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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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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촉한의 장수
관흥 | 關興
시호 현충왕(顯忠王)
성씨 관(關)
흥(興)
안국(安國)
부황 관성대제(關聖大帝)
모후 영황후(英皇后)
자녀 아들 관통, 관이
생몰기간 ?년 ~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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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는 안국(安國). 관우의 아들, 관통 관이의 아버지.

1569년 만력제에 의해 현충왕(顯忠王)으로 추존되었다.

2. 정사 삼국지

정사 <관우전>에 약간 소개되는데, 어려서부터 좋은 평판이 있었고 제갈량이 높이 평가했으며 형 관평이 아버지와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한수정후 작위를 계승하고 약관의 나이에 시중, 중감군이 되었지만[1]몇 년 후 죽었다고 나온다. 그의 적자 관통이 그의 작위를 잇고 후사를 이었지만 또 요절하고 관통이 후사가 없어서 관흥의 서자 관이가 이를 이어 받았다.

그런데 왕은의 《촉기》에 의하면 훗날 방덕의 아들 방회 종회, 등애와 함께 촉나라 정벌에 참여해서, 촉이 무너질 때 관이와 관씨 일가를 찾아내 멸족시켜 버렸다고 하는데... 신당서 재상세계표에 의하면 관흥의 후손이 기주 신도군[2]에 세거했으며, 당 덕종 때 재상을 지낸 관파(關播)는 관흥의 후손이라 한다.[3]

연의의 영향으로 용장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제갈량과 함께 입촉한 사람들은 거의 문관들이다. 그래서 아마 무(武)보다 문(文)쪽으로 재능이 있지않았나 추측된다. 또한 관흥이 맡았던 시중은 황제를 가까이 모시고 궁전을 드나들며 물음에 대답하는 일종의 고문관이었다. 흔히 공신의 자제 대신이 맡았던 작위이기도 하다. 무관 계열이 아닌 문관 계열의 작위인 것. 다만 그가 맡은 중감군의 경우 후임이 등지, 강유라는 점에서 군사적인 재능이 추측되기도 한다. 아무튼 재능을 펴보기도 전에 사망했다.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나관중이 훌륭하게 창작으로 승화시켜, 연의만의 거의 오리지널 캐릭터로 탄생시킨 것이 흔히 알려진 관흥의 모습이다.

첫 등장은 관우가 우금을 수공으로 승리해 잡은 공적을 보고하기 위해 형주에서 성도로 가는 장면이다. 이 덕분에 아빠 및 형과는 달리 살아남을 수 있던 것. 이후 관우의 죽음이 전해지자 유비 앞에 와서 통곡하고, 유비도 같이 통곡하다가 혼절해 버린다.[4]

이후 유비가 오나라 정벌을 떠날 때 아빠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합류한다. 초장에 장포와의 무술 대결에서 보이는 말도 안 되는 활솜씨 등은 신 캐릭터의 임팩트 있는 등장을 위해 늘상 나오는 서비스 장면.[5] 이어 장포와의 대결 과정에서 도가 너무 과하게 된 나머지 창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고, 이를 본 유비가 무례하게 이게 지금 무슨 짓거리들이냐면서 이들의 아빠 얘기를 하며 대판 꾸짖자 본인들의 행태를 반성하였고, 이어 유비가 누가 더 나이가 많냐고 묻자 장포는 본인이 한 살 많다고 하였고, 이에 유비는 장포를 형으로, 관흥을 동생으로 임명하며 의형제를 맺게 하였고, 장포와 관흥은 우애를 다지며 충성을 맹세하기로 하였다.

