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 음반 ]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FFFFFF><width=25%> ||<width=25%> ||<width=25%> ||<width=25%> ||정규 1집
S.E.S.
(1997. 11. 24.)정규 2집
Sea & Eugene & Shoo
(1998. 11. 23.)정규 3집
Love
(1999. 10. 29.)정규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 12. 23.)스페셜 4.5집
Surprise
(2001. 07. 11.)정규 5집
Choose My Life-U
(2002. 02. 14.)리믹스 싱글
Remixed
(2002. 08. 28.)스페셜 5.5집
FRIEND
(2002. 11. 21.)디지털 싱글
Love [story]
(2016. 11. 28.)스페셜 20주년 기념
REMEMBER
(2017. 01. 02.)
- [ 일본 음반 ]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FFFFFF><width=25%>||<width=25%>||<width=25%>||||싱글 1집
めぐりあう世界
(1998. 10. 21.)맥시 싱글
I'm Your Girl
(1998. 12. 10.)싱글 2집
夢をかさねて
(1999. 02. 21.)정규 1집
REACH OUT
(1999. 03. 10.)싱글 3집
(愛)という名の誇り
(1999. 06. 23.)싱글 4집
T.O.P.(Twinkling of paradise)
(1999. 10. 27.)싱글 5집
Sign of Love / Miracle
(1999. 12. 08.)베스트 1집
PRIME—S.E.S. the best—
(2000. 03. 15.)싱글 6집
Love∼いつまでも オンジェ·カジナ∼
(2000. 04. 21.)정규 2집
Be Ever Wonderful
(2000. 05. 24.)OST
海のオーロラ
(2000. 07. 21.)싱글 7집
Lovin' You
(2000. 08. 21.)베스트 2집
Here & There — S.E.S. Single Collection
(2001. 03. 16.)베스트 3집
S.E.S. BEST
(2002. 07. 10.)베스트 4집
BEAUTIFUL SONGS
(2003. 06. 25.)
- [ 참여 음반 ]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FFFFFF><width=25%> 캐롤 앨범
Christmas In SMTOWN.com
(1999. 12. 01.)캐롤 앨범
Winter Vacation In SM Town.com
(2000. 12. 08.)캐롤 앨범
Winter vacation in SMTOWN.com - Angel eyes
(2001. 12. 04.)여름 앨범
02 SUMMER VACATION IN SMTOWN.com
(2002. 06. 11.)
1. 개요
S.E.S.의 중국 활동을 정리하는 문서.2. 중화권 공략 멤버 구상 및 불발
S.E.S.는 원래 기획 초기 당시만 하더라도 중화권 시장까지 고려하여 제작되었고, 이에 따라 중국어에 능통한 멤버가 연습생 시절을 보냈으며 합류 직전까지 갔었다. 해당 인물은 바로 S.E.S.의 등장과 대성공으로 훗날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걸그룹 중에 한 팀인 티티마[1]의 멤버 소이였다.[2]소이는 당시 대학 진학 가수 데뷔라는 두 가지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을 하였고, 최종적으로 대학 진학을 취한 학업을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S.E.S. 데뷔조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데뷔 후 3개월 만에 일본 현지 연예 기획사 측의 제안으로 성사된 일본 활동과는 다르게, S.E.S.의 중화권 시장 공략 계획은 잠정적으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3. 데뷔 전 상황과 데뷔
음반이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부터 이미 중국 미디어에도 노출되는 등 한류 팬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높은 인지도를 구가하고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었던 상태였다.1999년 2월부터 한국과 일본 음반들이 대만 내에 록 레코드를 통해 라이센스 형태로 발매되기 시작하였고, 대만 발매와 동시에 중국 내에도 함께 발매되기 시작하며[3] 중국 내에도 S.E.S. 음반들이 정식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4]) 마지막 활동인 2002년까지 꾸준히 발매되었으며( 문헌 문헌 아카이브 ), 실제로 2002년 당시 베이징 백화점에는 정규 5집이 팔리고 있었다.
