은 비전문적인 허술한 주장인 이유

이상호는 '김광석의 죽음은 자살이 아닐 것이다'라는 주장의 근거를 거의 제시하지 못해서인지 기껏 주장한 근거 중 하나가 김광석의 정신상태가 자살이 절대 아니라는 억지 주장을 했다. 김광석 영화를 통해서 당시 잘 나가는 가수였던 김광석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했다던지 굳이 자살 할만한 이유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는 주장을 펼쳤으며 영화에 나온 지인들도 김광석은 우울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공익광고의 밝은 모습으로 우울한 표정의 친구를 위로해 주던 중년 남성이 그날 밤 자살한 것처럼 실제로 우울증과 자살은 예기치 못한 형태로 찾아오고 주변인이 그걸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문의조차도 오랜기간 내원한 본인의 환자가 자살할지, 자살하지 않을지 예측하지 못한다.

적어도 전문의가 자신이 직접 관찰한 환자에게조차도 ‘저 사람은 절대 자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정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비전문가인 이상호가 자신의 환자도 아닌 김광석에 대해서 김광석은 절대 자살하지 않을 사람이다라고 단언할 지식과 능력이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위 항목에도 잘 나오지만 형사사건의 증거로 쓰일 정도로 엄밀하게 따지면 사망자를 오랜 기간 관찰하고 치료했던 주치의나 정신과의사 수준의 전문가라고 해도 재판장에서 100% 자살이 아니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자살 위험도가 낮다는 수준의 주장을 하면 참고 증언 정도가 될 뿐이다.

4.2. 김광석의 심리상태

20여년 전 '김광석의 심리상태가 절대 자살할 상태가 아니다'라는 이상호 측의 단정적인 주장에 대해서 반론이 많다.
이 반론은 '김광석이 반드시 자살할 심리상태였다'는건 절대 아니고, "김광석의 심리상태가 자살가능인지 불가능인지를 사망 20년 이후 이상호가 함부로 단언할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1. 이상호는 김광석의 과거 심리 상태에 대한 자료도 충분히 없고, 전문가의 진단을 받을바도 없다는 면도 있고, 2. 이상호가 취재한 내용속에서도 김광석이 불행한 모습이 몇가지는 이미 포함되고있는데, 이상호는 마치 그걸 애써 무시하는식으로 이 주장을 위해서 밝은 면만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96년 당시 김광석은 행복하기 만 상황이 아니었고 오히려 김광석을 힘들게 하던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1. 하나뿐인 딸의 장애
  2. 부부관계의 이혼까지 생각하는 가정 불화
이 두가지 내용 모두가 이상호의 인터뷰에 나오는 김광석의 불행한 일면이다.

특히, 서해순의 불륜으로 김광석이 매우 심각한 고통을 겪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던게 이상호인데, '자살할 수 없는 심리상태'를 주장할 때는 이 자료는 무시된다.

이상호의 자료 이외에 다른 자료를 봐도 당시 그의 공연을 보면서 그의 우울한 마음을 느꼈다고 말하는 관객이 많았다(출처 요망).
“한동안, 뭔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요. 뭐,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밋거리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 하면서 만든 노랩니다. ' 일어나' 불러 드리면서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작고 1년 전, 슈퍼 콘서트에서

그리고 영화속에서 김광석의 지인들이 모두 김광석이 우울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과연 지인들의 주장을 다 전한 것 맞느냐는 의구심은 있다.
(김광석 영화 속에서) 1996년 1월 7일자 <한겨레> '가수 김광석씨 자살, 유학 고민 조울증 겹쳐' 기사를 보면 '김광석 친구인 박학기씨는 광석이가 최근 심신 피로와 음악적 한계를 토로하며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사에선 이 말이 김광석의 자살을 뒷받침하는 '멘트'로 나온다. 오마이뉴스

박학기만 하더라도 김광석이 타살이라고 여겼지만 김광석이 당시 고통스러워했다는 부분을 증언한다. 이 부분은 서해순의 증언과 일치한다. 이상호 영화의 주장 김광석의 지인들은 모두 김광석이 정신적 고통이 없었다고 말했다는 건 사실 거짓인 셈이다.

김광석의 일기에는 뉴욕에서 아내의 실종 사건을 보면서 아내와의 불화로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이 명백히 담겼다.

김광석의 딸 김서연은 사망 당시 가부키 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있었고 발달장애 2급에 만성 신부전이라는 심각한 질환을 앓으면서 키가 135cm밖에 되지 않는 등 여러모로 17세의 건강 상태라고는 볼 수 없었는데 딸에게 이러한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김광석이 죽은 1996년에는 6살이었으니 이미 드러난 상태였다. 발달장애는 유아기부터 다른 아이의 성장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시작되므로 2~3살부터 말이나 사회성이 현저히 뒤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서해순에 말에 따르면 김광석이 죽을 무렵 아이는 이미 특수교육을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보통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가 3살 내외부터 아이의 문제를 인지하고 특수교육을 시킨다는 걸 고려하면 이상한게 아니다.

이상호 같은 경우 말 몇 마디 했다고 비장애인처럼 왜곡하는 기사도 있으나 아이가 돌만 지나도 말 몇 마디는 하고 2~3살만 해도 어른과 소통하고 같이 놀이도 한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과 수영선수 김진호는 의사소통은 잘 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옆에서 돌봐주지 않고 살 수 있는 상태는 절대 아니며 평생 누군가 돌봐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장애등급 판정은 정신과, 소아과 등에서 판정을 내리고 국가에서 엄밀히 검증한 것이므로 기자의 추측성 기사보다 신뢰도가 높다.

게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 경찰은 꼼꼼하게 조사했고 당시 아이에게 특수교육을 시키던 담당자까지 조사했으며 실제 김광석 딸은 지적장애 3급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서연양 말하거나 소통에 별 문제 없었다는데, 동시에 가부키증후군과 인지기능장애 때문에 특별한 증상을 호소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상치되는 것 아니냐?
▶서연양이 의사소통이 잘 된다고 해서 비장애인과 똑같은 정도는 아니고 장애인에 비해서다. 서씨가 학교 다닐 때 서연이를 심리상담사에게 맡겼다. 상태가 어떤지 심리상담사 진술 의하면 서연이가 지적장애 2급 판정이지만 직접 얘기하고 눈 맞추는 것 보니까 지적장애 3급정도였다. 경찰의 일문 일답

국가의 공식적인 장애등급은 지적장애 2급이고 상담사가 느끼기에는 지적장애 3급 정도였다고 한다. 발달장애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로 분류된다. 2급이든 3급이든 장애인으로 평생 보호자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경찰의 수사결과를 더 보면
-수사결과 발표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의혹을 다시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수사하면서 느끼기에 서연양이 성장하면서 방치되거나 학대되거나 부족하게 자랐다고 느꼈냐, 아니면 어느 정도 정상적 가정에서 케어를 받으면서 컸다고 느꼈나.
▶그런 걸 진술해줄 수 있는 부분이, 학교 선생님 1년 8개월 정도 옆에서 꾸준히 지켰던 친구 이웃 진술을 토대로 말했을 때 그분들 진술 일관되게 서연이가 학교 준비물 그 능력이 좀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을 안써도 지저분해지는데 항상 용모단정 했고 준비물도 잘 챙겨왔다고 한다. 어느 부모처럼 케어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지 방치되거나 이런 느낌을 받은 적 없다.
그리고 서해순 집과 학교 20km 떨어져있다. 등교 때 데려다줬다가 다시 와야 되고 하교 때 데리러 갔다가 와야 되고 하루에 왕복 80km다.
서연 양이 사망하기 전 21일 한 번 결석한 것 말고는 결석이 없었으며 학교 교사들의 진술 모두가 서해순씨가 왕복 80km로 등하교시켰다고 한다. 학교 교하들의 진술에 의하면 서연양이 23일 6시에 사망했는데 21일은 결석하고 20일까지 학교에 다녔다. 경찰의 일문 일답
장애인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당장 서해순씨가 딸을 위해서 80km를 차로 달려서 등하교시켰다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학교와 집의 거리 20km는 서울과 수원 정도의 거리이며 장애인인 딸이 왜 그 먼 거리를 가야 했을까?

그것은 바로 장애인 특수학교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으로 인해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가 별로 없어서 그 먼 거리를 학부모가 데리고 다닐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이 저 기사의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김정숙 여사,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위해 무릎꿇은 엄마들'만나 당장 대한민국 강서구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어났으며 이 기사가 바로 그 논란을 다룬다. 장애인 특수학교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은 세계 공통이다. 기사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김광석의 딸이 다니던 학교는 장애인 학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서해순이 자기 딸이 똑똑하다고 자랑한 건 '특수학교 다니는 장애아라고 편견을 갖지 마. 생각보다 똑똑해'라는 사고에서 나온 말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장애인의 부모 중에는 대인기피증이 걸려서 아이를 숨기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기 아이의 장애조차 세상에 당당하게 내비치는 부모도 있다. 물론 가슴아픈 상황이지만 우리 애는 많이 좋아졌어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한 이상호측 옹호자들의 반박도 있다.
  1. 김광석이 딸의 장애를 몰랐다.는 주장. 그래서 '김광석이 딸의 장애로 고통받을 리가 없다'는 황당한 헛소리다.
* 당시 가부키 증후군이나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김광석은 딸의 장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 가부키 증후군은 어렸을 때 진단받은 게 아니며 가부키 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지 확정 진단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주장도 발달장애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발달장애는 5살 이후에 갑자기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라 2~3살부터 이상행동을 하면서 나타나고 4~5세에는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에 부모가 모를 수가 없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나서야 장애사실을 아는 게 아니라 아이가 이상행동을 보이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나서 발달장애 등급을 받는 것이다.

당장 2~3살에 다른 애들은 말을 다 하는데 자기 아이만 말을 못하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고 이상행동을 하면 실제로 발달장애가 아니라도 부모들은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장 3~4살 정도만 되면 특수교육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서해순의 인터뷰에도 딸 아이를 어릴때부터 특수교육을 시켰다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서해순이 2000년대에 아이의 병명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 독일까지 가서 2달 동안 머물면서 유전검사를 했다는 자료가 나왔으므로 1996년 당시에는 가부키 증후군 확진이 되지 않았다는건 알 수 있다. 하지만 병의 이름을 모른다고 병이 없다는 건가? 아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서 신장은 기능부전으로 온몸이 퉁퉁 붓고, 성장 발달이 안 돼서 키도 비정상적으로 작고, 발달장애 오고, 특히 가부키 증후군의 특징적인 입 구강 발달이 안 돼서 먹은 것도 제대로 못하는데 병명을 모르니 아빠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 거라는 건가? 만약 가족이 암에 걸려 죽으면 고통스럽지만 이름 모를 병에 걸려서 죽으면 병 이름을 모르니 가족의 고통은 없는 것일까? 아이의 병명을 모른다고 해서 당사자나 가족이 고통이 없다는 황당한 논리가 왜 나올까?

그리고 김광석이 딸이 발달장애인 걸 몰랐다는 말이 어폐가 있는 것이 이상호가 김광석 사망 사건에 대한 의혹을 말하기 전인 2015년에 나왔던 방송 리얼스토리 눈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김광석의 지인들은 그의 자살을 믿을 수 없지 않았다. 큰형이 군대에서 사망한 뒤 누구보다도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잘 알았던 그가 자살을 할 리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주변인들은 "김광석의 하나 뿐인 딸이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자식을 두고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리얼스토리 눈

게다가 이상호가 만든 영화 김광석에도 김광석 지인들의 김광석이 딸의 장애를 알고 있고 평생 돌봐 주려고 했다는 식의 증언이 나온다. 영화 김광석 개봉으로 의혹 재조명

도대체 김광석이 딸의 장애를 몰랐다는 주장은 김광석이 얼마나 딸에 대해서 무관심한 나쁜 아빠라는 말이 된다는 걸 알기라도 하고 주장하는 것일까?
2. 딸의 발달장애로 인해서 김광석이 반드시 고통을 겪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라는 반론
맞다. 당연히 김광석이 딸의 고통을 힘들어하지 않을수도 있다. 김광석이 딸에 전혀 무심한 인간이었으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상호의 주장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김광석이 반드시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하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해순 측은 단 한번도 "김광석이 정신상태가 자살할 상태다 아니다"라는 단언을 한적이 없다.

즉, 김광석의 속마음을 증거로 삼은 건 이상호 측이다. 이상호는 김광석 타살의 근거를 두 가지 들었다. 1. 김광석은 잘나가는 인기 가수로써 고통받고 스트레스받을 만한 일이 전혀 없으므로 자살의 가능성은 없다 2. 김광석의 자살 자세, 목의 삭흔 등이 타살의 근거다. 이상호 김광석이 타살인 2가지 이유
3. 서해순(seoh****)으로 추정되는 댓글에 김광석 딸이 지적능력이 좋다는 식의 묘사가 있다.[7]
이 부분에 대해서 발달장애아라면서 지적 능력이 좋 아보인다며 발달장애 2급이 허위 아닌가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발달장애 판정을 내려 준 것이 김광석의 친구라서 뭔가 의심스럽다며 의구심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당장 바로 윗부분 글 내용에 나온 경찰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발달장애아라도 어느 정도 언어나 글을 쓸 수 있으며 서연 양이 똑똑하다는건 다른 장애아들 중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라는 증언이 나왔고 서연 양이 발달장애 2급은 소아정신과 전문의와 국가와 등급을 매기고 특수교육교사가 직접 장애아 맞다고 경찰에서 평가한 내용도 있다. 게다가 서연양은 특수학교도 다니고 특수학교 교사에게 가르침도 받았다. 경찰의 일문 일답 발달장애 항목 참조.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발달장애 2급인 배형진의 삶을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데 발달장애인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카페를 보면 발달장애인들이 어눌한 말투로 열심히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정부에서 장애인 고용에 지원금을 주기 때문에 장애인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고 기업주는 그 대신 운영비를 아끼고 장애인을 일자리를 얻는 공생의 길을 걷는 기업이 꽤 있다.

자폐성 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도 이처럼 카페라는 서비스업에 종업원으로 종사할 정도의 사회에 일부 적응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립할 수는 없고 부모 또는 후원자가 돌봐주는 환경에서 소소하게 직업을 가진다거나 장애인 단체에 가서 배운다거나 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김광석의 딸인 서연양이 말을 잘하더라, 팝송을 외우더라는 것이 발달장애가 아니라는 의미도 아니고 서연양이 이후 자립해서 살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김광석의 친구 찾아가서 등급받았다고 그게 가짜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장애인 등급을 가짜로 해주면 당장 의사면허와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장애인 등급은 국가가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검사한다. 자폐성 장애 등급은 보통 3등급으로 나눴는데 3등급까지도 일반 사회생활은 어렵다. 하물며 서연양은 2급 발장장애였는데 아무리 지인이라고 해도 2등급과 3등급이 애매할 때 2등급으로 가는 건 가능하지 몰라도 아애 장애가 아닌 것을 2등급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발달장애전문 소아과 의사 김창기

이상호는 서해순이 다른 남자랑 그때부터 만났다는 것을 주장하고 서해순은 김광석의 결혼 전 여자 문제, 새 여자 문제를 폭로했다.

