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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10:26:07

국어 파괴

1. 개요2. 설명3. 정당화론4. 관련 문서 및 외부 링크

1. 개요

國語 破壞

기존의 한국어 한글 체계에서 용인되지 않는 표현을 가져와 사용하는 행위. 이 말을 하며 지적하는 것은 대표적인 규범주의다.

2. 설명

많은 곳에서 ' 한글 파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 국어와 한글을 거의 비슷한 맥락으로 보는 시선에서 와전된 표현이다. 심지어 기자들까지도 그렇게 쓴다. 엄밀하게는 한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글자이기 때문에 단어와 문법 등을 잘못 쓴다고 한글이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한글/문제점 및 논쟁 문서에서 한국어와 한글의 차이를 살펴보자.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국 밖에서는 한국어나 한글이나 잘 쓰이지 않아 혼동해서 그렇지 현대 베트남어 튀르키예어 같은 언어는 주로 로마자를 사용해 표기하지만, 그 언어 체계는 라틴어 및 그에서 파생된 언어들과 전혀 다르다.

' 신조어'와는 다른 뜻이다. 대체로 해당 단어가 기존의 단어로는 설명하기가 난감해서 지상파 TV 방송이나 일간지 등에서 사용될 정도로까지 정착되면 신조어로 여겨지면서 사전에도 등재된아.[1] 그러지 않은 경우에 '국어 파괴'로 여겨지며 대차게 까인다. 개별 단어가 아닌 어문 규정[2]에 변화를 주는 경우에 역시 거의 예외 없이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신조어냐 언어 파괴냐를 가르는 요소는 사람별로 기준이 판이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언어 사용자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방언을 언어 파괴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로서, 대구 방언에서 비롯된 '쌤(선생님)', 인천 방언인 '쩐다(대단하다)' 등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갑자기 유행했기 때문에 이것이 방언임을 모르는 타 지역 사람들은 젊은 세대가 억지로 만든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사실 이 정도는 언어 사대주의(표준어 제일주의)에 가깝다.

3. 정당화론

몇몇 사람들은 '국어 파괴'가 지속되면 최종적으로는 한민족이 유구한 시간 동안 한국어를 통해 축적해 온 문화적 유산을 모두 잃고 의사소통을 서로 못 하게 될 거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언어란 본래 쉼 없이 변화함을 고려하지 않은 오류다. 현대 한국어도 근대 한국어의 입장에서 보면 '국어 파괴'요, 근대 한국어 중세 한국어의 입장에서 보면 '국어 파괴'고, 중세 한국어 신라어의 입장에서 보면... 국어 파괴론대로는 국어 파괴가 상시로 이어지는 것이다. 조선 이전 언어는 현대와는 매우 다르기에 만일 훈민정음이 반포되었던 시절의 조선인과 한국인이 만나면 소통 자체를 못 하고, 조선인과 한국인이 만나서 언어 배움 없이 잘 대화하는 드라마 대부분의 장면들도 상당한 고증 반영 오류로 볼 수 있으나[3] 조선 이전 언어를 쓰는 현대인이 없다시피 하니 사람들은 잘 소통한다.

한국어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건 조선 말기부터이고 우리가 아는 한글의 모습은 주시경이 다듬어 만든 것이다. '한글'이라는 단어도 바로 저 주시경이 만든 단어다. 넓게 보면 세종 대왕의 동국정운이 실패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어 파괴론대로는 그 언어를 사어가 되게 해야 국어 파괴를 막을 수 있다.

국어 파괴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고, 사실 언어의 사회성 역사성을 잘 드러내는 예시이기도 하다. 언어는 애초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암묵적 약속인데 (특히 표준어 규정을 들먹이면서) "무조건 이렇게 써라!", "바꾸면 안 된다!"같이 주장하는 건 어떻게 보면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신조어가 아니어도 (거의) 안 쓰인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 정조 때의 문체반정처럼 젊은 세대가 쓰는 거친 말이나 인터넷 세대의 신조어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한 일이고, 좀 과격한 측에서는 국어 파괴 운운하는 건 신세대 문화를 이해할 생각도 능력도 없는 늙은이들이 꼰대질하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몇몇은 소수가 다수에게 강요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 '소수의 사용자'에게 속하는, 대표적으로 청소년들이 과연 그 언어를 모르는 '다수'와 대화를 할 때에도 그러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생각해 보자. 소수의 사용자들은 그들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과는 표준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소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러한 말투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만이다. 물론 기술주의를 표방하며 말만 통하면 그만이라면서도 자기네 방식이 옳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규범주의인 셈이다.

통신 용어의 사용도 사실 별문제는 아닌 게, 통신 용어는 온라인상에서 타자의 편의성이나 재미, 감정 표현 등을 위해 만들어냈을 뿐이고, 오프라인에서 그걸 말이나 글로 쓰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러기도 어렵고. 거의 모든 통신 용어는 유행이 지나면 사어가 되어 버린다. 이를테면 한때 유행했던 '방가방가' 같은 표현을 요즘 누가 쓰는가?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런 신조어가 사어가 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쓰던 말을 무조건 지금도 계속 쓰는 게 무조건 최고라는 뜻인가? 지금 우리가 쓰는 말도 그 당시에 쓰는 말이 쇠퇴하고 새로 생긴 조어이다. 새로운 말이 계속 생기고 사라지는 것은 사회대로 흘러가므로 어쩌지 못하는 일이다.

번역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번역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번역가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의미다. 번역가는 원래 외국어 실력만큼 중요한 게 한국어 능력인 직업이다. 그런데 자기 직업에서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이 실수할 수 있다는 논리로 안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면 해도 좋은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게 된다.

이것("4. 영어 단어 100개 외울 시간에 2-3개 단어만 집중적으로 파자")과 이것("언어는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生滅)을 거듭한다. 이 같은 언어의 역사성으로 인해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벤야민은 ‘번역 불가능성’보다는 ‘번역 가능성’에 주목한 철학자이다.")도 참고해도 되겠다.

4. 관련 문서 및 외부 링크


[1] 국립국어원에서는 2007년부터 '신조어 사전'이라는 사전을 내고 있다. [2] 문법, 발음법,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 [3] 물론 완벽한 고증/사실 반영은 없다. [4] 이 부분은 언론이 오히려 국어 파괴를 부추긴다는 내용이다. 특히 인용할 때에 따옴표와 인용격 조사, 인칭대명사를 잘못 써서 비문을 만들어내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