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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03:04:47

P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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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파일:PERRY 프로필.jpg
본명 Thomas Perry Borja (토마스 페리 보르자)
출생 1971년 11월 12일 ([age(1971-11-12)]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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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행방불명 (2010.09.~현재)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2005.06.01~2015.06.01)[1]
링크

1. 개요2. 생애
2.1. 잠적과 행방불명
3. 음악 스타일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1집 ‘Perry By Storm'4.2. 참여 곡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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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대한민국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래퍼 프로듀서이며, YG엔터테인먼트의 초기작들을 거의 모두 담당했다.

2. 생애

1971년 11월 12일 힙합이 성행했던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브레이크 댄스와 디제잉을 즐기며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다. DJ 장비를 만지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친구들의 파티에서 디제잉을 하고, 랩퍼인 친구들을 위해 작은 비트 머신으로 비트를 찍어주기도 했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탁월한 음악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0대 후반에 갱단에게 총을 맞고[2] 1년 동안 회복한 후 친척들이 있는 괌으로 옮겨져 고등학교를 마저 다니게 된다.

괌으로 간 뒤에도 그는 음악을 놓지 않고 Pure P, Zodiak이라는 이름으로 DJ와 래퍼, 댄서 생활을 시작했으며, 당시 괌에서 가장 유명한 힙합 DJ 중 한 명이었다. 나름 괌에서 유명인사였다고.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은 1995년에 발매된 혼성 힙합 3인조 허니(Honey)의 1집에서 이미 페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곡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Introlude , 높이 더 높이, Interlude, 내안의 모습, 세상에 이런 일이, 너는 왜(Remix)가 그것인데, 각 곡의 구성과 스타일을 보아도 그렇고, 90년부터 괌에서 알고 지내던 의 랩이 내안의 모습 중반에 나오는 걸로 보아 이 앨범에 페리가 참여했다는 신빙성을 더한다. 또한 그가 1996년 괌에서 활동했을 당시의 음원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 #

아버지는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한일혼혈이자 일본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차모로족[3]이라는 말도 있으며, Borja는 스페인계의 성씨이므로 부계 쪽으로 히스패닉 + 원주민 혼혈일 가능성도 있다. 1990년대 말에 CHANNEL V 한국 채널에서 방송한, 이본이 진행하던 한국 가요 순위 프로그램 새한 코리안 탑 20에 출연한 양현석이 인터뷰에서[4] 페리의 할머니가 한국인이며, 페리는 한국계 3세라고 언급했다.[5]

이 자신이 데뷔한다며 페리에게 도움을 청했고, 제작 중이던 지누션의 1집 앨범에 참여한 것으로 시작하여, 초창기 YG엔터테인먼트의 메인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 외에도 양현석 지누션의 앨범에 객원래퍼로 참여했으며, YG패밀리의 1집 앨범에 래퍼 및 프로듀서 멤버로 활동했다.[6]

지누션의 3집 앨범 "THE REIGN"의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함께 작업한 외국 뮤지션들에게 눈에 띄어 미국 데뷔를 제안 받았으나[7][8], 본인은 YG와의 의리를 지키고, 한국 힙합계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2001년에 솔로 앨범 PERRY by STORM을 발매한다.

솔로 앨범은 예상보다 좋은 평가와 함께 인기를 구가하였으며,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힙합 뮤지션 치고는 좋은 평가 및 상업적 성공도 이룬다. 그리고 이 앨범으로 G-DRAGON MASTA WU도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한다.[9]

수록곡 중 GET READY는 영화 RUSH HOUR 2의 OST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외국의 음악 평론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은 편이다.

