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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10

곤지암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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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곤지암읍

昆池岩邑 | Gonjiam-eup
<colbgcolor=#00aa51><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광주시
행정표준코드 5540154
관할 법정리 16리
하위 행정구역 35행정리 121반
면적 76.17㎢
인구 22,681명[1]
인구밀도 297.7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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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광여로 59 (곤지암리 135-3)
곤지암읍 행정복지센터
1. 개요2. 역사3. 정치4. 특징5. 교통
5.1. 철도교통5.2. 도로교통5.3. 버스교통
6. 교육
6.1. 관내 학교 목록
7. 법정리 일람
7.1. 건업리7.2. 곤지암리7.3. 만선리7.4. 봉현리7.5. 부항리7.6. 삼리7.7. 삼합리7.8. 수양리7.9. 신대리7.10. 신촌리7.11. 연곡리7.12. 열미리7.13. 오향리7.14. 유사리7.15. 이선리7.16. 장심리
8. 행정9. 인구10. 출신 인물11. 기타
[clearfix]

1. 개요

<nopad> 파일:gonjiam_office.jpg
곤지암읍 행정복지센터 전경

경기도 광주시. 동쪽으로는 여주시 산북면, 서쪽으로는 초월읍, 남쪽으로는 도척면 이천시 신둔면, 북쪽으로는 퇴촌면[2]과 마주하고 있다.



2024년 1월 25일 국토교통부에서 GTX-D가 지나가는 곳으로 선정되어 많은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 역사


원래는 실촌읍이었으나 이 읍 소재지인 곤지암리의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서 실촌읍 지역 전체가 곤지암이라고 불리게 되자 아예 2011년 6월 21일에 읍 명칭이 곤지암읍으로 변경되었다.

여담으로 곤지암 나들목은 곤지암리에 있지 않고 삼리에 있다. 곤지암IC는 원래 실촌읍 곤지암리에 있었으나, 1981년, 1982년, 2001년, 2008년, 2011년 네 번의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곤지암리를 곤지암리, 수양리, 봉현리, 삼리 등으로 분리하면서 삼리로 들어간 것이다.

광주시사 1권 469쪽에 따르면 한국 전쟁 중에 중공군의 참여로 후퇴하던 유엔군은 서울로 진출하기 위해 양평이 필요했고, 양평으로 가는 길목인 곤지암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제7기병연대(연대장: 윌리엄 A. 해리스)가 탈환 임무를 맡았다. 휘하 대대(2대대, 3대대와 그리스대대)가 이천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경안동이 위치한 경안리로 진격했다. 1951년 2월 6일에 그리스대대가 곤지암읍내로 진입하여 곤지암리 대석동 인근에 집결하였다. 이곳에 연대 사령부를 세웠는데 해당 위치는 오늘날의 곤지암역 근처이다. 7연대 휘하의 부대들 목표는 대석동 북쪽에 위치한 402고지 근처의 무명고지와 쌍동리 인근의 489고지[4], 초월면 등이었다. 오늘날의 초월역을 둘러싼 고지들에서 전투가 치러졌고, 2월 10일 13시 무렵에 무명고지를 점령했을 때 중공군 시신 150기가 유기되어 있었다. 이후 후속부대와 국군 부대가 상열미리 인근으로 진출하면서 이 지역의 탈환은 완료되었다.

3. 정치

1950년 한국은 면의원을 선거로 뽑았다. 당시 실촌면에서도 면의원 11명을 뽑았다. 1952년 실촌면의회 의장은 송수현(당시 65세)이었고, 부의장은 이강윤이었다. 이후 56년 선거에선 문용기(당시 46세)가 면의회 의장을 맡았다. 면의원 상당수는 이장, 구장, 경찰 등 지역사회의 유지급들이었다. 이후 읍면의 의회가 폐지된다.

4. 특징

타지인들에겐 CJ대한통운 물류 허브로 제일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물류허브는 곤지암읍이 아닌 옆동네에 있다.[5]

곤지암소머리국밥으로 유명하다. SBS 등 몇몇 매체에서는 곤지암읍으로 개명된 이유로 곤지암IC보다도 이 국밥을 먼저 언급했을 정도.