데뷔 이후 잠깐 멈춰 있었던 중화권 진출이 비로서 당시 중화권 문화를 주도하였던 대만에 진출함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중국으로까지 뻗어나가게 된 것이다. S.E.S.는 진출과 동시에 대만과 중국에서 한류 걸그룹으로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5]
당시로서는[6]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중국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가는 시기였음은 물론이고 중국 및 대만 등의 중화권에서 한국의 드라마나 음악 등이 인기를 얻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굳이 일본처럼 현지화 전략이라는 맨땅에 헤딩 행보를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4. 중화권 멤버 영입 루머
2000년 3월 첫 단독 콘서트 때를 기점으로, 당시 중화권에서 S.E.S. 음반 라이센스 유통을 맡고 있었던 대만 avex[7] 측이 SM 측에게 더 수월한 중화권 활동을 위하여 중화권 멤버 영입을 제안하였다는 루머[8]가 PC통신과 인터넷 등의 온라인 중심으로 돌기도 하였으나, SM 측은 언론을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5. 활동
5.1. 2000년 제2회 한중가요제 초청
2000년 11월 3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한국 KBS와 중국 CCTV의 공동 주관으로 개최된 제2회 한중가요제에 초청되었다.( 문헌1 문헌1 아카이브, 문헌2 문헌2 아카이브) 중국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와 다르게 한국에서 개최되었기에 별도의 중국 방문은 성사되지 않았다.이 음악회는 한중 양국 지상파를 통하여 녹화 방송되었다. 중국에서는 12월에 CCTV 1,3,4 채널 등을 통해 7차례, 한국에서는 2001년 1월 14일[9]에 KBS1을 통해 녹화 방송되었다.
S.E.S.는 이 공연에서 한국 히트곡 〈 Love〉[10], 〈 I'm Your Girl〉[11], 〈 너를 사랑해〉[12] 총 세 곡[13][14]의 무대를 모두 라이브로 선보였다. 특히 중국 CCTV 송출 무대는 S.E.S.가 중국에 음반을 발매한 후 처음으로 중국 TV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무대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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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Your Girl〉 라이브 무대 | 〈Love〉 라이브 무대[15] |
5.2. 2001년 SM 4대 천왕 콘서트 참가
2001년 12월, 같은 소속사 가수 문희준, 강타, 신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와 함께 《 SM 4대 천왕 콘서트》[16][17]에 참가하기 위하여 중국에 방문하였다. 현지 공연 전인 6일, 서울 조선호텔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언론 기자회견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SM은 S.E.S.를 '비장의 카드'라고 소개하였으며, 이에 바다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한국을 대표해서 정말 멋진 무대를 하고 오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S.E.S.는 15일 베이징 공인 체육관과 16일 상하이 체육관에서 이틀 연속으로 개최된 콘서트 무대에 올라 히트곡 〈 I will〉, 〈 꿈을 모아서〉, 〈 Love〉[18] 총 세 곡의 무대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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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6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는 S.E.S.[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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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판당고에 올라온 서울 기자회견 영상[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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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콘서트 당시 SM 소속 가수들과 이수만 외 관계자 단체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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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5 〈꿈을 모아서〉 무대 영상[21] |
단독 프로모션이 아닌 합동 프로모션이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지만 당시 한국 가수들의 중국 프로모션 형태를 보면 합동 콘서트 형식이 대다수였으며[22], 당시 후진국이었던 중국의 경제력과 일본처럼 공연문화에 대한 수요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발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합동 콘서트 프로모션 형식이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23]
다만 다섯 번이나 프로모션을 위해 대만에 방문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과는 다르게, 중국 프로모션은 해당 합동 콘서트가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유일하였다. 어찌 되었든 한 번이라도 중국 팬들을 현지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무대라는 것에 의의가 있는 프로모션이었다.
20일에는 SM 계열사 판당고(
한국 TV 언론에는 지상파 KBS2 『 연예가중계』와 케이블 KMTV 『생방송 뮤직큐』 등에 해당 공연 현지 소식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6. 인기
6.1. 기록
중국 기록에 대한 내용은 S.E.S./기록 문서 참고하십시오.