이렇게 미국의 갱스터 스타일이나 하드코어 스타일을 고수하던 YG의 프로듀서로 영향력을 발휘하다, 회사의 메인 아티스트 프로듀싱을 몇 년 동안 테디와 번갈아 맡게 되고, 이후 다른 기획사와 마찬가지로 아이돌에 대한 집중과 트렌드에 대한 변화로[10] 점차 입지가 줄어들게 된다. 평생을 같이 할 줄 알았던 YG의 힙합 패밀리즘 문화도 2007년에 여성 래퍼 렉시를 사실상 방출하면서 끝이 났으니 말이다. 특히 렉시는 페리가 1집부터 거의 모든 음악을 담당해 온 아티스트였기 때문에 렉시가 YG를 떠난 후 부턴 페리의 작업물도 매우 줄기 시작했다.[11] 초기 빅뱅 앨범에서 멜로디컬한 대중적인 곡들을 잘 뽑아냈던 시기가 그의 마지막 전성기가 되어버렸다.

2000년에 발매된 원타임의 2집에서 테디가 작곡한 One Love와 쾌지나 칭칭으로 메가히트를 기록하자 테디의 대중성을 믿었는지 이 이후로 YG의 타이틀곡은 테디의 곡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페리의 인생작으로 불리는 지누션 3집에서조차 앨범의 거의 전곡을 도맡아 했지만 결국 타이틀곡은 테디의 A-yo로 정해졌다. YG 패밀리 2집 역시 타이틀 곡은 테디의 멋쟁이 신사. 페리의 YMCA 야구단은 영화 OST 겸 후속곡으로 선정되었다.

2.1. 잠적과 행방불명

2011년 5월, BIGBANG 일본 앨범 수록곡인 "Ms.Liar"와 "Tonight"의 영어 랩 작사 이후 아무런 활동이 없으며 YG를 나간건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아무런 소식도 없어 생사조차 확인할 수가 없다.

YG엔터테인먼트의 금감원 자료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2013년 3분기 분기보고서까지만 해도 페리는 YG 전속 프로듀서로 나온다. 하지만 2013년 4분기 보고서부터는 페리의 이름이 보고서에서 삭제됐다. 반면 2014년 4월 21일, YG엔터테인먼트의 투자설명서에는 페리의 계약 만기 일자가 2015년 6월로 나온다. 그러나 동일 문서의 '전속계약 현황'에는 또 다시 페리의 이름이 빠지고 테디의 이름만 보인다. 동일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왜 페리의 계약 현황이 항목에 따라 상충되게 적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12] 특히 2010년 6월에 재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 9월 이후 페리가 참여한 음반이 공식적으론 전혀 없다는 것이 미스터리다.[13] 어찌됐건 계약만료 기간인 2015년 6월 이후에도 전속 계약 현황에선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YG와의 재계약을 다시 하지 않고 완전히 떠난 것으로 보인다.

YG 소속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그의 근황을 묻는 질문들이 많은데, 답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CHOICE 37은 미국에서 지내는 것만 알고 있고, 자기도 궁금하다고... 마스타 우는 페리의 근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회사 측과는 연락을 했던 걸로 알며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한다. 모 유튜브에 출연한 YG 내 가장 최측근이였던 도 페리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미국으로 돌아간 후론 소식이 끊겼다고 답하였다.

2021년 페리의 조카에 의하면 페리는 201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고 이후부터 실종 상태라고 한다.[14] 미국 국무부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한다. # 조카가 단 댓글들에 따르면, 가족들이 다 있는 괌에서 수년 간 봤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괌으로 돌아왔을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가족들은 오히려 그가 한국에 있을 것으로 보는 듯. 그러나 이는 앞서 마스타 우 CHOICE 37이 말한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얘기다. 결론은 그의 행방을 정말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2년 가량이 지난 현재 트위터에 글을 올린 조카가 말하길, 마지막 위치 파악이 전혀 되지 않아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지 못했고,[15] 다른 행정부처를 통해 실종 신고서를 제출하고 일부 법 집행기관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이 도와줄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처음엔 페리가 단지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 같다며 연락을 피해도 그냥 내버려둔 상황이었으나, 장례식 등 중요한 가족 행사에 나타나지 않자 걱정하기 시작했다고.[16] 그래서 1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공개적으로 찾고 있지만, 계속해서 트위터 인용으로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이 삼촌의 행방을 찾으려고 하면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있다'라고 답하는 것을 보아 행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 듯...