5. 교통

5.1. 철도교통

5.2. 도로교통

5.3. 버스교통

6. 교육

6.1. 관내 학교 목록

7. 법정리 일람

가나다순으로 기재한다.

7.1. 건업리

建業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496명이다.

만선리의 북쪽에 위치한다.

게네비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옛날에 여주 금사면에 살던 장수가 전쟁에 나갔다가 패하고 기어서 왔는데, 기어서 왔다고 게네비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5세기에 어느 밀양 박씨 장수 하나가 낙향해 이곳에다 마을을 만들고 건업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상건업과 하건업 마을 2곳이 있었다. 현재도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 있다.

남이고개란 곳도 있다. 이곳에서 남이 장군이 화살을 쏘고 달려가면 말이 화살보다 먼저 도착했다고 한다.

이스트밸리CC가 있다. 곤지암천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광주원주고속도로가 이곳을 지나고, 동곤지암IC 소재지이다. 유명한 보리밥집이 있다.

7.2. 곤지암리

<nopad> 파일:city_of_gonjiam.jpg <nopad> 파일:mukbangmaeul.jpg
곤지암교에서 바라본 읍내 시가지(곤재마을) 경충대로에서 바라본 곤지암리 묵방마을
昆池巖里. 읍사무소 소재지이다. 인구는 2020년 10월 기준으로 8,155명이었다.

예전에는 곤을 崑이라 적었으나 지금은 昆이라고 적는다. 암도 보통 岩으로 적는다.

곤지암이란 이름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조선조 중기에 임진왜란 때 패전장인 신립(申砬) 장군의 표가 있었는데, 그 곳에 조금 떨어진 곳에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을 타고 이 바위 앞을 지나가면 말굽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 장군이 그 앞을 지나다 '패전장군이 무슨 체면으로 지나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큰 소리를 쳤더니 갑자기 천둥번개를 치면서 바위가 두 쪽으로 나버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후부터는 고양이 모양의 바위가 없어졌다고 한다.

평산 신씨에 따르면 다른 유래도 있다.
신립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달천에 몸을 던져 순국한 후, 시신을 못 찾아 후손들의 그의 옥관자만을 어부를 통해 찾아서 지금의 묘가 있는 신대리 산1번지에 산소를 쓰려고 하였으나, 묘자리가 쥐혈인데, 묘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고양이와 똑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묘를 쓸 수 없다고 하므로, 상여가 대쌍령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있었다. 그날 밤 광풍이 불고 벼락이 고양이 바위를 쳐서 두 동강이 나고 그 앞에 연못이 생겼는데, 그 바위가 없어졌으므로 묘를 쓸 수 있다고 하여, 다시 상여를 메고 뒤돌아 와서 지금의 묘자리에 산소를 썼다고 한다. 바위가 벼락을 맞고 갈라진 틈에서 향나무가 나와 자라서 지금도 300년이 넘도록 잘 자라고 있다. - <광주의 지명 유래> p167

대한제국 시기에는 곤지암리(곤재)와 묵방리, 대석리가 따로 있었으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졌다.

자연 마을 구분으로 따지면 곤지암리엔 3개의 마을이 있었다.
- 곤재(昆在): 곤지암리의 본동을 일컫는 말로 '곤지암이 있는(在) 곳'이란 뜻이다.
- 다석동(多石洞ㆍ대대미): 이곳에는 땅을 파보면 돌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다석동'이라 하였는데 그 후에 '대석'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파낸 돌로 담(牆)을 쌓았다고 해서 '대대미'라 부르기도 한다.
- 묵방(墨防ㆍ먹방): 조선조 인조 때 이활(李活)이[6]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이천쪽으로 도망가던 중 이곳 노상에서 잡혀 처형된 일이 있는데 '모반하는 검은 마음을 방지하였다'고 해서 '묵방' 또는 '먹방'이라고도 한다. 경기 광주시의 소개 페이지

곤재는 현재의 곤지암 1리, 4리, 5리, 6리에 해당하고 묵방마을은 중부컨트리클럽이 위치한 곤지암 2리에 해당한다. 다석동은 현재의 곤지암 3리와 곤지암역세권개발사업이 위치한 아랫들을 포함한다. 곤재란 이름은 곤지암이란 이름 때문에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묵방이란 이름은 버스 정류장의 이름으로 남아 있고, 다석동 역시 대석동길이란 도로명으로 남아 있다.

