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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05:21:48

칼 윌슨

<colbgcolor=#393B28><colcolor=#84A58D> 칼 윌슨
Carl Wilson
파일:carl wilson.png
본명 칼 딘 윌슨
Carl Dean Wilson
출생 1946년 12월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호손
사망 1998년 2월 6일 (향년 51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음반 프로듀서
소속 비치 보이스, 베클리-램-윌슨
가족 아버지 머리 윌슨, 어머니 오드리 윌슨
형제 브라이언 윌슨, 데니스 윌슨
아내 애니 힌쉬(1966~1982), 지나 마틴(1987~1998)
자녀 조나 윌슨(1969년생), 저스틴 윌슨(1971년생)
장르 ,
신체 177cm
악기 보컬, 건반 악기, 기타, 베이스 기타, 키보드
활동 1961년 ~ 1997년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어린 시절3. 비치 보이스 시절4. 솔로5. 음악적 능력6. 그 외7.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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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룹 비치 보이스의 멤버이자 브라이언 윌슨, 데니스 윌슨에 이은 윌슨 가의 삼남.

주로 리드 기타와 보컬을 맡았으며 '비치 보이스의 목소리', '비치 보이스의 영혼'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베트남 전쟁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도 했다.

2. 어린 시절

윌슨 삼형제 중 유일하게 캘리포니아 주 호손에서 태어났다.[1] 윌슨 가족의 집에는 아마추어 작곡가인 아버지와 오르간 연주자 경험이 있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언제나 음악이 넘쳤는데, 칼은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이미 이쑤시개를 가지고 에어 기타를 칠 정도로 기타를 좋아했다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 리틀 리처드, 척 베리 등의 로큰롤 음악을 특히 즐겨 들었으며, 어린 시절 길을 가다가 이웃집 마당에서 흘러나온 리틀 리처드의 Tutti Frutti를 들은 것을 인상 깊은 경험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윌슨 가족은 방이 2개밖에 없는 작은 집에 살았기 때문에 삼형제는 모두 같은 방을 썼는데[2], 어릴 때부터 밤이면 셋이서 함께 노래를 부를 때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음악과 화음에 관심이 많던 첫째 브라이언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절대음감이기 때문에 자신의 지시를 한번에 이해하는 데다[3] 목소리도 예쁜 막내동생 칼에게 노래를 자주 시켰다. 막내동생 칼이 나가서 공놀이를 하고 싶다고 해도 무시하고 어머니인 오드리 윌슨에게 "엄마, 칼이 노래하게 해주세요(Mom, make Carl sing)"이라고 요구했을 정도라고(...).

어릴 때부터 로큰롤, 그중에서도 특히 기타에 관심이 많던 칼은 12살 때부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옆집 동생이자 이후 비치 보이스 멤버가 되는 데이비드 마크스와 함께 정식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데이비드와 칼에게 기타를 가르쳐준 사람은 이후 그룹 '워커 브라더스'를 설립한 뮤지션 존 워커[4]인데, 워커가 50년대 말에 리치 밸런스와 친분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칼과 데이비드의 기타 스타일 역시 로큰롤 씬에서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로부터 내려온 셈이다.

맏형 브라이언은 비치 보이스를 결성하기 전부터 이미 막내 칼의 기타 실력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기자 바로 칼에게 기타리스트 자리를 제안했는데, 밴드에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칼을 데려오기 위해 밴드명을 Carl and the Passions 라고 짓겠다고 약속했을 정도.[5]

3. 비치 보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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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잡은 칼 윌슨

1961년 11월에는 비치 보이스의 첫 싱글 <Surfin'>이 발매되면서 겨우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리드 기타 담당 멤버로서 데뷔하게 된다. 피아노밖에 다룰 줄 몰랐던 형 브라이언에게 베이스와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도 칼이다.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1964년까지 고등학교 생활과 밴드 생활을 병행했다.[6]
데뷔 초기에 앳된 외모로 화려한 기타 실력을 뽐내어 주목받았다. 십대 후반에 이미 서프락 씬에서 영향력 있는 기타리스트로 자리잡아 Surf Jam, Carl's Big Chance 등 초기 앨범의 기타 연주곡들에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1963년에는 고난도 기타 연주곡인 딕 데일 Misirlou를 커버했는데, 칼이 연주한 버전을 캐피톨 레코즈 관계자들이 원곡자 딕 데일 버전으로 착각해서 딕 데일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비치 보이스 버전이 수록되었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
다만 수줍음이 많은 성격과 어릴 때부터 통통한 외모 때문에 리드 기타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크게 주목받는 편은 아니었다.[7]

상술하였듯 어릴 때부터 브라이언에게 인정 받은 뛰어난 보컬리스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를 싱어보다는 기타리스트로 생각했기 때문인지 1965년 앨범 Summer Days (And Summer Nights!!)에서야 Girl Don't Tell Me를 통해 처음으로 단독 메인 보컬을 맡게 된다.[8]
이후 유려한 음색과 창법으로 호평받았고 여러 명곡들에서 메인 보컬로서 노래하게 된다. 데니스가 형 브라이언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브라이언의 요구를 그대로 실현화시키지는 못한데 반해 (본인도 이 사실에 대해 굉장해 아쉬워하였다.), 칼 윌슨은 아름답고도 호소력이 뛰어난 보컬 실력으로 인해 브라이언이 원하는 느낌을 목소리로 잘 살려내어 이후 여러 명곡에서 보컬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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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 중기 무렵의 칼 윌슨