이릉대전에서 이런저런 활약을 하다가 아빠를 죽인 것도 모자라 청룡언월도까지 차지해버린 원수 반장을 발견하고 쫓다가 길을 잃어 한 어르신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데, 그 지방은 관우를 신으로 모시고 있는 동네였기에 안에는 관우의 신상이 모셔져 있었고, 관흥은 집 주인인 노인에게 큰 환대를 받는다. 그때 우연히도 반장 역시 그 집에 찾아오자 관흥은 분기탱천해서 바로 달려드는데, 도망치던 반장은 신령이 되어 나타난 관우가 나타나는 바람에 데꿀멍해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고대로 굳어버렸다가 관흥에 의해 목이 달아난다. 이후 또다른 원수들인 부사인과 미방이 또다른 원수 마충의 목을 들고 항복해 오지만, 당연히 이들을 용서할 생각 따위는 1도 없던 유비의 화난 명령에 따라 관흥이 둘의 목도 다 쳐버려서 원수를 한꺼번에 다 갚았고, 아울러서 부친의 청룡언월도도 되찾았다.

제갈량의 1차 북벌에서 장포와 마대와 함께 서강을 치러 가는데, 생각 외로 서강군이 강해서 고전하던 중에 서강의 원수 월길에게 쫓기게 된다. 월길의 철추에 말이 맞아 낙마하여 계곡물에 처박혔다가 간신히 월길을 쫓아내고 도망치는데, 또 신령으로서 나타난 부친 관우가 서강군을 마구 죽이며 아들 관흥의 퇴로를 뚫어주고, 신령 관우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의형 장포에게 간신히 구출된다. 한편 관흥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월길은 다음 전투에서 패주하다가 관흥에게 1합 만에 낙마해서 죽는다.

생전 마지막으로 북벌에 참전했을 때는 제갈량이 사마의를 속이기 위해 관흥을 천신으로 꾸미고 검은 칠성기를 들고 자기 앞에 세운다. 그러자 사마의조차 진짜 천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당황한다.

그리고 사망은 알려진 대로 오장원 정벌 준비 즈음 병사(病死)로 처리하였다. 참고로 장포는 관흥이 숨지기 몇년 전에 전투 도중 머리를 심하게 다친 후유증을 앓다가 얼마 안 가 사망하였다. 관흥이 어떠한 경위로 죽었는지는 정사에도 안 나오는 기록이므로 사실 병사 자체도 창작이다. 영웅답게 죽는 것을 중요시한 나관중이 의외로 정사에 가깝게 창작한 몇 안 되는 케이스.

4. 기타

사실 사서의 기록이 짤막하게 있을 뿐 실제로 별다른 활약이 없어서 그런지,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 문화에는 이런 인물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듣보잡이었으며, 아예 존재 자체가 무시되었다. 이복형인 관평은 그래도 여기저기 이름을 많이 내보였지만, 관흥은 그렇지 못했다.

관우 삼남이라는 관색이 창작된 것도 저런 사정 때문인 듯 하다. 사람들이 관흥의 존재를 까먹기도 했고, 무엇보다 방회 때문에 관우의 대가 끊어졌기 때문에 관우의 혈통을 잇고 복수를 할 관색이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던 것이다.

수호전의 108두령 중 한 명인 대도 관승은 관우의 후손이라는 설정이 있지만, 당연히 창작이다.

5. 미디어 믹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관흥/기타 창작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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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촉에서 시중과 중감군의 작위를 만든 것은 221년이다. 역산하면 관흥의 생년은 202년이다. [2] 위나라의 영토였으며 당시 명칭은 안평군이었다. 사마염이 진을 세운 이후 장락군으로 개명되었다가 수나라 때 신도군으로 개명된다. 지금의 허베이성 헝수이시 지저우구이다. [3] 2001년 관우의 67대손 관중진이 발견되었는데, 족보에 따르면 그는 관우의 장남 관평의 후손이다. 이 족보에서는 관평의 아내가 조운의 딸 조씨, 관평의 아들이 건안 18년(서기 213년)에 태어난 관월(關樾)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방회가 멸한 것은 관흥의 자손이되 다 멸하지는 못했고, 오나라 형주에 살던 관평의 자손은 건드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4] 연의 기반 창작물에선 이 부분을 생략해버리고 장포와 함께 곧장 출정하는 것으로 첫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5] 근데 부친끼리 의형제이니만큼 자녀들끼리도 한 번 이상은 교류가 있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이들은 초면인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