광주시청 그땐 그랬지, 1980년대 농수산부장관이 방문했던 곤지암리 논밭(아랫들 추정)

광주시청 그땐 그랬지, 1982년 곤지암단위농협 사무실 신축준공

경충대로가 읍내를 통과하며 수도권 전철 경강선 곤지암역이 위치해 있다. 곤지암역이 위치한 곤지암천의 북안은 신석기 유적지가 있으며 역사 개발 당시에도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역사 위치보다 약간 북쪽인 곤지암역세권개발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유적지가 발굴되어 개발 진척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8년도 제12차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발굴 유적 내에 적석총(돌무지무덤)이 위치해 있다. 곤지암리 367번지 일원에 묘곽 80여기가 위치해 있고, 원삼국시대부터 백제시대까지 주거지 92기, 수혈 85기, 굴립주건물지 11기 등 20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의 주거지도 3기, 노지 4기가 확인되었다. 문화재청 PDF 파일

곤지암천의 남쪽 방면에 난 도로인 곤지암로를 따라 읍내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곤지암로는 2차로로 시가지가 좁고 길다. 곤지암터미널을 중심으로 병의원과 각종 편의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주거 시설은 쌍용아파트 1차와 2차, 노블리제 아파트 단지가 읍내에 있다. 과거 읍내에 읍사무소가 있던 곤지암로 위치에는 곤지향어울림마당이라고 문화시설이 생겼고 읍사무소는 광여로로 옮겼다.

우체국 뒤에 위치한 곤지암50번길에 5일장이 선다. 곤지암소머리국밥이 유명하여 곤지암소머리국밥거리도 있다.

산업시설로는 동쪽으로 곤지암천을 따라 석재회사 등 여러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노곡천을 따라 서남쪽으로도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읍내와는 분리된 목방마을이 있며, 동남쪽에 골프장도 위치해 있다.

2015년 12월 28일, 대전 유성구 총격 사건의 범인이 이곳까지 도주해서 당시 주차장으로 사용중이었던 구 읍사무소 부지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7.3. 만선리

<nopad> 파일:manseon_city.jpg
만선리의 중심 시가지(만선로)
晩仙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699명이다. 곤지암천이 흐른다. 다른 리들에 비해 비교적 평지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초등학교( 만선초등학교)도 하나 있다.

걸스데이 혜리의 출생지다. 어쩌다 FC와 맞붙은 만선 FC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광주이씨의 집성촌이 있다.

조선시대 때는 만곡동(晩谷洞), 상탑선리(上塔仙里), 하탑선리(下塔仙里)의 3개 자연 취락이 있었다. 부군면 통폐합 당시에 만곡동의 만과 탑선리의 선에서 따와 만선리란 이름을 붙였다.

또 다른 유래를 말하는 설화에 따르면 이선리에 신선이 둘 살았는데, 이 곳에 사는 신선은 매번 약속에 늦어서 만선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옛 동네에 탑이란 이름이 붙은 건, 액땜을 하기 위해 탑을 쌓았던 데서 비롯한다. 현재 탑은 전하지 않는다.

만선초등학교가 있다.

7.4. 봉현리

鳳峴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400명이다.

대한제국 때까지는 상조현동(上鳥峴洞), 하조현동(下鳥峴洞), 설월리(雪月里)가 있었다. 부군면 통폐합 때 조현의 새 鳥를 새 鳳으로 바꿔 봉현이란 이름이 붙었다.

조현이란 이름은 새재, 새고개 등에서 나온 말로 마을의 모양이 랑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 상조현동은 윗새재, 하조현동은 아래새재였다.

