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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3:28:31

피창린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 정치인, 농업 테크노크라트.

2. 생애

1921년 5월 9일에 출생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젊어서 농민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적이 있으며 이후 남 만주로 넘어가서 공산주의 운동을 했다고 한다.

8.15 해방 이후 1950년 5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부 서기를 맡았으며 1956년 5월에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에 올랐다. 1958년 3월, 전 평안남도 당위원장 김만금이 제1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농업부장에 임명됨에 따라 후임 평남 당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리을설 회고에 따르면 김일성의 삼촌 김형록에게 아부한다고 아주 호화로운 집을 지어줬는데, 김일성이 사람들이 수상 특권으로 과거 지주네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서 사는 걸로 알지 않겠냐고 불같이 화를 내서 허물어버리고 그 자리에 국수집을 세워버렸다 카더라. 1961년 9월, 4차 당대회에 출석하였으며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62년에 리민수에게 평남 당위원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1967년 8월, 내각 국영 과수총국장을 지냈음이 확인되었으며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1984년 11월, 같은 농업 테크노크라트인 김만금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은퇴했는지 1985년 9월, 농업과학원 부원장으로 물러났다. 탈북자 소스에 따르면 이후 중앙검찰소 초급 당비서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 기록에 따르면 1998년 10월 21일에 사망했다. 김정일 시대 초기를 뒤흔든 심화조 사건에 휘말려서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박문일의 증언에 따르면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1단계 숙청 때 김기선, 림형구와 함께 김정일 암살기도 혐의를 뒤집어쓰고 죽었다고 한다. 현재는 복권이 됐는지 애국렬사릉에 농업과학원 부원장의 명의로 시신이 안장되었다. 심화조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었다는 반대급부인지 김정은 시대에 나온 북한 소설에도 등장한다.

태영호 증언에 따르면 그의 사위는 외교관이었는데 장인이 처형되면서 같이 끌려들어가서 고문을 당하다가 복권되어서 말레이시아 대사까지 승진했다고 한다. 주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1998년 12월에 임명된 인물은 김자룡, 2003년 3월에 임명된 인물은 김원호이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