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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5:36:42

모란사 사건

타이완 출병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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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udan_Incident_of_1871_tombstone.jpg
당시 학살된 류큐인들의 시신이 묻힌 묘
모란사 사건
牡丹社事件
기간 1874년 5월 6일 ~ 1874년 12월 3일[1]
장소 청국령 대만, 낭교(瑯嶠) 모란향 석문
(現 대만 핑둥현 무단향)
원인 류큐인들을 학살한 대만 원주민에 대한 보복
교전 세력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틀:깃발|]][[틀:깃발|]][[대만 원주민|]]
일본 제국 해군
일본 제국 해병대
파이완 부족
지휘관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사쿠마 사타마
[[틀:깃발|]][[틀:깃발|]][[사이고 주도|]]
[[틀:깃발|]][[틀:깃발|]][[틀:깃발|]] 아루쿠
병력 육군병원 3,658명
하사관 781명 이상
군인 2,643명
군속 172명
종복 62명
군함 승조원 734명
약 600명 추정
피해규모 전사 12명
병사 561명
최소 20명 이상 사망 (지도자이자 족장 아루쿠와 그의 아들)
부상 50명 이상
결과 일본 제국군이 타격을 입고 퇴각했으나 승리, 지휘자 아루쿠 사망
영향

1. 개요2. 배경3. 전개4. 평가 및 영향5.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 제국 1874년 청나라가 지배한 타이완섬을 공격한 사건. 타이완 침략(臺灣侵略), 타이완 출병, 류큐 표류민 살해사건, 바야오만 사건, 모단사 사건, 무단 사건, 미야코섬 도민 조난사건(宮古島島民遭難事件), 바야오만 류큐인 사건(八瑤灣琉球人事件), 류큐 표류민족 사건 등으로 불린다.

태풍으로 인해 대만에 표류한 류큐인들이 대만 원주민 중 하나인 파이완 부족에게 몰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당시 류큐를 노리고 있었던 일본 제국이 류큐인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타이완 섬에 쳐들어와 원주민들과 교전을 벌여 이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2. 배경

당시 류큐인, 서양인 등이 타이완 섬에 표류했다가 원주민들에 의해 붙잡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일반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청나라가 규정에 따라 구출해 보호하는 것이었다.

1871년 10월 18일, 류큐인들이 귀국 도중 태풍으로 배가 파괴되면서 타이완 섬에 표류했다. 69명 중 2명은 익사, 1명은 실종되어 살아남은 66명은 섬을 돌아다니다 두명의 한족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한족들은 서쪽에는 '큰 귀 귀신'인 사나운 원주민들이 있으니 남쪽으로 가라는 조언을 했다. 류큐인들은 그 두명의 한족과 함께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내려 했으나 동굴의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고 이내 한족과 류큐인의 다툼이 생겼다. 류큐인들은 이 두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남쪽으로 가라는 조언을 따르지 않고 서쪽으로 갔다.

그러다 12월경 파이완 족과 만났고 수화와 중국어로 그들과 대화를 하여 파이완 족 마을에 머무르면서 고구마, 토란죽, 쌀 등을 대접받았다. 이튿날 총을 든 5~6명의 파이완 족이 사냥하러 갈테니 류큐인들에게 집에서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류큐인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탈출한다.

류큐인들이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나자, 파이완 족들은 그들이 해적의 간첩이고 나중에 해적들을 끌고올 것이라고 오해하여 류큐인들을 추격해 66명 중 54명을 붙잡아 처형했다. 살아남은 12명은 한족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이들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1872년 3월, 일본 외무경 소에지마 다네오미가 청나라에 항의했으나, 청나라는 대만 원주민들은 화외 종족[2]이라 책임질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일본은 1874년 참의 오쿠마 시게노부를 대만지사무국 장관으로, 또한 육군 중장 사이고 주도를 사령관으로 각각 임명하여 대만 출병을 준비했다.

3. 전개

서양 외교관들의 우려와 기도 다카요시의 반대로 출병 중지가 결정되었으나, 사이고 주도는 독단으로 나가사키항을 출항하여 1874년(청 동치 13년, 일본 메이지 7년) 5월 6일, 대만 남부 헝춘반도에 병력 3,600명을 상륙시키고 5월 22일, 대만 서남부 사료항(社寮港)에 전군을 집결시킨 후 본격적인 진압을 시작했다. 일본군은 사건의 진앙지인 모란사(牡丹社) 등을 점령하고, 사건의 주모자인 파이완족 추장 아루쿠와 그의 아들을 사살하고, 인근 원주민 마을을 토벌하였다. 7월 1일 원주민들이 항복함으로써 전투는 끝났다.

당시 대만은 청나라의 영토였으므로 청군 수천명이 대만으로 파병되었고, 일본과 청나라는 영국의 중재로 협상에 임하게 된다. 오쿠보 도시미치 이홍장 간의 교섭 결과, 일본은 타이완 출병이 자국민 보호 조치였음을 인정받고 배상금을 받은 후 12월에 철수했다.

4. 평가 및 영향

5. 기타



[1] 출처 [2] 중화 문화권 밖의 민족 [3] 이후 청나라 군대가 스페인군과 네덜란드군을 섬멸했고, 겨우 도망쳐서 생존에 성공한 두 나라 사람들은 모두 자국으로 도망쳤다. 청나라 정부가 인식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서로 대만이 자기땅인양 견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