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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0:37:04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 공중 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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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467US(2).jpg
사고 1년 후, 마이애미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항공 사건 사고 요약 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BCooper.jpg
1972년 FBI가 공개한 댄 쿠퍼(Dan Cooper)의 몽타주
사건 당시에는 선글라스를 자주 썼다고 한다.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1971년 11월 24일
유형 하이재킹 인질극
발생 위치
[[미국|]][[틀:국기|]][[틀:국기|]] 오리건 포틀랜드 국제공항
기종 보잉 727-100
운영사 노스웨스트 항공
기체 등록 번호 N467US
출발지
[[미국|]][[틀:국기|]][[틀:국기|]]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
도착지
[[미국|]][[틀:국기|]][[틀:국기|]] 리노 국제공항
탑승 인원 승객: 36명
승무원: 6명
생존자 탑승객 42명 전원 생존, 범인 행방 불명

1. 개요2. 사건3. 영향4. 주요 용의자5. 대중문화에서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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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 공중 납치 사건(Northwest Orient Airlines Flight 305) 또는 댄 쿠퍼(D.B. 쿠퍼) 사건(Dan Cooper's Case)은 1971년 11월 24일 미국에서 발생한 항공기 납치 사건으로, 현재까지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사건이다. 미국에서는 여러 매체를 통해 수없이 회자될 정도로 손꼽히는 하이재킹 사건이며 범인이 썼다고 잘못 알려진 'D.B. 쿠퍼'라는 이름도 천재적인 완전범죄 범죄자로 통한다.

가명 'D.B. 쿠퍼'는 사건 초기 경찰이 탑승객 명부를 바탕으로 동명이인을 수사하면서 오기된 이름으로, 사실 범인이 댄 이름은 댄 쿠퍼(Dan Cooper)였다. 범인의 실명을 포함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D.B. 쿠퍼'라는 이름도 사건과 관계없는 일반인이었지만 당시 언론들에 의해 이름이 정정되지 않은 채 보도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오늘날에 와서는 아예 사건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키워드를 'D.B. 쿠퍼'로 맞춰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2. 사건

다큐멘터리 유튜버 LEMMiNO의 영상.
1971년 11월 24일 포틀랜드 국제공항에서 한 남자가 댄 쿠퍼(Dan Cooper)라는 이름으로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해당 비행기 보잉 727-100 기종의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으로 36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쿠퍼는 비행기의 맨 마지막 줄 가운데 좌석에 앉았으며 그의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9.11 테러 이전의 미국 국내선 보안은 지금처럼 치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는 그대로 납치범을 태우고 이륙했다.[1]

그로부터 얼마쯤 지난 뒤 비행기가 운항 고도에 이르자 쿠퍼는 스튜어디스 플로렌스 스내퍼에게 메모를 건넸다. 처음 스튜어디스는 쿠퍼가 추파를 던질 목적으로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네는 줄 알고 받지 않았으나 쿠퍼가 읽어 보라고 재차 강요하자 그제서야 받았다고 한다. 그 메모의 내용은 "자신은 폭탄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지시를 따르라."라는 것이었다. 쿠퍼는 스튜어디스를 자신의 옆에 앉게 한 뒤 서류 가방을 열어 다이너마이트 막대를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으며 이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요구 사항을 밝혔다.

쿠퍼는 "거래 가능한 미국 돈(negotiable American currency)으로 20만 달러를 달라"고 하면서 이를 작은 배낭에 담아서 오후 5시까지 준비하라고 전달했다. 여기에 앞으로 메는 낙하산 2개와 뒤로 메는 낙하산 2개를 요구했으며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바로 주유할 수 있도록 연료 탱크 차량을 대기시킬 것을 지시했다. 쿠퍼의 요구 사항을 전달받은 스튜어디스는 기장에게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렸고 기장도 관제탑에 이 사실을 알렸다. 사건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되었으며 경찰은 납치범의 요구 사항대로 현금과 낙하산을 조달하여 시애틀 공항에 대기하였다.

