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서는 지구의 탄생과 그 시기의 측정에 관한 과학사를 설명합니다. 지구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지질 시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이 주제가 어려운 이유는, 지구의 탄생부터 38억 년 전까지인 명왕누대에는 지표면 전체가 용암 지대였기 때문에 지질학적 증거, 즉 당대의 지층과 암석이 남아있지 않고, 따라서 단순한 연대 측정을 통해서는 38억 년 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클레어 패터슨이 운석 파편의 납 연대 측정으로 간접 지질 조사한 바로는 지구의 나이는 45.4(±0.5)억 년이다. 지구는 목성보다는 훨씬 늦게 형성됐고, 현재의 형태로 된 것은 38억 년 전에야 어느 정도 형태가 잡혔다. 반면 목성은 태양보다 약 100만 년 늦었고 목성이 태어난 지 500만 년 이내에 현재의 형태와 거의 비슷하게 완성됐다. 목성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목성은 태양이 아니라 태양 이전에 태양 자리에 있던 항성이 폭발하면서 남은 물질들이 모여서 생성됐기 때문에 태양과 동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태양 생성과 동시기에 생성된 목성형 행성들이 훨씬 먼저 생겨나고, 그 다음의 남은 잔해들이 태양의 인력으로 모여서 지구형 행성을 만들었다.
2. 패터슨 이전의 생각
2.1. 고대에서 중세까지
2.1.1. 고대
- 고대 인도에서는 약 90억 년마다 세계가 재창조된다고 생각하였다.
-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학파는 주기를 알 수는 없지만 일정한 시기마다 지구와 우주가 재창조된다고 믿었다.
-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2.1.2. 중세
- 유럽의 성서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6,000년 미만일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는 천지 창조 6,000년 후에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유럽의 종교 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는 지구의 탄생 연도는 기원전 3961년이라고 주장했다.
- 11세기 전후 아랍의 학자 이븐 알하이삼은 지층에 있는 물고기 화석을 근거로 지구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 중세 유럽의 일부 학자들은 밤하늘의 별은 3만 6,000년을 주기로 천천히 회전한다는 계산을 토대로 세계가 3만 6,000년의 주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 그러나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뷔리당은 별만 기준으로 하는 3만 6,000년 주기설에 대해 행성을 포함한 모든 별의 주기는 3만 6,000년을 훨씬 뛰어넘는다며 반박했다.
2.2. 과학혁명 이후
2.2.1. 17세기
- 1687년 아이작 뉴턴은 그의 저서인 프린키피아를 통해서 지구와 같은 크기의 속이 차있는 불덩어리 쇠공이 당시의 평균기온까지 냉각되는 데 5만 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계산하였다.
- 프린키피아를 본 뷔퐁 백작 조르주루이 르클레르는 실제로 쇠공을 이용한 실험을 수행하여 지구 크기의 쇠공이 식는 데는 9만 6670년 132일이 걸린다는 것을 계산해냈다.
- 뷔퐁 백작의 연구를 본 조제프 푸리에는 푸리에 열전도 방정식을 만들고 뷔퐁 백작의 연구내용에 사용하려고 했었다. 푸리에의 계산결과는 남아있지는 않지만, 풀어보면 1억 년가량이 나온다.
- 아일랜드의 성공회 대주교 제임스 어셔는 성경을 토대로 천지 창조를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걸 인정하는 기독교 신학자는 없다. 창조과학자 중에 젊은 지구를 신봉하며 BCE 4004년설에 추종하는 무리가 있는데, 성경을 잘 모르고 이러한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2.2.2. 18세기
- 1748년 지질학자인 드 마일렛은 익명으로 쓴 책에서 초기 지구는 완전히 물로 덮여 있었다는 가정을 세워, 그 물이 점점 줄어들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20억 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1785년, 지질학자인 제임스 허턴은 땅이 지구 내부로부터 해수면 위까지 올라와 대륙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이 정도의 지각운동이 가능할 정도의 시간이면 인간이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의 범주를 뛰어넘는다고 한다.
