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匍 匐 / crawl일반적으로 땅을 보고 엎드린뒤 기어서 목표지점[1] 까지 이동하는 전술 행위를 이른다. 현대식 군 훈련 및 전쟁에서 기원하였다. 한국에 경우 근대화 이후 부터 해당 기술 훈련이 추가되었기에 조선시대에는 없었거나 다른 의미로 쓰였을 용어다. [2]
원거리 무기인 활도 있었고, 대포도 오래전부터 존재했기에 이때부터 포복술이 제식화 되었을것도 같지만, 한반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도입된 전쟁기술이다. 조선시대까지의 훈련은 입식이 기본이었었다. 전쟁시 병사의 장비는 일반적으로 창이었고, 궁병이나 장군급 정도가 활을 장비하는 정도 였다. 거기에 환도 같은 고급장비는 대체로 지금의 부사관이나 장교에 해당하는 장군들이나 썼었다.[3] 당시 쓰이던 냉병기의 전투술은 총처럼 엎드리거나 앉아서 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 훈련이나 전쟁은 입식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임진년 이후에 병과에 정식으로 포수가 추가 되기는 했으나 이들의 훈련 자체도 궁병에 기반하였기에 지면에 붙어서 하는 훈련은 거의 없었고, 당연히 입식 전투가 일반적이었다.[4] 애초에 당시까지 쓰이던 조총은 화승총으로 연사력이 활보다도 떨어져 지금처럼 총알이 빗발치는 그런 전투환경을 구성하기도 어려웠다.[5] 오죽하면 대체 역사물에서 조차 이런 화승총이 등장할 시점에는 어떻게든 연사력을 챙기기 위해 여러 열을 구성하여 쏘고 뒤로 빠지는 식으로 진을 무조건 구성할 정도. 물론 실제로 이런식으로 구성한다고 해도 현대전에서 보이는 미친 수준에 연사력은 불가능 하다. 조총을 가지고 하는 전투를 고려하며 훈련할때 조차도 엄폐물(주로 성벽)뒤에 숨는 식에 훈련 정도는 있을 수 있었겠지만, 이걸 감안해도 일반적인 전투는 입식일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바꿔 말해 근대화 이전에는 활이 날아오건 포탄이 날아오건 간에 병사의 기본 전투는 후퇴없이 서서 버티거나 달려가는게 끝이었다는 말이다.[6] 환경이 이렇다 보니 일반 병사의 훈련에 포복술을 포함시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나오기 힘들었다. 훈련이 없으니 전시에도 딱히 쓰는 경우가 드믈었고[7], 사실 활용성 자체도 낮았다고 볼수 있다.
이런건 조선이 이상했던게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복술 자체는 총기의 연사력과 유효사거리가 발전하며 등장 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에 해당 기술의 제식화는 상당히 늦은편이며, 이건 서구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8] 중국에 경우 1차 아편전쟁 패배 이후 2차까지 완전히 패배하고 나서야 어느정도 서구 문물을 받아 들였고, 그 이후에나 도입된걸로 본다. 조선에 경우 조선이 망할때까지 근대화된 군대를 만들지 못했다. 물론 총을 쓰는 포수가 있긴 했으나, 서구 열강들과 같이 총알이 난사되는 전장은 없었고, 일본에 패망하여 강제 합병될때쯤에도 딱히 총을 이용한 전쟁다운 전쟁을 경험할수 있는 환경이 없었다. 기껏해야 무력도발 수준에 해전에서 패배 직후 강화도 조약까지 바로 이어질 정도로 허약한 상태였기에 더 그런 경향이 컸다. 애초에 한반도에 근대식 군인력이 전면에 부각된것도 해방 이후 일본장교 출신들이 대거 기용되면서 부터였다.[9] 사실상 그 이전까지는 이런 개념 조차 없었다는 것.[10]
용어 자체가 한자라 오래된 기술로 오인 할수 있지만, 포복술 자체는 참호전과 함께 근대전에 상징과도 같은 거라는 걸 명심해야한다. 사실 총기가 발달하지 못했다면, 그다지 효용성이 높은 기술도 아니다.[11] 포복술 자체가 생존을 위해 쓰이는 건데, 근거리에서는 그냥 땅에 누워있는 과녁일 뿐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총알이 날라온다고 아무곳에서나 쓰이는 것도 아니고, 엄폐물 여부와 적과의 거리등도 고려 되어 쓰이는 전술에 하나다. 실제로 쓰더라도 최대한 유효사거리까지 어떻게든 접근하고 재빨리 일어나 은엄폐하며 공격하는게 일반적이다.[12]
미디어의 영향으로 총탄이 날라오면 자체적으로 알아서 포폭을 하고 전진하는 식의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전술에 하나이기에 일반적으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쓰인다.[13] 보통은 명령을 받아 전진 이동을 한다고 해도, 큰 엄폐물 뒤에 숨어 있다가 빠르게 진격을 하는걸 우선하는 편. 애초에 포복 자체는 전술적으로 보자면 너무 느리기에 아군 병력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싶은 경우[14]가 아니라면 현시점에서도 그리 많이 쓰이진 않는다.