저녁 5시 39분 비행기가 시애틀 공항에 착륙했고 경찰은 준비해 둔 돈과 낙하산을 쿠퍼에게 전해주었다.[2] 쿠퍼는 35명 승객 전원과 2명의 스튜어디스를 석방했다.[3] 비행기에는 기장과 부기장을 포함한 4명의 승무원, 그리고 쿠퍼만이 남게 되었다. 당초 쿠퍼는 기장에게 멕시코시티로 갈 것을 요구했으나 연료 문제로 거절당하자 네바다주 리노 국제공항을 경유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고 랜딩 기어를 내리고 여압 장치를 끈 채로 최저 비행 고도[4]에서 실속 직전의 최저 속도로 비행할 것을 지시했으며[5] 객실에는 자신 이외에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고 스튜어디스를 비롯한 인질 모두를 조종실로 몰아넣었다.

쿠퍼는 마치 멕시코로 장거리 도주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사실 이때부터 경찰과 승무원들은 쿠퍼의 요구 사항을 듣고 그가 비행기 후미 계단(rear airstairs)을 통해 공중에서 뛰어내릴 것을 예상했다. 후미 계단은 객실 뒤쪽에서 지상으로 바로 내릴 수 있게 설계된 계단으로 보잉 727이나 DC-9 등 초창기 제트 여객기 중 일부에만 달린 문이었다. 비행기가 다시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8시경 승무원들은 갑자기 객실 기압이 급격히 낮아진 것을 발견했고 8시 15분경에는 꼬리 날개가 들리는 것을 느꼈는데 이들은 정말로 쿠퍼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다고 생각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27db.gif
낙하 당시를 재현한 GIF 이미지

비행기가 리노 공항에 도착하자 경찰이 기내로 들이닥쳤고 예상대로 쿠퍼와 돈가방, 그리고 낙하산 한 쌍이 사라진 뒤였다. 당연히 후미 계단으로 향하는 문은 열려 있었으며 기내에서는 쿠퍼의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와 넥타이가 발견되었고 두 쌍의 낙하산 가운데 한 쌍은 기내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경찰은 남은 한 쌍이 레저용 낙하산인 것에 주목했다. 경찰이 건네준 것은 앞뒤로 메는 군용 낙하산 한 쌍과 마찬가지로 앞뒤로 메는 레저용 낙하산 한 쌍이었는데, 군용 낙하산은 일반인이 사용하기 힘든 데다 방향 조정도 안 되는 모델이었지만 레저용 낙하산에 비해 굉장히 튼튼했다.
파일:DBCooper_map.png
납치된 비행기의 항로. 시애틀에서 리노까지 갔으며 붉은 점은 나중에 묻힌 돈다발이 발굴된 장소이다.
포틀랜드라는 도시가 있는 곳인데 이 근처에서 쿠퍼는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다.

그날 새벽부터 미국 역사상 최대의 수색 작전이 벌어졌다. 경찰은 승무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예상 낙하 지점을 추측했는데 오리건주 포틀랜드 북동쪽의 '기퍼드 핀쇼 국유림(Gifford Pinchot National Forest)' 지대가 가장 유력했다. 곧 숲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으며 비행기가 지나간 항로를 따라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 수색도 펼쳤고 루이스강의 바닥을 뒤지기 위해 잠수정까지 동원했지만 쿠퍼는 물론이고 돈이나 낙하산마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가 진전되지 않자 경찰은 쿠퍼가 잘못 뛰어내렸다가 그대로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쿠퍼가 뛰어내린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은 숲이 울창한 산림 지대였고 당시 해당 지역은 11월 말의 추위에 뇌우가 몰아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낙하산을 사용했다가는 죽기 딱 좋았고 심지어 그는 하이재킹 당시 평범한 양복 차림에 헬멧 같은 보호 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운 좋게 착지했더라도 부상이나 저체온증 등으로 오래 버티기 어려웠으리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었으며 그가 받은 돈가방은 20달러짜리 지폐로 20만 달러를 준비했기 때문에 무게가 10kg이나 나갔고 이는 낙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수색은 결실 없이 종료되었고 이후에도 쿠퍼를 두고 세간의 소문만이 무성했다.