김광석의 일기에는 뉴욕에서 아내의 실종 사건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이지만 참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애초에 김광석의 타살을 주장한 쪽에서는 한편으론 서해순이 바람을 피워서 김광석이 고통스러워했다고 주장하면서 또 한편으론 김광석은 자살할 만한 인생의 고통이 없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치곤 했다. 이런 상황을 충분히 알면서도 김광석이 정신적으로 힘들 만한 상황은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어이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김광석 형의 주장을 보면
25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광석의 장모인 주모(84)씨는 “사위인 광석이의 죽음은 자살”이라며 “딸(서씨)은 광석이의 죽음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주씨는 김씨가 사망하기 전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했다고 주장했다. (중략)
그러나 김씨의 형인 김광복씨와 변호인은 이에 대해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김씨는 “광석이가 사망 전 우울증을 앓은 적이 없고 우울증 약을 복용한 사실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광석 형의 주장
즉, 김광석이 심리적으로 불안했다는 장모의 주장을 김광석 형이 반박한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우울증이 없다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고 주장한 셈이다.

그러나 웃긴 것은 또 한편으로 김광석이 뉴욕에서 아내에 실종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내용을 일기를 공개한 것도 김광석의 형인 김광복씨다. 도대체 이상호와 김광복은 김광석이 그 당시 정신적으로 고통이 있었다는걸까, 없었다는 걸까?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씨는 “이건 공개되지 않았던 것인데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당시에 썼던 일기”라고 설명했다. 이 일기장에는 아내 서해순씨로 인한 괴로운 감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사랑이 부족했던가. 내 잘못이라고 하지만 너무 힘들다. 김광석의 일기 공개[8]

결국 이상호와 김광복의 주장은 말장난일 뿐이다. 그러나 부부간의 이런 저런 불화로 김광석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

오마이뉴스의 <김광석>이 던진 유의미한 질문, 그러나 영화는 허술했다는 기사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내 김광석의 절친한 친구인 가수 박학기씨가 등장한다. 이 기자는 나레이션으로 "박 가수는 (김광석이) 자살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정작 박씨는 "신이 아니면 100% 진실을 알진 못하지"라며 진실의 엄중함을 말하는 데 말이다. 박씨가 자살이 아니라 생각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상황에 뭔가 어폐가 있는 느낌이다.

1996년 1월 7일자 <한겨레> '가수 김광석씨 자살, 유학 고민 조울증 겹쳐' 기사를 보면 '김광석 친구인 박학기씨는 광석이가 최근 심신 피로와 음악적 한계를 토로하며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기사에선 이 말이 김광석의 자살을 뒷받침하는 '멘트'로 나온다. 그러나 이 기자는 박씨로부터 김광석 사망과 관련해 구체적인 말을 끌어오질 않는다.

즉, 영화에도 출연해서 김광석 타살설을 이야기하는 박학기가 1996년 당시 언론에 당시 김광석이 심신피로와 음악적 한계로 고통스러워했다고 말했으며 이 부분은 서해순의 발언과 일치하는 것이다.

5. 타살설

사건 발생 이틀 후 나우누리에선 김광석 자살 의문점이며 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상황을 적은 글이 올라왔다. 당시의 글은 현재 확인 불가능하지만 이상호 기자가 주장한 내용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고 나중에 김광석 부모님과 아내 쪽 마찰을 보면서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에 대해 프리랜서 기자 이상호는 자신의 취재결과를 토대로 김광석의 타살설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으며 그의 주장에 따르면 거짓말 탐지기에 증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짓으로 판명난 게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17년 9월 14일 인터넷 매체 국민TV의 맘마이스에 출연하여 그동안 미처 다 이야기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중 결정적인 부분을 상당히 자세히 이야기 하였다. 맘마이스 #58 이상호 “범인 보고 있나? 최후통첩할게” (2분 30초쯤부터. 중간광고도 좀 길다.)

이상호 기자는 자신이 제작한 영화를 소개하면서 "서해순 씨가 김광석의 자살 동기를 우울증, 여자관계로 제시했다"며 "알고 보니 그 반대였다. 부인 분의 진술도 받아냈다. 우울증 약도 부검 결과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가장 중요한 건 (김광석 사망 당시) 최초 목격자인 서해순 씨가 세 번 정도 목에 줄을 감아서 누운 채 발견됐다고 말했다"며 "(김광석이) 목을 맨 채 계단에 누워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현장이 훼손된 상태에서 119를 불렀다. 자신이 목에 줄을 풀고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그래도 안 살아나니까 신고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으며 "세 바퀴를 (줄로) 둘렀으면 목에 줄이 세 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까 줄이 한 개고 목 뒤쪽에는 줄이 없더라"라며 자살이 아니라고 추정했다.

2017년 9월 27일 김광석의 친형이 경찰에 출석했다
서해순 피한 이유 협박 때문
김광석 형 "서해순씨 발언 모든 부분이 의혹투성이"
김광석 친형, 경찰조사 후 귀가…"20년 의혹 다 말했다"

5.1. 2017년 재점화

영화 김광석 개봉과 함께 일각에서는 김광석과 부인 사이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고 증언했다. 다만 이는 일부에서의 주장이고 법률적 및 법의학적으론 김광석의 자살이 맞다.

5.1.1. 딸의 죽음과 재산 다툼

음원저작권을 상속받은 딸 김서연양이 2007년 사망한 것으로 제보되었고 사실로 밝혀졌다. 그런데 2008년에 김광석 앨범 저작권 문제로 김광석의 모와 형이 서해순, 김서연 모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저작권이 서해순 모녀에게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6다72130 판결) 이는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던 중에 김서연 양이 사망하였다는 것을 뜻한다.[9]

김서연 양은 미성년자였으므로 재판은 법정대리인인 서해순이 진행하였는데 결국 2008년 재판 당시 김서연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진행했다는 것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서해순이 크게 논란이 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준 결정적인 계기다. 실제로 주변에 가족의 죽음을 숨기고 이를 친인척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은폐하는 것은 해당 사건에 대해 경찰이 당사자를 우선순위로 조사하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사실상 친딸의 죽음을 시어머니, 친모와 같은 남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도 일방적으로 숨김으로서 서해순 본인 스스로 논란이 될 거리를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이 경우에 대법원에 서해순이 소송수계신청을 해야 했지만 변호사를 선임해서 진행 중이던 소송이었으므로 소송수계를 하지 않았더라도 소송절차가 중단되지는 않으며 판결의 효력이 상속인(서해순)에게 미치는 것은 맞다. 하여간 변호사가 김서연의 사망사실을 알면서도 소송수계신청을 안 했을 리는 없으므로 서해순이 변호사에게도 딸의 사망 사실을 알려 주지 않은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다만 소송수계 제도는 일반인에게 생소하므로 정말 변호사에게 알려 줘야 하는 줄 모르고 안 알려 줬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서해순에게 어떤 꿍꿍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10]

김광석의 유산이 상속된 과정부터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하는데 본래 상속의 순위는 1순위가 직계비속과 배우자이며 2순위가 직계존속과 배우자다. 그러므로 본래라면 1996년에 김광석이 사망한 후 직계 비속인 김서연과 배우자 서해순이 상속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고인은 사망하기 몇 년 전부터 계약을 자기 이름이 아닌 자신의 아버지 이름으로 하였다. 이상호 기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인은 살아 생전에 아내 서해순이 재혼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혼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서해순이 고인의 모든 판권을 넘겨줘야만 이혼해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고인은 그때부터 판권계약을 본인이 아닌 본인의 아버지 명의로 했다고 한다. 그러다 김광석이 사망하기 직전에 서해순과 김광석의 동창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혼을 결심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망 전날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대목도 이상호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서해순의 결혼 경력을 김광석이 몰랐다는 주장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사망 전날 이혼에 대해서도 확인된 바도 없고 이혼도 하루만에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서해순은 자신의 홍콩 시민권을 얻으려고 했던 남자에게 속아서 '서류 결혼'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혼 관계'였고, 이 소식을 알게 된 게 딸 김서연 양의 돌 때였던 1992년이라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이때 이혼 이야기가 나왔고 서해순이 저작권에 집착하자 김광석은 추후 분쟁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증여세 등 추가 세부담을 감수하고 아버지 명의로 저작권을 돌려 놓았다.

서해순의 주장을 보면 자신이 이혼녀지만 김광석에게 그 사실을 알렸으니 김광석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호주제로 인해 어차피 들통날 거 숨길 이유가 없었다는 갓이다. 게다가 당시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김광석을 먹여살렸기 때문에 시가에선 오히려 좋아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상호의 주장보다 이 주장이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1. 호주제가 폐지된 것은 2005년이다. 따라서 20세기에는 결혼 이혼 등이 호적에 다 기록되었다. 서해순이 김광석과 혼인신고를 했는데 애초에 김광석에게 이혼 사실을 들키지 않을거라고 믿고 숨기기 어렵다. 시부모는 몰라도 최소한 김광석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게다가 최소한 서해순이 이혼녀로 속여서 결혼했다고 비판하는 이상호나 시댁에서도 서해순이 호적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아애 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법적 서류 허술이란 주장이 왜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호적 조작이 불가능하지만, 만약 혹시라도 조작했다면 공문서조작사기라 이게 김광복이나 이상호가 거론하지도 않을 이유가 없다. 결국 호적 관련 공문서 조작을 우기는 건 말이 안 된다.

2. 김광석이 실제로 음반계약을 잘못 한 것도 사실이며 당시 악덕 사장들의 악덕행위는 많았다. 현재도 김광석의 1집과 2집의 모든 권리는 서해순이 아닌 음반사가 갖고 있다. 3집, 4집, 다시부르기 1, 2 등 모두 4개 음반에 대해서 김광석 아버지, 김광석 딸을 거쳐서 현재는 서해순이 가진 것이다. 이런 사례로 유명한 것이 조용필의 자기가 작곡하고 부른 노래의 저작권을 모두 특정 회사에 뺏긴 사연이다. 1986년 '창밖의 여자'를 시작으로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등 발매한 앨범마다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조용필은 한 레코드사와 안타까운 계약을 맺었는데 저작권 중 일부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한 조용필은 방송권과 공연권만 갖고 복제권과 배포권을 레코드사 사장이 갖는 불공정계약이었다. 이로 인해 조용필은 자신의 노래를 콘서트에서 부를 때마다 협회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그 돈은 레코드사로 들어가는 구조가 됐다. 1997년 조용필은 저작권 소송을 통해 분쟁을 겪은 뒤 2014년 '여행을 떠나요'를 포함한 31곡의 저작권을 되찾게 됐다 조용필 자작곡 부르고 30년간 저작권료 지불한 사연(기사) 나가수에서 다시 유명해진 조관우도 1집과 2집이 각각 100만장이상 팔렸지만 조관우 본인은 음반의 성공에도 아이 분유 값도 없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음반 판매 수익을 거의 뺏겨서 당시 가수들이 음반수익은 거의 없었고 밤무대 공연으로 돈버는 게 많았는데 김광석은 그마저도 안했다. 결혼했던 1990년까지도 큰 벌이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김광석은 1992년부터 불교방송 '밤의 창가에서' DJ를 맡게 되면서 고정수입이 생겼다. 세실극장 공연도 성공리에 끝났으며 김광석-서해순 부부은 노예계약을 청산한 후 서해순이 매니저와 음반 제작자 역할까지 하면서 3집을 발매했고 3집 이후 저작권을 김광석측에서 보유하게 되었다. 이전까진 음반사가 저작권을 가졌기 때문에 거의 돈을 못 벌었으니 가수 활동으로 제대로 돈을 번것은 3집 발매 이후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면서 제작자와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것이 서해순이다. 실제로 한참 어려울 때 고용된 매니저 없이 서해순과 김광석 딱 두 명이 모든 일처리를 다 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부부는 열심히 힘을 모아서 음반을 내고 공연하면서 큰 성공을 했다.

그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김광석이 음반 노예계약으로 돈을 별로 벌지 못한 데다 1990년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고정수입이 없다는 건 굉장히 고생스러운 일이다. 그런 힘들 상황을 이겨내고 가수 활동으로 돈을 벌게 된 과정까지 부인인 서해순의 역할이 분명 있었다.

사실 음반에 대한 권리를 김광석이 가져온것 은 90년대 초반으로써는 드물게 자기 권리를 찾은 셈이다. 당시 서태지가 그런 식으로 자기 회사를 설립한 것이 가수 권리 찾기의 거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서태지는 1집 활동 종료 후 계약한 프로듀서랑 헤어졌는데 이전까지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가수는 음반회사의 종속된 존재였고 운동권 출신이라는 김광석도 노예계약인 건 마찬가지였다는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의 설명이 존재한다. 서태지가 무너뜨린 가요계의 노예계약 김광석이 애초에 계약할 때 노예계약을 했는데 서해순과 결혼후에 그 노예계약을 파기한 것은 굉장한 놀라운 일인게 맞다. 서태지 항목 참조. 서해순이 회사를 그만두고 매니저 겸 제작자로 나서면서 10년 노예계약을 조모씨와 협의하에 해지했다.

소송 당사자인 김서연이 사망한 상태에서 "김서연에게 음원저작권이 있음을 확인한다."는 재판의 판결이 과연 효력이 있는지 논란이 되었다. 저작권이 딸에게 인정된다는 법의 판결이 있었으나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홈페이지에는 승계자명이 '서해순'으로 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미심쩍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해순이 재산을 노리고 김광석, 김서연 부녀를 모두 살해한 게 아니냐 라는 의혹이 더욱 커졌다. 김광석이 사망 즈음에 유언으로 부친에게 재산을 상속한 건 '서해순이 재산을 노리고 자신을 해칠 거라는 걸 직감하고 미리 안전장치를 만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법과 소송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잘 모르고 주장한 건데 법적으로 완벽하게 이상호 측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이 재판의 정확한 판결의 의미는 1996년 김광석 아버지와 서해순, (서해순이 친권자로써 법정대리한)김광석 딸 세 사람이 채결한 합의가 우선하는가, 아니면 2004년에 사망한 김광석 아버지의 유언이 우선하는가에 대한 소송이었다.

