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짐 사이먼스 Jim Sim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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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임스 해리스 사이먼스 James Harris Simons |
출생 | 1938년 4월 25일 |
미국 매사추세츠 뉴턴 | |
사망 | 2024년 5월 10일 (향년 86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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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수학자, 펀드매니저, 자선사업가 |
학력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
수학 /
B.S.) UC 버클리 ( 수학 / Ph.D.) |
재산 | 314억 달러 (2024년 5월 / 포브스) |
배우자 |
바버라 블루스타인 (1959~1974년) 메릴린 사이먼스 ( ~2024년) |
자녀 | 5명 |
링크 | semanticschol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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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수학자이자 펀드매니저. 학자로서는 천-사이먼스 이론[1]으로 사슬 복합체의 특성류 불변성을 설명하며 수학계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으며, 펀드매니저로서는 퀀트 모델링 방식의 시그니처 펀드인 메달리언 펀드를 통해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1년간 무려 연평균 66.07%에 육박하는 역사적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2]2. 생애
1938년 매사추세츠에서 유대인 가정의 독자로 태어났다. 학창시절도 매사추세츠에서 보냈으며, 대학교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수학과에 진학하여 1958년 학사 학위를 받았다.학사 학위를 수여받은 이후에는 같은 전공으로 UC 버클리의 박사 과정에 들어갔으며, 버트램 코스턴트의 지도 하에 미분 기하학과 위상수학 분야에서 대수적인 구조와 다양체 등을 주로 다루며 순수수학 분야를 수학했다. 1961년 10월 제출한 홀로노미계의 추이성[3]에 관한 졸업 논문으로 1962년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
냉전이 한창 심화되었던 1964년 무렵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 국가안보국에서 암호 해독 작업을 했다. 또한 1964년부터 1968년까지는 국방분석위원회의 통신 연구 부서에서 암호학 관련 작업을 계속 진행했으며, 하버드 대학교와 모교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1968년에는 사이먼스 공식을 발표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반전 관련 이슈로 인해 쫓겨나다시피 퇴사한 이후에는 스토니브룩 대학교의 학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4년 논문을 통해 코호몰로지의 특성류 불변성을 설명하는 이론을 발표했다. 해당 이론은 훗날 천-사이먼스 이론으로 명명되었으며, 에드워드 위튼 등의 수리물리학자가 초끈 이론 분야를 개척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6년 기하학과 위상수학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불리는 AMS의 오즈월드 베블런 기하학상을 수상했다. 앞선 수상자 7명이 전부 위상수학 분야로 수상한 반면 사이먼스는 최초로 기하학 분야로 수상했다.
1978년 스토니브룩 대학교 학과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롱 아일랜드에서 Monemetrics라는 헤지 펀드를 설립하며 직종을 변경했다. 본래 퀀트 펀드가 아니었으나, 확률 기반 모델링을 통한 예측으로 시장 비효율성 속에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뒤 1982년 사명을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로 변경하며 본격적인 퀀트 전략에 돌입했다. 당시 인터넷은 물론 PC도 민간 보급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모아가며 모델을 개선시켰다고 한다.
1988년, 르네상스의 시그니처 상품인 메달리언 펀드를 출범시켰다.[4] 운용금의 5% + 수익금의 20% 수수료로 시작했르며 1989년에는 S&P 500 등에 밀리며 알파를 추구하지 못했으나, 1990년 78%에 달하는 수익률을 시작으로 29년 연속 초과수익은 물론 연간 30% 이상의 경이로운 수익률을 보여주며 월스트리트의 이단아로 거듭났다.[5][6]
1994년, 부인인 메릴린과 함께 뉴욕시에서 사이먼스 재단을 설립했다. 2022년 기준 50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며 매스 포 아메리카와 스토니브룩 대학교, 모교인 MIT와 UC 버클리 등 주로 수학과 과학 관련 교육 분야 후원에 주력했다.
2004년 1월, 미국 공립학교의 수학 교육 개선을 위해 사이먼스 재단을 통해 사재를 출연하며 뉴욕시 소재 비영리 재단인 매스 포 아메리카[7]를 설립했다.
2009년 10월, 연내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5월 10일 뉴욕시에서 향년 86세로 사망했다.