6.2. 비결
중국 프로모션 활동이 단 한 번밖에 없을 정도로 소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도 및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만 음악시장에서 쌓은 인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중화권의 문화는 대만이 주도하던 시절이었고, 그에 따라 대만에서 인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중국으로까지 퍼져나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 S.E.S. 인기도 자연스럽게 중국으로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당시 중국에서는 보이그룹 H.O.T.와 NRG[25] 등을 필두로 한류 음악이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이들의 음악만 보더라도 당시 발전되기 전인 중국 음악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팝스러운 음악과 화려한 무대매너가 어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E.S.의 음악적 노선도 세련된 팝 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여기에 비쥬얼과 화려한 무대매너 등을 겸비하고 있었기에 중국 팬들에게 어필될 수 있었다.
6.3. 당시 중국 거주 조선족의 증언글들
여자 가수들은 남자 가수들한테 게임도 안 될 정도로 찬밥신세이고 그 중에서도 뽑으라면 여자 가수 중에서는 이정현이 제일 인기가 많고, 그 다음 베이비복스와 S.E.S.인데 팬들이 직접 편지로 투표하는 인기 순위에서는 S.E.S.가 훨씬 앞서요.
여자 솔로 부문에서는 3명의 멤버가 다 10위 안에 들어요. 중국에서 제일 큰 한일 음악을 보도하는 잡지인 경음악(칭인웨)란 잡지투표 11월 호에서도 2위 바다 387표, 6위 유진 179표, 7위 슈 120표에요.
그리고 중국에서 제일 큰 인터넷 사이트인 souhu에 들어가서 가수들의 이름을 검색해 보세요. 중국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F4가 56개이고, H.O.T.가 46개, S.E.S.가 18개, 베이비복스가 3개 NRG가 22개, 클릭비가 3개, 핑클이 4개, 김희선이 9개, 안재욱이 12개, 송승헌이 6개, 전지현이 6개에요.}}}
2002.12.07 다음카페 S.E.S. 팬클럽 이슈에 한 조선족이 남긴 증언글 (제목: 안녕하세요. 저 중국조선족인데요. S.E.S. 왕팬이예요. 한 번 씩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아카이브
그 중에서도 뽑자면 이정현이 제일 인기 있고(〈와〉가 엄청 떴고 중국애들은 개성 있는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S.E.S.도 베이비복스 만큼은 인기가 있어요. 각종 잡지의 인기 차트나 이런 데서는 S.E.S.가 훨씬 앞서고 팬 사이트도 S.E.S.가 H.O.T. 다음으로 많아요.
아래의 것은 중국에서 제일 큰 한일 음악을 보도하는 잡지인 칭인웨라는 잡지의 2월달 인기 순위에요. (팬들이 직접 편지 써서 투표하는)
그룹 부문 S.E.S. 447표 ( 걸그룹 유일하게 10위권 랭크. 나머지 9위 모두 보이그룹.)
여자 솔로 부문 4위 바다 785표, 7위 유진 574표, 10위 슈 248표 ( 걸그룹 유일하게 모든 멤버 랭크.)}}}
{{{-1 제가 전에도 말했 듯이 하한족들 대부분이
H.O.T. 팬들로부터 시작됐고 또 여자 애들이기때문에 여자 가수들은 남자 가수들에 비해 완전 찬밥이죠. 좋아한다 해도 덤 정도. 여자 가수를 단독으로 좋아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나마
이정현이 좀 있고.
제가 1999년부터 거의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전문적으로 외국 음악 보도하는 칭인웨라는 잡지샀는데요. 처음에는 한국 연예인의 비중이 디게 적다가 H.O.T.가 뜨기시작해서 한국 연예인의 비중이 조금씩 늘어가다가 구미와 한일로 갈라졌고 한일로 갈라졌을 때도 일본 것이 거의 열 몇 페이지 더 많다가 요즘은 한국 게 더 많아요.
처음에 구미와 한일 연예인 통합으로 인기 조사 실시했을 때 그룹 부문에서 1위는 거의 H.O.T.가 했고 여자 그룹은 Spice Girls, SPEED, S.E.S.밖에 없었고 여자 솔로에는 슈밖에 없어요.