김광석 사후 서해순측과 시부모측의 소송은 1996년 합의로 타결되었는데 김광석 아버지의 생존 시에는 음반, 음원의 권리를 김광석 아버지가 가지고 김광석 아버지 사후에는 돈이 되는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은 모두 서해순이 상속받고 4개 음반의 판매금은 김광석 딸이 물려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11] 결국, 김광석 부친의 사후에 대부분의 돈되는 권리는 서해순이 가져가게 된 셈이며 일부 권리만이 딸에게 주어졌다.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2004년 김광석 아버지 사망시에 유언으로 김광석 저작권을 아들에게 상속한다고 유언해서 문제가 되었다. 사실 1996년 3자합의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작권을 자신의 아들에게 맘대로 물려주는 유언을 하는 게 잘못된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대법원도 합의가 우선한다며 서해순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사자가 죽었다고 해서 합의의 법적 효력이 사라지는게 아니다. 김광석 아버지의 죽음이나 이후에 이어진 김광석 딸의 죽음으로 인해 합의서 효력이 없어지지 않는다. # 예를 들어 부동산 매매 계약을 했는데 잔금을 치르기 전에 매매계약서 당사자가 죽었으면 매매계약서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이어받는 쪽에서 매매계약서의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많은 이들이 착각한 부분인 김광석 딸이 가진 저작권을 서해순이 뺏으려고 딸을 죽였다는 이상호측의 비판이 어이없는 이유가 실제로 김광석의 저작권 중 핵심은 서해순 소유였지, 딸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다나 김광석 딸에게 갈 김광석 음반에 대한 권리는 이제 음반이 거의 팔리지 않기 때문에 별로 돈이 되지 않고 실제로 돈이 되는 건 서해순이 가진 음원에 관한 저작권이므로 딸의 죽음을 이렇게 저렇게 소송과 아무리 연결시켜도 경제적으로 서해순에게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면 서해순이 딸의 저작권을 욕심낼 정도로 딸의 저작권의 가치가 크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2007년의 소송은 돈이 되는 권리인 (음원)저작권은 이미 서해순 것이 맞으므로 소송 대상이 아니고 돈이 별로 안되는 권리인 음반에 대한 권리가 김광형에게 가느냐, 김광석 딸에게 가느냐를 소송한 것이다. 서해순과 시댁의 합의서엔 저작인접권, 저작권, 음반 판매금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도 않는다. 이는 소송 당시 서해순 측 변호사가 '판권'이라는 용어를 3개로 찢어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정확한 합의서 내용은 4개 음반에 대한 판권 등 모든 권리를 김수영씨가 양도받은 것으로 인정하되 김씨가 사망하면 기존 권리는 서씨의 딸이자 김씨의 손녀인 서연양에게 양도하기로 한다였다. 재판부는 본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는 판단하지 않았고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만 다루었다. 다시 말하자면
  1. 음원에 대한 권리는 서해순에 가는건 서해순과 시대 모두 합의한 사안이므로 소송에 걸리지 않음
  2. 음반에 관한 권리는 시아버지에게 간 후 큰 아들에게 갈 거냐, 아니면 김광석 딸에게 갈거냐는 소송으로 다툰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안에 대해서 법적으로 (음원 등에 관한)저작권이 김광석의 유일한 상속자인 서해순에 상속되는것에 대한 당사자들 간에 어떠한 이의도 없이 1996년 합의되었다고 대법원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원에 관한) 저작권을 제외한 음반 권리만에 소송 대상이었다. 결국 저작권, 저작인접권은 합의서에 없으므로 김수영씨가 양도받지 않았고 김광석의 상속자인 서해순이 상속받은 것이다. 김수영씨는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를 사망시까지 일시 소유했을 뿐이다. 그리고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는 김수영씨가 사망시까지 소유하다가 사후 합의에 따라 김서연양에게 상속됐고 김서연양의 사후 서해순씨에게 상속됐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이다. 따라서 저작권은 애초에 저작권 상속자인 서해순의 것이며 1996년 당시 합의 당사자 김수영, 서해순의 합의한 것이고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 2008년 대법원 판결이다.

그리고 김광석 아버지에게 간 음반에 대한 권리가 김광석 딸이 이어받고 다시 서해순에게 이어진다고 대법원에서 결론난것이다 즉, 서해순은 해당 계약(합의문)상의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게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다. 재판부는 합의문 취지와 관련해 "4개 음반에 관한 판권 및 기타 모든 권리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서씨는 이러한 권리에 대해 상속권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판시했다. 서해순도 이와 같은 주장으로 대응했다. 그러니 서해순은 단 한 번도 4개 음반에 대한 권리를 법정에서 요구한 적이 없고 딸 김서연의 사후 김서연의 유일한 상속자인 서해순이 상속받았다.

결국 대법원 판결은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1. 김광석의 저작권, 저작인접권은 김수영의 소유인 적이 없고 김광석의 상속자인 서해순의 것이다.
  2. 그리고 4개 음반에서 나오는 수익을 받을 권리는 1996년의 합의에 의해 김수영(김광석 아버지)이 사망 시까지 소유하다가 사후 그 합의에 따라 김서연(김광석의 딸)에게 상속됐고 김서연의 사후 서해순에게 상속됐다.

저작권은 단 한 번도 김광석 아버지인 김수영의 소유인 적이 없으므로 김수영에게서 김서연에게 상속된 것이 아니다. 박훈 변호사에 따르면 김수영의 이름으로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저작자가 김수영이라는 김광복과 이상호측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 <김광석>은 '김수영의 이름으로 계약을 맺었지만 앨범판매에 대한 수익금은 김광석과 서해순에게 지급됐다. 그런데 김광석이 사망하자 김수영측에서 그럴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사와 타협해 앨범판매에 대한 수익을 받아가기 시작한다. 이상호의 영화 <김광석>에서 서해순이 김수영에게 따지는 부분은 바로 이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적으로는 이 주장이 기각된 셈이다.

어쨌거나 그로 인한 갈등이 생기고 1996년에 결국 양측은 김수영 생존 시까지만 수익금을 김수영이 가지되 사후에는 김서연이 수익금을 가지는 것으로 합의했다.

2007년 폐렴으로 고통스러웠던 김서연이 매일 학교에 출석하고 하루 결석 후 사망한 것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서 11월 5일 전문의는 희소병 때문에 폐렴이 빨리 진행되었다는 의견을 밝혔다. 관련 기사 즉, 하룻밤만에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부키증후군 때문에 폐렴이 빨리 진행됐을 수 있다는 부분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병원에서 3번에 걸쳐서 감기라고 명백하게 진단받았다 하더라도 폐렴의 증상이 더 심화되어서 이걸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지 않는거냐, 의심할 수 있어서 그 부분 많은 고민을 했다. 의료전문가 자문 결과는 이렇다. 5시간 반에서 6시간 전에는 호흡곤란이라든지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심할 경우 청색증이라고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게 올 수도 있다. 저희가 내과 전문의 2분하고 흉부외과 전문의한테 자문했을 때 결론은, 폐렴은 올 수 있다 임상학적으로 폐렴이 증상이 어떻게 오고 얼마나 긴 시간이고 단시간인지는 폐렴의 원인균 그리고 면역력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다. 그다음에 가부키증후군의 경우 면역력 약화를 동반할 위험성이 크다. 가부키증후군으로 면역력 저하되고 그러다보니 폐렴 진행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병원에 3차례 갔는데 절차 자세히 말씀드리면 12월18일날 기말고사 끝나고 서해순씨가 서연양 데리고 갔는데 감기로 진단했더라도 상태가 심하니까 폐렴 위험이 있으면 큰 병원 가도록 경고했을 수도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당시 의사를 상대로 몇 차례 조사하고 의료차트 받아서 의료자문도 받았다. 1차는 12월 18일은 왔을때 주사처방과 약재처방을 모두 했다. 1차는 약재 주사처방 다 했고 약재는 감기약이었다. 이틀 뒤 다시 병원 방문했는데 오히려 열이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기침이 심해져 열이 떨어지는 약은 빼버리고 기관지 약만 좀더 강화해서 처방했다는게 의사진술이고 그때는 주사처방을 하지 않아 약재처방만 했다.
그다음 서연이가 학교를 결석한 날 다시 병원에 갔다. 서해순씨 진술에 의하면 애가 잘 낫지 않는데 괜찮으냐고 하니까 의사 진술이 이 정도면 그냥 감기다, 더 아프면 다음주 월요일에 오라고 해서 3일 치 약을 지어줬다.' 청진기 소리를 들으면 감기는 상기도에서 발생 폐렴은 하기도에서 소리가 난다. 청진기로 들으면 소리가 다르다고 전문의들이 말한다. 폐렴의 경우 가래 끓는 소리라든지 들리는데 폐포음이 깨끗했고 조금이라도 들렸으면 당장 엑스레이를 촬영하면 가장 정확하게 알아 권했을 텐데 권하지도 않았다.
-서해순씨가 서연양에게 감기약을 챙겨 먹였나 ▶서씨는 다 먹였고 열이 있을 땐 추가로 더 먹였다고 진술. 부검결과를 보면 혈액에 감기약 성분 있었다고 그 부분 객관적으로 나온다. 경찰 일문 일답

동네병원의 감기약 처방은 건강보험의 기록으로 명백하게 경찰이 자료를 뽑아서 볼 수 있고 해당병원의 진료기록과 의사의 증언으로 자료를 알 수 있다. 위 동네병원의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김서연은 감기 증상에 이은 급성폐렴으로 사망하였지만 정작 폐렴 증상은 하루도 아닌 12시간 내에 급격하게 발생한 것이다. 동네병원에 총 3차례 내원할 때까지 청진기로 기본적인 폐렴 증상은 나오지 않았다.
  1. 동네병원 1차 내원 12월 18일 - 감기 진단. 주사재, 약처방
  2. 동네병원 2차 내원 12월 20일 - 일반 감기 진단. 열 떨어짐. 약처방
  3. 동네병원 3차 내원 12월 22일 - 학교 하루 결석하고 병원감. 청진기로 폐렴징후가 거의 없어서 추가 검사 권하지 않음. 일반감기로 말하고, 3일치 약 지어줌
  4. 22일 저녁까지 괜찮다가 23일 새벽에 급격히 상태가 나빠짐. (동네병원에서 일반감기로 진단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고 사망함)
    일반 감기라며 문제 없다는 식으로 판단하고 보호자에게 말해준 것이 동네병원 의사이며 만약 김서연 사망의 판단착오를 물으려면 1차적인 책임은 의사에게 있지만 청진기로 호흡음을 듣는 아주 기본적이며 폐렴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만약 그 진단이 오진이라고 해도 그 책임은 의사에게 있지 보호자에게 있는 건 아니다.

이렇듯 이 모든 것이 이상호 측의 거짓 주장임이 드러났음에도 이상호의 추종자들은 서해순은 딸 김서연 양이 없으면 재판에 불리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고(CBS인터뷰) 결국 저작권을 사수하기 위해 딸아이의 죽음을 아무도 모르게 숨겼으며 그 대가로 본인의 배를 채우고 동거남과 호의호식했다는 식으로 비난을 이어갔다.

특히 1996년 재판과 2008년 재판은 전형적인 가족간의 재산다툼으로 김광석의 명예나 서연양의 안전과는 무관하다.

김광석 아버지 김수영과 형 김광복은 1996년 이후 단 한 번도 김서연양을 찾거나 연락한 적이 없고 서로 남남처럼 지냈으며 특히 1996년에 손녀이자 조카인 김서연양에게 양도하기로 합의한 재산인 음반 4개에 대한 권리를 가로채서 김광복이 차지하려는 시도에 대해 2007년 재판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2017년 이상호와 결탁하여 마치 김서연양을 위해 소송이라도 한 듯한 태도를 취했으나 2007년 소송 당시 김서연이나 김광석의 명예를 위한 소송이라고 할 만한 껀덕지는 없다. 김수영씨가 며느리와 장애인 손녀에게 가는 걸로 합의한 재산을 아들인 김광복에게 빼돌리려는 시도를, 아들 김광복씨가 이어간 것이 소송이고 이 말도 안 되는 소송에 대해 패소가 확실하자 김광복 측이 또 합의를 요청해 서해순이 합의해 준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해 거짓 주장을 하면서 서해순을 고발했던 이광복은 본인의 거짓 주장을 착각이란 변명으로 무마한 바 있다.
서연양의 사망 사실을 숨겨 2008년 지적재산권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혐의도 입증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광복씨는 초기 '서씨가 서연양의 양육을 이유로 권리를 양보해달라고 해서 조정합의가 이뤄졌는데 이미 그때는 서연양이 사망한 후였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조정은 광복씨 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광복씨도 시점을 착각했다고 시인했다"고 전했다. 서연양의 사망을 숨긴 채 지적재산권을 몰래 가져오려고 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김광복의 거짓주장에 대한 변명

결국 경찰수사의 최종 발표는 김서연의 사망과 재판은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서연 양 사망 당시 소송대리인(변호사)이 선임돼 있었기 때문에 민사소송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라 서씨가 서연 양 사망을 법원에 고지할 의무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 조정 과정에서 김광복씨 측이 먼저 '비영리 목적 추모공연에서는 무상으로 음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신청한 점, 소송 과정에서 서연 양 생존 여부가 쟁점이 된 적이 없었던 점 등도 경찰이 무혐의로 결론 내린 근거가 됐다.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딸을 사망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던 서씨는 경찰 수사를 통해 혐의를 벗음에 따라 조만간 김광복씨와 이상호 기자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방침이다.
서씨 변호를 맡은 박훈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김광복씨의 무리한 주장을 이상호 기자가 아무런 검증 없이 서해순씨를 연쇄 살인범으로 몬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김씨와 이 기자 측에 공개 토론을 요청했다
김광석 사건 경찰재조사 최종발표

5.1.2. 아내에 대한 의혹

김광석의 일기에서 서해순이 바람을 폈다는 내용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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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아내 서해순
서해순은 딸이 숨진 2007년부터 저작인접권료와 저작권료를 한국음반산업협회(이하 ‘음산협’)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한음저협’)에 상속권자로 등록되어 지급받고 있다.

1996년에 “김광석 사망 현장에 서해순의 전과 10범 친오빠 있었다”같은 기사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자 김광석의 친형이 동생은 자살한 게 아니며 제대로 밝혀졌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광석 처, 작년에도 서연이가 하와이서 골프치며 지낸다고 거짓말했다"

김광석 유족 측, 2017년 9월 21일 딸 타살의혹 재수사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2017년 9월 21일 대한민국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소송사기 여부 질의에 수사를 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경찰청장 보고가 된 사건이며 여당 의원의 질의도 있었고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의문사 사건이므로 근시일 내에 (재)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냥 가수의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평소에 성격도 매우 원만했던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죽었는지 + 딸의 죽음까지 겹쳐서 타살설까지 여러 근거로 제시된 의문사 사건이 된 것이므로 경찰청장 보고는 당연한 것이다.

2017년 9월 23일 검찰은 김서연양 사망 의혹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이첩했다.

경찰에서 서연양 사망과 관련해 유기치사 혐의로 고발된 김씨 부인 서해순씨를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라고 전해졌다.

이상호 기자 "하와이 잠행 취재 중…서연양 의문사 제보 많아"

김광석 부인 서해순, 인터뷰서 "딸 죽음 알리고 싶지 않아…사망신고 해야 하는 줄 몰랐다"

정신과 전문의가 분석한 '뉴스룸' 서해순 횡설수설·실소 인터뷰

이상호 “하와이 교포, 서해순씨에 철저히 속았다며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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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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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디스패치에서 기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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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가 내연남으로 지목된 이모 씨와 사실상 부부 관계로 살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기사 美 소송 문건, 부부로 기록되어 있다.

5.2. 서해순의 반박

2017년 9월 22일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는 스포츠 조선과 인터뷰에서 자신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나는 미국에 집이 없고, 강남에도 건물이나 아파트가 없고 직원 3~4명의 월급을 줄 정도 되는 작은 기획사 대표로 있어 잠적한 적이 없고 도피를 준비 중이지도 않다고 강조했으며 다음 주 월요일에(2017년 10월 2일 쯤)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댓글창에서는 서해순을 두고 콜로세움이 열렸다.

김광석 고교 동창과 동거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마침내 검찰에서 재수사에 착수했고 서해순은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에 서씨는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하자 억울하다며 법적대응을 한다고 했다.