설월리란 이름은 이 주변이 산지라서 눈이 내리면 응달이라 봄이 되도록 녹지 않아, 달빛이 눈 위에 비치면 아름답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아래새재에는 문씨 문중이 살았는데, 1919년 3.1 운동 당시 문홍규(文鴻圭)란 사람이 만선리의 이병승(李秉昇)과 당시 오향리에 있던 실촌면사문소 앞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고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라 곤지암읍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웃개마을천이 흐른다.

성남이천로의 봉현터널이 이곳의 산들을 뚫고 지나간다. 지금은 성남이천로가 지나가고, 진입로가 바로 봉현리에 있는 만큼 교통은 좋아졌다.

주로 창고나 공장이 들어와 있다.

7.5. 부항리

釜項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378명이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전까지는 우항동(牛項洞)과 부곡동(釜谷洞)으로 나뉘었다. 이 둘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서 부항리란 이름이 붙었다.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의 목이나 가마솥 모양 등을 닮았다 하여 붙은 지명이다.

고려말에 공민왕 홍건적을 피해 피난갈 때, 후궁이 이곳에서 아들을 낳았으나 죽어서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능골이란 이름이 붙은 곳도 있다.

봉현리와 같이 산에 둘러 싸인 지역이다.

성남이천로의 부항교가 위치해 있다. 곤지암읍 동부 지역의 리들로 갈 수 있는 교통 로터리도 위치해 있다. 로터리에서 동쪽으로 가면 남촌CC가 나오고 북으로는 만선리, 서로는 열미리, 남으로는 봉현리가 나온다.

7.6. 삼리

<nopad> 파일:city_of_samri.jpg 파일:samri_on_gyeongchoon.jpg
곤지암천에서 바라본 삼리 시가지 경충대로에서 바라본 삼리

三里. 곤지암리 다음으로 번화한 곳으로 경충대로에서 초월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인구는 2021년 7월 기준으로 6,695명이다. 본래는 도척면 소속이었으나 1973년에 신대리와 함께 실촌면으로 소속을 옮겼고, 현재의 곤지암읍에 이른다.

구석기 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자연 취락이 있었다.

과거에는 도척면 소속이었다. 구석말, 벌말, 잔다리 3개 마을을 합쳐서 삼리란 이름이 붙었다. 1973년에 도척면에서 실촌면으로 넘어와 현재에 이른다. 벌말은 지금의 도자공원 근처이다.

1980년대에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게 되면서 곤지암IC가 생겼다. 경기도 종축장도 있었는데, 용인시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2001년에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개최하였다. 조선관요박물관도 이때 만들었고 현재 경기도자박물관이란 이름이다.

팀업캠퍼스, 경기도자박물관이 있다.

걸스데이 혜리가 태어나기는 만선리에서 태어났으나 이곳에서 자랐고, 삼리초등학교를 나오기도 했다.

2021년 들어서 스타벅스도 입점했다. 하남이나 광주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운전면허 따러 오는 곳으로 많이 와봤을 것이다. 광주제일자동차운전전문학원도 삼리에 있다.

7.7. 삼합리

三合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383명이다.

지음리(地音里, 징골), 야포동(冶浦洞, 풀무께), 국정포동(國井浦洞, 국정개) 3곳이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져 삼합리란 이름이 붙었다. 세 마을을 합쳐서 삼합이다.

공민왕 홍건적을 피해 피난왔을 때 이곳에 왔다고 한다. 병사들이 병기를 만들던 곳엔 야포란 이름이 붙었다. 불경을 외우던 곳엔 지음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국정포동이란 이름도, 임금이 이곳에 왔을 때 우물을 파서 마셨다고 해서 붙었다.

공민왕이 경북 안동시로 가던 길에 묵던 고개에는 공민봉이란 이름도 붙었다.

유사리와 마찬가지로 광주원주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경기광주휴게소 원주시 방향이 이곳에 위치한다.

7.8. 수양리

파일:suyangri shinchoncheon.jpg
수양리를 흐르는 신촌천

水陽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1,011명이다.

