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2:04:36

커널 샌더스의 저주

커넬 샌더스의 저주에서 넘어옴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야구계의 저주들
,
,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fefe01> 파일:한신 타이거스 엠블럼.svg 한신 타이거스
관련 문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fefe01><colcolor=#fefe01,#000000> 모기업 관련 정보 한신 전기철도 · 한큐한신토호그룹
연고지 관련 정보 간사이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 일대 · 오사카부 오사카시
일본시리즈 우승
★★
1985 · 2023
리그 우승
(10회)
1937 추계 · 1938 춘계 · 1944 · 1947 · 1962 · 1964 · 1985 · 2003 · 2005 · 2023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10 · 2013 · 2014 · 2015 · 2017 · 2019 · 2021 · 2022 · 2023 · 2024
시즌별 요약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 역대 등번호 · 역대 선수 · 유니폼 · 응원가 · 사건사고 · 한신아재 · 커널 샌더스의 저주 · JFK(한신) · 4466566664
주요 인물 감독 후지카와 큐지 · 선수회장 나카노 타쿠무
주요 명장면 백스크린 3연발 · 일본프로야구 최장시간 소요 경기 · 201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 고의사구 끝내기 안타
2022년 센트럴 리그 3위
경기장 1군 한신 고시엔 구장 · 고시엔 기간 교세라 돔 오사카 · 2군 한신나루오하마 구장· 지방구장 머스캣 스타디움
홈 중계 채널 파일:가오라스포츠 로고.png / 파일:스카이A 로고.jpg
기타 정보 한신 본선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 전통의 일전 · 도쿄온도 · 죽음의 원정
관련 틀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 선수 · 역대 감독 · 영구 결번 ·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

파일:external/www.d-center.jp/30-thumb-400x269-thumb-400x269.jpg
カーネルサンダースの呪い
커널 샌더스의 저주 / Curse of the Colonel

1. 개요2. 기원3. 저주의 시작4. 21세기5. 어서와! 커널6. 해금7. 매체8. 관련 문서

1. 개요

야구계의 저주 중 하나.

KFC 할랜드 샌더스 조각상이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 일본시리즈 우승을 방해한다는 도시전설이었다. 이후 2023년 일본시리즈에서 7차전 접전 끝에 한신 타이거스가 오릭스 버팔로즈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38년 만에 저주를 깨는 데 성공한다.

2. 기원

한신 타이거스는 1935년에 창단한 전통있는 팀이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라는 강자에게 치이면서 1984년까지 리그 우승은 6번[1]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985년, 한신은 랜디 바스- 카케후 마사유키- 오카다 아키노부라는 팀 역사상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와 4번 같은 1번 타자 마유미 아키노부 등의 강타선, 그리고 그해 발생한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사망한 구단 사장 나카노 하지무(中埜 肇)의 영전에 첫 우승의 영예를 바치자는 투혼을 앞세워 1964년 이후 21년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 뒤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즈를 꺾고 구단 사상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한다.

사실 한신이 1985년 이전 마지막으로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한 1964년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센트럴 리그 - 일본시리즈 9연패(일명 V9)를 달성했고, 한신은 이 기간동안 리그 2위만 5번을 차지했기 때문에[2] 한신 팬들은 우승에 한이 맺혀 있었다. 이 때문에 오사카 시민들은 센트럴 리그 우승[3]이 확정되자 모두 시내로 뛰쳐나와 우승의 기쁨을 나누었고, 한신 선수들을 닮은 사람을 찾으면 도톤보리강에 던져버리면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었다. 물론 팀이 우승했다고 다짜고짜 아무나 던져버린 건 아니고 오사카에는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하거나 일본이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면 강에 뛰어드는 '도톤보리 다이브'라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팀의 외국인 강타자였던 랜디 바스를 닮은 사람은 끝내 찾지 못했는데, 이에 군중들은 처음에는 도톤보리강 명물인 쿠이다오레 타로(くいだおれ太郎)라는 식당 홍보용[4]의 북치는 자동 인형을 던지려고 했으나 제지당했다. 이 수몰 위기는 이후에도 다시 나타나는데, 1992년에 다시 한신 타이거스가 잘 나가기 시작하고 당시 한신 외야수 카메야마 츠토무(亀山努)와 쿠이다오레인형이 닮았다는 점에 착안하여 팬들이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자, ' 내는 수영 몬합니데이(わて、泳げまへんねん)' 라고 쓰인 간판과 물안경, 튜브 등의 특별 코스튬을 뒤집어쓰고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저항했다.[5]

어쨌든 결국 군중들은 근처 KFC 매장 앞에 세워진 창업주 할랜드 샌더스[6]의 인형이 바스와 닮았다는 이유로 가져가려고 했다. KFC 직원들이 나와 제지했지만 이미 우승의 기쁨에 눈이 뒤집힌 군중들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있나. 직원을 두들겨 팬 다음 샌더스 인형을 도톤보리 강으로 가져가 헹가래를 한 후 강으로 집어 던졌다.