김광석 장모 “딸이 나한테도 숨겨… 손녀 죽음 몰랐다”
서해순 “친정가족, 재산분할 갈등”…母 “그런 사실 없다”

서해순 씨가 JTBC 뉴스룸에 나와서 손석희 앵커(사장)에게 직접 해명하겠다고 밝혔고 손 사장도 서 씨의 출연을 허가했다. 이미 이전 보도에서 서 씨와는 반대되는 입장의 인터뷰와 기사가 나왔고 그에 따라 반론하려면 jtbc에 연락을 하라고 얘기했는데 서 씨 본인이 뉴스룸측에 반론을 실제로 요청하여 성사되었다. 9월 25일 월요일 방송분일 가능성이 점쳐졌다. 일단 9월 23일 오후의 댓글 반응은 호랑이굴에 제발로 들어가네 정도로 요약되었다. 이전부터 김광석 씨의 유족 측 변호사와의 인터뷰에서도 서해순 씨의 반론을 환영한다고 밝힌 데다 손 사장 측이 기다렸을 가능성이 높고 일단 서 씨가 출연하겠다고 밝힌 만큼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2017년 9월 23일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는 채널A와의 문자 메시지에서 지금도 딸이 없어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서해순 씨가 그 유명한 강용석 변호사를 선임하였다는 추정보도가 떴다. 해당 변호사가 워낙 전과 (?) 한지라 일단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는데...[12] 그마저 변호를 맡지 않겠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 2017년 9월 24일 강용석 변호사는 김광석 사건을 거절했다. 관련기 사 같은 날 서해순씨는 채널A와 단독 인터뷰에서 딸의 사망사실을 숨긴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2003년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온 "김광석의 추모앨범을 팔아 번 돈은 누가 챙기는지?"라는 질문글에 2006년 seoh914라는 계정의 인물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는데 정황상 이 인물이 서해순 본인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seoh**** 2006. 10.13. 13:18:52
미망인과 딸은 외국에 나가 있었고 시아버지가 로얄티수입전부관리한것이 맞음..근10억넘게 10년간 받으셧고 시어머니 부동산등 종로구창신동 알부자이심니다..손녀딸 학비한번 내준적 없는 돈에대해서는 무서운노인네라고 합니다^^
seoh는 본인의 성씨와 이름 첫 이니셜과 같고 914[13]는 서해순씨의 생일인 9월 14일과 일치하는 점, 질문은 김광석과 그 어머니에 대한 것으로 부인(서해순)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해순의 입장에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라고 호칭한 점, 네이트에서 동일한 아이디 [email protected] 실명이 '서해순'으로 확인된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1 #2 @2 2006년이면 시아버지(김광석 아버지)는 이미 2004년에 사망했고 딸이 죽기 1년 전이다.

‘거짓말하는 사람 행동 아닌가요’ 서해순 인터뷰 표정

서해순, 인터뷰서 언급한 '전과 10범 오빠'… "김광석 사망 당시 함께 있었다"

서해순 “날 의심하면 끝도 없다” 발언 ‘눈길’

서해순 "딸 죽음 안 알린 건 소송과 무관하다…이상호에 대한 다큐 만들 것"

서해순, 경찰 출석 어떤 말을? 애 뗀 걸 가지고 죽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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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갖고 여혐몰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영화 < 부러진 화살>의 '석궁교수'를 변호한 박훈 변호사가 서해순씨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 <경남도민일보>에 따르면 박 변호사는 10월 31일 "나는 영화 <김광석>을 제작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언론 힘을 이용해 개인을 근거 없이 인격 살해하는 것에 분노한다"며 서해순측과 구두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11월 9일 서해순씨의 변호사 박훈은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씨와 이상호 기자를 상대로 11월 중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었다. 관련 기사

5.2.1.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


"경황이 없었다"
인터뷰에서 서해순이 가장 많이 한 말.[14]

그리고 2017년 9월 25일 월요일 드디어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 전문

아래는 서해순이 김광석과 서연양을 죽였다고 헛다리 짚은 네티즌들의 의견이다.

10년 동안이나 딸의 사망을 알리지 않은 이유를 묻는 손석희에게 "남편의 죽음과 관련해서 안 그래도 욕 먹고 있는 판인데 딸 죽은 것까지 내세워 부조 받아 챙겨먹으려 든다는 욕까지 듣기 싫었다"는 취지로 대답하면서 평소에는 딸에 대해서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슨 관심 보이는 척 하느냐는 뉘앙스로 말하거나 개봉된 영화에 삽입된 예전 본인 자신의 관련 인터뷰 내용에 대해서 묻자 "내가 언제 그런 인터뷰도 했었느냐"고 놀란 듯 되묻기도 했다. 손석희는 "그래도 아예 알리지도 않고 가족한테까지 무려 10년을 숨긴 것은 다른 분들께서 조금 이해가 안 되지 않겠느냐, 경황이 안 되었다면 언제쯤 딸의 사망소식을 공개할 생각이었느냐"고 거듭 물었고 그때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럴 경황이 안 되었다는 요지로 제대로 된 대답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서해순을 살인자라고 믿는 쪽에서는 의심할 수 있는 상황으로 여겨졌다.

인터뷰를 보면 인터뷰 내내 과장된 손짓을 사용하고 고개는 살짝 기울여져 있는 부자연스러운 자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저런 대화 태도는 "대화의 목적이 내 주장과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일 때 주로 나타난다.[15]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에는 저런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인터뷰를 보면 손석희가 답을 얻고자 하는 질문에는 대부분 "경황이 없어서…"라거나 "오래된 일이라…"라는 답을 하거나 말 더듬고 횡설수설하는 반면, 틈틈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손석희는 칼같이 대화를 자르고 있고 서해순은 계속 대화의 페이스를 빼앗아 자신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상대가 상대인지라 얄짤없이 제지당했다.

그러자 서해순은 정서적인 공감을 얻어내려는 시도를 했다. 타인과 외부의 요인을 이유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 뒤 정서적·감정적으로 호소하여 공감을 얻어내려 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화가 제대로 안 되자 정서적·감정적 호소라도 제대로 하기 위려고 애쓰면서 부자연스러운 인터뷰가 된 것으로 보일 여지도 있다. 모든 일에 대한 원인을 변호사나 유족 등 타인으로 돌리는 논리를 펼쳤으며 타인에게 원인을 돌릴 수 없는 경우에는 "경황이 없다"는 답을 하거나 상황이나 관계 등을 이유로 자기 정당화에 치중했다. "그때 그걸 챙기지 못한 것은 제 불찰"이라는 정도의 시인도 없이 지나쳐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방어하려고 했다.

이 사건은 김광석의 사망 경과부터 이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정상적인 일이 없다. 일상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아주 특이한 일들의 연속이다. 따라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눈에 띄는 것이 자연스럽고, 한 두 가지의 실수나 과오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정상이지만 서해순은 마치 "하나라도 인정하면 안 돼"라는 강박관념조차 느껴질 정도로 답변 태도가 부자연스럽다. 실제로 인터뷰 후 언론 보도의 제목은 대체로 "자기방어에 급급하다"거나 "횡설수설"이라는 등 악평 일색이었다.

국회 청문회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청문회를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유리한 증언만 하려고 한다.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을 증언하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청문회에서 그 유명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이 남발된다. 마찬가지로 JTBC 뉴스룸 인터뷰는 서해순이 자청한 인터뷰였고 자청한 이유는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신이 답변하기 원하는 질문은 나오지 않고 무리한 논점 일탈을 할 때에는 저지를 당하면서 답변 전략이 무너져 엉망이 된 것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뷰를 이어가다 보니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횡설수설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언제 딸 아이의 사망을 알릴 생각이었느냐"는 질문의 답이 "사실은 알리려고 했는데 상황이...", "타이밍이..." 등이었다. 이는 "언제 딸 아이의 사망을 알릴 생각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왜 딸 아이의 사망을 안 알렸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보일 소지가 높다. 사전에 "왜 딸 아이의 사망을 안 알렸느냐"에 대한 답을 준비해 반박과 합리화를 하려고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아울러 서해순 본인이 예전에 진행했던 언론 인터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서해순이 보였던 공격적인 반응은 백미라고 할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손석희는 서해순이 공격할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시청자들이 의문을 가지는 부분을 명확하게 찝어주어서 자기 반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처음부터 서해순이 아닌 손석희가 멍석을 깔아준[16] 상황에 서해순이 좋다고 덥석 물어온 상황이었으므로 서해순은 당당히 있는 그대로 반론하면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서해순의 답변 태도를 보면 자신을 모함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반론하는 것인지, 손석희에게 반론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손석희가 자기 주장을 가로막은 방해자로 인식된 것일 수도 있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본인의 무지함을 본인 스스로 말하고 있으면서 이를 손석희가 정정해 주니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 기자들에게 전해들은 제보 내용을 손석희가 전해주자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식으로 비꼬았으며[17] 자신의 딸을 몇번이나 장애우[18]라고 언급하면서 장애우인 자식을 두셨으면 아실텐데라는 식으로 비아냥대고 여러 정황과 증언, 서해순의 당시 인터뷰와 행보, 그리고 인터뷰까지 거의 모든 점에서 모순점이 생기기 때문에 계속해서 질문할 수 밖에 없었던 손석희에게 답답하다는 식으로 "제가 죽으면 저도 미스테리겠네요"라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19]

동영상에서 손석희의 질문을 삭제하고 서해순의 발언들만 모아서 조합해 짜맞춰 보면 그녀가 원래 가지고 있던 전략이 무엇이었을지 추정이 가능할 수도 있다. 능력자들의 분석이 간절하다.

서해순의 발언 [ 숨기기 / 보이기 ]
>서해순: 올해가 딱 10년 되는 해인데. 겨울 학교 다니고 있었거든요, 서우가 중2인데. 나이는 17살인데 장애우, 장애 1급이라.

서해순: 그래서 이제 학교 아침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해서, 하여튼 몸이 안 좋은 애로 일단 저희가 키웠는데 일단은 갑자기 자다가 애가 물 달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 빨리 부르고 해서 일단 병원에 데려갔고, 갑자기 사망이라고 해서 너무 놀라고 황당하고 상황이 그래서 저도 엄마를 부르고 해야 되는데 그때 좀 아버지가 4월달에 돌아가시면서 형제들하고 사이도 안 좋고. 저도 그때 소송이 안 끝나서 제가 좀 힘들었었어요, 사실은.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그래서 사실 좀 애랑 이렇게 이걸 알린다는 게 너무 겁도 났고 언제 기회가 되면 알리려고 했었던 건데. 그냥 장애우 엄마들한테 전화해서 서우 그렇게 됐다라고 얘기하고도 그렇고 다음다음날이 방학이었거든요, 크리스마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보내는 걸로 하고 장례식을 그냥 치르고 했습니다.

서해순: 글쎄요. 제가 남편 잃고 애 그렇게 혼자 키우고 외국을 여기저기 다니고 살고 다시 한국 왔다가 뭐, 그런 상황인데. 사실 항상 혼자서 데리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일단 식구들이 제가 소송으로 힘들었을 때 서우를 좀 봐주고 이런 게 저는 필요했었는데. 서우가 너무 케어가 힘드니까 조금 이제 저도 식구들하고 소원해졌었고. 정말 알리지 않고 싶었어요, 저는 정말로. 그리고.

서해순: 아빠 친구들한테 알리는 것도 너무 그렇고 제가 전화를 해서 서우가 그렇게 됐다. 아빠 친구들도 없고 상주가 혼자서 서우를 그렇게 부조금 받고 하는 게, 그 장례식이라는 게…

서해순: 서연입니다. 그런 게 저는, 장례식이라는 게 그냥 오셔서 서우 안됐다 그러고 조의금 주고 가시는 게 그거인데. 그게 과연 장애우 보내는 엄마로, 제가 남편 잃고 또 애까지 그렇게 됐다는 게 저는 그게 소송이라는 걸로 자꾸 연결시키시는데 저는 돈이고 뭐고 애가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 너무 저는…

서해순: 저희 아버지께서 그해 4월에 돌아가시고 식구들하고 일단 돈 문제나 이런 걸로 감정이 나빠져서 저도 언니들하고도 연락을 안 하고 엄마하고도 좀 소원해지고 해서 저는…

서해순: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서해순: 경황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 식구들하고 이제 좀 돈 문제나 여러 가지, 서우 돌봐주는 부분에 있어서 저희 엄마가 봐주신다고 했다가, 또 그걸 학교를 엄마 집 근처에다 보냈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니까. 그래서 제가 다시 데리고 왔다가.

서해순: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서해순: 제가 재판 결과를 별개로 너무 충격을 받으니까.

서해순: 미국에 너무 힘든 상황이 돼서 바로 미국을 나가게 됐고요. 그래서 거기서 너무 힘든 상황이 돼서 그냥 거기서 일하면서 지내다가, 5년 정도 지내다가 한국에 나와서 음반 일, 이런 쪽도 다시 정리해야 될 것 같아서 나오게 됐는데 음반기획사 만나고 좀 그런 데서 서우도 잘못됐다고 할 수… 특별히 저한테 관심 가져준 적도 없었고. 서우가 항상 외국에 공부하러 가 있고 하니까.

서해순: 커서요, 커서.

서해순: 최근에 이제 좀…

서해순: 아무래도 그랬죠.

서해순: 글쎄요. 그게… 저번에 후배가 찾아와서 서우 얘기를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팬클럽 친구들하고 그렇지 않아도 이상호 기자님이 이런저런 영화가 나오는데 대응하시지 않아야 되냐. 그래서 내가….

서해순: 그래서 그때 그 건으로 후배들을 만났을 때 제가 홍대 앞에서 만났는데 팬클럽 친구들인데. 제가 얘기를 하려고 그랬어요. 서우가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지 큰일이다, 얘기하려고 그랬는데 그때 또 다른 얘기들도 있고 해서 그때 또 얘기를 못했고. 그다음에 또 엊그저께 옛날 팬클럽 했던 친구가 대전에서 와서 언니 뭐가 난리가 났는데 서우가 어디 있냐 그랬더니 저도 서우가 잘못됐다 이렇게 얘기를 할 상황이 안 됐어요. 그냥 미국에 있어 그냥 그러고 저는.

(중략)

서해순: 신고를 해야 되는 건지 저는 잘 몰랐는데. 그거를 꼭 이렇게. 대법원 판결은…

서해순: 그게 정리가 잘됐다고 하던데… 저는 변호사님한테 그러니까 그게 제가 그렇게 얘기하신다면 제가 그걸 만약에 서우를 알렸다 하더라도 그 상속은 제가 받는 겁니다. 서우의 어떤 상속은 큰아빠가 받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가 받는 것도 아니고, 만약 제가 알렸다 하면. 그러면 제가 그걸 손해배상을 받든 아니면 제가 원고로서 인접권을 받든….

서해순: 그때 채팅방이 있었는데 그때 마지막에 그때 팬클럽들이 워낙 말들이 많았을 때 사무실에 컴퓨터가 있었는데 아마 마지막에 '민석아 잘 있니' 그걸 자판으로 쳤다고 그렇게 얘기를 저도 들었어요. 그게 마지막…

답변만 요약해서 보면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입장이 있다. 서해순은 "딸의 사망신고를 안 한 이유는 주위와의 불화도 있었고 내 심리상태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기가 힘들었고, 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다. 그러나 아예 안하려고 안한 것은 아니고, 언젠가 하려고 했다. 이를 가지고 돈으로 몰아가는 게 싫어서 그랬다"는 취지의 답변을 준비해 온 듯 하다. 이것이 서해순이 뉴스룸 출연에 나와서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문제는 "딸의 사망신고에 관련된 자신의 입장 전달에만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다른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시중에서 수많은 의혹 제기가 있었고 손석희는 이를 정확하게 정리해서 질문했지만 서해순은 모르쇠로 일관하였으며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놀랐다"는 듯한 반응까지 보였다. "세간의 의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 준비도 안 했다거나 의도적인 거부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인터뷰에 응한 목적 자체가 자신의 입장 전달에만 있고 "타인의 의혹이나 의견은 필요 없다"는 태도로 생각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일상적인 대화라면 모를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라고 평가받은 손석희의 방송이었다. 이렇듯 일반적이지 않고 긴장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 입장을 피력하는 데만 전력을 쏟는다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도 극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추측마저도 제기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 딸과 남편·친지들에 대한 호칭이 오락가락하고 가끔 뜬금없는 호칭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이라면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일찍 사망한 남편과 딸, 그리고 이 때문에 엮인 많은 사람들은 본인에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심리적으로 큰 요인이 되어 어떤 정형화된 모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남의 일이나 기억에 안 남는 사람들처럼 호칭이 오락가락하는 제3자의 입장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 때문에 시중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는 비난 섞인 의심까지 제기되었다. 출연 전 시청자의 예상대로 서해순은 호랑이굴을 제 발로 찾아들어간 상황을 자초하게 될 가능성도 점쳐졌다.