경충대로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며 남쪽에 1리와 2리, 북쪽에 3리와 4리가 위치해있다. 자동차공업사 등 여러 공장이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엔 자연 취락이 3곳 있었다. 구수동(九水洞), 구양동(九陽洞), 복상동(卜尙洞) 3곳이었다. 구양이란 이름은 거북 구를 쓰기도 했는데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복상이란 이름은 伏象이라고도 적었는데, 코끼리가 엎드린 모양이라고 했다. 3곳이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지면서 구수동의 수와, 구양동의 양을 따와 수양리란 이름이 붙었다.

과거에는 양잠 인삼 재배 등을 하였으나 현재는 사업체들의 공장과 창고가 주로 위치해 있다.

리의 중심에 신촌천이 흐르는데, 적은 인구에도 신촌천 중간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양공동묘지가 있다.

불당골산, 승지골산, 큰재산, 방둔산, 국수봉이 리의 경계를 이룬다.

수양2리에 AKW 퍼포먼스 센터가 위치해 있다.

7.9. 신대리

파일:tomb_of_general_shinlib.jpg
신대리의 평산 신씨 묘역

新垈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741명이다. 곤지암천을 끼고 삼리와 바라본다.

신립장군 묘가 있다. 지금은 철거된 곤지암 정신병원도 이곳에 있었다.

과거 정암목장 등이 있던 골짜기에 CU와 쿠팡의 대규모 물류센터가 들어섰다.

신대리 일원에 금호어울림에서 약 600세대의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다. 신대리 20-2번지로, 신대1지구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2020년에 여기서도 도자기 등 유물 300점 이상이 나왔다. 매장문화재 출토유물 공고(광주 신대1지구 공동주택 건립부지 내 유적) 이 부근은 2000년대 중반에도 다른 곳에서 공사를 하려다가 무산된 적이 있다.

과거에는 초월면 소속이었다. 그때 이름은 신대동이었다. 새로 터를 잡고 지은 동네란 뜻이었다.

16-17세기에 백자를 굽던 도요지 22곳이 있었다.

신립의 묘소가 여기에 있다. 평산 신씨의 종중도 있다. 그외에도 신씨의 여러 묘소가 있다.

7.10. 신촌리

파일:shinchonri gonjiam.jpg
신촌리의 대표 랜드마크 동원대학

新村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398명이다.

신촌천이 발원한다. 신촌리의 동쪽으로 가면 경기도 이천시이다. 경계에 동원대학이 있다.

조선 말 때까지는 인배, 되때기, 광현(넉고개)이란 세 마을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 신촌리가 되었다.

넉고개란 이름은 신립의 상여를 매고 이천을 넘는데 상여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넉고개를 넘을 무렵 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넋이 여기서 떠났다고 하여 넋고개라 하던 것이 넉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한자로는 廣峴이라 적었다.

인배(仁裵)란 이름은 어진 배씨가 많이 살아서 붙었다고 한다.

경충대로의 원형이 되는 신작대로는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했는데, 그때문에 신촌리 인근에도 신작로 주막거리가 있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의 양평과 이천 구간이 이곳을 지나간다.

동원대학 버스 차고지가 위치해 있다. 동원대학은 버스 차고지가 내부에 있어 정문에서 출입 통제를 따로 하지 않아 외부인도 드라이브 스루로 돌아다닐 수 있다. 대학이 있지만 대학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7.11. 연곡리

蓮谷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558명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이 있었다. 몸돌, 찍개, 긁개 등이 1997년에 토출되었다.

예전엔 연곡동이란 이름이었다. 공민왕이 피난을 와서 밥을 짓는데 이 동네까지 연기가 와서 연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후에 조선 숙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이당규가 이곳에 묘를 썼는데, 그 형상이 연꽃과 비슷하다고 하여 연꽃의 蓮을 써서 이름이 붙었다.

7.12. 열미리

悅美里. 상열미리와 하열미리로 나뉜다. 각각 인구는 2021년 7월 기준으로 258명과 1,218명이며 합계 1,476명이다.