그러던 중 1980년 2월 쿠퍼의 예상 낙하 지점에서 60km 남짓 떨어진 컬럼비아강 어귀 '티나 바(Tena bar)'에서 8세 소년 브라이언 잉그램(Brian Ingram)[6]이 캠핑을 하다가 진흙 속에 묻힌 돈다발을 발견했다. 이는 곧바로 경찰에 접수되었다. 경찰은 지폐의 일련번호를 대조하여 돈다발이 쿠퍼가 가져간 돈의 일부인 5,800달러임을 밝혀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쿠퍼가 살아남았으며 나중에 찾아갈 목적으로 돈을 숨겼거나 경찰의 수사 범위를 한정시키려 돈을 묻어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기 시작했지만 애석하게도 컬럼비아강 유역을 대대적으로 조사했지만 다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쿠퍼가 강하 도중 사망하고 그가 챙겼던 돈이 강어귀로 흘러든 것일 가능성[7]도 제기되었으나 이 가설은 사건으로부터 2년 뒤 컬럼비아강 정비 사업으로 하안 지형이 바뀌었으며 돈다발을 묶은 끈이 거의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경찰은 끝내 쿠퍼가 사망했다고 판단하지 못했다. 그가 만일 살아 있다면 고령의 노인이 되었을 것이지만 신원은 현재까지도 오리무중이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이 사건과 관련된 어떤 단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당시 쿠퍼가 가져간 현금의 일련번호가 공개되었지만 아직까지 다른 자금의 행방은 묘연하다. 따라서 이 사건은 [age(1971-11-2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미제로 남아 있다.

3. 영향

다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이 아시아나항공 8124편 개문 착륙 사고를 통해 증명해 냈다. 727의 최저 속도는 157km/h고 최저 고도에는 빌딩이나 산에 부딪히지 않는 이상 10m만 떠서 날아가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데다 규정에 따른다고 해도 최저 순항 고도는 해발 8500피트(2.5km 상공)라 아시아나 사고의 지표면으로부터 250m 상공 (해발 320m)과 기압 면에서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로의 극단적인 차이는 없다. 게다가 애시당초 기압 차이가 발생해서 문을 열기 어렵게 될 것을 우려했는지 쿠퍼는 아예 여압 장치를 끄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5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에어버스 A320을 가져다가 똑같은 조건에서 해도 램프 도어는 몰라도 비상문은 확실히 열릴 거라는 말이다. 특히 비상착륙으로 기체가 손상될 것에 대비해 탑승구나 비상구는 큰 손상을 입어도 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4. 주요 용의자

이틀 후 지문과 필체 덕분에 매코이는 체포되었고 45년형을 선고받았다. 매코이는 "당신이 정말 쿠퍼냐."고 묻는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감 후 가짜 총으로 쓰레기 운반 트럭을 훔쳐 타서 감옥의 정문을 부수고 탈옥했는데 3개월간 도망다니다가 FBI 요원에게 발각되어 총격전을 벌이다 사살당했다. 비슷한 수법과 지문, 필체의 일치, 몽타주와 얼굴이 많이 닮았다는 점 때문에 이 사건도 매코이가 저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FBI 조사 결과 하이잭 및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당시 라스베이거스 유타주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확인하여 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내 조에 의하면 집에서 오래된 시애틀-타코마 공항행 비행기 티켓을 본 적이 있고 남편과 시애틀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여행 내내 남편이 컬럼비아강을 바라보며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FBI의 얼굴 인식 프로그램으로 두에인 웨버의 사진과 쿠퍼의 몽타주를 비교해 보니 사진 3천 장 중에서 두에인 웨버가 가장 일치한다고 나왔다고 하지만 웨버의 DNA와 쿠퍼의 넥타이에서 회수된 DNA 샘플을 대조한 결과 불일치하면서 역시 용의자에서 제외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십수 년 전 캐나다 공군의 예산 축소로 인해 수많은 파일럿과 지원 병력들이 군을 강제로 떠나야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이 사건의 범인으로 "거래 가능한 미국 돈(negotiable American currency)"이라는 기묘한 단어를 쓴 것도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캐나다인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이다.
당시 냉전의 여파로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가 냉각되어 미국에서 관련 자료를 요청해도 캐나다에서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해당 만화책에서 이 사건과 비슷한 전개를 보이는 편도 있는 등 여러 정황 증거가 있지만 다른 용의자들처럼 전부 정황 증거들일 뿐이다.