2차세계 대전이 끝나고, 참호전보단 시가지 전투가 더 보편화되면서 더 그런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시가지는 굳이 엎드리지 않아도 은엄폐를 하는데 유리한 편이기 때문이다.
RED 2의 한 장면. 1분 20초부터 보자. 킬러에게 미니건 기습을 당한 주인공과 일행이 포복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다.
2. 군대에서
각 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크게 3-4가지 기본 포복 동작을 가르친다.- 낮은 포복: 총기를 수평으로 손 위에 받치고 개구리 헤엄( 평영)치듯이 기어간다. 양 팔, 양 발을 뻗어서 앞으로 나간다. 신체의 높이가 낮게 유지된다. 따라서 낮게 깔린 철조망 아래에서 쓰라고 권장한다.
- 높은 포복: 총기를 끌어안고 한 발 한 팔꿈치 번갈아 아기처럼 긴다. 낮은 포복보단 신체가 높아진다. 포복 중에서 평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취하는 바로 그 동작이다.
- 응용포복: 소총을 옆구리에 붙이고 옆으로 기어간다. 왼팔꿈치, 오른발로 땅을 밀어 추진하고, 왼다리는 적당히 끌어 균형을 잡는다. 물이 고인 배수로 등, 몸통이나 총기를 적시면 안될 곳에서 쓰라고 권장한다.
- 등 포복: 총기, 방독면 등을 몸 앞에 유지하며 등을 대고 기어간다. 철조망을 보면서 기는 특이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때 소총이 땅바닥에 쓸리지 않게끔 기묘한 파지법을 알려준다. 아무 옵션이 없는 K2 소총을 기준으로, 낮은 포복시에는 개머리판을 오른손목에 얹고 손가락 전체로 피스톨 그립을 잡으라 시킨다. 높은 포복 시에는 그냥 평범하게 잡거나 총목을 잡는다. 응용포복 시에는 아랫총몸 탄창 앞(매그웰)을 잡아 총구가 45도쯤 위로 가는 게 FM이라 권장한다.
사실 알총이 아니라 수직손잡이 같은 게 달리면 또 파지법이 달라질 수 있고, 조준경 같은 게 있으면 어차피 고려할 건 달라지므로 아무튼 총기가 망가지지만 많으면 장땡일 것이다. 훈련소에선
기초군사훈련 각개전투 즈음 훈련병들에게 시범을 보인 뒤 좋든 싫든 차례대로 철조망 밑이나 배관 안을 기어가게 한다. 어떤 철조망에선 등포복, 어떤 철조망에선 낮은 포복, 배관에선 응용포복, 이런 식이다.