능성 구씨 집성촌이 있다. #

원래 2007년경 이곳에 현진에버빌 2차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2009년 (주)현진의 부도로 인해 망했다.[11] 당시 문서, 주의 PDF 파일 자동 다운로드됨 2008년 11월 4일부터 공사가 중단되어 그 상태로 계속 있었다고 한다. 2008년 12월 기사 2007년 공사를 시작했을 때 계획은 376세대를 분양하는 것이었다. 2007년 기사

조선 시대에는 상열미동, 중열미동, 하열미동 3곳의 마을이 있었다.

열미란 표기는 연미(燕尾)의 발음이 변한 것인데 제비 꼬리를 뜻한다. 연미복할 때 그 연미 맞다. 조선 세조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의 묘소가 제비 꼬리의 형상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상열미리부터 개울이 흘러 곤지암천과 합류하는데 를 만들어 농사에 물을 댔다. 황씨가 만든 보는 황씨보, 구춘서란 인물이 개척한 보는 춘서보란 이름이 붙었다.

6.25 전쟁 때는 격전지 중 하나였다. 중공군 유엔군, 대한민국 국군이 격전을 펼쳤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남성들을 데려가서 여성들이 농사를 짓기도 하였다고 한다. 출처 광주시지

성남이천로의 광주4터널과 5터널이 이곳의 산들을 통과해서 간다.

7.13. 오향리

五香里. 상오향리와 하오향리로 나뉜다. 각각 인구는 2021년 7월 기준으로 506명, 441명으로 합계 947명이다.

열미리에서 만선리로 건너 가는 길에 있다.

무학봉, 맹자봉, 자지봉, 국수봉, 노적봉 5개의 산봉우리를 섬기던 데서 따와 오향리란 이름이 붙었다. 이 이름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 쓰였다고 한다.

과거엔 곤지암읍의 중심지였다. 실촌면사무소가 이곳에 있었고, 1919년 3.1 운동 때도 실촌면민들이 이곳에서 만세 운동을 했다. 이후에는 곤지암리로 면사무소가 옮겨갔다.

광주원주고속도로 성남이천로가 모두 오향리를 지난다. 고속도로 진입로는 없고, 성남이천로는 바로 옆의 열미리의 열미교차로로 진입할 수 있다.

골프장 큐로CC가 위치해 있다.

7.14. 유사리

柳寺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265명이다.

만선리를 따라 동북으로 가면 있다.

유여리(柳余里)와 사동(寺洞) 2곳을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 한 글자씩을 따와 유사리란 이름을 붙였다. 각 이름은 버드나무이 있던 데서 따온 것이다.

조선백자 도요지가 8개소 있었다.

광주원주고속도로가 이곳을 지난다. 경기광주휴게소 광주 방향도 유사리에 위치한다.

7.15. 이선리

二仙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198명이다. 이천시와 경계를 이루는 원적산(圓寂山) 등산로가 있다.

부군면 통폐합 전까지는 내선동(內仙洞)과 외선동(外仙洞) 두 마을이 있었다. 이후 합치며 이선리란 이름을 붙였다. 선이란 이름은 신선이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골짜기에 둘러싸인 지역으로 곤지암읍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리이기도 하다. 남촌CC와 그린힐CC 골프장 2곳이 위치해 있다. 합치면 36개 홀이 된다.

남촌CC는 소재는 이선리이지만, 이선리에서는 차로로 들어가기 어렵다. 봉현리로 들어가야 한다.

7.16. 장심리

長深里. 2021년 7월 기준으로 인구는 454명이다.

장재동(長在洞)과 동심리(洞深里)를 부군면 통폐합 때 합쳐서 장심리라고 이름 붙였다.

15-16세기에 장재울 큰골 쪽에 조선백자 도요지가 있었다.

길쭉한 골짜기 지형으로, 만선리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광주원주고속도로가 이곳을 지난다.

8. 행정

곤지암읍 행정복지센터 안내 읍장은 5급 공무원이 맡는다.

곤지암 파출소 안내

9. 인구

광주시사 6권 184쪽에 따르면, 1990년에 2,562세대 1만 428명이 거주했다. 당시는 아파트가 없었다. 쌍용아파트, 현진에버빌, 킴스빌리지, 엘지아파트, 노블리제 등이 90년대와 2000년대에 생기면서 2007년 인구는 9,201세대 2만 4,573명이 되었다.

