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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00:59:40

타우로엔토 해전

카이사르의 내전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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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양측의 전력
3.1. 카이사르군3.2. 옵티마테스파 + 마실리아 연합군
4.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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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49년 7월 31일, 마실리아(현재 마르세유)를 봉쇄한 카르사르 함대와 마실리아를 구원하려는 옵티마테스파 함대가 타우로엔토 섬 인근 바다에서 맞붙은 해전.

2. 배경

기원전 49년 4월 19일, 이베리아 반도의 옵티마테스파 군대를 무찌르려 진군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마실리아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자 무력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에게 3개 군단을 맡겨 육상으로 공격하게 하고, 데키무스 브루투스에게 해군을 맡겨 해상에서 봉쇄하게 한 뒤, 자신은 히스파니아로 계속 진군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마실리아 공방전에서, 트레보니우스는 참호를 파고 방벽을 세운 뒤, 투석기, 탑, 사다리 등 공성용 무기를 대량으로 제작했다. 한편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12척의 전함을 이끌고 해상을 봉쇄했다. 마실리아 수비대는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지휘하에 해상을 봉쇄한 카이사르 함대를 무찌르러 했지만 격파당했다.

한편, 에페이로스에서 대규모 병력을 소집하여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폼페이우스는 마실리아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고 루키우스 나시두스에게 17척의 함대를 맡겨 마실리아를 구원하게 했다. 나시두스는 시칠리아 해안가를 거슬러 이동하여 마실리아 인근으로 이동한 뒤, 비밀리에 마실리아에 사절을 보내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자신과 연합하여 적 함대를 쳐부수자고 제의했다. 당시 마실리아인들은 일전의 패배에도 전의를 잃지 않고 손상된 배를 수리하고 더 많은 배를 준비했다. 그들은 나시두스의 메시지를 받은 뒤 즉시 항구에서 출격했고, 신전에 몰려들어 신들에게 승리를 기원했다. 한편, 18척의 함선을 규합한 브루투스는 수적으로 열세했지만 과감하게 맞서기로 결심하고 타우로엔토 섬 앞바다로 진군해 옵티마테스 파와 마실리아 연합 함대를 상대했다.

3. 양측의 전력

3.1. 카이사르군

3.2. 옵티마테스파 + 마실리아 연합군

4. 경과

카이사르는 <내전기>에서 마실리아 선원들의 탁월한 항해술과 용맹을 칭찬했다. 실제로 이들은 적 함대 주변을 배회하며 화살비를 퍼부었고, 아군 함선 한 척에 적이 승선하려는 시도를 할 때 다수의 함선이 이를 막기 위해 달려들어 격퇴했다. 카이사르군 병사들은 적의 능수능란한 항해술 때문에 쉽사리 따라잡지 못했고, 적이 퍼붓는 화살비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던 중 2척의 마실리아 함선이 브루투스의 기함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브루투스는 그들이 접근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선원들을 독촉하여 배를 후방으로 이동하게 했다. 적 함선 2척은 워낙 신속하게 이동하다보니 브루투스의 기함이 빠져나가고 생긴 공백지에 그대로 질주했고, 곧 서로 충돌하여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2척 중 하나는 뱃머리가 부서져서 정상적인 기동이 불가능했다. 카이사르 함대는 즉시 공격해 순식간에 두 함선을 침몰시켰다.

이후 브루투스는 적이 최대한 접근하도록 유도한 뒤 낫이 달린 밧줄을 던져서 적선에 걸어놓고 병사들이 적선에 승선하는 전술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많은 마실리아 함선이 억류되었다. 이렇듯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루키우스 나시두스의 옵티마테스파 함대는 후방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마실리아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전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마실리아 함대가 점차 불리해지자, 히스파니아로 가버렸다.

결국 마실리아 함대는 5척이 침몰하고 4척이 나포되는 참패를 당한 뒤 항구로 도피했다. 그 후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한 마실리아는 9월 6일까지 버티다 이베리아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항복했다. 카이사르는 그들의 모든 무기와 선박과 금고에 있는 모든 돈을 넘기게 하고, 혹여 또다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2개 군단을 도시에 배치했다. 한편, 아헤노바르부스는 급히 배에 올라 타 마침 불어닥친 폭풍우로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함대가 육지로 흩어진 틈을 타 탈출하여 폼페이우스와 합류했다. 그 후 이탈리아로 돌아간 카이사르는 발칸 반도에 건너가 폼페이우스와 대결할 준비에 착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