하여간 이걸 가르치는 이유는 1차 세계대전 참호전부터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상대의 기관총 사격이나 포격이 시작될 때 포복을 해버리면 공격당하는 병사 입장에선 피탄 면적이 줄어들고, 상대 입장에선 엎드린 채 가만히 있으면 총,포탄을 맞아 쓰러졌는지, 아니면 그냥 포복을 한건지 알아차리기 힘들고 설령 기어오는걸 알아차려도 일단 피탄 면적이 줄어들었고 또 이런저런 장애물에 가려져 있으면 조준사격이 쉽지 않다. 하여간 포복은 이런 식으로 상대의 공격을 덜 맞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수류탄, 포/폭격 등 폭발과 파편을 이용하는 무기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효과를 보이는데, 지면에서 폭발할 경우 구덩이를 형성하면서 지표면에서 상방을 향해 파편이 비산되기 때문. 단, 시한신관이나 근접신관을 이용한 공중폭발이나 이중목적 고폭탄의 경우 얄짤없다.
이 상태로 이동하기는 몹시 힘들다. 엎드려서 기는 것 자체가 사족보행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는 힘이 많이 들고 어색한 행동인데, 피탄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를 땅에 바짝 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땅 위에서 움직이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몹시 비효율적이며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 게다가 무거운 총기, 군장을 지참하고 적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움직여야 하므로 포복하는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건 맞다. 운동신경이 떨어지거나 고문관 타입(…)들은 높은 포복은 본능적으로 해도, 낮은 포복, 응용 포복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발이 아닌 팔꿈치와 무릎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특히 얇은 옷으로 기어다닐 경우, 지면과의 마찰로 까지고 피가 나는 것은 다반사. 때문에 실전상황이 아닌 군대에선 훈련이나 군기훈련 때만 볼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 준비자세는 엎드려쏴 자세에서 준비한다. 군종을 가리지 않고 훈련소 가는 남자들에게 팔꿈치, 무릎 보호대가 불티나게 팔리고 그게 없으면 양말이라도 우겨넣는 꼼수가 있는 이유이다. 장구류에 일반 보병들보다 추가적으로 투자되는 특수부대원들이나 자기 장비에 신경쓰는 민간군사기업 사원들도 팔꿈치, 무릎보호대를 자주 애용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정지 상태로 사격시에 엎드리는 사격 자세는 '엎드려 쏴'라고 표현한다.
3. 대중매체에서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를 비롯한 횡스크롤 계열 게임에서 숙인 상태로 이동할 때 쓰기도 한다. 느리기 때문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답답한 기분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액션성을 강조하는 게임에서는 포복보다 주로 슬라이딩을 채용한다.포복술 연구 (L) | ||||||||
비용 | 3000 3000 | 요구 사항 | (해당 없음) | |||||
설명 | 포복을 통해 적의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합니다. |
임진록 2의 후속작이자 기본 시스템을 이어받은 천하제일상 거상에서는 임진록 2 시절 포복술이 적용되는 유닛을 기반으로 만든 캐릭터들은 모두 포복술을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의 보병들도 피격당하면 자동으로 포복하여 대미지를 낮춘다.
철권 시리즈에서는 세르게이 드라그노프의 승리포즈 중에 포복으로 기어가는 것이 있다.
[1]
안전지역 또는 엄폐물이나 적병/대량살상병기 근처를 이른다
[2]
조선 시대에 사용된 주력병기 특성상 포복이라는 것 자체가 전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3]
병사도 환도를 쓰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넓은 날이 통쇠로 이루어진 칼은 상당한 고가였다. 때문에 쉽게 구비할수이는 장비가 아니었다. 전시무장은 국가에서 마련해 주는것도 있긴했지만, 이런식으로 주어지는 장비는 비교적 생산단가가 저렴하고 만들기 쉬웠던 창이었다. 전술적으로 배우는데 시간이 적고, 살상거리가 월등하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이런 보급의 유불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한반도 내에서 환도같은걸 병사들의 기본무장으로 주는 경우는 없었다. 단지, 상비군 성격에 군사들을 제외하면, 전시에는 각자 개별 무장을 준비해서 참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어느정도 부유했거나 애초부터 칼밥을 먹고 살던 이들은 따로 환도를 구비하긴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전시에는 도끼나 둔기류가 더 효율이 좋다. 칼은 일단 제대로 맞으면 치명상이기 하지만 일정이상의 정확성을 요구되고 단순히 좀 두꺼운 옷만 입어도 어느정도 방어가 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도끼나 둔기는 대충 휘둘러서 신체 아무곳이나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둔중한 무기는 옷을 어지간히 두껍게 입어도, 방호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유럽권 방어구에 최종 진화형이 판금갑옷이었던 것이다. 또한 애초부터 훈련된 검병이나 장군급을 제외하면, 환도 자체는 전시에 효율적인 무장도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일반병 입장에선 개인무장을 따로 구한다고 해도 비싸기만 하고, 따로 훈련까지 필요한 도검류를 챙기기기 보단 직접만들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해 구하기 쉬우면 쓰기까지 편한 둔기류나 아예 평상시 나무팰때 써서 익숙한 도끼를 개인장비로 구비하는 편이었다.