아울러 의심되는 것은 " 김광석의 사망에 대해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사람이, 왜 유독 딸의 사망신고 누락에 대한 이슈에는 즉각적이고 집중된 대응을 하느냐"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타살 의혹 제기와 소송 사기 관련 이슈 중 어느 것이 더 심각한 것이며 먼저 해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까? 하지만 서해순은 방송에 나와서 "왜 딸의 사망 신고를 안 했는지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얘기했고 김광석 타살 의혹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단지 가십거리 정도로 치부해 버렸다. 시중에서 자신이 살인자로 몰리는 판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방송을 보면 손석희의 질문이 대부분 사망 신고에 관련된 질문이었기 때문에 답변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인터뷰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30분이었다. 보통 일반인 인터뷰가 길어야 10초 정도고 이렇게 단독 패널로 불러서 인터뷰를 시켜도 10분을 넘기는 일은 거의 없다. tvN도 아니고 JTBC 뉴스룸의 한 코너를 30분이나 차지한다는 것은 5선 국회의원도 쉽지 않다. 따라서 서해순의 저런 태도는 의아하게 느껴질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무색한 것은 서해순이 딸의 사망신고를 왜 안했는지 집요하게 대답한 게 아니라 손석희가 그걸 집요하게 물어본 것이며 멘탈이 흔들린 서해순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한 것이 손석희다. 뉴스룸 인터뷰를 주도하는 것이 손석희의 질문인지, 서해순의 답변인지 착각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김광석 타살 의혹에 대답하고 싶어도 그걸 물어야 대답을 할 것 아닌가. 묻지도 않는데 대답부터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서해순의 사생활이나 딸의 사망신고 같이 정작 살인사건 의혹이라는 본질이 아닌 이상호 측이 대중에게 던진 자극적인 이슈만을 집중 질문받으면서 왜 이런 것만 묻느냐고 당황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방송에 대처할 만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감정에 앞서서 방송에 나와서 쓸데없는 의혹만 부풀린 셈이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이 인터뷰에 대해 9월 27일 채널A 돌직구쇼에 출연하여 코멘트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턱을 만진다거나 지나치게 제스쳐를 많이 보이는 것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해당 발언을 하면서 상당히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공소시효가 지난 김광석 의문사에 대한 발언보다는 현재 새롭게 논란이 되고 있는 딸의 사망과 저작권 소송에 대한 발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고 지적했다.

5.2.2.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

"경황이 없었다"
두번째 인터뷰에서도 서해순이 가장 많이 한 말.

인터뷰 전문 [ 보이기 / 숨기기 ]
>고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 각종 의혹에 대해서 인터뷰를 통해 첫 입장을 밝혔습니다만 사실은 명쾌하게 해명이 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의혹이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죠. 그런데 어제 오후 서해순 씨가 저희 팀에 직접 연락을 해 왔습니다. 첫 인터뷰에서 못 다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다시 한 번 입장을 정확히 밝히고 싶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고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 지금부터 직접 만나보죠. 서해순 씨, 나와 계십니까?

◆ 서해순>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TV를 통해서 첫 입장을 밝히셨는데 본인은 만족하셨어요?

◆ 서해순> 제가 연예인도 아니고 그 다음에 방송인도 아니라서 오랜만에 나간 방송이라 제가 많이 준비도 못했고 답변을 잘 못한 것 같아서 좀 아쉽네요.

◇ 김현정> 그러다 보니까 사실 시청자들은 보고 나서 오히려 의혹이 커졌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의혹을 그날 보고 나서 이상하다는 얘기들을 하냐면 어떻게 가족 두 명의 죽음을 얘기하는데 슬픈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는가. 또 과도한 손짓, 정리되지 않은 답변. 이게 뭔가를 숨기려다 보니까 그런 거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댓글이나 이런 데를 통해서 나오고 있어요, 보셨겠지만.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 서해순> 저는 그런 거 안 보고요. 저도 그렇게 서우 얘기도 하고 서류를 많이 준비해 갔어요. 서우 사진도 가져가고.

◇ 김현정> 서우가 서연인가요, 딸?

◆ 서해순> 제가 부르는 이름이 서우고.

◇ 김현정> 따로 있군요.

◆ 서해순> 서연이 이름이 안 좋다 그래서. 본적은 다 서연이로 돼 있습니다. 그런 것도 확인 안 하시고 이상호 PD께서는... PD신가, 그분이 제작자신지.

◇ 김현정> 기자입니다.

◆ 서해순> 무슨 기자… 그분 기자 맞으세요, 진짜로?

◇ 김현정> MBC 기자 출신이십니다.

◆ 서해순> MBC 기자입니까, 그분이.

◇ 김현정> 지금 고발뉴스 기자고요.

◆ 서해순> 기자 라이선스가 있으신 분이세요?

◇ 김현정> 기자 라이선스가 따로 있진 않지만 MBC 기자로 활동하셨던 분이죠.

◆ 서해순> 그러세요. 글쎄요. 그런 분이 왜 영화 제작자가 되셨을까요.

◇ 김현정> 그건 그분...

◆ 서해순> 그런데 영화 제작을 하시더라도 저작권법이라는 게 있고 초상권이 있고. 저희한테 연락한 적도 없고.

◇ 김현정> 연락한 적이 없습니까?

◆ 서해순> 네, 없어요.

◇ 김현정> 연락을 했는데 닿지 않았다. 이분이 잠적을 해버려서 연락이…

◆ 서해순> 잠적을 제가 안 했으니까 지금 이렇게 방송에 나가는 거죠.

◇ 김현정> 연락을 받았는데 안 받으시거나 그러니까 전화를 안 받으시거나 그랬던 건 아니고요?

◆ 서해순> 언제 연락을 그분이 하셔요? 저한테 어디 나와서 그럼 같이 얘기합시다 얘기를 하세요 그러면. 나는 방송에 나와서 그분이 왜 그런 의혹을 가지고 자꾸 저를 20년 동안 쫓아다니고. 저를 갖다가 괴롭히는 거잖아요. 여자 혼자 된 사람을.

◇ 김현정> 혹시 제가 이 자리에서 이상호 기자와 서해순 씨…

◆ 서해순> 그리고 그 이상호 기자께서 제가 잠적했다, 처음에. 하와이에 서우가 감금돼서. 김서연이가 하와이에 간 적이 없어요. 정확하게 정보를 갖다가 왜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혼자 되고 혼자 남아 있는 사람을 갖다가 이상호 기자가 조사하라면 조사하고 무슨 잠적했다 그러고 도피했다 그러면 그 사람 말이 다 100% 맞는 겁니까? 이런 나라예요? 여자를 보호하지 않는 나라입니까?

◇ 김현정> 조금 진정하시고요, 서해순 씨.

◆ 서해순> 네네. 그러니까요.

◇ 김현정> 이상호 기자와 혹시 이 자리에서…

◆ 서해순> 사실이 아닌 걸 지금 얘기하잖아요.

◇ 김현정> 잠깐만요.

◆ 서해순> 제가 손석희 프로그램에도 나갔고.

◇ 김현정> 잠깐만요. 제가 질문 이어갈게요. 이상호 기자와 만약 이 자리에서 두 분 같이 좀 말씀을 나누시라 한다면.

◆ 서해순> 저는 방송 나가서 보고. 그분이 아주 독하게 생기셨던데요. 나오시라 그러세요. 저는 할 말 있으시면 정정당당하게 남자답게. 여자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치사하게 행동하는 거 아닙니다.

◇ 김현정> 그러면 의혹, 시중의 의혹에 대해서 입장을 직접적으로 질문드리죠. 지금 국민들도 그렇고 김광석 씨 유족 측에서도 제일 의아해하는 부분이 왜 딸 서연 양의 죽음을 재판 중에도 알리지 않고 그 후로도 10년간 숨겼는가, 이 부분인데 경황이 없어서 그랬다라고 답하셨네요?

◆ 서해순> 네. 서우가 장애우니까. 장애 2등급이고. 제가 서우를 위해서 서연이를 위해서 독일, 미국. 제가 여러 나라 데리고 다니면서 서우를 검사도 해 보고 그랬는데 애가 태어날 때부터 키도 안 크고 그 다음에 신장이나 이런 게 하나가 작동이 안 되고. 일단은 키가 139cm밖에 안 됐으니까.

◇ 김현정> 그러면 김광석 씨 사망 후에도 계속 치료 여기저기 받으러 혼자 데리고 다니고 해외도 가시고?

◆ 서해순> 그럼요. 그게 왜냐하면 치료라는 게 걔가 치료해서 키가 크는 게 아니고 성장호르몬 비싼 약도 맞히고 해서 키를 키워야 되는 거고. 그 다음에 신장도 얘가 하나가 작동이 안 되니까 항상 부어 있고. 그걸 다 시가에서 무슨 서우한테 한 번도 서우한테 따뜻한 밥을 차려준 적이 없어요. 큰엄마라는 사람, 고모라는 사람들. 서우를 한 번 부른 적 있대요?

◇ 김현정> 한 번도 없다고요, 한 번도?

◆ 서해순> 네, 한 번도 없어요.

◇ 김현정> 김광석 씨 살아 있을 때, 돌아가신 후에 다?

◆ 서해순> 돌아가실 때 이후로는 본 적이 없어요.

◇ 김현정> 돌아가신 후로는.

◆ 서해순> 서우를 부르고 걱정해서 서우 잘 지내냐.

◇ 김현정> 그런데 경황이, 아이가 숨지고 나서 경황이 없기로서니 이렇게 아끼던 딸인데.

◆ 서해순> 아이가 아니고요. 17살 먹었어요, 17살.

◇ 김현정> 친가 쪽에 전혀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요.

◆ 서해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생가, 생가라는 게 어디예요?

◇ 김현정> 친가 쪽에 알리지 않으신 이유.

◆ 서해순> 그러니까 친가 쪽뿐만 아니고 저는 저희 엄마도 알리지 않았어요.

◇ 김현정> 친어머니한테까지도 안 알리셨어요?

◆ 서해순> 장애우 키우는 엄마들은 장애우가 좀 잘못되면 마음으로 묻는 거지 무슨 그 안에서 조문 받고 돈 받고 조문, 부조금 받고 그럴 경황 없어요. 서우 잘못됐으니까 와주세요, 뭐 하세요. 저는 그게 다 싫었어요, 다요. 친정이고 뭐 그쪽이고.

◇ 김현정> 친정이고 시가이고 알리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그냥 아이를 보내고 싶었다?

◆ 서해순> 네. 저 혼자 보냈어요.

◇ 김현정>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가 재판 중이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재판에서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사망을 숨긴 거 아니냐. 서연이하고 서해순 씨가 공동 피고인인 소송이 있었죠. 시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시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저작권을...

◆ 서해순> 잘 말씀하셨네요. 공동 피고인이라는 얘기는 서연이가 피고가 되는 거예요, 피고.

◇ 김현정> 잠깐만요. 선생님, 질문을 끝까지 들어야 청취자들이 이해하니까요. 그 다음에 답변주세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시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저작 인접권을 누가 갖는 게 맞느냐, 이런 소송이었는데 최종결론은 2008년에 났습니다. 서연이가 갖는 걸로 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양측 조정에 의해서 났어요. 서연이가 2007년에 숨졌다는 걸 알았다면 김광석 씨 유족 측, 형 측에서 조정에 응하지 않았을 거다,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어떻습니까?

◆ 서해순> 그쪽은 뭐 그렇게 얘기하시겠죠. 그게 욕심이 나니까. 그럼 서연이 거 가져가라 그러세요, 소송해서. 서연이 거 그렇게 탐나시면.

◇ 김현정> 왜 2007년에 말씀하신…

◆ 서해순> 가져가시라 그러시라고요. 저는 내가 일부러 가지려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욕심이 나시면, 서연이 몫이. 가져가시라 그러시라고요. 저희 변호사님이 다 대응하실 거예요. 변호사님은 아무 문제없다고 하시니까. 저는 단지 고지만 안 할 뿐인 거지. 이미 판결은 다 난 거고 2004년에 아버님 돌아가실 때 합의가 돼서 서연이한테 줬으면 이런 문제가 없었어요. 서연이 그렇게 돈 없어갖고 유학도 못 보내고 그럴 때 제가 찾아갔더니 등 돌리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서연이도 키우시고 다 가져 가세요 했더니 서연이 맡기 싫으니까 애를 갖다 그냥 도로 돌려보내시더라고요. 그런 애를 제가 그러면 버리고 옵니까? 제가 말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참고 참았어요.

◇ 김현정> 의혹을 그렇게 하나도 안 남기려면 2007년에 그냥 사망했다고 말해버리지 그러셨어요, 재판 중에?

◆ 서해순> 갑자기 애가 그렇게 되니까 경황도 없었고. 그리고 갑자기 연락도 안 했는데 전화해서 이리 오세요 그러면…

◇ 김현정> 아니, 장례에 대한 부분은 그냥 치를 수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문제는 재판과정에 피고가 서연이였기 때문에 서연이가 당사자였기 때문에.

◆ 서해순> 그건 변호사님이 알아서 하시니까요. 변호사님이 무슨 재판이 지금 어디 대법원에 올라가 있고 뭐 올라가 있으니까 알아서 그냥 판결이 언제 났는지도 몰랐어요. 제가 서연이를, 서연이가 없으면 제가 불리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서연이를 잘못하게 했을까요?

◇ 김현정> 변호사한테는 말씀하셨어요, 서연이가 숨졌다는 사실을?

◆ 서해순> 그건 얘기는 안 드렸어요.

◇ 김현정> 그러면 변호사가 알 수가 없는데.

◆ 서해순> 그럴 경황이 없었고.

◇ 김현정> 아니, 그렇지만 서연이가 재판의 당사자였는데 서연이의 사망 사실을 본인의 변호사한테도 안 알렸다?

◆ 서해순> 그러니까 서연이가 당사자라고 자꾸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데 서연이하고 저하고 지분이고 원래 제작자는 저입니다. 그러면 저는 원래 판권을 다 지금 아버님한테 로열티만 쓰라고 제가 급한 마음에 합의서를 써드린 건데 이게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지 몰랐고.

◇ 김현정> 공동 피고인이니까 서연이 죽었어도 나는 그냥 있으니까 이걸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다 이런 말씀이세요?

◆ 서해순> 그렇죠. 서연이가 뭐냐 하면 미성년자니까. 서연이가 피고가 되면 그냥 상징적인 거지 엄마가 다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미성년에 대해서는.

