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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7-22 23:24:09

SO.30 브르타뉴

쉬드-외스트 SO.30 브르타뉴(Sud-Ouest SO.30 Bretagne)

1. 개요2. 제원3. 나치 점령4. 독일 공군도 탐낸 수송기5. 개량과 발전6. 취역7. 파생형

1. 개요

SO.30 브르타뉴는 프랑스 공군과 에어프랑스가 사용한 수송기/여객기이다.

2. 제원

초도비행 : 1945년 2월 26일
설계자 : 피에르 메시에(Pierre Mercier), 쟈크 르캄(Jacques Lecarme)
전장 : 18.95 m / 전폭 : 29.60 m / 전고 : 5.90 m / 익면적 : 86.20 m2
최대이륙중량 : 19,500 kg
동력 : 프랫&휘트니 R-2800-CA18 공랭식 18기통 엔진(2,400 hp) 2기
최대속도 : 430 km/h
순항고도 : 6,500 m
항속거리 : 1,330 km
생산수 : 45대
운용 : 프랑스 공군, 프랑스 해군, 에어프랑스, 알제리 항공

3. 나치 점령

나치 독일 프랑스를 침공한 이후 모든 군수산업체들을 손에 넣고 감독하게 되는데, 항공기 생산업체들에는 게슈타포 장교까지 정기적으로 파견하며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독일 제국항공성은 프랑스 항공기 공장들의 실태를 파악한 다음,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관리하게 된다. 우선 첫 번째로 독일제 항공기를 생산라인에 올리는 그룹이 있었고, 둘째로는 기존에 만들던 제품들을 계속 생산하여 독일과 비시 프랑스 정부에 납품하는 그룹, 마지막으로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아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업체들은 문을 닫게 했는데, 사실 이와 같은 조치는 식민지 철권 통치나 다름없었다.

1936년에 프랑스 정부가 전국 각지에 흩어진 항공업체들을 통합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블레리오(Blériot), 블로흐(Bloch), 올리비에(Lioré et Olivier : LeO)처럼 프랑스 남서부에서 영업하던 업체를 통합시켜 탄생한 쉬드-외스트(Sud-Ouest)는 두 번째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즉, 쉬드-외스트는 독자적인 설계와 개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는데, 덕분에 그 직원들은 자신들이 원래 하던 작업들 중에서 전투용 항공기를 제외한 기종은 개발을 계속할 수 있었고 그중에는 훗날 콩코드를 탄생시키는 주역 류시앵 세르방티(Lucien Servanty : 1909~1972) 같은 유능한 설계자들도 포함되었다. 이 회사는 통합 이후 공장 부지는 168,000 m2에 달했고 직원은 7,000명에 달해 프랑스 남부에서는 가장 큰 항공기 생산업체였지만, 2차 대전 개전 이후 그 규모가 더욱 커져 직원이 11,000명에 달하고 있었던 탓에 독일로서도 이용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 당연하다.

4. 독일 공군도 탐낸 수송기

프랑스는 개전 직전에 남부의 항공기 생산 기반을 전부 한 개의 업체로 통합시키려 했는데, 이것은 일부 프랑스 기업가들의 입맛에도 들어맞는 정책이어서 1941년 1월 1일부로 쉬드-외스트는 생나제르와 이시레뮬리노 공장을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대신 로 옮겨 SNCASO(Société nationale des constructions aéronautiques du Sud-Ouest)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엔지니어를 포함한 핵심 인력들은 독일이 프랑스를 함락시키자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피점령지로 달아났지만, 대부분 체포되어 제 자리로 돌려졌다. 독일 감시하에서 SNCASO의 설계부는 경비행기, 대형기, 수상기, 특수항공기 부서를 계속 유지하며 제국 항공성이 허락한 기종한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

