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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8 12:21:31

팔루자

팔루자
الفلوجة
행정구역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안바르 주 팔루자
인구 275,128명

1. 개요2. 역사3. 설명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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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라크 중심구역에 위치한 대도시 중 하나. 수도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40km, 라마디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는 35만명이다. 역사적으로 유구한 도시로, 이라크 기반 왕조들에게 크테시폰 혹은 바그다드의 서쪽 관문으로 여겨져 중시되었다. 이라크 전쟁 시기 주요 전장이던 팔루자 전투가 벌어졌다.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압바스 조의 초대 수도인 안바르 유적이 남아있다.

2. 역사

고대에는 미시케로 불렸다. 사산 제국 초기인 242년, 샤푸르 1세 로마 제국령 시리아를 침공해 안티오크까지 진격하였다. 이에 반격에 나선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와 섭정 티메시테우스는 243년 레사이나 전투에서 이란군을 격파하고 니시비스 ~ 싱가라 등 상부 메소포타미아를 수복한다. 다만 승리를 이끈 티메시테우스는 그해 병사한다. 그에 굴하지 않은 고르디아누스 3세는 내침 김에 메소포타미아 원정에 나섰으나 244년 초엽 미시케 전투에서 패하고 전사하였다. 후임자 필리푸스 아라부스는 점령지를 돌려주고 50만 데나리우스를 납부하는 강화를 맺고 회군한다.

이후 샤푸르 1세는 승리의 도시 미시케를 '승리한 샤푸르'란 의미인 페로즈 샤푸르라 개칭하였다. 도시는 로마군 포로들의 노동으로 2중 성벽이 둘러져 요새화되었다. 로마측 기록에선 피리사포라로 기록되 도시는 363년 율리아누스의 원정 시에 함락되어 한세기 전 수모의 보복으로 파괴되었다. 다만 얼마후 율리아누스가 암살되며 다시 사산 조에게 수복되었다. 7세기 이슬람 정복 중 633년 7월, 치열한 포위전 끝에 함락된 페로즈 샤푸르는 이후 페르시아어로 '창고'를 의미하는 안바르로 불리게 되었다. 압바스 왕조 시절에 바그다드의 위성 도시로 중시되었만 1261년 몽골군과 바그다드를 되찾으려는 압바스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 2세 간의 전투 와중에 안바르는 몽골군의 학살을 겪으며 쇠락하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기에 재차 도시가 세워졌고 이라크 공화국 설립 후 오일머니에 힘입어 개발되었다. 따라서 사담 후세인의 지지 기반 중 하나가 되어 이라크 전쟁 당시 주요 전장이 되었다.

3. 설명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가 위치한 바로 그 지역에 존재하는 도시로, 유프라테스 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다. 또 다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인 티그리스 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바그다드와는 대조적. 다만 바그다드에 밀려서 도시 규모도 작고 편의시설도 덜 몰려있는 등 콩라인 취급을 제대로 받고 있다. 그럼에도 명실상부한 이라크 중부의 제2 도시로써 다른 도시들에 비한다면 발전해있고, 바그다드의 서쪽 관문 도시인 입지 때문에 유독 이곳을 무대로 한 전투가 많이 일어났다. 자세한 것은 팔루자 전투 항목 참고.

참고로 팔루자에서 일어난 전투들은 대부분 외세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영국군이 이라크에 진주해있을 땐 영국군이 나치 독일의 사주를 받은 반군들로부터 팔루자를 수비하는 전투에서 승리했고, 이라크 전쟁 당시엔 미군이 팔루자를 점령하였으며, 이후 반군들에 맞서 팔루자 수비 전투에서도 미군이 승리했다. 그리고 ISIS가 침략해왔을 땐 ISIS가 팔루자를 점령했다. 그나마 이후 ISIS로부터 팔루자를 해방시키기 위한 이라크군의 공격에서는 이라크군이 승리하고 팔루자를 탈환해서 간만에 토착 군대가 외세 군대를 이긴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다만 바그다드에 비해 나쁜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닌데 바그다드만큼은 아닐지라도 팔루자도 나름대로 좋은 입지조건을 바탕으로 많이 발전해서 몇몇 부분은 오히려 바그다드보다 뛰어난 것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종교적인 상징성이 그것인데, 바그다드가 수도라는 이유로 외부 세력의 침입을 당할때마다 쑥대밭이 될 동안 팔루자는 바그다드만큼 심하게 얻어맞은적은 없기 때문에 종교적인 건축물들은 잘 보존되어있어서 종교적인 상징성이 바그다드보다 높다. 한편 이렇게 수도는 아니지만 입지가 좋아서 수도 못지 않은 발전 상황을 지닌 대도시라는 점을 이라크 통치 세력들도 잘 알고 있어서 팔루자를 바그다드의 백업 도시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대표적으로 사담 후세인은 팔루자의 중공업을 육성하여 대규모 공장지대를 들여놓았고 바그다드와 통하는 도로망을 개선하여 팔루자를 크게 부흥시켰다. 문제는 이걸 근거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이 공장지대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지만.

4. 기타

묘하게도 나무위키에서는 연관 항목이어야 할 팔루자 전투 문서가 더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팔루자 항목은 한참 늦게 작성되었으며 항목 내용 자체도 오랫동안 토막글 수준에서 방치되어 있었다. 팔루자의 대외 인지도를 알 수 있는 대목.

팔루자에는 여행금지 경보가 발령되어 있어 이곳으로 여행을 갈수 없다.

어째서인지 여기에서 이름을 딴 밴드가 있는데 미국쪽 밴드이다. 장르도 진짜 팔루자 사람들이 들어보면 기겁할만한 데스 메탈 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