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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2:58:55

경녕군

조선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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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태종의 왕자
경녕군 | 敬寧君
파일:경녕군묘.jpg
경녕군묘 전경
출생 1395년 1월 15일[1][2]
조선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망 1458년 10월 15일[3] (향년 64세)
조선 충청도 충주군
(現 충청북도 충주시)
묘소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재위기간 조선 정윤
1414년 2월 3일 ~ 1414년 2월 18일
조선 원윤
1414년 2월 18일 ~ 1417년 10월 21일
조선 경녕군
1417년 10월 21일 ~ 1458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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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비(𰨅 示+非)[4]
부모 부왕 태종
모친 효빈 김씨
형제자매 부왕 기준 12남 17녀 중 4남
모친 기준 외아들
배우자
3명 [ 펼치기 · 접기 ]
정부인 청원군부인 청풍 김씨
(淸原郡夫人 淸風 金氏)[5]
1계부인 군부인 개성 마씨
(郡夫人 開城 馬氏)
2계부인 군부인 전주 최씨
(郡夫人 全州 崔氏)
자녀 10남 2녀
정숙(正淑)
군호 정윤(正尹) → 원윤(元尹)
경녕군(敬寧君)
시호 제간공(齊簡公)
품계 대광보국숭록대부
(大匡輔國崇祿大夫)
}}}}}}}}} ||
1. 생애2. 가족관계
2.1. 후손
3. 창작물에서

[clearfix]

1. 생애

조선 전기의 왕족. 태종 이방원 효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장자이다.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까지 5대에 걸쳐 국정에 충성하며 협조하였다. 1417년(태종 17년)에 정 2품 정헌대부(正憲大夫)가 되었으며, 세종 원년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영락제로부터 황금, 백금, 말, 비단, 양 등의 많은 답례품을 받아왔으며, 1425년(세종 7년)에 종 1품 숭록대부에, 1430년(세종 12년)에 정 1품 대광보국숭록대부에 봉해졌다.

세조가 즉위한 뒤에는 충주로 이거하여 여생을 보내다, 어머니 효빈 김씨가 죽고 4년 만인 1458년에 생을 마쳤다. 묘역은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에 있으며 묘역 앞에는 위패를 모신 사당 명덕사가 있고 전주 이씨 경녕군파의 파시조이다.

2. 가족관계

2.1. 후손

경녕군의 후손으로 유명한 이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지봉유설의 저자인 이수광이 있으며, 현대의 인물로는 정치인 이노근, 연예인 이미자가 있다.

3. 창작물에서

각종 격변이 일어난 조선 전기의 왕족인데다 그 어머니인 효빈 김씨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 태종의 후궁으로 들어온 인물이라서 이름 자체는 종종 언급되지만, 중대한 사건을 주도했다거나 하는 등 큼직한 활약을 한 적은 없어서 비중은 거의 없는 편이다.


[1] 음력 태조 3년 12월 13일 [2] 경녕군은 아버지인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낳은 아들임.형제들 출생년도는 원경왕후의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이 1394년, 효빈김씨의 아들 경녕군이 1395년, 원경왕후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1396년으로 출생함. 조선왕조실록에 임오년으로 잘못 오기되어 1403년생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이는 잘못된 오기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3] 음력 세조 4년 9월 9일 [4] 태종의 아들들은 모두 보일 시(示) 부수를 돌림 이름으로 쓰는 외자 이름이기에 경녕군의 이름도 부수가 의(衣)의 변형인 衤가 아니라 礻다. 그러나 이 글씨는 유니코드 U+30A05로 글씨가 안 뜬다. [5] # [6] 창원 정씨 [7] 또는 이영(李穎) [8] 민씨의 노여움이 누그러지기 전까진 못 해도 3번은 죽을 뻔했다. 처음엔 낙태를 강요했고, 김씨의 저항으로 낙태가 무산되자 여종을 시켜 만삭인 김씨의 식사에 독을 탔다. 그럼에도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자 감기에 걸린 경녕군의 열을 식혀주겠다며(...) 추운 겨울 바깥에 버려두듯 방치하도록 했다. 마지막의 경우 타이밍 좋게 이방원이 나타나 목숨을 건졌지만, 이 일은 훗날 민씨의 남동생들을 숙청할 구실 중 하나가 된다. [9] 이때 김씨는 물론 김씨를 모시던 하인인 금녀 또한 달갑지않게 받아들이는데, 그도 그럴게 아이에 대한 모정도 모정이지만, 보내는 곳이 하필 민씨의 친정인지라 아이를 적진에 홀로 보내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 김씨 역시 이 점을 인지하고 있어 민씨가 보낸 여종에게서 아이를 민씨의 친정으로 보낸다는 말을 듣고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알고 보내냐며 극렬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10] 활 솜씨가 뛰어나 태종이 사가 시절부터 아끼던 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태종의 의도는 충녕대군에게 거문고를 준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에 뜻을 두지 말고 활이나 쏘면서 세월을 보내라는 것. [11] 다만 대왕세종이 방영할 때만 하더라고 경녕군의 출생년도가 1395년이라고 알려진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라 극 중에서 이복형으로 설정되었던 듯 하다. [12] 집안이 풍비박산나버린 원경왕후의 불우한 말년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13] 원경왕후는 비오는 날 밖에 서 있게 하며 화풀이를 했고, 어머니와 아우들은 김씨를 아예 가둬두었으나 김씨가 혼자서 어떻게든 경녕군을 출산했다. [14] 정확히 설명하자면 이 드라마에서 원경왕후는 권력욕은 강했지만 그리 매몰찬 사람은 아니었다. 비오는날 원경왕후가 내쫓은 것이 아니라 김씨가 상황을 설명했으나 원경왕후는 태종 + 김씨에 대한 배신감으로 냉정하게 그냥 아무말없이 떠나버렸고, 어찌할줄 몰랐던 김씨는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있었는데, 비가 내림에 따라 비를 맞게된 것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 내에서 원경왕후는 김씨에 딱히 해코지 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