3. 정말 천재 수학자가 월 스트리트를 평정했는가
짐 사이먼스는 천재 수학자들이 월 스트리트를 평정한다는 로망 내지 클리셰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로, 미분기하학(홀로노미), 특성류, 리 대수, 다발 등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음에도 펀드매니저로서도 대박을 터뜨린 불꽃 같은 이력을 선망하는 순진한 고등학생들을 수학과로 끌어들이며 수학과의 입결을 끌어올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에서 새 인력을 뽑을 때에도 상경계 못지 않게 자신과 같은 수학 전공자를 비롯한 이공계생을 많이 뽑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천재 수학자들의 월 스트리트 평정이라는 로망과는 별개로, 짐 사이먼스 본인이 가진 수학적 사고력만으로 월 스트리트까지 휘어잡는다'는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심지어 사이먼스의 업적으로 알려진 수리물리학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다. 사이먼스는 물리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순수수학자였다. 그의 연구가 물리학 같은 응용분야로 넘어간건 그의 업적이 아니라 그의 영향을 받은 수리물리학자들의 업적이다. 에드워드 위튼, 마이클 아티야 등의 여러 석학들이 천-사이언스 형식등에서 영감을 받아 1970년대부터 순수수학과 입자이론, 응집물질과 순수수학간 경계를 허물어갔다.
아티야 역시 사이먼스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물포자였지만, 1970년대를 기점으로 위상적 K-이론을 비롯한 자신의 연구가 이론물리학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현상에 고무되어서는 사실상 순수 수학의 범위를 뛰어넘어 수리물리학의 세계로 건너갔다. 사이먼스는 자신의 이론이 양자장론을 포함한 이론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주워듣고도 수학은 언젠간 응용되게 마련이라는 원론적인 반응만 보이며 해당 응용원리에 대해서는 자기는 물포자라고 회피하기 바쁠 정도였다.
여러 천재들이 짐 사이먼스의 이론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과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그 격동의 시기에 사이먼스는 돌연 학계를 떠나 금융권으로 건너왔다. 현재 짐 사이먼스를 보고 금융권에 뛰어드는 수학도들에게는 어처구니없게도 사이먼스는 금융경제 지식이 일천했다. 모 기업 관련 브리핑을 하는데 데이터만 보고 살던 사람이라 정작 그 기업이 몇년 전 M&A로 없어진 기업임을 프리젠테이션 순간까지도 몰랐더라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사이먼스가 끌고온 물리학계, 컴퓨터과학계 출신 동료들도 경제학에 문외한이었다.
사이먼스와 동료들이 투자업계에 뛰어들며 제창한 투자방법론도 알고보면 화려한 고급 수학이론이 아니라, 그냥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주워담아 설계한 모델링의 시행착오와 보완과 재시도의 '반복 노동'이었다. 그와 동료들에게는 경제 지식은 없었지만 인터넷이 대중화되기도 전에 도서관 구석의 서부개척시대 금리나 날씨 같은 온갖 레어한 데이터를 손으로 하나하나 베껴와 방대한 양의 금융 데이터를 모으고, 데이터를 분석해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사이먼스는 이 반복 노가다 작업에 필요한 수학자, 물리학자, 프로그래머 등 막대한 인력을 국방부 근무 시절 구축한 인맥으로 보충했다. 사이먼스의 진짜 능력은 수학이 아니라 저 수학 너드들을 잘 규합하여 학계에서 투자업계로 빼내오는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사이먼스는 Institutional Investor magazine 인터뷰에서 이 바닥에서는 좁고 깊은 수학적 역량보다는 넓고 얕은 수학적 역량에다 다방면에 걸친 시각과 호기심, 끈기 등의 장점을 추가로 갖추는게 요구된다며 그런 역량을 이공학도들이 많이들 갖추고 있기에 이공계생을 많이 뽑는 것 뿐이지 딱히 이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수학이 수학자로서 논문을 쓰던 연구주제와 상관은 없더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미분기하학과 편미분방정식이 주 분야였던 존 내시와 비슷한 과인데, 이쪽도 주 연구분야는 아니었던 게임 이론 논문이 대박을 터뜨리며 팔자에도 없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아버리며 경제학 교과서에도 이름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4. 기타
- 2010년, 더 기빙 플레지에 서명하며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했다.
