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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 수용소 | |
정식 명칭 | 22호 관리소 |
영문 명칭 | Hoeryŏng Concentration Camp : Camp 22 |
관할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면적 | 불명 // 경계선의 길이 약 80km |
위치 |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 중봉동 일대 남한(광복 기준) : 함경북도 종성군 행영면 전역 (풍곡면 남쪽 일부, 용계면 북서쪽 일부 및 회령군 화풍면 북쪽 일부 포함) |
인근 교통편 | 수용소 내부에 세천선 중봉역이 있음 : 함북선 신학포역까지 약 15km |
수용 인원 | 6만 명(1980년대) → 1만 5천명(2010년경)으로 추정[1] |
이명 | 행영 수용소 |
존재기간 | 1959년 ~ 2012년 |
會寧 收容所 / 行營 收容所 / 會寧 第二十二號 管理所
북한에 있는 정치범수용소. 2012년 6월 해체되었다고 알려져있다.
[clearfix]
1. 개관
특이하게도 외국의 사이트에서는 회령 수용소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행영 수용소', 또는 그냥 'Camp 22'로 통한다. 다른 수용소가 모두 'Concentration Camp' 또는 'Internment Camp'라는 말을 쓰는 것과 대비되는 현상. 이는 위의 정보에서도 보듯이 회령 수용소가 위치한 곳의 원래 행정구역이 함경북도 종성군 행영면이었기 때문.전거리교화소와는 서로 다른 수용소이므로 주의. 회령 수용소의 중심지와 전거리 수용소의 직선거리는 약 40km. 규모 면에서도 회령 수용소는 거의 명간 제16호 관리소의 1/3, 개천 제14호 관리소와 동급인 반면 전거리 교화소는 그냥 건물 몇 채가 전부.
수용소의 경계선은 지금까지도 불명이다. 이와 관련된 특이사항이 있는데, 이 수용소의 북쪽으로 폐쇄된 수용소가 둘이나 있다. 바로 종성 수용소와 창평 수용소. 헌데 회령 수용소 북쪽의 구 종성군 풍곡면 일대가 바로 창평리가 위치한 곳이고 그 서쪽이 종성면이며 종성면의 서쪽은 바로 중국. 즉 중국 국경-종성 수용소-창평 수용소-회령 수용소로 이어지는 거대한 수용소의 이어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창평 수용소는 관리소였기 때문에 규모가 엄청나게 컸을 것은 자명한 이치. 여하간 이 2개의 관리소가 폐쇄되면서 경계선이 너무나 애매모호해진 덕분에 정확한 경계선을 아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구글 어스상에서 경계선을 그어 보면 수용소 북서부~남부~동부의 경계선은 쉽게 그을 수 있지만, 수용소 동북부(바로 창평 수용소와 이어졌던 부분)의 경계선을 찾아서 그으려면... 장담한다. 경계선 그으려다 뒷목 잡는 수가 있다.[2]
규모는 상기 서술되었듯이 북한의 최대 수용소인 명간 제16호 관리소의 1/3 정도인데 가로로 12km, 세로로 최소 20km 정도의 상당히 길쭉한 형태이다. 구 행정구역 지도와 비교해 보면 행영면의 4/5 정도를 덮을 만한 수준이며, 놀랍게도 수용소의 북부 절반의 경계선이 구 행영면의 경계선과 일치한다. 안명철에 의하면 가로로 40km, 세로로 50km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심히 무리가 있는 사실인데, 이 정도의 넓이를 가지려면 온성군, 경원군, 회령시 북부를 모두 덮어야 하며 그야말로 국경 지대가 모조리 완전통제구역이어야 한다. 명간 제16호 관리소의 크기도 상당히 비상식적이지만(해당 항목 참고) 이건 너무했다 싶은 수준이라서 신뢰성은 떨어지는 게 사실. 하지만 본인이 탈북자, 그것도 회령 수용소의 경비원 출신이라서 자세한 건 역시 남북통일이 되어서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용소를 개편하면서 폐쇄된 수용소의 상당 부분이 이 수용소로 편입되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기 때문. 이 경우 수용소의 경계선을 다시 그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수용소가 생긴 시점은 북한에서 가장 악명 높은 청진 제25호 관리소보다 더 오래된 1959년. 이는 탈북자 안명철이 밝힌 사실이다.[3] 수용소의 용도는 주로 조선로동당에 비판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한 당사자의 가족들을 수용한다.
회령 수용소는 회령시의 중봉리·굴산리·행영리·락생리·사을리·남석리 등이 포함된 곳으로, 80년대 말 해산된 12·13호 수용소의 수형자 일부를 합류시키면서 당초 3만 명에서 5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
수용소의 내부에 중봉역이 있는 것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수송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역사가 수용소 내부에 있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한 이력을 자랑하는 셈. 게다가 더욱 특이하고 끔찍한 사실은 수용소 경계선 근처에 도랑 같은 게 파여 있는 곳, 또 개천이 흐르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것은 지뢰밭. 즉 탈출 방지를 목적으로 지뢰 및 대인화기를 수용소 근처에다, 특히 감시가 어려운 도랑 근처에 대규모로 살포했다는 것.