그 외에도 위키백과에는 용의자가 여럿 소개되어 있지만 공통적으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낙하 직후 사망을 주장하는 쪽은 당시 기후[10]와 낙하 지점[11]을 고려했을 때 차가운 물에 빠진 후 그대로 동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생존을 주장하는 쪽은 시신과 나머지 돈이 발견되지 않았고 5800달러가 발견된 곳이 예상 지점과 꽤 먼 거리였음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일단 사건 당시 몽타주를 보면 이미 40대에서 50대 사이의 중년이었고 그 상황에서 50여 년이 더 지난 이상 미국 남성의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쿠퍼가 현재도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FBI는 45년 동안 이 사건을 수사해 왔지만 끝내 2016년 7월 8일부로 수사를 중단하여 미제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2022년 랙스트로설을 포함한 다큐멘터리 'D.B. 쿠퍼: 공중에서 사라진 사나이'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 #

5. 대중문화에서

인명사고가 없다는 점과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은 걸로 유명한지라[12] 사건을 다룬 책들이 수없이 나왔고 영화화도 많이 되었다.

6. 관련 문서



[1] 이 사건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나온 바에 의하면 70년대 미국 공항의 보안은 없는 것이라 마찬가지라 슈퍼마켓에 드나드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한다. [2] 이때 경찰 쪽에서도 한 가지 수를 썼는데 일부러 거래 가능한 20만 달러의 돈을 100달러가 아니라 20달러짜리로 꽉 꽉 눌러담아서 전달했다. 만약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리더라도 돈가방의 무게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3] 공항에는 100명가량의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인터뷰를 보면 승무원들이 사실을 숨긴 채 침착하게 대응했기에 승객들은 자신들이 탄 비행기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4] 여압 장치가 꺼진 상태에서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 부족으로 기절할 수 있다. [5] 조종사들조차 이게 가능한 것인지 몰랐으나 쿠퍼는 '가능하니까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6] 성인이 된 후 그는 이 지폐 일부를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7] 중화항공 611편 공중분해 사고에서는 비행기 잔해와 각종 물건들이 무려 100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다만 이 사고는 고도가 높았을 때 발생했기 때문에(통상적인 여객기 순항 고도) 저고도에서 발생한 본 사건과 단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8] 디즈니 애니메이션 티몬과 품바의 한 에피소드에서 이 과정을 패러디한 장면이 나온다. 티몬과 품바에서 메인 악역으로 자주 나오는 범죄자 퀸트가 돈가방을 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데 문제는 완전범죄에 성공했다고 희희낙락하면서 낙하산을 펼쳤는데 낙하산이 돈가방에만 달려 있어서 퀸트 본인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는 점이며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돈가방을 티몬 품바, 그리고 퀸트가 서로 뺏느라고 에피소드 내내 개고생을 하게 된다. 드라마 로키에선 쿠퍼가 사실 로키였다는 설정인데 토르와 내기에 져서 이 짓을 한 것으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즉시 비프로스트를 타고 아스가르드로 날아갔기 때문에 당연히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9] 은퇴한 FBI, CIA, 검사, 변호사, 군인, 경찰 등 40명으로 구성됨 팀이다. [10] 당시 쿠퍼가 뛰어내린 지점으로 추정되는 루이스강 상공에는 폭풍우가 친 데다 11월이다. [11] 방향 조정이 불가능한 군용 낙하산을 맸기 때문에 낙하 직후에 낙하산을 펼쳤다면 머윈 호수에 낙하하고, 어느 정도 활강 후에 펼치면 루이스강에 낙하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12] 상기했듯 쿠퍼는 다이너마이트만 가지고 협박했기때문에 누구하나 다치는 일조차 없었고 그나마 쿠퍼 본인이 죽거나 다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쿠퍼가 뛰어내린 이후의 일은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13] 금요일 오후 정문 교대 시간에 들어오는 교도관들과 나가는 교도관들에 섞여서 운동장에 선 그리는 그걸(라인 파우더) 질질 끌고 그냥 정문으로 걸어나갔다. 들어오는 교도관들은 출근하기 싫어서 땅바닥만 쳐다봤고, 나가는 교도관들은 신나서 하늘만 쳐다봐서 정작 당당히 걸어나가는 재소자는 그대로 탈옥에 성공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