- 성공적인 학계 및 금융투자업계에서의 커리어에 비해 개인사는 우울하다. 자녀가 총 5명이 있었으나, 1996년에 폴은 롱아일랜드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2003년에 니콜라스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
- 수학, 물리학, 컴퓨터과학, 생물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현업 연구원들의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 콴타 매거진(Quanta Magazine)이 사이먼스 부부가 설립한 사이먼스 재단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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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연구원들 사이에서 사이먼스 재단은 연구원들에게 펀딩은 낭낭하게 챙겨주면서 연구에 관한 잔소리는 일절 삼가는 기부천사로 유명하다.
美과학계는 ‘과학 기부왕’ 사이먼스 추모 중 (조선비즈 2024년 5월 20일 기사) 사이먼스 본인의 전문분야와는 상관없지만 어릴 적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딸을 뒀기 때문에 자폐증 연구를 지원하기도 했고, 천체물리학 연구를 위해 천문대를 설립하여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연구결과를 처음 손에 받아들기도 했다. 돈 되는 분야에의 직접적인 응용을 전제하지 않는 기초학문 분야에서 이런 펀딩이 있어야 경력을 쌓고 연구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학자와 연구주제가 부지기수인데 사이먼스 재단의 지원이 학자들에게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준 셈이다.
이공계 카르텔 예산 나눠먹기의 훌륭한 사례
- 2014년 서울에서 국제수학자대회가 열릴 때 방한하여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한국에는 전공서적에서 그의 이름을 접하는 수학도들을 제외하면 대개 금융권 종사자나 투자자들이 짐 사이먼스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일이 많은데, 과학전문매체에서 수학자인 박형주 교수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한 인터뷰이기 때문에 금융권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쉬이 느껴지지 않는 학자로서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중년, 장년기까지는 금융권 매체에의 등장도 잦은 편이었으나, 르네상스 테크놀러지의 현업 일선에서는 물러난 노년기부터는 금융권 매체보다는 ICM, 아벨상 시상식 같은 수학 매체나 행사에의 등장이 더 잦은 편이고, 그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짐 사이먼스의 이야기에 대해 들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애초에 르네상스 테크놀러지의 업무와 관련된 상당부분은 영업기밀 및 비밀유지서약으로 묶여있는 형편[8]이라 그에게서 투자자들이 귀중히 얻어낼만한 인사이트 같은 것도 딱히 없다.
- 민주당 지지자였으며,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을 기부해왔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기부금을 건냈다.
[1]
J. Simons, S. S. Chern, Characteristic Forms and Geometric Invariants, Ann. of Math. Second Series, 99, (1974), 48-69.
[2]
유의할 것은, 르네상스는 2002년부터 운용금의 5% + 수익금의 44%라는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떼어먹기 때문에 이 수치에는 과장이 많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수료를 제외한 실제 수익률로 랭킹을 매겨도 39.20%로 업계 선두권이며 한 해도 손실을 입지 않았다. 또한 업계 진출 초창기인 1989년을 제외한 모든 연도에서 베타를 초과하는 수익률을 남겼다.
[3]
On the transitivity of holonomy systems.
[4]
주력 펀드인 메달리언 외에는 RIEF(Institutional Equities Fund), RIDA(Institutional Diversified Alpha), RIDGEF(Institutional Diversified Global Equity Fund) 등이 있다.
[5]
퀀트의 통념과는 다르게, 아무리 모델링이 뛰어나더라도 시간을 거스르는 절대적인 완전자동화 모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30년에 가까운 세월에 걸쳐 격변한 금융 시장에서 끊임 없이 새로운 전략을 짜내며 초과수익률은 매년 기록했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6]
물론 단기투자는 시간지평과 자금수용력 등의 요인으로 인해 장기투자 대비 데이터를 통한 계량화에는 유리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공황,
대침체,
대봉쇄 등 대사건으로 인해 시장 상황이 급변할 경우 기존 전략은 사실상 유효하지 못한다. 이는 완전자동화 모델이 존재할 수 없는 원인이 된다.
[7]
Math for America (MfA).
[8]
르네상스에서 일하던 직원이 다른 회사로 옮겨서 르네상스에서 써먹은 것을 우려먹었다는 사실에 극대노하여
고소미를 먹였다는 일화가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출난 성과를 위해서는 이런 업계 기밀을 철저히 지켜야만 하니 본보기로라도 단호한 대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심지어 소싯적엔 (안 그래도 돈 많은 적격투자자급이 다수를 이루는) 직원들의 주거지마저도 자신의 회사 근처로 제한할 정도여서 의도치 않게 회사 근처 주거단지가 부촌으로 변모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