수용소 외곽에는 높이 2.2m의 전기철조망이 쳐져 있으며, 탈출자들이 이용할 만한 통로에는 깊은 함정을 만들어 죽창까지 꽂아두고 있다. 경비대원들은 유사시에 대비해 항상 전투 태세로 근무하고 있으며, AK 소총에 탄창을 장전하고 수류탄까지 휴대하고 군견을 데리고 경비를 선다. 군견은 정치범만 보면 달려드는 훈련을 받아 군견에게 물려죽은 정치범들이 많다고 한다.
이 수용소 역시 한 번 들어가면 죽어야만, 아니 죽어서도 나갈 수 없다는 완전통제구역.[4]
청진 제25호 관리소나 용평완전통제구역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곳이라고 전해지며, 2010년 7월 대북인권단체 '좋은 벗들'에 의하면 박남기 전 조선로동당 계획재정부장의 친인척들이 비밀리에 수용되었다고 했다. #
2. 해체
2012년 3월경부터 북한 정권이 비밀리에 회령 수용소를 폐쇄시켰다. 남은 수용자들은 명간 제16호 관리소로 이관되었다.해체 사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돌고 있다.
- 관리소장과 간부 1명이 탈북해서 : 아무래도 고위급 인사들도 많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니만큼, 수용소의 비밀 유지를 위해 해체한 듯하다. 소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령 수용소의 해체 작업은 3월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 수감자들의 격감 때문에 : 화폐개혁 이후 하루 식량 공급량을 줄이는 바람에 수용인원이 격감, 농장을 운영할 인원이 부족하게 되자 폐쇄시켰다는 것이다. # 한편 이 곳은 혹한의 겨울에 밖에서 무릎을 꿇게 하는 벌을 주어 특히 동사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 그래서 해체 직전에는 수용자가 3천 명까지 줄었다고.[5] 완전통제구역이라 석방자는 절대 없을 테고, 명간 제16호 관리소는 기본적으로 정치범 본인만 가두는 곳이니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정치범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전에 요덕이나 개천 등 다른 곳으로 이관시키고, 본인만 남겨놓았다가 명간 제16호 관리소로 보냈을 수도 있다.
- 중국에 의한 항공 정찰 강화. 만일 중국이 한미와의 거래를 통해 북한의 레짐 체인지, 핵무기 해체를 결정한다면 그 좋은 명분 중 하나가 정치범수용소인데, 평소에 잘 파악된 상황이라면 수감자들을 학살하기도 전에 급습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일부 경비대원들이 남아 8월 말까지 수용소의 감시, 감금 시설을 해체하였고, 9월부터는 일반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2년 10월 미국 워싱턴의 한 민간단체에 의해 수용소가 정말 폐쇄된 게 아니라 북한 당국의 훼이크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13년 8월 미국의 대북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에서 폐쇄된 게 맞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
2020년 8월 5일자 데일리엔케이 기사인 北 수용소 없다?... "수감 인원 늘리고 '유사시 사살' 방침까지 내놔"에 따르면, 회령이 김정숙의 고향이라서 관리소를 두기엔 적합하지 않았다는 내부 소식통의 언급을 실었다.
3. 기타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6 17화에서는 악당 이안 도일이 이곳에 수감되었다 탈출한 전적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6]대한민국의 공식 지도(회령)에서는 83번 국도와 94번 국도가 이곳을 경유한다.
탈북자 출신 전 국회의원 지성호의 고향은 회령시 세천이었는데, 이 수용소와는 30분 거리였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이 수용소의 내부 중 일부를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슬쩍 내려다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언뜻 보기에는 그냥 민가도 보이고 차도 다니고 논밭도 있는 평화로운 시골마을 같았다고.
[1]
수용 인원이 준 것은 혹독한 기아와 생활고 때문이다.
요덕 제15호 관리소나
개천 제14호 관리소도 심각한 고통으로 악명 높은데 전체적인 수용 규모는 변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수용소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가? 물론 그 사이 비밀리에 대규모 학살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
회령 수용소의 위성 사진이 빠진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창평 수용소와 통합이 되어 운영이 되었는지, 아니면 창평 수용소를 없애고 회령 수용소만 운영이 되었는지 파악이 안 되어서 판정이 안 되기 때문.
[3]
이 사람의 저서는
완전통제구역이며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한 내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4]
완전통제구역은 처음부터 수감자를 죽을 때까지 착취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
나치 수용소와 동일하다. 이는 수감된 경우와 현지에서 태어난 경우 모두 동일하다.
[5]
그런데 2013년 10월 14일 쯤 여기서 2만 명의 정치범들이 대규모 학살 당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었다. 1995년
보스니아 전쟁 및
코소보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의 만행과 비교될 정도로 끔찍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수감자가 격감한 이유에 대해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같은 대학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6]
안명철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자대에 배치되기 직전인 1987년 10월에 13호 관리소에서 어느 수감자가 트럭을 훔쳐 중국으로 탈출을 시도했다가 처형 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