3. 저주의 시작

우승 다음 해인 1986년, 한신은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는데, 팀의 중심타자인 랜디 바스가 2년 연속 삼관왕을 차지하고 NPB 단일시즌 최고타율인 .389를 찍는 등 리그를 때려부쉈으나 또다른 주력들이 전년도만 못한 성적을 거두고, 팀 리더이자 4번타자인 카케후 마사유키가 사구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등 여러 악재가 겹친 끝에 센트럴 리그 3위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것도 승률은 딱 5할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87년, 한신은 승률 .331로 창단 이래 최악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우승을 차지한지 불과 2년 만에 리그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때 요미우리 TV 방송의 아나운서였던 모리 타케시[7]가 방송에서 언급한 말인 "괴롭구만(なんぎやなあ)"이 유행어가 되면서 '커넬 샌더스의 저주'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한신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던 외국인 타자 랜디 바스가 병을 앓고 있던 아들의 치료 문제를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다가 퇴출되었고 카케후 마사유키가 1986년 입은 부상으로 잃은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하고 마는 끝에 2년 연속 리그 꼴찌를 기록하는데, 바스가 떠난 이후 한신 구단 대표 후루야 신고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구단 내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8]

그리고 나온 1985년 이후의 결과는 폭망 그 자체. 한신은 1992년 2위를 기록한 걸 제외하면 2002년까지 계속 B클래스를 찍으며 66566(2) 4466566664 라는 5+10, 합계 15자리 비밀번호를 생성하면서 한 동안 엄청난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찍은 최하위가 무려 10회에 8888577처럼 4년 연속 최하위도 기록했다! 5할 승률을 넘긴 건 상술한 1992년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 2위도 전통의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공동 2위, 그것도 승률은 67승 63패, 승률 .515로 5할 2푼을 넘기지도 못했다.[9] 한신이 그렇게 리그 밑바닥을 까는 동안 마유미 아키노부, 오카다 아키노부 등 남아있던 우승 멤버들도 서서히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사라져갔고, 그 빈 자리를 와다 유타카, 신조 츠요시, 히야마 신지로, 야기 히로시, 쿠지 테루요시 등 새로운 멤버들이 채웠지만 1985년 우승 당시의 막강한 전력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왔다. 한 술 더 떠 외국인 선수들은 아예 데려오는 족족 대차게 망해버렸다. 그나마 예외가 토마스 오말리였으나 1994 시즌 종료 후 야쿠르트로 보내버리고 그는 1995년 야쿠르트를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한신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 마이크 그린웰이라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먹튀를 낳은 건 유명한 일화다.

4. 21세기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3년, 한신은 호시노 센이치 감독 하에 그동안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뿌리치고 다시 강팀으로 도약하여 18년 만에 센트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으나 그 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에서는 7차전까지 간 끝에 아쉽게 패퇴했다.[10] 그래도 해당 시리즈에서 카네모토 토모아키 고시엔 홈경기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리는 맹활약을 하며 역대 일본시리즈 중 명 시리즈를 만들었을 정도로 인상깊었고, 비밀번호만 찍던 한신이 이 때를 기점으로 환골탈태를 하며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다음으로 기약하게 됐다.

2003년 일본 시리즈 준우승 이후 얼마 안 된 2005년에 다시 센트럴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으나, 그 해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일본시리즈에서 다소 만만하게 봤던 상대팀 치바 롯데의 이승엽, 이마에 토시아키, 후쿠우라 카즈야를 위시한 일명 마린건 타선[11]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33-4라는 굴욕만 남긴채 4연패로 폭망했다[12].

이 이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도입되면서 2013년까지 일본시리즈에는 근처에도 가보질 못했고, 심지어 파이널 스테이지도 가지 못하고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무너졌다.