◇ 김현정>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서연이의 사망을 사실은 그냥 알리고 깨끗하게 정리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텐데 경황이 없어서 알리지 못했다. 그게 지금 두고두고 이런 말을 낳는 거다, 이 부분이 좀 후회스러우신 거군요?

◆ 서해순> 아니요. 저는 후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연이는 제 딸이고. 그렇게 서연이가 어릴 때는 예뻐했지만 커서는 다들 바쁘고. 같이 어울릴 또래가 없다 보니까 외로웠고...

◇ 김현정> 그 말씀이 아니고요. 그 말씀이 아니고.

◆ 서해순> 그러다 보니까 서연이가 친구도 없고 저랑만 항상 같이 있고 해서 저하고 서연이가... 그래서 제가 보낸 거고. 지금이라도 10주기 때 제가 사실 어떻게 알려져서 10주기가 됐는데 이번에 저는 친구도 불러서 10주기 행사를 제가 해 주려고 하고 있어요.

◇ 김현정> 서연이 10주기 행사 준비하고 계세요?

◆ 서해순> 그러니까 하려고 하죠. 왜냐하면 알려졌으니까.

◇ 김현정> 알려졌으니까? 알겠습니다.

◆ 서해순> 어차피 알게 됐고 내가 전화해서 이상호 기자한테 서우가 이렇게 됐어요 하고 전화할 수도 없는 거고 제가 방송국에 갑자기 전화해서 서우가 이렇게 됐어요, 그렇게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 김현정> 그건 물론인데. 왜 담당 변호사한테도 알리지 않았는가. 이게 혹시 숨기려고, 쉬쉬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냐 이 부분이 하나 남는 의혹입니다.

◆ 서해순> 저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서우를 찾았으면 진작 찾았으면 알게 됐을 거 아니에요. 자주 연락도 안 하고 하는데 제가 뭐 거기 전화해서 서우가 잘못됐고 그렇게 얘기할…

◇ 김현정> 거기 알리지 않은 건 아니고요. 담당 변호사한테 알려서 재판부에게는 알렸어야 되지 않느냐. 왜냐하면 서연이도 소송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 서해순> 그건 상관이 없는 얘기고. 저는 그 관행도 몰랐고.

◇ 김현정> 그게 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셨을까요? 그거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 서해순> 변호사님이 소송을 하고 있고 이미 판결이 나서 대법원에 계류돼 있었던 거예요, 계류.

◇ 김현정> 파기환송이었죠, 파기환송. 정확히는.

◆ 서해순> 파기환송해서 다시 그게 올라갔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저희 변호사님이 지금 해외 잠깐 출타 중이신데 오셔서 그 의혹을 같이 얘기하고 하겠다고 하시니까.

◇ 김현정> 알겠습니다. 변호사가 오면 그러면 다시 한 번 그 부분은 짚기로 하고. 이렇게 의심을 하다 보니까 또 어떤 의혹이 나오냐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서연이의 죽음 자체도 석연치 않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이 부분이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간 부분인데.

◆ 서해순> 그건 경찰에서 다 수사를 다시 하신다고 요청을 하시고 하니까 저는 가서 기록이 의무기록 다 있고 병원기록 다 있고 부검을 해야 된다 그래서 부검도 다 했고 다 서류가 다 있어요. 그러니까 그건 경찰에서 조사받으면 되는 거고. 밝혀질 겁니다.

◇ 김현정> 급성폐렴으로 인한 아이의 사망이었죠?

◆ 서해순> 네.

◇ 김현정> 그런데 급성이라는 얘기는 폐렴이 지병이 아니라 급하게 왔다는 겁니까?

◆ 서해순> 글쎄... 의사 전문가분이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데 감기기운이 계속 애가 있었어요. 며칠 약을 먹고 열이 있어서 누웠다가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하다가 했는데. 병원을 가야 되는데 애가 방학 되면 괜찮은 것 같아서 약만 먹였어요, 그냥.

◇ 김현정> 약국에서 약 사서?

◆ 서해순> 네네.

◇ 김현정> 그러니까 병원에 데려가진 않고?

◆ 서해순> 약국이 아니고 병원에 갔죠.

◇ 김현정> 병원. 그러면 병원 기록이 다 남아 있겠네요.

◆ 서해순> 네, 있습니다. 경찰이 다 그거 조사하지 안 하실까 봐 그렇게. 이상호 기자는 그런 거 다 확인한 다음에 얘기를 해야지. 마치 내가 죽였네, 서우를 감금했네. 자기 영화 홍보하려고 사람을 완전히 마녀사냥 시키고.

◇ 김현정> 정리를 하자면 그러니까…

◆ 서해순> 왜 이렇게 마녀사냥을 해야 되는 나라가 됐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 김현정> 그러면 지금 김광석 씨 형 측에서는 아이가 병원에서 숨진 후에 부검하긴 했지만 그게 부실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계속 주장을 하는데.

◆ 서해순> 그건 그쪽에다가 경찰서에다 얘기하라 그러세요. 그건 아주 공권력에 대해서 아주 저기를 하시네. 형이라는 분이 아주 대단한 분이신가 봐요.

◇ 김현정> 서연이 부검 기록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말씀이신 거죠?

◆ 서해순> 그럼요. 지금 다른 기자분 다 갖고 계시는데.

◇ 김현정> 알겠습니다. 고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왕 입장을 밝히기로 나오셨으니까 고 김광석 씨 죽음에 대해서도 그동안 계속 해묵은 의혹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 좀 드리죠. 정말 자살이 맞습니까?

◆ 서해순> 네. 그 부분 다 경찰이고 부검하고 또 하고, 재수사 또 하고 또 하고 다 해서 사망으로, 자살로 발견됐으니까 그렇게 된 거지 저한테 지금 저한테 물어보시면... 20년 전에... 자살이니까 자살이죠. 그러면 누가 죽였다는 겁니까?

◇ 김현정> 그런데 장례식에 온 지인들한테 술 먹고 장난하다 그리 됐다는 발언을 서해순 씨가 하셨다는 점, 이게 아마 의혹의 발단이 된 것 같습니다. 술 먹고 장난하다 그리 됐다는 발언은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 서해순> 저는 글쎄 20년 전이라 기억은 잘 안 되는데. 여기저기 와가지고 어떻게 왜 그랬냐 이런 얘기를 물어보니까 술 그 때 드시고 이래저래 하다가 무슨 연극처럼 이렇게 된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횡설수설한 걸 써놓으신 거겠죠.

◇ 김현정> 횡설수설한 걸 써놓은 거다? 술 먹고 장난하다...

◆ 서해순> 제가 경찰에 가서 얘기한 걸 하셔야지 무슨 기자가 거기 그 난장판 그 장례식장에서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는데 그 카메라에 마이크 대면서 기분이 어떠세요?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그런 얘기하는데 그거 갖고 그거 갖다가 얘기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게 정상적인... 경찰은 그냥 놀고 있었나요, 그럼?

◇ 김현정> 경황이 없으셨을 거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자살을 한 거하고 술 먹고 장난하다 그리 됐다는 건 아무리 경황이 없다 치더라도 너무 다른 차원 아닌가요?

◆ 서해순> 그 부분은 아까 패널도 어제 다른 프로에서 나오셔서 그때 신동엽 씨 나오는 프로에서 얘기 한 번 하시더라고요. 아니, 그거야 갑자기 신동엽 씨도 전날 같이 그 전날까지 같이 술도 먹고 했기 때문에 자기네들도 깜짝 놀랐다. 갑자기... 그냥 죽으려고 그런 게 아니고 어떻게 잘못됐나 보다.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도 있으시더라고요. 그냥 안 살고 싶으니까 나 그냥 그렇게 하다가. 아니면 술 먹고 기분에 그러셨는지. 저는 그건 모르죠.

◇ 김현정> 장난하듯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그럼 좀 문학적인 표현으로 쓰신 거예요?

◆ 서해순> 그건 다른 분이 그렇게 얘기 하시듯이. 음악 예술하시는 분들이 약간 술이나 마약을 하면서 그런 기분에 취해서 하는… 김광석 씨도 그런 기분에서 갔다는 그런 얘기 아닐까요.

◇ 김현정>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그러니까 서해순 씨가 했던 장난의 의미도 그런 의미였던 겁니까, 그러면? 술 먹고 장난하듯, 연극하듯 세상 떠났다,이런 의미?

◆ 서해순> 갑자기 남편이 그렇게 됐다고 그러고 29살에 그런 일을 당하고 기자고 경찰에서 오라 그러고. 지금 현실감이 전혀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 어떤 표현을 했겠죠. 제가 어린 나이에 이게 지금 현실인지. 저도 그렇게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이런저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 김현정> 알겠습니다.

◆ 서해순> 그리고 어떻게 20년 전 이야기를 다 기억을 하겠어요?

◇ 김현정> 그 날 집에는 김광석 씨 또 부인 서해순 씨, 친오빠 이렇게 세 분이 계셨던 건가요?

◆ 서해순> 아닙니다. 오빠는 아래에 부인하고 같이 계셨었고.

◇ 김현정> 부인도 계셨고?

◆ 서해순> 네. 거기는 강화도에 집이 있어서 서울 잠깐 나오실 때만 1층에 주차장 있는 데 잠깐씩 계셨기 때문에 저는 뭐…

◇ 김현정> 그날 그 집에는 어쨌든 오빠 계셨고, 친오빠. 서해순 씨, 김광석 씨 계셨던 거예요.

◆ 서해순> 그래서 그걸 자꾸 얘기를 하시네. 경찰에 다 얘기했지만 서우 아빠 그렇게 나오니까 쓰러져 있어서 들어가서 자지 그랬는데 이상하게 쓰러져 있길레 나는 술 먹고 취한 줄 알고 이렇게 흔들었는데 좀 이상한 것 같아가지고 우황청심환도 먹이고 하다가 이상하게 안 되니까 저는 119에 신고하고 오빠가 같이. 119가 마침 도착했을 때 오빠가 같이 올라왔어요. 사이렌이 울리니까 오빠는 불이 난 줄 알고 팬티바람으로 나왔었고. 119 대원하고 올라온 거고.

◇ 김현정> 그러면 매달려 계신 상황에서 부인이 발견하신 게 아니란 말씀이세요?

◆ 서해순> 줄이 이렇게 풀려 있었지 저도 그런 상황을 봤으면 저도 쇼크 먹어서 이상하게 됐겠죠.

◇ 김현정> 이미 풀려 있는?

◆ 서해순> 그냥 줄이 이렇게 해서 기대 있었어요. 줄이 나중에 보니까 축 이렇게 내려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 왜 이래, 왜 이래 그러면서 보니까 이렇게 층계에 기대 있어가지고 목에 빨갛게 줄이 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건 이상하다 싶어가지고 저기를 한 거고, 구출한 거고. 그건 경찰이 다 알고 있고.

◇ 김현정> 오빠 분은 그때 이제 사이렌 소리 듣고 처음 올라오신 거고요?

◆ 서해순> 네, 네. 같이 대원하고 같이 올라왔어요.

◇ 김현정> 사실은 20년 전부터 계속 소문이지만 오빠 분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 서해순> 오빠가 이번에 다 지금 TV조선하고 다 인터뷰 하시고 집안도 좋으신 분이고 다들 뭐 저희 아버지가 다 군인이시고 훈장도 받으셔서 상당히 좋은 집안인데 저희 오빠도 지금 너무 화가 나셔가지고.

◇ 김현정> 소송 준비 중이시고?

◆ 서해순> 동창, 저희 오빠…

◇ 김현정> 그런데 자살이 아니라고. 자살이 아니라고 의혹 제기하는 측에서는 두 가지 의혹을...

◆ 서해순> 의혹을 제기하면 끝도 한도 없겠죠.

◇ 김현정> 하나가 이제 삭흔입니다, 목에 있던 삭흔. 전깃줄로 세 바퀴 둘러서 목을 맸다고 했는데 그렇게 진술을 하셨는데 흔적은 한 줄뿐이다. 이건 뒤에서 목을 졸랐을 때...

◆ 서해순> 제가 두 바퀴인지 제가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저는 기억도 안 나요.

◇ 김현정> 없습니까? 진술서에 그렇게…

◆ 서해순> 줄이 빨갛게 목에 표시가 돼 있다고 했겠죠. 그거 사망진단서 다 있으니까 제가 갖고 있어요. 제가 갖고 있어요. 그건 저만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상호 기자도 못 본 것 같은데.

◇ 김현정> 사망진단서하고.

◆ 서해순> 경찰에 가서 다 확인하시면 돼요.

◇ 김현정> 그 사망진단서 말고 부검소견서도 혹시 공개하실 생각.

◆ 서해순> 네, 부검소견서.

◇ 김현정> 공개하실 생각 있습니까?

◆ 서해순> 부검소견서가 마침 있어서 아버님이 저보고 잘 갖고 있으라고 해서 그게 있더라고요.

◇ 김현정> 사망진단서 말고 부검소견서도 공개하시겠다. 저희한테도 하나 보내주시면 저희도 공개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없는 거면.

◆ 서해순> 알겠습니다.

◇ 김현정> 이상호 기자는 그 부검소견서를 서해순 씨가 끝까지...

◆ 서해순> 못 봤겠죠. 그러니까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하고 다니시겠죠.

◇ 김현정> 공개하겠다. 우울증을 앓고 있지 않았다라는 부분은 어떻습니까?

◆ 서해순> 글쎄요. 형이 어떻게 동생의 그런 전부 다를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음악하시는 분들이 기분이 좋다가 또 안 좋았다가. 김광석 씨가 굉장히 다혈질 이렇게 해서 때려 부수고 막 이런 건 동물원에 계신 분들도 다 아시고 완전히 화나면 차도 다 하나를 다 뽀개 버렸다고 그런 얘기도 들리고.

◇ 김현정> 그런데 약은 안 드셨어요?

◆ 서해순> 그 당시에는 그런 건 없었죠. 그런데 그래도 뭐 화가 나면 책상도 깨고 유리도 깨고 막 그래가지고 일하는 할머니가 오시면 아니, 서우 아빠가 성격도 좋은데 왜 아침에 오면 유리가 다 깨져 있고 접시가 깨져 있고 그러냐고. 속상해 하셨었어요.

◇ 김현정> 우울증 증상이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는 지인들은 그들에게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집에 와서 좀 그런 것들...

◆ 서해순> 그분의 속마음이나 그분의 깊은 건 저희도 알 수는 없죠. 그렇지만 그분이 음악하고 또 이런 사람들 만나는 데서 항상 약간 피곤해하고 하는 걸 저한테도 얘기했었고. 글로도 항상 썼었고. 음악에서도 그런 표현을 했었고. 항상 외로워하고.

◇ 김현정> 이제 와서... 외로워하고.

◆ 서해순> 왜냐하면 공연을 하도 많이 하니까. 또 해, 또 해 이런 얘기들을 많이 들었고. 그 당시에 건물 지어서 잘나간다 하니까 공연장 뒤풀이 하는데 아무도 안 온 거예요. 그런 어떤 것들이 자기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5집을 이제 내서 준비를 하려고 그랬는데 곡을 안 주는 거예요. 방송도 그만두고 서우가 장애가 있으니까 캐나다로 가려고 부부 사이도 다시 좀 좋게 하려고 그만두겠다고 다 이문세 방송에도 나가서 얘기하셨었어요.

◇ 김현정> 지금 이상호 기자하고 안민석 의원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하셨어요.