2.2.3. 19세기
- 1862년, 물리학자인 윌리엄 톰슨은 땅의 깊이에 따른 온도 변화율과 암석의 열전도도, 가정된 지구 내부의 초기온도를 이용해서 지구의 나이가 2000만 년에서 4억 년 사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1867년 남작 작위를 받아 켈빈 남작이 된 윌리엄 톰슨은 태양과 지구의 나이가 동일하다는 가정 아래에서 태양이 중력수축으로 빛과 열이 발생한다는 헬름홀츠의 주장을 받아들여 태양이 소모하는 열량을 통해 태양의 나이가 2000만 년이라 추정했다.
- 1895년, 물리학자이자 켈빈 경의 제자인 존 페리는 지구 내부의 물질이 지표와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며, 지구의 나이에 하한은 있지만 상한을 정할 수는 없다며 켈빈 경의 주장을 반박했다.
- 1895년,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은 우라늄에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2.2.4. 20세기
-
1902년, 물리학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와 프레더릭 소디는 원소핵이 붕괴하면 다른 원소핵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사실을 기반으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의 개념이 등장했다.
지질학도: 교수님, 지구의 나이가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러더퍼드: 자네는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지질학도: 한 1억 년 즈음 아닐까요?
러더퍼드: (우라늄 광석 조각을 들어올리며) 이게 7억 년 된 거야. - 1903년, 피에르 퀴리와 알베르 라보르드(Albert Laborde)는 라듐으로부터 나오는 열을 측정했다.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방사선으로 인해 켈빈 경이 예상하지 못했던 지구 내부로부터 새로 생성되는 열 때문에 지구가 식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3. 패터슨의 계산, 그리고 그 이후
3.1. 원리
패터슨의 연구 이전에 엄청나게 긴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지구의 나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었다. 38억 년 전에 시작된 시생누대 이전인 명왕누대에는 지표면 전체가 용암 지대였기 때문에 연대 측정을 통해서는 38억 년 전의 지구의 나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패터슨의 지도교수인 해리슨 브라운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운석의 납 동위원소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하였고, 아무도 하지 않자 자기 대학원생인 패터슨을 부려먹기 시작했다.
1948년에 받은 졸업 과제를 위해 운석을 모으던 패터슨은 1953년 아리조나의 캐니언 디아블로까지 얻어내자 그 당시 최고의 질량 분석기가 있던 아르곤 연구소에서 질량 분석을 하게 된다. 일반적인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과는 다르게 방사성을 띠지 않는 납-204, 납-206, 납-207, 납-208이 얼마나 포함되었는지 확인하고, 각각의 납 동위원소의 구성비를 납-204를 기준으로 계산하게 된다. 납-204는 방사성 붕괴 계열의 최종 부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태양계를 만든 성운에 원자가 골고루 퍼졌다고 한다면 납-204는 훌륭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운석 [math(a)]와 운석[math(b)]가 있을 때, 두 운석의 납 성분비의 기울기 ([math( \text {Pb}^{206} / \text {Pb}^{207} )])는 아래처럼 쓸 수 있다.
[math(\LARGE{ \frac {\Delta \text {Pb}^{206}}{\Delta \text {Pb}^{207}} = \frac {R_{1a} - R_{1b}} {R_{2a} - R_{2b}}})]
여기서 납-206과 납-207은 각각 우라늄-238과 우라늄-235가 포함되어 있는 방사성 붕괴 계열의 생성물이다. [math(k)]를 현재 우라늄-238과 우라늄-235의 비로 두고([math( \text {U}^{238}/ \text {U}^{235} = 137.8 )]),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지구의 나이를 [math(t)]로 두면,
[math(\LARGE{ \frac {\Delta \text {Pb}^{206}}{\Delta \text {Pb}^{207}} = \frac { N_{01}~ e^{ - \lambda_1 t } } { N_{02}~ e^{ - \lambda_2 t }} = \frac {1} {k} \frac { (e^{ \lambda_1 t }-1) } { (e^{ \lambda_2 t }-1)} } )]
로써, 위 운석들이 그리는 직선의 기울기를 통해 지구의 나이 [math(t)]를 구할 수 있다. 여기서 [math(\lambda_1)]은 최종으로 납-207이 나오는 악티늄 계열 중 반감기가 가장 긴 우라늄-235의 붕괴상수([math(9.72 \times 10^{-10} ~ y^{-1})])이며, [math(\lambda_2)]는 최종으로 납-206이 나오는 우라늄 계열에서 가장 반감기가 긴 우라늄-238의 붕괴상수([math(1.537 \times 10^{-10} ~ y^{-1})])이다. 반감기가 가장 긴 동위원소가 다른 동위원소에 비해 엄청나게 길기 때문에 모든 붕괴 과정의 반감기를 더해서 계산해도 큰 차이가 없다. 거기다가 연속적인 붕괴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한 종류의 방사성 붕괴가 아닌 베타 붕괴와 알파 붕괴가 함께 나타나는 분기가 있기 때문에 골치아파진다.