[4]
이게 무려 조선이 망할때까지 유지된다.
[5]
당시 화승총의 장점은 소음으로 인한 생소함 상대적으로 살상이 쉽다는 점 뿐이었다. 이외에는 죄다 단점뿐이었다. 활은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어느정도 완력이 필요했고, 정확하게 맞추것 또한 많은 연습을 요구했다. 반면 총은 첫 등장 때부터 이미 초보자 조차도 어느정도 위력을 보여줄수 있는 무장이었다. 단지, 화약 자체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쌌으며 국내 자체생산도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숙련된 궁수가 쓰는 활과 비교해도 발사 속도 자체는 상당히 느렸기 때문에 오랜기간 조선의 주력 무장이 되진 못했을 뿐이다.
[6]
한국식 장기의 졸은 관련 개념에서 기인해 후퇴가 안되는 기믹이 있는 것.
[7]
물론 전투중에 정신줄 놓고 도망 치는 상황에서는 비슷한 자세가 나올수는 있었을 거다. 단지 전술적인 움직임이 아닐뿐.
[8]
리볼버의 이미지가 생각나는 서부개척시대에서 조차 포복술 같은 개념은 없었다. 총알이 빗발치는 분위기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했으나 아직 연사라는 개념도 없었고, 애초에 당시 리볼버의 사거리가 형편 없었던 덕분이다. 쉽게 말해 포복을 통해 접근해야 할 정도의 거리가 안나왔다는 말이다. 서부 총잡이 정도만 해도 아직 눈에 확실히 보이는 근거리에서나 명중이 용이한 수준이었다. 물론 서부 개척지가 대체로 개활지라는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9]
대표적으로
박정희가 이런 사례 중 하나였다. 사실 당시 군간부 인력의 대다수가 그러했다. 해방군 출신이라거나 독립군 출신인 경우는 극소수였다.
[10]
한국에 미국식 제식이 도입된 것도 한국 전쟁쯤 부터다. 일본에 해방될 시점 부터 미군이 주둔하긴 했었으나 딱히 군대라 부를만 것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일제천황에게 충성 서약까지 했었던 친일 장교 출신들이 대거 임용된게 아니다. 그만큼 군간부급에 대한 인력난이 심각하던 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일이 진행된 것.
[11]
기껏해야 정찰병 정도나 쓸법한 방식이지, 근거리에서 백병전이 기본인 시절에 쓰일 기술은 못된다.
[12]
포복으로 끝까지 가서 상대방을 무력화 시키는 등의 행위가 아예 없거나 불가능한거 까진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도 아니고, 전술적인 측면에선 굳이 원거리 무기가 있는 상황에서 쓸 방법도 못되고, 결코 추천되지도 않는다. 암살같은 경우를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런데 쓰라고 따로 있는게 저격총이기에 포폭술이 근접전에서 쓰이는 경우는 매우 드믈다 못해 희귀한 경우라고 할 수있다.
[13]
상식적으로 총탄이 날아오면 알아서 은엄폐를 하긴 해야 겠지만, 혼자서 포폭으로 전진하면 엄연히 군법에 위배된다.
[14]
총알이 빗발치는데, 엄폐물의 크기가 작거나 위치가 너무 낮아서 누워서 이동할때나 겨우 사살각도가 안나와 생존에 유리할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