10여 년간 묘연한 그의 행방 때문에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선 YG와의 불화가 있었다는 둥, 약점을 잡힌 양현석이 보석함에 넣어 놨다가 처리해 버린 게 아니냐는 둥...온갖 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페리의 형제라는 사람이 STORM 뮤직비디오 댓글에 페리와 YG 사이에 갈등이 생겨 큰 충격을 받아 YG를 떠났고, 그 이후로 직접적인 연락이 끊어졌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해당 댓글이 갑자기 삭제되어 버렸고, 결국 해외 네티즌들의 먹잇감이 되어 또 다른 음모론을 생산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여러 설들이 나올 만한 게, 그는 1999년 YG FAMILY 활동 당시부터[17] 2008년 YG 바운스 인터뷰에서까지[18] YG 구성원들 중 그 누구보다 YG 식구들을 진짜 가족처럼 생각하며 아껴왔었다는걸 강조해 왔기에, 어떤 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회사 구성원에게도 행방을 감춘 채 산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기 때문.

어쨌든 10년 넘게 연락이 안 닿는 것으로 보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범죄 등에 연루되어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거나, 어떠한 이유로 심경의 변화가 와서 모두와 연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팟케스트인 Latitude13 Happy Hour의 마지막 에피소드 추신에 페리를 찾는다는 문구가 있다.[19] # 괌에 있는 가족들이 그를 찾기 위해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팟케스트 진행자도 과거 녹음을 하려는 페리의 친구들을 타무닝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괌이 작은 섬이기도 하고, 그가 당시 괌에서 유명했던 인물이니만큼 나름 친분이 있었던 모양.

멜론에서 Perry 를 치고 작사/작곡란을 보면 2018년에 발매된 방탄소년단 정규 3집 LOVE YOURSELF 轉 'Tear' 1번 트랙에 "Intro : Singulrarity"란 곡에 포함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멜론 측에서 Charlie J. Perry란 영국의 작곡가 이름을 Charlie J, Perry 이렇게 따로 분류하여 잘못 기재한 듯 하다.

3. 음악 스타일

초창기 YG의 모든 앨범의 프로듀서를 담당했고 거의 모든 곡들이 그가 만든 비트라고 보면 될 정도로, 지금의 테디보다 작업량이 많았다.[20] 특히, YG 패밀리 1집의 수록곡 "S.T.P"[21]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준수한 퀄리티를 자랑한다.[22][23]

음악 스타일은 샘플링을 배제하고 건반 리프를 주로 쓰는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대체적으로 단순한 스타일이긴 하나 최소한 한국에서는 사운드 질감을 만드는데 페리만의 독창성이 있어서 매니아들에게는 딱 들으면 페리 곡이란 것을, 대중들은 딱 들으면 YG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한국 힙합 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언더 그라운드 씬에서는 무단 샘플링을 통으로 박는 표절이 쏟아지던 것을 생각하면, 페리의 프로듀싱 능력은 단연 독보적이었음에도 당시에는 'TV에 나오는 오버그라운드 힙합' 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과소평가를 당했었다.[24]

YG에서 수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음악 순위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쥔 곡은 원타임의 "1TYM"과 렉시의 "애송이" 두 곡 뿐이다.[25] YG에서 나온 다른 히트곡의 다수가 테디의 작품이다.[26]

사실 음악뿐 아니라 힙합의 모든 분야에 정통한 실력을 자랑한 True Master로 알려져있다. 처음에는 비보잉 댄서로 힙합 씬에 등장했고 그 실력도 꽤 수준급으로 나름 유명했다고 하며, 이후 알다시피 , 노래, 작사, 작곡, 편곡, 디제잉, 프로듀서에 레코딩 엔지니어 능력까지 발휘했다.[27] 심지어 비트박스 실력도 뛰어나며, 그래피티에도 재능을 발휘한다고.[28]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 1집 ‘Perry By Storm'