커널의 저주는 한신의 신인 지명에서도 한동안 위력을 떨쳤다. 한신은 고졸 투수 시마다 아키히로를 데려오는 데 성공한 1984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대형 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12번의 전구단 지명권 제비뽑기에서 한동안 1순위 제비를 뽑지 못했다. 이 시기 한신이 놓친 대형 유망주 중에는 키요하라 카즈히로(세이부), 노모 히데오(킨테츠), 마츠이 히데키(요미우리) 등 레전드급이 여럿 있었고, 나카타 쇼(닛폰햄), 키쿠치 유세이(세이부) 등 리그의 스타로 성장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 징크스는 2012년 드래프트에서 후지나미 신타로를 지명하는 데 성공하면서 끊기게 된다. 대형 유격수 유망주 타구치 소의 경우는 아예 본인이 직접 한신 입단 거부를 선언해 제비뽑기 기회를 가지지도 못했다.

이 팀이 저주에 걸린 동안, 밤비노의 저주( 2004년), 검은 양말의 저주( 2005년), 염소의 저주( 2016년)가 차례대로 깨졌다.

5. 어서와! 커널

이에 한신 구단 측에서는 이 저주를 풀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 2008년 고시엔 구장 내에 KFC가 입점하게 되었을 때에는 한신의 응원 굿즈를 착용한 커널 샌더스를 세워놓았다.[13] 샌더스의 저주가 야구팬들 사이에서 유명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KFC의 홍보전략인지는 몰라도 일본 곳곳의 구장에서는 KFC 앞에 자기 팀의 유니폼이나 응원 굿즈를 착용한 커널 샌더스를 세워놓는다.
파일:external/jhockey.files.wordpress.com/sanders.jpg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51e19dd2.jpg
버려진지 23년만에 수거된 커널 샌더스 인형 발견 다음날 스포츠 일간지 1면[14]

그리고 2009년 3월 11일, 오사카시에서 도톤보리 강을 준설하던 중 한 잠수부가 강 바닥에 파묻혀 있던 샌더스 인형의 상반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하반신과 오른손 부위도 발견. 인형 몸통은 전부 발견했지만 안경과 왼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TV 방송에 따르면 최초에는 도톤보리 강가에 불발탄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고, 레이더에 잡힌 물건을 꺼내 올려보니 커널의 상반신이었다고 한다. 이에 공사업체 측이 오사카시청에 문의를 하였으나, 매스컴이 들러붙으면 귀찮으니 숨겨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상반신을 꺼내올린 시점에서 이미 몇몇 매스컴이 들러붙었고 다음날에는 도톤보리 강 양옆 인도를 끼고 방송사 카메라가 늘어서있었다고 한다. 이후 하반신 인양작업이 실시되었고, 작업감독은 이미 위치는 알고있었으나 너무 쉽게 꺼내올리면 재미없으니 못찾는 척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한다.

샌더스가 발견되자 오사카시에서는 대대적으로 '어서와! 커널(おかえり! カーネル)'이라는 축제를 벌였고 히라마쓰 구니오 오사카 시장이 KFC 일본 사장에게 전달식을 가지는 등 엄청나게 열광했으며, 주요 스포츠지 1면은 샌더스 인형 이야기가 장식하는 등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파일:external/www.m-tigers.net/090914.jpg
파일:external/www.city.sabae.fukui.jp/008195-01-1.jpg
어서와! 커널 행사 당시
파일:external/www.47news.jp/PN2009031401000152.-.-.CI0003.jpg
커널 샌더스 명예 입단식

KFC에서는 한동안 이를 보관하며 복구작업을 한 후 구단에 기증했고[15] 구단에서는 명예입단식까지 치렀으며, 위에 언급한 고시엔 구장 내의 커널과 함께 명물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로서 커널의 저주가 풀렸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저주가 풀려가다가 이 인형의 발견으로 인해 부활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해야 될 정도로 암담했고, B클래스로 굴러떨어지는 끝에 4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인형은 2010년에 개관한 한신 고시엔 구장의 구장 박물관(고시엔 역사관)에 약 7년간 전시된 뒤, 이후 KFC 오사카 본사 사무실로 옮겨서 전시되다가, 2024년 3월 19일 오사카시 스미요시구 스미요시 대사로 옮겨져 봉납되었다.

6. 해금

하지만 이렇게 샌더스를 건져낸 이후에도 저주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나 드디어 2014년, 새로 입단한 오승환을 시즌 막판과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아낌없이 갈아넣으면서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9년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다. 29년 만에 저주를 풀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으나 결국 이번에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대로 1차전 승리 후, 2차전부터 타선이 물빠따 모드로 회귀하는 바람에 귀신같이 4연패를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자세한 사항은 한신 타이거스 문서의 2014년 단락과 오승환 2014년 시즌, 2014년 일본시리즈 문서를 참조.