한일로 갈라진 다음 SPEED가 해체하니까 여자 그룹은 S.E.S.밖에 없었어요. 그 잡지에서 핑클과 베이비복스도 귀엽다며 이들도 표 좀 줘라 했을 정도로. (참고로 여기서 제가 말하는 인기는 H.O.T. 제외하고는 매니아층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후에 베이비복스가 중국에 자주오면서 좀 앞서는 듯하다가 요즘 뜸해지니까 S.E.S.가 많이 앞서요. 여자 가수는 이정현, S.E.S, 베이비복스 순이다가 요즘은 안티가 가득하던 BoA와 장나라가 전자들보다 훨씬 많아졌고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매니아 수준이고 음반은 H.O.T, 신화, S.E.S. 순으로 여자 가수 중에서는 S.E.S.가 젤 많이 팔려요.}}}
7. 해체 이후 중국 팬덤
해체 이후에도 중국 팬들은 주로 인터넷 팬 커뮤니티 활동 등으로 꾸준하게 응원을 해왔으며, 이따금 S.E.S. 완전체는 물론 멤버 개인 한국 팬 사이트에도 중국 팬들이 가입하여 자료 공유 등의 활동을 하며 한국 팬들과 교류를 이어나가기도 하였다.한국 팬들 만큼이나 중국 팬들도 S.E.S.의 재결합을 기다려 왔으며, 2016년에 있었던 20주년 재결합 콘서트에 중국 팬들도 발걸음 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당시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는 중국 팬들의 콘서트 참석 인증샷이 올라오기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2024년 현재에도 중국 포털 댓글을 보면 아직도 S.E.S.를 기억하고 응원하고 있는 팬들이 꽤 많이 있다. 2024년 현재 웨이보에는 팬 페이지도 있을 정도로 변치 않는 순정파 팬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 듯 S.E.S.의 팬덤에서 중국 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더 많고 탄탄하다. S.E.S.가 '당대 아시아 대표 걸그룹'으로 불릴 수 있도록 대만 팬들과 함께 큰 지지를 보내주었던 게 중국 팬들이었다.
[1]
S.E.S.가 데뷔한 지 1년 6개월이 되는 시점인 1999년 5월 1일에 정규 1집 음반 『in the sea』로 데뷔하였다.
[2]
애초에
SM이
소이를
S.E.S. 멤버로 염두에 둔 가장 큰 이유가
중화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실제로
티티마가
중국에서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다는 것은 오묘한 부분이다.
티티마는 보이그룹
NRG와 같은 뮤직팩토리 소속으로 데뷔하였으며, 데뷔 당시
NRG의 여동생격 그룹으로 홍보되어 인지도를 얻었다. 특히 당시
NRG는
중국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원조 아이돌 그룹으로 오히려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인기를 얻을 정도였는데,
NRG의
중국 인기 덕분에
티티마도
중국 내에 더 수월하게 소개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실제로
티티마의 1집 후속곡 〈Prism〉에는 아예
소이의
중국어 가사를 수록하는 등 애초부터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참고로
티티마는 당시
일본의 최정상
걸그룹
SPEED를 벤치마킹 하였다.
소이가 직접 밝힌 인터뷰 기사 실제로
SPEED가 1997년 8월 6일에 발매한 네 번째 싱글 커플링곡 〈熱帯夜〉 뮤직비디오의 얼굴 분할 화면 방식을,
티티마가 2000년 6월 15일에 발매한 〈Wanna be loved〉 뮤직비디오에서 차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차용한 것은 이것 뿐
SPEED와 음악, 안무 등 비슷한 부분은 없고 아예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소이가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으니
SPEED를 벤치마킹 하였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런칭 후에는 크게 영향을 받은 부분은 없다.) 지금이야
한국에서
반중감정이 커져서
K-POP에
중국어 가사를 넣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크게
반중감정이 없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당시
한국 음악방송에는
중국과
대만 가수들이 이따금 출연한 적도 있었고,
홍콩의 4대 천왕 같은 경우도
한국에서 인기가 좋아서
한국 방송에 출연하여 자국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빈번하였다. 당시
홍콩 문화가
한국에서 영화를 중심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대만의 드라마
판관 포청천은
한국의 지상파
MBC와
KBS2에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대만과
중국의 합작 드라마인
황제의 딸또
한국의
iTV에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끄는 등, 당시로서는 오히려
한국 내에서 매니아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 문화보다
중화권 문화가 더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다.
