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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1-04 12:00:07

카누시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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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투 경과4. 전투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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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209년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의 로마군과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이 이탈리아 아풀리아 지방 카누시움(오늘날 카노사 디 푸글리아)에서 맞붙은 전투.

2. 배경

기원전 211년, 로마군은 자신들을 배신하고 한니발 바르카와 손잡았던 카푸아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카푸아 공방전) 그 후 로마는 한니발과 합류한 다른 도시들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잇따라 파견했다. 기원전 210년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는 각각의 군대를 이끌고 남하했다. 두 사람은 초기에 살라피아를 공략하고 카르타고 수비대를 섬멸했다.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여긴 그들은 계속 추격하여 말모레 시와 멜레 시를 공략하고 카르타고군 3,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두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그들은 밀 24만 배럴과 보리 10만 배럴을 확보했다.

이에 기세 등등해진 켄투말루스는 단독으로 헤르도니아로 진격했다. 마침 헤르도니아 시민들이 한니발에게 등을 돌렸으며 조만간 로마 편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곧 그곳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또한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간 이상 여기로 단시일에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판이었다. 한니발은 첩보를 통해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헤르도니아에 먼저 들어갔다. 이후 벌어진 2차 헤르도니아 전투에서, 한니발이 대승을 거뒀고 켄투말루스는 전사했다.

마르켈루스는 살아남은 장병들을 수습한 뒤, 루카니아로 진군해 누미스트로 전투에서 한니발을 상대로 온종일 싸웠다. 하지만 양측 모두 승패를 가리지 못했고, 한니발은 소모전을 피하고자 장병들에게 완전한 침묵 속에서 진영을 떠나 아풀리아로 떠나게 했다. 날이 밝아서야 적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마르켈루스는 부상자들을 누미스트로 시에 남겨두고 카르타고군을 추격했다. 양군은 아스콜리에서 조우하여 재차 맞붙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한니발은 밤에 재차 철수해 아풀리아에 도착했다. 이후 겨울이 찾아오자 양측 모두 아풀리아에서 겨울 숙영에 들어갔다.

기원전 209년, 현 집정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전직 집정관 마르켈루스와 함께 한니발을 봉쇄하고 그에게 가담한 타렌툼을 정벌하기 위한 일련의 공세를 개시했다. 파비우스는 타렌툼으로 진격했고, 플라쿠스는 루카니아로 진군했으며, 마르켈루스는 한니발이 타렌툼을 구원하지 못하도록 붙잡는 임무를 맡았다. 한니발은 카누시움 근처에 진을 친 뒤 주민들을 설득해 로마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리게 하려 했다. 그러다가 마르켈루스가 다가오자, 그는 마르켈루스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서 주민들이 자신의 편을 들게 만들기로 작정했다. 이리하여 카누시움 전투의 막이 올랐다.

3. 전투 경과

한니발은 로마군이 다가오자 일단 후퇴하면서 매복군을 숨겨뒀다. 로마군은 즉각 추격했고, 양측은 교전을 벌였으나 별다른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밤이 돼서야 물러나 숙영지를 세웠다. 다음날 양군은 재차 맞붙었는데, 이때 한니발이 숨겨둔 매복병이 적의 측면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로마군의 전황은 위태로워졌고, 라틴 동맹 징집병으로 구성된 첫번째 전열의 측면이 무너졌다.

마르켈루스는 퇴각하는 동맹군을 구하기 위해 후방에 배치된 군단을 투입했다. 그러나 후퇴하는 로마군과 진군하는 로마군이 서로 뒤엉킨데다, 카르타고군이 맹렬히 공격해왔기 때문에 상황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로마군 전체가 붕괴되어 숙영지로 도주했는데, 그중 2,700명은 숙영지에 미쳐 들어오지 못하고 피살되었다.

하지만 마르켈루스는 패배에 굴하지 않고 다시 군대를 이끌고 적과 맞붙었다. 카르타고군이 전투 코끼리를 투입해 로마군의 전열을 무너뜨리자, 로마군은 투창 세례를 퍼부어 코끼리들이 이성을 잃고 날뛰게 만들어, 적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마르켈루스는 이 틈을 타 기병대를 전투에 투입했고, 한니발은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하지만 카르타고군의 전투력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마르켈루스는 전날보다 많은 병력을 잃어야 했다.[1] 이후 한니발이 남쪽으로 철수했을 때, 마르켈루스는 전사자와 부상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당장 추격하지 못했다.

4. 전투 이후

카누시움 전투에서 워낙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마르켈루스의 군대는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의 군대는 시누에사로 물러났다고 한다. 반면 리비우스에 따르면 베누시아로 물러났다고 한다. 그는 여름 내내 군대를 이동시키지 못했고, 한니발은 그 사이에 이탈리아 남부를 횡단해 카울로니아 근처에서 8,000명의 로마군 분견대를 섬멸하여 레기움 일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타렌툼에서 5마일 떨어진 곳까지 이르렀을 때, 파비우스가 2차 타렌툼 공방전에서 승리하면서 타렌툼 구원은 실패했고, 플라쿠스 역시 북부 루카니아 일대를 평정했다.

한편, 마르켈루스의 정적들은 그를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무능한 장군이라고 비난하며 지휘권을 박탈하라고 요구했다. 그 때문에 가족을 잃은 시민들 역시 이에 동조했다. 하지만 원로원은 마르켈루스를 신임했고, 그는 기원전 208년 재차 집정관을 맡아 아풀리아로 출진해 한니발과 재대결했다.


[1]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한니발은 이 전투에서 8,000명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