◆ 서해순> 네, 다 했습니다. 떳떳하게 할 말 있으시면 나와서 여자 그렇게 혼자 된 사람을 남자 3명이서 저를 지금 고소한 거거든요. 있을 수도 없는 얘기고 제가 엠네스티나 이런 인권단체에다가 우리나라 이 모양입니다 하고 진짜 제소하고 싶습니다.

◇ 김현정> 국제인권기구에다가 제소하고 싶을 정도 심정이세요.

◆ 서해순> 그리고 4선이나 하신 분이 국정 업무도 바쁘신 분이 왜 그런 이상호 기자 그런 일에 같이 관여를 하시는지 저는 좀 이해가 안 갑니다. 아휴, 정치 제가 하고 싶네요, 정말.

◇ 김현정> 오늘 두 가지 말씀이 특히 저는 주목됩니다. 서연이 부검기록 공개할 생각 있고 김광석 씨에 대한 부검기록도, 부검소견서도 공개할 수 있다. 저희한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 서해순>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 김광석 씨의 부인 서해순 씨였습니다.


이번에도 JTBC와 상황이 비슷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까지 보고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뉴스쇼 인터뷰 역시 서해순이 자청한 것인데 서해순은 그 사유를 '(이전 JTBC 인터뷰에서) 연예인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라서, 오랜만에 나간 방송이라 많이 준비도 못했고 답변도 잘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고 밝혔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지난번 JTBC에서의 답답함을 이번에는 좀 해소할 수 있을까 기대했을 것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JTBC 인터뷰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라디오 특성 상 이번에는 한층 더 그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JTBC 인터뷰 때 지적받았던 말 끊기, 동문서답하기, 감정 호소, 자기방어가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청취자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나아진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JTBC보다 더 못한 인터뷰인데 대체 뭐가 개선된 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처음 인터뷰 자청 사유를 보면 더 의아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출연 동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연예인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라서, 오랜만에 나간 방송이라 많이 준비도 못했고 답변도 잘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이것이 김현정의 뉴스쇼 출연을 자청한 서해순의 동기다.

이 사유는 청취자들 입장에서는 "연예인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라서, 방송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청취자들의 의혹을 말끔히 풀어줄 수 있도록 조리있게 답변을 못했다. 그래서 준비되고 안정된 상태에서 인터뷰를 다시 진행해, 나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가정해 보자. 서해순은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세간의 조명과 의혹, 그리고 수많은 언론인과 법조인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10년 동안 무사히 지낸 타살 의혹과는 별개로 별별 일을 다 겪은 사람인 데다 옆에 변호사가 방송 출연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있을 수도 있였다. 방송 출연에는 목적이 있고 두 번 다 서해순 본인이 자청해서 진행한 인터뷰다. 이를 서해순이 무엇인가 방송이라는 공공매체를 통해서 전해야 하거나 취해야 하는 발언/행동이 있으며 그것이 방송 출연의 목적이라고 가정하고 이를 철저히 서해순 본인의 1인칭 시선에서 의미를 다시 정의하면 아래와 같이 의미를 변형할 수 있다.

"연예인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라서, 오랜만에 나간 방송이다 보니 (당신들이 뭐라고 하건) 내가 방송에서 발언해야 할 말들과 태도가 있는데, 그 발언들을 다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하겠다."

이렇게 해석하면 JTBC 인터뷰보다 더욱 심해진 말 끊기와 일방적인 자기 입장 피력, 동문서답으로 시작하는 답변들,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것[20],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서 튀어나오는 격앙된 억양 등이 들어맞는다.

인터뷰를 직접 들어 보면 알겠지만 저작권 관련된 부분에서는 흥분이 최고조에 이르는데[21] 진행자가 마치 시가 식구인 것마냥 따지며 흥분된 어조로 말을 하기도 한다.[22]

이렇게 흥분된 상태에서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발언을 랬다. 예를 들면 이상호 기자에 대해 얘기할 때 "언제 연락을 그분이 하셔요? 저한테 어디 나와서 그럼 같이 얘기합시다 얘기를 하세요 그러면 나는 방송에 나와서 그분이 왜 그런 의혹을 가지고 자꾸 저를 20년 동안 쫓아다니고. 저를 갖다가 괴롭히는 거잖아요. 여자 혼자 된 사람을." 이라며 이상호 기자와 대면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이에 진행자가 "그럼 자리를 마련하겠..." 다고 말을 하려고 하자 자기가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진행자가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하도록 3번이나 말을 끊고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이에 진행자도 굴복하지 않고 4번째 시도에서 결국 대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니 서해순은 "저는 방송 나가서 보고. 그분이 아주 독하게 생기셨던데요. 나오시라 그러세요. 저는 할 말 있으시면 정정당당하게 남자답게. 여자라고 무시하지 마시고 치사하게 행동하는 거 아닙니다." 라며 자기는 여자고 상대방은 독하게 생긴 남자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런데 이 문단을 쓴 이는 왜 서해순이 이상호와 토론을 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서해순이 이상호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 인터뷰 당시에는 서해순이 타살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게 과학계와 법조계의 중론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서해순의 입장에서는 꿇릴 게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상호도 서해순과의 단독 토론을 요구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서해순이 여러 차례 언론과 인터뷰를 가졌고 1차 경찰조사를 받으러 갈때나 마쳤을 때 언론과 오랜 시간동안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이상호는 서해순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여러 프로그램에서 자살이 확실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진 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서해순은 TV조선의 <세븐>측과 인터뷰를 했지만 이상호는 TV조선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지금은 더 취재를 할 때"라고 밝히면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취재를 더 할 때는 영화 <김광석> 개봉전 이지 이후가 아니다. 그리고 서해순쪽에서 침묵을 지키는 동안 이상호는 신나서 각종 언론 인터뷰에 출연해 음모론을 설파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전략적으로 보이진 않는데 이는 서해순 본인의 피해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밝힐 수는 없지만 사건의 원인은 내가 아닌데 모든 사람이 나를 비난한다, 나는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다." 라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특성이 몇몇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진실은 무언가의 사유로 말하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피하거나 해서 보는 사람의 의혹만 증가시켜 결국 의심을 사게 되는데 정작 "잘못한 것은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의심을 본인이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심리다. 서해순의 발언을 보면 항상 핵심사항에서는 논점을 빗나가 제대로 해명을 안 하면서도 자기가 억울하다는 것은 일관적으로 주장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아주 가까운 시일에 목격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모든 일을 돈으로 연결짓는 것이다. 이상호 기자도 "영화 팔아서 돈 벌려고 자기를 매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으며 시가 식구들도 자기와 딸에게는 관심도 없으면서 저작권과 재산 때문에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로 일관적으로 진술했다. 물론 세상에 돈이란 게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돈 외에도 여러가지 중요한 주제[23]가 섞여 있는데 유독 서해순은 "돈"이라는 항목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키기 위한 집착이 아니라 "돈"에 대한 피해의식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의심을 받고 억울한 상황을 겪는 것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라는 감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서해순이 김광석 사후에 겪은 모든 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당시에는 이 사건이 실시간으로 조명받았기 때문에 대중이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기분이나 기억은 희미해지고 기록만 남게 된다. 서해순의 인터뷰 출연 목적이 무엇인가 기록[24] 등을 남기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지만 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이걸 그대로 믿으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오히려 이런 행동이 안주거리로 전락할 위험이 높은 악수인 셈이었나. 당장 최순실 게이트에서 여러 망언들이 인구에 회자된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찌 보면 "경황이 없었다"는 발언은 "기억이 안 난다"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증언이다. "기억이 안 난다"는 증거가 발견되면 뒤집어 쓸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김기춘을 생각해 보자. 그런데 "경황이 없었다"는 설사 증거가 발견되더라도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실수한 것이다. 진실이 아니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서해순은 "경황이 없었다."와 "기억이 안 난다." 두 가지 모두 사용했으며 이 둘의 혼합형인 "경황이 없었어서 기억이 안 난다"까지 사용했다.

5.2.3. 한겨레와의 인터뷰

2017년 10월 1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관련 기사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점을 새로 밝혔고 긴 지면이 할애되어 주목할만한 인터뷰다. 특히 사망 당시 술 마시고 취한 것으로 인지하고 깨우고 우황청심환을 먹였다는 진술은 김광석의 사인에 대해 논란을 더 키울 것으로 보였다. 국가인권위원회[25]에 제소하고 엠네스티에까지 고발하고 싶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보아 제대로 된 법률적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5.2.4. 경찰 조사 후 인터뷰

10월 12일 9시간여의 경찰 조사 후 나오면서 대기 중이던 기자들과 짧은 인터뷰를 나누었다. 앞선 인터뷰들과 비슷하게 감정에 호소하는 발언을 여럿 했는데 양심에 걸고 말할 수 있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복이라도 해야겠느냐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였다.

6. 결과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해순에게 제기된 모든 의혹은 혐의없음, 무혐의이다. 김광석의 사인은 공식적으로 자살이며 딸인 김서연의 사인도 병사이다. 이러한 공식적 결과에 반하는 주장이나 음모론 등은 모두 법적으로 사실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

2017년 11월 10일 경찰은 서해순에게 무혐의 판단을 내렸다. 12월 6일 서울중앙지검도 무혐의 처분했다. 이에 무혐의 판정을 받은 서해순은 조만간 김광복과 이상호 기자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했으며 변호를 맡은 박훈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김광복의 무리한 주장을 이상호 기자가 아무런 검증 없이 서해순을 연쇄 살인범으로 몬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김씨와 이 기자 측에 공개 토론을 요청했다. 일부 네티즌들이 서해순이 이상호와 토론을 피해 왔다고 JTBC 인터뷰와 CBS 인터뷰를 들어 주장했지만 이미 서해순 측의 공개토론 요청이 있은 지 여러 날이 흘렀지만 이상호 측에서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으며 국민적 의혹에 비해 수사가 미흡했던 것 같다거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둥 자기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서해순 측 변호사가 경찰에 김광석 자살의 재수사를 요청하자 '반가운 소식이며 김광석의 의문사가 뒤늦게나마 법정에서 재조명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맞받아친 것은 덤.

하지만 이런 적반하장식 발언과는 반대로 대한민국 법원은 5월 29일 "이 기자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서씨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 대한민국 사법부는 명백히 서해순씨의 무고함을 인정한 것이다.

경찰은 서연양이 숨진 2007년 12월 23일 이전 서씨와 서연양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결과 서씨가 세 차례에 걸쳐 서연양을 병원에 데려갔고 ‘단순 감기’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연양은 2007년 12월 14일부터 18일까지 일요일 하루를 제외한 나흘 동안 학교 기말고사 시험을 치렀으며 18일, 20일, 21일 세 차례에 걸쳐 학교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1차 진료에서 해당 병원의 의사는 ‘단순감기’로 진단해 약과 주사처방을 내렸다. 2차 진료에서 열은 떨어지고 기침이 심해졌다는 판단에 따라 주사처방은 안 하고 기관지 관련 약을 강화해 약을 처방했다. 3차 진료를 봤을 때 담당의사는 ‘더 아프면 월요일에 오라’며 3일치 약을 처방해 줬다. 담당 의사는 “그때까지 폐렴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폐포음도 깨끗했다. 조금이라도 꺼림칙했으면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보자고 권유했겠지만, 폐렴 징후가 발견되지 않아 그것도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담당 의사는 서연양이 가부키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경찰은 의사가 가부키 증후군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진단이나 치료에 변화는 없었을 것이라로 봤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 자문을 받은 결과, 가부키 증후군 환자여도 약 처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출동한 구급대원을 조사한 결과 사망한 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서연양의 핸드폰과 일기장을 들춰 봤지만 “서연양이 서씨나 동거남 이아무개씨에 대해 부정적으로 적은 내용은 없었다. 가정불화에 대한 언급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씨가 경찰에 제출한 서연양의 핸드폰에는 모녀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2007년 11월 19일 서씨가 서연양에게 보낸 메시지(‘첫눈이 오네, 예쁜 내 딸이 더 예뻐지길 바랄게’)가 남아있었으며 그해 12월 3일 서연양이 서씨에게 보낸 두 개의 문자메시지(절 이렇게 키워줘서 감사해요♡·내 마음을 받아줘)도 발견됐다.

경찰은 2007년 11~12월께 작성된 서연양의 일기도 살펴봤는데 ‘밖에 눈이 와서 엄마랑 같이 밖에 나가서 눈싸움을 했다. 재밌었다(11월 19일)’, ‘현장체험학습을 갔는데 엄마가 나와 선생님, 친구를 태워다 줬다.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12월)’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당 일기는 서연양의 필체로 작성되어 있었다. 당시 매일 서연양의 일기를 점검하고 평가를 달아 준 학교 교사는 “서연양이 쓰고 내가 확인한 일기가 맞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서연양이 다니던 학교의 교사는 경찰에 “서씨가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80여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직접 등·하교시켰다”고 경찰에 말했다. 당시 서씨의 집과 서연양의 학교는 20여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 확인 결과 당시 서연양은 세 번째 진료를 받으려 병원에 간 2007년 12월 21일 하루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다. “당시 서씨가 서연양을 잘 돌봤다”고 말한 이웃 주민도 있었다. #

김광석의 형인 김광복은 “서연이 죽음에 대한 의혹이 조금이나마 해소돼 다행”이라면서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고 심경을 밝혔다. 입장문 하지만 김광복이나 이상호는 영화 개봉 직후에야 서연이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됐다. 언론을 통해서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외국의 시설에 감금됐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갑자기 유기치사로 선회했다. 경찰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이상호 기자나 유가족 측이 어떤 증거를 제시했냐"는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증거는 없고 정황증거, 즉 서해순의 평소 행실에 대한 주위의 의견 등을 증거라고 제시했다고 답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수사 결과 발표 시 실제로 서연 양의 이웃, 선생님 등은 서해순이 서연 양을 잘 돌봤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이제 서해순에 대한 살인자 의혹 제기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완비되었다. 서해순의 법률대리인인 박훈 변호사는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13일 영화 <김광석>에 대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같은 날 이상호(3억), 김광복(2억), 고발뉴스(1억)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14일에는 이상호, 김광복에 대해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거짓 정보를 양산해낸 언론, 정치인, 네티즌들에게도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박훈 변호사는 서해순을 대신해서 예고한 것과 같이 13일 상영금지가처분 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14일에는 서울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이상호, 김광복, 고발뉴스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했으며 고소장 제출 직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부를 하고 취재를 한 다음 양쪽 입장을 써야하는데 기자분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부끄러운줄 아십시오. 여러분들"이라고 덧붙였다.

박훈 변호사의 일갈과 같이 무혐의 처분 전에는 여러 의혹을 앞다투어 내놓던 언론들이 서해순의 무혐의 판정 이후로는 물증도 없이 심증과 추측만으로 범죄의 굴레를 씌운 이상호 기자와 김광석의 유족, 네티즌들의 섣부름을 비판했다. 애초에 사건 발생 이후 긴 시간이 지났고 증거, 증인도 없이 경찰의 사건 조사, 부검 결과에까지 의문을 제기하였지만 의문과 의혹일 뿐 확실하게 증명된 것은 없었다. 아무리 의혹이 있을지라도 반박 불가의 확실한 물증이 없다면 의혹은 의혹으로만 남을 뿐이다.