[3]
중국 쪽 웹을 살펴 보면 당시 기록 자료들이 나온다.
[4]
2000년 10월 11일
MBC 『
섹션TV 연예통신』 보도 중.
[5]
특히
대만에서의 인기도가 폭발적으로 더 높았다. 당시
대만 언론에서는
S.E.S.의 인기를 轟動(센세이션)이라고 표현하였다.
[6]
현재도 그러하다.
[7]
1999년 12월 10일에
대만 내에 발매된
한국
정규 3집부터는 음반 레이블사가
avex 변경되어 발매되기 시작하였다.
[8]
이때 함께 돌았던 루머가
S.E.S. 계약 기간은 5년이며, 이에 따라 2002년 정도에 해체 예정이라는 루머였다. 그리고 이 루머는 훗날 2002년 연말에
S.E.S.가 해체됨에 따라 루머가 아닌 사실로 밝혀졌다.
[9]
원래는 2000년 12월 31일에 연말 특집으로 방송 예정이었으나 변경되었다. 특히 이 날
S.E.S.는
SBS 『
인기가요』 컴백 무대 출연을 시작으로
MBC 『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
게릴라 콘서트」에 이어
KBS1에도 출연함으로써, 지상파 3사 출연을 석권하였다.
관련 기사
[10]
완곡.
[11]
2절 후렴구만.
[12]
완곡. 1절 인트로와 2절 남자 랩 인트로는 생략.
[13]
부른 순서대로 작성되었다.
[14]
중국
CCTV 녹화 방송분에는 세 곡 무대 모두 송출되었으며,
한국
KBS1 녹화 방송분에서는 〈
너를 사랑해〉가 편집된 채로 송출되었다.
[15]
S.E.S. 무대는 18:51부터 시작된다.
[16]
영어명은 《
S.M. Entertainment Live in
China》.
[17]
S.E.S.도 무대에 올랐고 2001년 12월 6일 조선호텔 그랜드볼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도 참석했으나, 정작 콘서트명인 4대 천왕은
S.E.S.를 생략하고 지칭하는 것이었고 실물 포스터에서도
S.E.S.를 제외하는 등의 태도로 팬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18]
현재 남아 있는 영상 자료에는 〈
Love〉 무대가 생략되었지만, 당시
SM 계열사 판당고에 올라온 스트리밍 영상을 시청한 팬이 남긴 당시 글에는 〈
Love〉 무대도 선보였다는 내용이 있다. 다른 팬이 남긴 글에도
S.E.S.는 총 세 곡을 선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링크
[19]
좌 2001년 12월 7일
KMTV 『생방송 뮤직큐』 보도 중. 우 2001년 12월 8일
KBS2 『
연예가중계』 보도 중.
[20]
해당 영상을 올린 업로더는
신화의 팬이며, 영상은
신화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환희(
브라이언은
미국에 있었을 때라 참석하지 않았다.) 인터뷰 위주 위주로 편집되었다. 당시 판당고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체 영상인지, 해당 업로더가 편집하였는 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S.E.S.는 영상 마지막에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구간인 1:38부터 약 10초 가량 나온다.
[21]
S.E.S. 무대 구간은 15:40부터 17:18까지이다.
[22]
당시
중국에서
단독 공연을 펼쳤던
한국 가수를 뽑자면 얼마 안 될 정도였다.
H.O.T.가
중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중국 내 한류 음악 열풍의 시발점을 만들었다.
[23]
실제로 당시
중국 측에서 추진한 합동 콘서트에 올랐으나 사기를 당해 개런티를 못 받았던
한국 가수들 사건도 있었다. 땅이 넓고 인구만 많을 뿐이지 불법 음반이 판치고 저작권이라는 개념도 미비해서 사실상 상업적으로는 큰 메리트가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현재도
한한령 때문에
한류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불법적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양상으로
한국 엔터계에 많은 피해를 끼치고 있는 시장이 바로
중국이다.
[24]
물론 이 점은 지금 영상 플랫폼도 마찬가자이긴 하다.
[25]
중국 내에 먼저
한류 음악 열풍을 선도한 팀은 시기적으로
NRG가 앞서지만, 폭발력과 정점에 있어서 만큼은
H.O.T.가 더 큰 족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