2020년 10월 기준, 22,846명이다. 경기 광주시에서 작성한 주민등록 자료에 근거하였다. 경기 광주시 통계 출처 위의 통계는 내국인만을 기준으로 작성한 것이며, 외국인의 숫자는 2018년 10월 기준으로 2,931명(男2,047女884)이었다. KOSIS 통계 내국인과 외국인을 합한 곤지암읍의 인구는 대략 2만 5천명 선에 가까운 편이다.
구분 인구 남성 여성 세대
곤지암읍 22,846 12,169 10,677 11,148
곤지암1리(1통) 1,649 874 775 844
곤지암2리(2통) 1,862 1,004 858 876
곤지암3리(3통) 614 359 255 386
곤지암4리(4통)
(LG아파트)
468 225 243 206
곤지암5리(5통)
(쌍용1차아파트)
1,161 571 590 440
곤지암6리(6통)
(쌍용2차아파트)
1,154 563 591 406
수양1리(7통) 317 168 149 173
수양2리(8통) 361 198 163 208
수양3리(9통) 150 87 63 85
수양4리(10통) 202 117 85 94
신촌리(11통) 392 224 168 227
봉현1리(12통) 264 133 131 152
봉현2리(13통) 136 77 59 70
부항1리(14통) 169 95 74 95
부항2리(15통) 212 113 99 124
이선1리(16통) 100 62 38 62
이선2리(17통) 98 54 44 55
만선리(18통) 681 399 282 386
유사1리(19통) 138 76 62 66
유사2리(20통) 148 77 71 77
삼합리(21통) 346 189 157 183
건업리(22통) 480 260 220 280
장심리(23통) 454 232 222 220
연곡1리(24통) 454 253 201 257
상오향리(25통) 485 277 208 257
하오향리(26통) 337 195 142 186
상열미리(27통) 261 144 117 141
하열미리(28통) 1,191 666 525 599
신대리(29통) 736 430 306 407
삼1리(30통) 480 289 191 291
삼2리(31통) 2,573 1,400 1,173 1,237
삼3리(32통)
(킴스빌리지)
2,017 987 1,030 1,046
삼4리(33통)
(현진에버빌)
1,420 704 716 496
곤지암7리(34통)
(삼주노블리제)
1,247 627 620 446
연곡2리(35통) 89 40 49 70

10. 출신 인물

11. 기타

배우 김민교가 곤지암읍에 거주한다.

영화 곤지암과 이름이 같아[12] 이 영화에 대해 반감을 표출하는 사람이 꽤 있다.

파일:gonjiam.png
곤지암 명칭에 얽힌 바위는 곤지암초등학교 옆에 있으며,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수령이 400년이 넘은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과거엔 이곳 옆에 연못이 있었으나 현재는 매립되어 학교들이 있다.


[1] 2023년 3월 주민등록인구 [2] 다만 퇴촌면과는 산으로 막혀있어 퇴촌면으로 가려면 광주시내를 경유해야 한다. [3] 곤지암리 135-3 [4] 오늘날의 백마산 인근으로 추정된다. [5] 지방인은 곤지암HUB가 제일 무섭다. [6] 이활은 이괄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홈페이지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다. [7] 2차도 열미리에 공사 중이었으나 도산으로 중단되었다. [8] 2017년 연 곳으로 축구장 2개와 테니스장 3곳, 농구장 1곳(반코트)이 있다. 관련기사 서북쪽으로 직선거리 500m만 가면 초월생활체육공원도 있다. [9] 축구장 2곳과 야구장 3곳이 있다. 야구장은 좌우거리 100m로 잠실과 같다. [10] 도자공원의 전시물들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정상으로 갈 수 있다. [11] 1차아파트는 그전에 지어져 입주가 된 상황이었다. (주)현진은 부도가 났다가 다시 되살아나 현재도 아파트를 짓는다. [12] 이곳에 위치했었던 곤지암 정신병원이 모티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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