또 이 사건의 재조사 기간 동안 서해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은 더욱 늘었지만 인물에 대한 반감이 그 인물의 범죄행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 대목이 한편으론 정말 무서운 부분인데 서해순을 범인으로 지목한 네티즌의 대다수는 서해순을 범인으로 고발한 이상호 기자가 직접 제작, 유포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며 이 중에는 김광석의 예전 들 혹은 이 사건의 재조명을 계기로 김광석의 팬이 된 사람들도 많았으며 재조사 과정에서 이 네티즌들은 서해순의 인터뷰 발언과 소문 등으로 그녀에게 더욱 반감을 가지게 되어 더더욱 유죄를 확신하고 엄벌을 요구했었다. 대중들이 서해순을 범인으로 지목한 원인에는 분명히 김광석 팬덤의 심 + 전문 수사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 한 기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담긴 영상물만을 진실로 맹신한 군중심리 + 서해순이란 인물 개인에 대한 반감이라는 객관적인 증거와는 별 상관도 없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었다. 이후에도 서해순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나 그녀의 행실에 대한 루머를 가리켜 "아직도 의심스럽다"거나 더 나아가서 "인터뷰를 그런 식으로 하니 의심받을 만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네티즌들이 있었는데 범죄를 판별하는 데 있어선 감정적인 요소 없이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만으로 판단해야 옳고 만약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죄가 없어야 한다. 최소한 서해순 개인의 인성에 대해 품평하기 전에 대중들 자신들이 객관적인 요소만으로 다뤄야 할 사건을 감정적인 의심과 군중심리로 단죄하려고 한 행동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이전 사건들에서도 보여진 전형적인 인민재판의 예로, 왜 전문적인 수사 기관과 법에 따른 재판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이상호, 김광복씨의 의혹 제기는 김광석의 명예 회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서해순이 김광석 사망 당시 이유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여자 문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이후 공개적으로 김광석이 여자 문제로 목숨을 끊었다고 수시로 소문을 내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에게 의심을 받자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김광석의 사망 동기를 말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김광석의 가정 폭력 및 여성 편력 논란이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표되었다. 이상호와 유족 측이 제기한 서해순의 불륜설 역시 어차피 맞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같으므로 이상호 측의 주장을 믿는다면서 서해순의 증언을 못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실제 부부간의 관계는 부부밖에 모른다. 서해순이 원래 행실이 나쁜 여자인 것처럼 얘기가 되었지만 현재의 동거남과 함께 오랜 기간 동안 별 문제 없이 살고 있고 경찰은 언론 브리핑에서 동거남도 서연이에게 잘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거기다 서해순은 단순히 경찰과 유족에게 의심받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을 범인으로 단정하는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서 전국에 유포한 이상호 기자, 이를 퍼다나르며 부풀린 언론매체와 이들에게 선동당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팔아먹은 대중에게 처음부터 범인으로 찍힌 상태에서 사건 조사를 받고 인터뷰 등에도 출연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대중들과 그녀를 범인이라고 단정한 이상호 및 언론매체를 상대로 한 일반인의 싸움인데 전문 변호사 급의 논리정연한 반박을 했다고 해도 이들이 그녀의 말을 믿어 주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수사 주체인 경찰에게 용의자로 의심받아도 정말 침착한 사람이거나 포커페이스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은 당황하거나 흥분하고 심지어 이 과정에서 단순히 용의자로 몰렸다는 이유만으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서해순은 언론매체와 다수의 대중들에게 그냥 의심 수준도 아니고 아예 사건 시작 전부터 인민재판을 당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된다.[26] 또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다소 이성적이지 못한 주장을 했다고 해서 그게 살인자로 의심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최소한 인터넷 댓글 등으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고통을 주는 데 일조했다면 반성하는 게 먼저고 다음에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는 자신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다음 판단을 보류하거나 최소한 그 판단을 댓글 등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초 의문을 제기한 이상호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여전히 반성없는 태도를 보여 비난을 받았다. 말이 좋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영상물이지 진실이 아닐 경우엔 언론 및 방송 종사자로서의 권위를 동원하여 한 인물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행위였음에도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상술한 것처럼 최초로 유포한 영상물에 나온 증거조차도 이 문서에 서술된 것처럼 짜집기되어 있었으며 이미 다수의 전문가들에게 타살 증거라고 볼수 없다고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단순히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처럼 인성이 쓰레기라거나 무개념이라는 정도의 누명이 아니라 남편과 친딸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을 정도로 끔찍한 누명이다. 최소한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이라도 하거나 사실이 아닐 경우에 해당 인물이 겪게될 피해를 고려했어야 했으나 해당 영상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해순이 범인이라고 확언하고 있으며 이미 이상호와 유족측이 제시한 증거와 수사 방법에 짜집기와 헛점이 많다는 것이 지적되었음에도 그저 "경찰의 수사 결과는 여전히 믿을수 없다"고 무조건 우기기만 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어쨌든 의혹이 많은 사건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시도는 높이 산다"느니 "기자 정신"으로 미화했지만 이상호는 자신과 유족 측에게 유리한 증거들만을 가지고 단순 의혹을 제기하는 선을 한참 넘어서 한 개인을 사회적인 죽음으로 내몰뻔 한 심각한 행동을 했다. 기자들은 의혹을 제기하거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윤리 의식으로 삼는다고 하지맘 만약 그 사실이 틀렸다면, 그리고 그 잘못된 사실을 보도하여 누군가가 피해를 당했다면 당연히 이를 정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정정보도라는 게 도대체 왜 있겠는가. 이상호는 근거랍시고 내민 증거들조차도 헛점투성이일 정도로 검증 방법마저 잘못되었으며 자신에 의해 피해를 본 인물이 존재함에도 이에 대한 사과나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 의식조차도 보여주지 않았다.

2018년 7월 3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상호 기자를 형법상 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상호 기자는 경찰의 수사결과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밝혔고 박훈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소송을 자초해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큰소리쳤으면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6.1. 이상호, 서해순에 1억2천만원 배상 확정 판결


2019년 5월 29일, 서해순이 이상호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하여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 서울서부지방법원 2019.5.29.선고 2017가합39160 판결문 전문

2020년 1월 29일, 항소심에서는 "내용 및 허위성의 정도, 사회적 관심도 등"을 감안하여 배상금액을 무려 1억원으로 올려 다시 한 번 원고 서해순의 손을 들어줬다. #, 서울고등법원 2020. 1. 22. 선고 2019나2028445 판결
재판부는 "이씨가 인터뷰 등에서 '김광석은 타살이다' '원고가 유력 용의자다'라고 단정적 표현을 썼다"며 "'원고가 시댁으로부터 저작권을 뺏었다' '딸을 방치해 죽게 했다'고 한 것은 허위사실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2심은 1심이 인정한 사실들은 그대로 인용하면서 서씨의 인격권이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침해됐다며 서씨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1억원으로 증액했다.
재판부는 "허위사실을 단순히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사기관에의 공개적 고발, 기자회견 등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매우 광범위한 대중이 이씨 등의 주장을 접하게 됐다"며 "그만큼 서씨의 정신적 고통이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명예훼손 1억 배상
1억 배상이지만 이자 2천만원을 포함한 1억 2천만원을 내게 되었다. [판결] "이상호, 김광석 부인에 1억 지급하라"… 1심보다 위자료 2배 늘려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이 판결이 확정되었다. 사건번호 : 대법원 2020다215186

6.2. 이상호 형사소송서 무죄 확정

이 기자는 민사소송과 별개로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박 변호사는 "이상호는 현재까지 어떠한 사과의 표현도 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숨죽인 채 무수한 손가락질을 아직도 받고 있는 것이 참담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상호 형사소송

다만 형사소송은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 [판결] '고(故) 김광석씨 부인 명예훼손 혐의' 이상호 기자, 1심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1. 14. 선고 2020고합88 판결문 전문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었다. #, [판결] '고(故) 김광석씨 부인 명예훼손 혐의' 이상호 기자, 항소심도 "무죄" 서해순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 2심에서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2021. 7. 7. 선고 2020노214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1. 7. 7. 선고 2020노2145 판결문 전문

상고가 기각되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21도9501 판결 대법원 2021. 12. 30. 선고 2021도9501 판결문 전문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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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3년 자살한 장국영도 사망 당일까지 미팅을 했었다고 한다. [2] 더불어 당시 병원에 갔는지, 안 갔는지도 조사하지 않고 무작정 안 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 그날 학교 앞 병원에 가서 ‘애가 열이 좀 오르고 내리고 하는데 기침도 하는데 큰 병원 갈까요’ 했더니 의사가 ‘약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요’ 했다. 약을 받아와서 약 먹였는데 애가 잠을 푹 못잤다. 경찰도 그때 조사를 다 했고. 동네 분도 만나고 학교도 조사하고 병원도 갔을 거다. 담당형사한테 ‘혹시 약이 문제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를 했다. 형사도 병원에 조사를 해봤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했다. # [4] 이상호는 생전 김광석의 말버릇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것처럼 김광석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고, 생전 김광석이 자신의 곡들 중 가장 좋아했던 노래가 <일어나>와 <나무>였다고 한 반면 그의 히트곡 중 하나인 사랑했지만의 가사도 '정말 그 여자를 사랑하면 계속 고백해서 이루면 되지 뭣하러 포기하고 돌아서느냐'며 내용을 탐탁지 않아했다고 한다. [5] 이 말은 사실이다. 김광석은 생전 나우누리 둥근소리 게시판과 메모에 글을 자주 작성하였으며 그의 메모들을 모아 엮은 '미처 다 하지 못한'이라는 책이 그의 사후 출판되기도 하였다. [6] 김광석은 본인의 죽음에 관련하여 어떠한 유서나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에 대해선 생전 그가 남긴 언동을 통해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7] 서연이는 몸은 좀 불편했지만 항상 남을 배려하고 밝고 아빠음악과 백스트릿보이즈 웨스트라이프 등 가사를 전부외울정도로 비상한아이였습니다. # [8] 김광석의 친형 김광복씨는 “이건 공개되지 않았던 것인데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당시에 썼던 일기”라고 설명했다. 이 일기장에는 아내 서해순씨로 인한 괴로운 감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생전 메모광으로 유명했던 김광석은 일기장에 “스스로 자라온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키느냐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 결국 결과는 스스로 만든 것이다.”, “자꾸만 꿈속에서 불륜의 현장을 목격하고 격분하는 나.”, “이성적으로 통제되는 것이 감성으로는 통제가 되질 않는다. 내가 어찌될지도 무섭다.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려나.” 등의 글귀를 다수 적어 놓았다. “아내가 나 아닌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 그저 설레임이 아닌 그의 이름을 부르며 미소짓고 늘 그를 먼저 보호하려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진정 마음이 움직이고 그저 곁에 있기만 하여도 안락한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아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처음엔 화가 나고 참기 어려웠다.” 김광석은 “끝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내 이기심에서 온 아쉬움과 약오름이 날 못 견디게 하지만 아내를 질타할 수 없는 것, 인생이라는 알 수 없는 꿈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어 “한편으로 아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한다. 완전 소통을 할 수 있었으면. 아내가 무섭다. 어떤 일을 벌릴지 알 수 없다. 사랑이 부족했던가. 내 잘못이라고 하지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서해순씨와 뉴욕에 간 지 열흘쯤 지나 쓴 일기에는 “아내는 2일 밤이나 외박하고 첫 날은 공연 전날인데 소식도 없이 나를 애태우게 했다. 경찰서에 가서 바보가 된 기분. 아내가 낯선 남자들과 이틀 밤이나 술 마시며 함께한 것에 대해 나에게는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9] 항소심 선고는 2006년에 있었으므로 그때까지는 당사자인 김 양이 생존해 있었다. [10] 해당 의혹 제기가 안 나올 수 없는 것이 서해순이 심지어 죽은 딸이 살아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11] 김광석 음반의 실젤 판매량은 21세기 들어 거의 없으므로 큰 의미는 없고. 실제로 21세기에 수익이 늘어난 것은 음원 저작권, 저작인접권 같이 노래방이나 방송, 유튜브 등에서 방영되는 수익이므로 서해순 딸이 가지지 않고 서해순이 가진 권리였다. [12] 링크에는 그렇게 서술되어 있지만 사실 이투스 댓글알바 사건 같은 것도 맡았다. 그러나 해당 사건마저도 그가 법률대리인이라는 이유로 싸늘한 여론을 맞은 때가 있었다. [13] 아이디 뒷부분이 가려져서 노출되지 않지만 댓글 신고를 하게 되면 전체 아이디가 확인된다. [14] 이상호 기자나 JTBC 양원보 반장은 이 점을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SNS나 커뮤니티에서 유행어로 밀려는 조짐도 있었다. [15] 이와 유사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7년 1월 1일 신년 기자 간담회. 이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세월호 사고 당시의 행적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 해명하면서 온갓 과장된 손짓발짓을 섞어서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해명이라는 내용이 핵심은 교묘히 피한 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다보니 듣는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석연치 않고 오히려 논란만 증폭시키는 역효과가 나왔다는 점까지 놀랄 만큼 닮았다. [16] 서해순 씨의 반론을 환영한다고 손석희가 변호사 인터뷰 당시부터 언급한 내용이며 이는 언론보도의 교과서적 절차다. 절대 서해순이 해명을 먼저 요청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석희가 서해순의 해명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17]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라는 어이없는 말을 남겼는데 그건 뒷조사도 뭣도 아닌 그저 언론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해 취재한 내용을 말한 것뿐이었다. [18] 참고로 장애인 사회에서 장애우는 '나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장애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 장애를 이유로 친한 척하는 단어'라고 느껴 싫어하며 장애인의 가족도 장애우란 단어에 있어 가족의 반응이나 의식을 공유하는 등의 이유로 비슷한 불편함을 가지기 때문에 싫어한다. 서씨가 이런 올바른 용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 가족을 두고 장애우라고 지칭하는 것은 이상한 느낌을 준다. [19] 실제로 위의 인터뷰 영상의 26분 20초경부터 보면 자신의 아이와 남편의 사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슬퍼하지 않고 웃기까지 하면서 뻔뻔한 행동과 말을 하고 있는 서해순을 보고 손석희 앵커가 '얘는 대체 뭐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20] 어떠한 발언을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21] 오죽하면 인터뷰 시작 5분도 안 돼서 진행자가 '진정하시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22] "가져가시라 그러시라고요. 저는 내가 일부러 가지려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게 욕심이 나시면(...), 서연이 몫이. 가져가시라 그러시라고요." - 인터뷰 내용 中 - 조금이라도 고민할 여지가 없는 헛소리다. 본인이 정말로 저작권을 가질 마음이 없었다면 원래부터 저작권을 전부 김광석의 유족에게 이양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유족들에게 저작권을 양도하지 않은 사람은 서해순 본인이다. [23] 예술가, 가족, 불륜, 타살 의혹 등등 진짜 한 가지 사건에 별별 것들이 다 있다. [24] 적극적인 해명, 자기방어 시도, 억울함을 표시했다는 기록. [25] 여기서 하는 권고는 '법 잘 지키라'는 의미일 뿐이며 국가기관이라는 권위가 아니라면 씨알도 안 먹힌다. 더욱이 이 일은 민사분쟁이라 국가인권위와는 별개다. [26] 애초에 이 사건의 시작인 이상호와 대중들은 "김광석의 죽음에 의문점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김광석과 서연양의 죽음의 배후는 서해순이고 이를 증명해야 된다!" 며 '범인 서해순을 단죄한다'는 확실한 목적성을 가지고 처음부터 가해자를 단정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