3.2. 계산
운 석 | 납 동위원소 비율 | ||
206/204 | 207/204 | 208/204 | |
(1) 멕시코, 누에보 러레이도 | 50.28 | 34.86 | 67.97 |
(2) 아이오와, 포레스트 시티 | 19.27 | 15.95 | 39.05 |
(3) 캔자스, 머독 | 19.48 | 15.76 | 38.21 |
(4) 호주, 헨버리 | 9.55 | 10.38 | 29.54 |
(5) 아리조나, 캐니언 디아블로 | 9.46 | 10.34 | 29.44 |
클레어 패터슨이 5개의 운석으로부터 얻은 납의 동위원소비 그래프 |
3.3. 해양 퇴적물에 대한 납-납 측정
운석만을 이용한 지구 지질의 연대 측정은 패터슨의 연구에 구멍이 있다. 운석을 아무리 많이 가져온다 하더라도 지구 지질의 직접적인 시료에 대한 측정이 없다면, 패터슨의 연구는 지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보장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심지어 패터슨은 이후 지구 환경의 납 오염을 연구하면서 지상의 납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납 오염을 경고하면서 납 오염이 되지 않은 시료를 찾아서 지구의 나이에 대한 연구를 보강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1]
운석을 이용한 지구의 연대를 발표하고 6년 뒤, 그는 바다 깊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인공 납 오염이 적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심해 퇴적물에 대해 납 동위 원소비 측정을 수행하였다.
납-납 측정 결과를 간단히 표시한 것. ■ 철질 운석, ● 석질 운석, ◆ 해양 퇴적물 |
3.4. 여담
덧붙여, 이 연구는 환경 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납이 매우 흔하게 사용되었기에, 납성분을 조사하던 페터슨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납 오염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특히 문제였던 건 유연휘발유. 그래서 당시 유연 휘발유를 파는 업체를 중심으로 하여 패터슨을 열심히 방해했다. 다른 분야를 연구하면 연구비를 원하는 대로 대주겠다든가, 그의 전공 분야인 위원회에서 뺀다든가…하지만 페터슨은 이런 방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하며 반대 운동을 펼쳤고, 증거들이 너무 명백했기에 그의 주장이 인정돼서 유연휘발유를 비롯한 납 오염의 위험이 있는 물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납 오염이 격감했다.[2] NGC의 신판 코스모스 7편에서 통째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4. 관련 문서
[1]
패터슨은 실험실을 아무리 깨끗히 청소해도 시료가 계속해서 오염되자, 지구의 모든 곳이 납에 오염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물의 페인트부터 시작해서 내연기관들이 유연휘발유를 사용하며 지구의 모든 공기에 납이 떠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절에도 납의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납의 대체재를 찾는 것이 어렵고 경제성이 떨어지기에 쉬쉬하던 것에 가깝다.
[2]
정치계가 발벗고 나서자 기업들은 의외로 빠르게 납을 대체해 나갔다. 무연휘발유를 개발하고 각종 공학의 발달로 자동차의 연비는 오히려 더 개선됐고, 납땜을 할때 사용되는 것도 사실 납이 아니라 주석등이 섞인 저온 금속이다. 현세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일상에서 납에 접촉할 일이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