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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15:16:59

한스페터 브리겔

한스페터 브리겔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7px-UEFA_Euro_1980.svg.png

1985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토니 슈마허
( 1. FC 쾰른)
한스페터 브리겔
( 엘라스 베로나 FC)
우베 란
(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1980
}}} ||
독일의 前 축구감독
파일:Briegel_Profile_1.pn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한스페터 브리겔
Hans-Peter Briegel
본명 한스페터 브리겔
Hans-Peter Briegel
출생 1955년 10월 11일([age(1955-10-11)]세)
서독 카이저슬라우테른주 로덴바흐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1], 미드필더[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SV 로덴바흐 (1972~1974 / 유스)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74~1975 / 유스)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75~1984)
엘라스 베로나 FC (1984~1986)
UC 삼프도리아 (1986~1988)
감독 FC 글라루스 (1989~1992)
SV 에덴코벤[3] (1992~1994)
SG 바텐샤이트 09 (1994~1995)
베식타스 JK (1999~2000)
트라브존스포르 (2001~2002)
알바니아 대표팀 (2002~2006)
바레인 대표팀 (2006~2007)
MKE 앙카라귀쥐 (2007)
국가대표 72경기 4골 ( 서독 / 1979~1986)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뒷이야기

[clearfix]

1. 개요

파일:Briegel_Kaiserslautern_1.jpg

독일의 前 축구선수이자 축구감독.

축구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육상선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으며, 이로인해 남들보다 뒤늦게 축구를 시작했으나 타고난 운동신경과 단단한 체격 그리고 폭발적인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를 바탕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선수로 현재까지 많은 축구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2. 클럽 경력

2.1.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브리겔은 카이저슬라우테른주의 로벤바흐에서 태어났으며, 어린시절부터 창던지기와 철인 10종, 높이뛰기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했던 소년이었다. 축구와 육상선수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했던 그는 1974년, 당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감독이었던 에리히 리벡이 그의 타고난 운동신경을 눈여겨보고 스카우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의 길을 걷게 된다. 어렸을 때 부터 축구를 시작했던 선수들과 달리 브리겔은 육상과 병행을 했었기 때문에 기본기에서 남들과 부족함을 느꼈지만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연습에 몰두하며 점점 기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유소년때는 공격수를 꿈꿨지만 공격수보다는 수비수로 재능을 보인 브리겔은 1976년 4월 10일,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프로무대를 밟으며 데뷔전을 치르는 데 성공한다. 입단 후 두 시즌동안은 아직 미완의 기량이었던 탓에 풀타임을 뛰지는 않았고, 절반의 경기를 뛰며 경험을 쌓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1978-79 시즌부터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기본기에 문제를 드러냈으나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기본기마저 훌륭해지기 시작한 1979-80 시즌에는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리그 수위급 수비수로 거듭남과 동시에 당시 분데스리가에 막 입성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차범근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분데스리가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언론과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

또한 그 해 만샤프트에 처음으로 승선하게 된다.

이후에도 레프트백, 스토퍼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면서 팀의 핵심선수로 꾸준히 활약했고 1980-81 시즌에는 중위권으로 평가받았던 카이저슬라우테른을 분데스리가 4위 등극에 기여하며 UEFA 컵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다. 1981-82 시즌에는 측면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나와 무려 32경기 13골을 기록했으며, 12위로 마친 1983-84 시즌을 끝으로 이탈리아의 세리에 A 무대로 향한다.

2.2. 세리에 A 시절

1984년, 세리에 A의 엘라스 베로나 FC로 이적한 브리겔은 기존의 레프트백, 스위퍼 포지션이 아닌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강력한 피지컬과 우수한 태클 능력으로 빠르게 주전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첫 시즌에 많은 명문팀들을 제치고 프레벤 엘케어 라르센과 함께 스쿠데토를 들어올리는 깜짝 우승의 주역이 된다.[4] 이때 그는 커리어 기간동안 많이 뛰어보지 않은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발롱도르 투표에서 8위를 기록했으며, 자국에서는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는다.