특유의 순하고 사교성 있는 성격으로 밴드 간의 긴장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했던 칼은 Today! 앨범 이후 시작된 형 브라이언의 음악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격려한다. [9] 브라이언이 밴드의 중심에서 벗어난 뒤로는 마이크 러브와 함께 밴드를 주도적으로 이끌게 된다. 대표적으로 20/20이나 Carl and the Passions 같은 앨범은 명곡 I Can Hear Music 등을 필두로 해 사실상 칼 윌슨 리드 체제로 제작된 앨범. 브라이언이 정신 질환으로 인해 갈팡질팡하다 만나게 된 유진 랜디가 계속해서 비치 보이스에 간섭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브라이언의 아내인 멜린다 레드베터의 말을 듣고는 유진 랜디를 해고하고 모든 지위를 박탈한다.

데니스가 죽은 뒤에도 계속 비치 보이스를 지탱하며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다 1998년 2월 6일, 폐암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10]

4. 솔로

Carl WilsonYoungblood 라는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다. 평은 그냥저냥이지만 Youngblood 앨범의 한 싱글은 꽤 히트하기도 했다.

5. 음악적 능력

천사의 목소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상당한 보컬 실력을 자랑한다. 굉장히 맑은 톤의 목소리인데, 정작 칼 윌슨 본인은 심각한 골초였다고 한다. God Only Knows Good Vibrations[11]를 비롯해 수많은 명곡에서 메인 보컬을 맡았다. 또한 나이가 든 뒤에도 젊은 시절에 비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아름다운 음색을 들려주는 것도 특징.

보컬 실력과 동시에 기타 플레잉도 고평가받는데, 그 예로 더 후 피트 타운젠드가 칼 윌슨으로부터 영향받았다고 언급할 정도. 데니스 윌슨이나 알 자딘 또한 훌륭한 연주자였으나 중기 무렵 브라이언이 요구하는 '정교한' 연주를 잘 해내지 못한데 반해 칼 윌슨은 Pet Sounds SMiLE의 트랙 상당수에서 많은 세션 뮤지션들과 함께 기타 연주자로 올라가 있다.

Surf's Up 앨범에 수록된 Long Promised Road는 칼이 작곡, 작사, 연주, 노래 모두 한 노래로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이외 몇 곡들의 공동 작곡 등에 참여하지만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편이다.

6. 그 외

멤버들 간의 불화를 풀어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고 하며, 둘째 형 데니스와 함께 브라이언을 매우 존경하였다. 때문에 마이크와 달리 평소 인격이 괜찮았다는 증언들이 많다. 생전에 만난 적이 있던 후배 뮤지션 션 오 헤이건 역시 마이크랑 달리 칼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

7. 양심적 병역거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입대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 탓에 SMiLE이 엎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1] 맏형인 브라이언과 둘째형 데니스는 호손 근처 잉글우드에서 태어났다. 막내 칼이 태어나기 전 비치보이스의 발상지로 유명한 호손의 옛 윌슨 가족 집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2] 맏이인 브라이언은 십대 때부터는 주로 차고를 개조해서 만든 일종의 피아노 연습실이자 음악 감상실에서 혼자 지냈다고 한다. [3] 브라이언은 자서전에서 같은 비치 보이스 멤버인 사촌형 마이크 러브와 둘째동생 데니스 윌슨은 절대음감이 아니라서 자신이 요구하는 음을 한번에 못 냈기 때문에 답답했는데, 칼은 브라이언이 뭘 원하는지 바로 파악하고 따르곤 했다고 회상했다. [4] 본명은 존 마우스 [5] 이 이름은 이후 1972년 칼 윌슨이 프로듀싱한 비치 보이스의 정규 앨범 제목으로도 사용된다. 형이 13년 전에 한 약속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보다 [6] 밴드 데뷔 전까지 형들이 다니던 호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으나 이후 LA 지역의 아역 배우, 뮤지션, 운동 선수 등이 주로 다니던 할리우드 프로페셔널로 전학을 갔다. 같은 밴드 멤버 데이비드 마크스, 맏형 브라이언의 여자친구 마릴린 로벨도 같은 학교를 다녔다. [7] 비치 보이스 초기 방송을 보면 무대에서 칼의 둘째 형이자 드러머인 데니스 윌슨을 자주 잡아주는 편인데, 데니스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관객들이 엄청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8] 1집 <Surfin' Safari>에서는 데이비드 마크스와 함께 Summertime Blues를, 5집 <Shut Down Vol. 2>에서는 마이크 러브와 함께 Louie Louie와 Pom Pom Playgirl을 불렀다. 또한 All Dressed Up for School이라는 노래에서 단독으로 보컬을 녹음하기도 했으나 정규 음원으로 발매되지는 않았다. [9] 다만 현재 SMiLE 앨범이 엎어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칼 윌슨의 병역기피로 인한 논란이 꼽힌다는 것은 아이러니. [10] 현재 칼 혹은 젊은 시절의 브라이언이 맡던 팔세토 파트는 제프리 포스켓 (Jeffery Foskett)이 담당하고 있다. [11] 브라이언 윌슨, 마이크 러브와 공동 메인보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