SO.30 Bretagne는 제국항공성이 보기에도 썩 괜찮은 쌍발 다목적 항공기로, 전술 수송기로 쓰임새가 기대되어 개발을 허가받은 것이다. 1941년 5월부터 에 있던 엔지니어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전금속제 쌍발기는 전선을 확장시켜나가고 있어 수송기 수요가 커진 제3제국으로서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기종이었다. 독일 본토의 공장들은 폭격기 전투기를 쏟아내느라 정작 수송기 같은 비전투 항공기를 생산할 여력이 딸렸던 탓이다. 그렇지만 프랑스인들로서는 독일을 도울 이유가 없었으니 고의적으로 작업을 늦추기도 했고, 전쟁으로 인하여 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생산 라인은 자주 멈췄다. 한 대의 비행기가 아쉽던 독일은 프랑스 국내 생산업체에게 공급할 알루미늄마저 가로채갔기 때문이었다.

5. 개량과 발전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항공역학을 전공하고 LeO 사에서 근무하던 설계자 피에르 메시에(Pierre Ernest Mercier)가 이끄는 개발진들에 의해 SO.30N이라고 불리던 이 프로토타입 파리 1944년 8월 25일에 해방되고도 거의 반년이나 지난 1945년 2월 26일에야 첫 비행에 나설 수 있었다. 테스트 파일럿은 SNCASO에 적을 두고 있던 다니엘르 라스텔(Daniel Rastel : 1907~1969)이었는데, 원형기에 달린 프랑스제 Gnôme-Rhône 14R-5 엔진이 힘이 딸린다는 단점을 빼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했다. 개발주임 메시에가 작업을 진행하다가 병으로 죽자, 그 뒤를 이어 메시에의 학교 후배이기도 했던 쟈크 르캄(Jacques Lecarme : 1906~1986)이 바톤을 넘겨 받았다. 항공역학을 공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테스트 파일럿을 병행했을 정도로 비행 실무에 밝은 쟈크 르캄이 이끌게 되자 브르타뉴의 개발에는 속도가 붙었고, 마침 프랑스가 해방되어 미국으로부터 출력이 2,000마력을 훌쩍 넘기는 최신형 공랭식 엔진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6. 취역


원형기의 테스트 이후 엔진을 바꾼 생산형은 SO.30P로 분류된다. 브르타뉴는 5명의 승무원에 의해 운용되고, 30명에서 43명의 승객을 태우거나 23명의 승객을 태우고 화물 1.2톤을 함께 실어나를 수 있었다. 화물 수송기 형식인 SO.30C는 동체 내부를 화물실로 바꾸고 후방에는 아래로 열리는 도어가 마련되어, 여기에 램프를 걸치면 차량이 드나들며 싣고 내릴 수 있어서 전술 수송기답게 면모를 일신했다.

따라서 브르타뉴는 에어 프랑스 알제리 항공에서는 여객기로 취역했지만, 프랑스 공군과 해군에서는 중형 수송기로 이용되었다. 또한 이 쌍발기는 안정성이 높아 날으는 실험실로 이용하기에도 알맞았다. 2차 대전 이후 제트 엔진의 독자 개발에 나선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건네받은 롤스로이스 닌 엔진이나 자체 개발한 스네크마 아타 101, 그리고 툴보메카 팔라스(Turbomeca Palas) 같은 소형 터보젯 엔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제트 엔진을 날개 밑에 달고 테스트하는데 이용되며 프랑스의 제트 엔진 국산화에 크게 공헌했다.

7. 파생형

SO.30N : 원형기
S.O.30R 벨라트릭스(Bellatrix) : 노즈 기어를 갖춘 사양으로 2대만 제작
SO.30P-1 : R-2800-B43 엔진을 장비한 초기형
SO.30P-2 : 엔진을 R-2800-CA13으로 교체하여 출력을 보강한 개량형
SO.30C : 전술 수송기 형식
SO.30 닌(Nene) : S.O.30R을 엔진 실험용 테스트베드로 개조한 특수 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