그리고 그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 4번 더 올라서 2번[16] 더 파이널 스테이지를 갔지만 그뿐 일본시리즈는 구경도 못 하고 멈췄다.중간에 꼴찌까지 갔던 건 덤

그러다가 2023년, 18년만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구단 역사상 최단기간 센트럴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일본시리즈까지 무난히 진출하였다. 그리고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오릭스 버팔로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38년 동안의 긴 저주는 마침내 깨지게 되었다. 게다가 한신은 1964년에 열린 유일한 간사이 시리즈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한테도 패배한 역사가 있었기에 더더욱 뜻깊은 우승이 되었다.

2023년에 한신이 센트럴리그에서 우승하면서 KFC 일본 지사의 트위터에서 "내도 억수로 기쁘대이(ワシもメッチャうれしいで)."라는 코멘트와 함께 팬아트를 담은 축하의 트윗을 올렸다. 그리고 한신의 일본시리즈 제패가 확정된 날 이 트윗을 리트윗하며 다시 한신을 축하해줬다.

흥분한 한신팬들이 커널 샌더스 상을 한 번 더 도톤보리강에 던지려 했지만 경찰의 만류로 불발되었다. 대신 할랜드 샌더스 코스프레 코스어 던졌다.

7. 매체

8. 관련 문서



[1] 단일리그 시절 4회, 양대리그 전환 후 센트럴 리그 우승은 2회. [2] 일본시리즈 준우승 5번이 아니라 센트럴 리그 2위를 5번 한 것이다. [3] 일본시리즈 우승이라는 말도 있으나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는 센트럴 리그 우승 때 벌어진 일로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 일본 야구팬들은 리그 우승만 해도 한국시리즈 우승한 것처럼 엄청 기뻐한다. [4] 참고로 식당 자체는 2008년에 폐업했으며, 인형은 순회 전시되다가 2009년에 다른 건물 로비로 옮겼다. [5] 이 해, 결국 한신 요미우리와 공동 2위로 시즌을 마쳤다. 설레발 [6] '커널 샌더스'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미국 켄터키 주에서 할랜드 샌더스에게 부여한 명예 칭호 ' 대령 (Colonel)'에 성을 붙여서 '커널 샌더스'라고 부른 것이다. [7] 간사이 지방에서는 유명 아나운서로, 2015년 정보스포츠국 정보 프로그램 센터 차장을 맡고 있다. 방송국이 닛폰 테레비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안티교진에 한신 팬. 참고로 도쿄 출신이다. [8] 랜디 바스와의 갈등에서 발생한 수많은 한신 팬들의 비난과 구단측에서 랜디 바스에 대해 내린 결정으로 인한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9] 사실 그 2위도 1992년 센트럴 리그가 우승 팀 야쿠르트와 최하위 팀 주니치가 단 9게임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박터지는 순위 다툼이 벌어진지라 어부지리로 얻은 것에 가까웠다. 1985년 이후로 계속 부진하던 팀이 이 정도면 꽤 선전한 거였다만 그 다음해부터 다시 폭망한 게 문제였다. 이 시즌에 야쿠르트와 일본프로야구 최장시간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10] 당시 일본시리즈 1991년 월드 시리즈처럼 모두 홈팀이 이겼다. 이해가 홀수 해라서 퍼시픽 리그 팀인 다이에한테 홈 어드밴티지가 부여되었고, 한신은 후쿠오카 돔 원정 경기에서 2연패 후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역 3연승으로 우승 직전까지 갔다가 이후 또다시 후쿠오카 돔 원정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하면서 패패승승승패패로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11] 마린건은 마린즈(Marines)+기관총(=머신건, Machine Gun)의 합성어로, 당시 마린즈의 타선이 1990년대 후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짧은 황금기를 이끈 역대 최고의 교타선 머신건 타선과 유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2] 이후 저 유명한 “와들 이라노!? 한신은 관계없다 아이가!?” 밈의 창시자(?)가 되는 치욕도 당한다. [13] 그런데 이 해, 한신은 요미우리에게 13경기차 역전 우승을 허용한다. [14] 위에는 발굴, 밑에는 구출이라 쓰여져 있다. [15] KFC 도톤보리점에 다시 갖다놓으려고 했지만 해당 점포가 폐점하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어졌다. [16] 2019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당시는 2014년의 복수라고 해도 무방했다. 심지어 부전포함 4승 1패인 것도 같다. 이후 2022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