이후 베로나에서 한시즌을 더 보낸 뒤 명장 부야딘 보슈코프와 로베르토 만치니, 잔루카 비알리, 피에트로 비에르코보드 등 황금 세대가 등장한 신흥 강호 UC 삼프도리아에 입단한다. 1987-88 시즌에는 팀을 리그 4위에 올려놓고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토리노 FC를 상대로 1차전은 2:0으로 가볍게 승리하였으나 원정에서 치러진 2차전에서 0:2로 끌려간 뒤 연장 후반 7분에 파우스토 살사노의 극적인 결승골로 생애 마지막 공식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아름답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

3. 국가대표 경력

소속팀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기 시작한 1979년에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이후 만샤프트의 일원으로 자리잡으며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UEFA 유로 1980에 참가한다. 브리겔은 대회내내 레프트백 자리에서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대회 베스트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린다.

1982 FIFA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결승전까지 레프트백, 레프트 윙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견인한다. 그러나 브리겔은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경기 초반 브루노 콘티에게 파울하며 페널티킥을 내준다. 다행히도 실축으로 실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팀은 1:3으로 패하며 우승을 눈앞에서 바라만 봐야했다.

이후 UEFA 유로 1984에 참가하며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풀타임 출전했으나 팀은 졸전끝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대회가 끝난 후에도 만샤프트의 레귤러 멤버로 월드컵 지역예선 및 친선경기에 꾸준히 출전한 브리겔은 1986년, 대표팀 감독 프란츠 베켄바우어 1986 FIFA 월드컵 최종명단에 그를 호출함으로써 두번째 월드컵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대회 초반에는 팀이 부진했고 그 또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3차전 스코틀랜드전에는 결장을 하기도 했지만 모로코와의 16강에서 선발명단에 복귀한 이후로는 한층 나아진 경기력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팀의 결승진출을 이끈다. 그리고 결승 상대는 마라도나를 필두로한 아르헨티나였다.

팀은 경기 중반까지 호세 브라운과 호르헤 발다노에게 연속으로 실점을 허용하며 2:0으로 끌려갔으나 후반 29분, 루메니게의 만회골을 시작으로 6분뒤에는 루디 푈러가 승부의 균형을 맞추는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반전 시킨다. 동점골 이후 서독은 거세게 아르헨티나를 압박하며 공격적으로 나섰고 마라도나도 중원의 압박에 다소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파일:maradona 1986 germany assist.gif
치명적인 미스를 범한 브리겔, 결국 실점의 빌미로 이어지다.

후반 38분, 공격적인 운영으로 수비라인을 끌어올리며 압박하던 독일은 중원에서 마라도나의 킬패스로 한순간에 수비라인이 뚫려버리고 만다. 패스를 받은 부루차가는 1:1 상황을 마주했고 뒤늦게 브리겔이 죽을 힘을 다해 쫒아가 박스 안에서 태클을 시도했지만 타고난 결정력의 소유자인 부루차가는 어렵지 않게 골을 만들어내며 다시 역전에 성공한다. 직전 상황에서 팀 동료들은 마라도나가 앞으로 패스를 찔러줄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시도했으나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브리겔이 순간적으로 판단을 늦게 하면서 라인이 붕괴되었고 부르차가에게 1:1 상황을 허용한 뒤 실점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브리겔의 판단미스가 너무 뼈아팠던 부분.

결국 부루차가에게 실점하며 2:3으로 패한 팀은 또 다시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월드컵을 마친 뒤 브리겔은 자국에서 열리는 UEFA 유로 1988을 앞두고 더이상 자신의 플레이가 팀에 기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4. 지도자 경력

파일:Briegel_Retired.jpg

뛰어났던 선수시절과 달리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순탄치 않았다. 스위스의 하부리그팀인 FC 글라루스에서 코치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독일 하부리그와 터키 쉬페르리그 등을 거쳐 2002년에는 알바니아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한다. 2006년에는 바레인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2007 걸프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경질됐고, 터키 무대로 돌아와 MKE 앙카라귀쥐에서의 감독생활을 끝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마감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뒷이야기


[1] 센터백, 레프트백 [2] 수비형 미드필더 [3] SpVgg 에덴코벤 [4]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