01. Storm (Feat. G-DRAGON, SEAN, MASTA WU)
02. Oh! No (Feat. YG, Vanessa)
03. TURN IT OUT (Feat. MASTA WU)
04. GET READY (Feat. DANNY, JINUSEAN, MASTA WU, LEXY)
05. KNOW WHAT I MEAN? (Feat. MASTA WU)
06. 비상 (飛上) (Feat. DJ MURF, JAH-U, JEFF, HOONY HOON, DAY-1, IN-CHANG, JAE-JIN)
07. GET DOWN
08. G-DRAGON (Feat. G-DRAGON)
09. DOM'T LEAVE ME (Feat. SWi.T)
10. BABY COME ON (Feat. LEXY)
11. 돈이 MONEY (Feat. 45RPM)
12. SO TIGHT (Feat. JINUSEAN)
13. BOUNCE (Feat. MASTA WU, TEDDY)
14. STORM (Remix) (Feat. G-DRAGON, SEAN, MASTA WU)

4.2. 참여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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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1] 계약 기간이 남아있던 2010년부터 잠적하였다. [2] 그가 살던 오클랜드는 미국에서 치안이 가장 안 좋은 동네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3] 미크로네시아 원주민 [4] 악마의 연기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나온 걸로 기억한다. [5] 일본은 1985년생까지 아버지가 일본 국적인 경우에만 일본 국적을 부여했고, 한국도 1998년생까지 아버지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 따라서 외할머니가 재일교포 1세대, 어머니가 일본인과 재일교포의 혼혈 2세대, 페리가 재일교포 쿼터 혼혈 3세대로 추측된다. [6] 초록색의 염색머리와 렌즈 때문에 그 당시 한국 대중들에겐 꽤 호불호가 있던 편이었다. [7] 특히, 피처링으로 참여했던 MOBB DEEP CYPRESS HILL은 미국 힙합계에서 내로라하는 뮤지션이다. [8] 사이프러스 힐 측에서 그의 뛰어난 실력에 매료되어, 수 억의 거액 계약금을 제시하면서 스카웃 제의를 했지만, YG와의 의리 하나로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9] 마스타 우는 이전부터 이현도 完全 HIPHOP 앨범과 서태지 6집 공연 활동의 객원 래퍼로 이미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10] 빅뱅 데뷔 무렵과 그 이후의 노래들만 비교해봐도 전반적인 흐름이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11] 테디에겐 2NE1이 있다면, 페리에겐 렉시가 있었다 말해도 무관할 정도로 많은 곡을 담당했었기 때문이다. [12] 이는 페리의 부재가 업데이트가 안 된 당사의 내부 자료를 사용해서 문서가 상충되었거나,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단순히 잠적이라면 계약 기간이 한참 남은 상황에서 그의 이름을 굳이 삭제할 이유가 없기 때문. [13] 만약 빅뱅의 일본 앨범만 참여하고 YG를 떠날 생각이었다면 굳이 YG와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14] 모 커뮤니티에서 2015년 경에 동남아 나이트에서 페리를 봤다는 댓글이 하나 있긴 하다. 물론 커뮤 댓글인 이상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다. [15] 거주 국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처음부터 경찰이 아닌 국무부에 실종신고를 먼저 한 것이다. 설령 실종신고를 해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페리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페리가 행방을 알려주길 거부하면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16] 그 전에도 워낙 연락을 안 하는 성격이었거나, 초반에 자취를 감춘 이유를 가족들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 [17] 솔로 앨범을 낼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지금 당장은 렉시의 음악 작업과 더불어 YG 패밀리를 돌봐야 한다고 답했다. [18] "올드 스쿨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진부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어요. 10년 동안 우리 가족들을 위해 그런 음악들을 만들어 왔죠" 레이블 외부의 뮤지션들과 작업하고 싶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만큼 한가한 적이 없었기에 악기를 앞에 두면 언제나 YG 뮤지션들을 위해 고민한다는 페리, YG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을 인터뷰 해 온 바운스지만 페리만큼 YG 뮤지션들을 이야기하며 '가족'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도 드물다. -2008년 YG 바운스 인터뷰 중 일부 - [19] P.S. If you have information about the current whereabouts of music producer Perry Borja, please get in touch with [email protected] so we can pass that info on to his family. [20] 물론 멜로디컬한 곡들을 주로 뽑아내는 테디에 비해, 비트 위주의 심플한 곡들이 많아서 단순 비교는 힘들긴 하다. [21] 당시 YG의 대표 래퍼 3인 Sean, Teddy, Perry를 의미한다. [22] 곡을 자세히 들어보면, S.T.P가 세 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각각 분위기가 다르고, 그 느낌들이 이질감 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런 방법이 만들기가 생각보다 많이 까다롭다고 한다. 박자 감각 같은 미세한 차이를 세밀하게 캐치해야 한다고. [23] 이후에 그의 솔로 앨범 PERRY by STORM에서도 비슷하게 시도했다. 2번 트랙 "OH! NO"와 3번 트랙 "TURN IT OUT"을 하나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앨범 발매 쇼케이스 형식의 단독 콘서트를 당시에 엠넷의 HIP HOP THE VIBE에서 방송했는데, 거기서 나온 그의 인터뷰에서 앨범 전체를 그렇게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24] 통샘플링이나 표절, 무단 샘플링을 하던 인간들이 약자도그마와 떼거리의 힘, '언더가 진정한 힙합이다' 란 놀음으로, YG는 기계음이 많아서 인간적이지 않다느니 하는 가당찮은 헛소리를 뱉었었다. CB MASS 같은 경우가 그렇다. [25] 1위를 하지 않은 선에서 히트한 다른 노래는 있다. [26] 에서 성장한 한국인 쿼터였던 페리는 당시 미국 현지의 하드코어 스타일이 많이 묻어나왔다. 사이프레스 힐이 등용 시도를 했던 것은 미국인이 봤을 때 쓸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페리 어깨 너머로 작곡을 배웠다고 하는 테디와 비교하자면, 테디는 원타임 2집에서는 민요인 쾌지나 칭칭, 3집에서는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4집에서 이남이의 울고 싶어라를 차용하는 등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구미에 맞는 음악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났다. [27] 이 모든 부분들은 그가 참여한 YG의 초기 앨범들만 다 둘러봐도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전반적인 프로듀싱과 작곡 및 편곡 뿐만 아니라, 랩이나 노래로 피처링 그리고 코러스까지 많은 부분에 참여했다. 무대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도 자주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지누션의 1집, "the real", "THE REIGN"과 양현석 1집, 1TYM 1집, 자신의 솔로 앨범 "PERRY by STORM", 그리고 Y.G Family의 1집 "Famillenium"에 수록된 그의 첫 솔로곡 "S.T.P"를 꼭 들어보길 권한다. [28] 사실 전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수준급의 인물이 매우 드물다. 뮤지션, 매니아, 팬 모두에게 인정받았던 몇 안되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값진 보물인 셈. [29] 작사가로는 2000년대 중반까지 SE7EN, 지누션, 1TYM, SWi.T, 렉시 등 여러 가수들의 앨범에 참여했다. BIGBANG 2NE1의 대성공 이후에는 작사, 작곡 쪽에는 완전히 손을 땐 상황. [30] 이후에 허니패밀리의 리더로 활동한 박명호,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업 댄서로 활동했었던 광범, 이전에 철이와 미애로 활동했었던 한국 1세대 여성 안무가이기도 한 미애의 혼성 3인조 힙합 그룹이다. [31] 당시에 서태지가 작곡을 했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와전되어 떠돌기도 했는데, 그는 랩메이킹 일부를 담당하면서 조금 다듬어주고 조언해준 정도였다고 한다. [32] 이후에 비(정지훈)가 활동했었던 보이그룹 팬클럽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33] MAJAH FLAVAH (Major Flavor)를 줄인 것이라고 한다. 슬랭으로 표현한 것. [34]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녹음 현장을 담은 영상에서 서태지가 mf! 로고 모자를 쓰고 나오면서 팬들 사이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때는 정식으로 런칭하기 전이었다. [35] 이전에 먼저 듀스 나를 돌아봐 뮤직비디오에서 김성재가 mf! 로고가 있는 모자를 쓰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