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그랑프리 Jordan Grand Pr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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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yellow>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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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스폰서 |
7up(1991) 사솔(1992~1994)[1] 토탈(1995) 벤슨 & 헤지스(1996~2002)[2] DHL(2002)[3] |
창단 | 1991년 |
본부 | 영국 이스트 미들랜즈 노스햄튼셔 주 실버스톤[4] |
팀 수장 | 에디 조던(Eddie Jordan)[5] |
주요 스태프 |
개리 앤더슨(Gary Anderson), 아드리안 부르게스(Adrian Burgess), 마이크 가스코인(Mike Gascoyne), 존 일리(John Iley), 샘 마이클(Sam Michael), 롭 스매들리(Rob Smedley), 마크 갤러거(Mark Gallagher) |
주요 드라이버 |
루벤스 바리첼로 지안카를로 피지켈라 하인츠하랄트 프렌첸 야르노 트룰리 랄프 슈마허 데이먼 힐 에디 어바인 티아고 몬테이로 닉 하이트펠트 사토 타쿠마 마틴 브런들 베르트랑 가초 장 알레시 티모 글록 미하엘 슈마허 |
연혁 |
조던 그랑프리 (1991~2005) 미들랜드 F1 레이싱 / 스파이커 MF1 레이싱 (2006) 스파이커 F1 팀 (2007) 포스 인디아 포뮬러 원 팀 (2008~2011) 사하라 포스 인디아 포뮬러 원 팀 (2012~2018) 레이싱 포인트 포스 인디아 (2018) BWT 레이싱 포인트 F1 팀 (2019~2020) 애스턴 마틴 F1 팀 (2021~) |
차량 | |
섀시 |
191, 192, 193, 194, 195, 196, 197, 198, 199, EJ[6]10 / 10B, 11, 12, 13, 14, EJ15 / 15B |
엔진 | 포드, 야마하, 하르트, 푸조, 무겐-혼다, 혼다, 토요타 |
그랑프리 우승 횟수 | 4 |
포디움 횟수 | 19 |
폴 포지션 | 2 |
패스티스트 랩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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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디 조던이 1991년에 설립한 포뮬러 1 컨스트럭터 팀이다.2. 역사
2.1. 조던 그랑프리의 탄생
에디 조던은 아일랜드의 사업가이자 전직 레이싱 드라이버였다. 그가 레이싱 드라이버로서의 직업을 포기하게 된 계기는 1976년에 포뮬러 3에서 드라이버로 활동하다가 왼쪽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회복한 뒤, 미국으로 넘어가 포뮬러 애틀랜틱을 우승한 뒤, 79년 다시 영국에서 활동하다가 돈이 부족해지자, 자신의 이름을 딴 '에디 조던 레이싱'을 창단하게 된다. 그 후로 포뮬러 3이나 포뮬러 3000 같은 곳에서 팀을 운영하다가, 89년 팀이 포뮬러 3000을 지배할 정도로 커지자, 팀은 90년 2월 포뮬러 원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조던 팀은 포뮬러 3000 시절부터 많은 드라이버들의 요람이었는데, 포뮬러 1에서는 대표적으로 미하엘 슈마허, 데이먼 힐, 루벤스 바리첼로, 에디 어바인, 랄프 슈마허, 티모 글록 등 많은 드라이버들이 거쳐갔다고 한다.
2.2. 비밀번호, 그리고 벤슨 & 헤지스의 시대
포뮬러 원의 신생팀이 으레 그랬듯, 처음은 비밀번호로 시작했다. 하지만 여럿 팀처럼 밑바닥을 긴것도 아닌데, 1991년 당시 포뮬러 원 팀들은 상위권 팀들이나 하위권 팀들이나 너나 할것없이 리타이어가 빈번하게 일어났었기 때문에, 페라리나 맥라렌 같은 차들이 부품 문제로 리타이어 할때마다 쏠쏠하게 포인트를 벌어갔다. 창단 첫해에는 안드레아 데 체사리스[7]의 활약 덕분에 컨스트럭터 부문 5위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뒤론 바닥을 기었다. 한 시즌에 드라이버를 2번 넘게 교체한 적도 있었으니...이 팀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기 시작했던 때는 바로 96년, 영국의 담배회사인 벤슨 & 헤지스(Benson & Hedges)와 손을 잡고난 이후였다.[8]
B&H사의 막대한 자금력 덕분에, 조던 그랑프리는 상승세를 타게 된다. 푸조보다 좀 더 나은 무겐-혼다엔진을 쓰기 시작하고, 엄청난 거금을 들여 데이먼 힐을 영입하면서, 문서의 시작에 있는 98년 스파에서의 우승을 시작으로, 포디움에 오르는 횟수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조던으로부터 레이싱 포인트까지 이어지는 팀 역사상, 다시는 들어보기 힘든 그랑프리 우승 트로피를 든 에디 조던. 에디를 받들고 있는 두 드라이버는 왼쪽부터 데이먼 힐과 랄프 슈마허.
조던의 황금기를 이끈 드라이버인 하인츠하랄트 프렌첸 |
문제는 그 다음해부터였다. 혼다가 2000년부터 BAR 팀에도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더 좋은 성능의 엔진을 받기위해 BAR과의 경쟁이 붙었다. 이를 위해 에디는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썼다고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프렌젠을 방출하고 사토 타쿠마를 참가시킨 것이다.[10][11] 아무튼 팀은 프렌젠을 방출하고 난 뒤, 엔진이 터진 비행기 마냥 추락하기 시작했다. 야심차게 영입한 야르노 트룰리가 망한 것을 시작으로, B&H사로부터 오는 자금이 줄어들면서 차의 개발에도 큰 지장이 생기고 말았다. 결국 조던은 2002시즌 부로 B&H와 결별하게 된다.
2.3. 끝 없는 추락
2003년 브라질, 우승을 뺏겼던
지안카를로 피지켈라와 그 다음
이몰라 서킷에서 우승 트로피 이임식(?)을 하는 조던과 맥라렌. 젊은 시절 라이코넨과 두 팀의 단장이었던 에디 조던, 론 데니스도 보인다. |
아무튼 2003년 우승 이후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조던은 재정난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것에 결정타를 날린 사건은 바로 03년 6월 보다폰과의 법적 분쟁이었다. 에디는 보다폰이 자신들과 그 당시 1억 5천만 파운드 규모의 스폰서 구두 계약을 합의했지만, 보다폰이 뒤퉁수를 치고 페라리에게 갔다고 주장했다. 허나, 그로부터 2달 후인 8월, 갑자기 조던은 고소를 취하하더니 보다폰에게 보상을 지불한다고 발표했다. 기사에 따르면, 조던의 소송은 '기반도 없던 거짓' 이었고, 이 소송을 담당했던 당시 한 대법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에디와 상업이사 이안 필립스를 두고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증인들' 이라고 묘사했다고 한다.
2.4. 팀 매각
위의 사건으로 인해 재정난 문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더블로 가게 되었고, 결국 팀은 2005 시즌 이전 다국적 그룹이었던 미들랜드 그룹에 팔리게 된다. 당시 미들랜드는 팀 소유주인 에디 조던으로부터 총 6천만 달러(약 790억원)에 조던 팀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자세한 내용은 미들랜드 F1 레이싱 문서 참고하십시오.
[1]
남아공의 정유 및 화학회사
[2]
필립 모리스가 소유한 영국계 담배 브랜드
[3]
B&H와의 타이틀 스폰서 계약이 시즌 중간에 종료되었고, 남은 시즌 동안 DHL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4]
실버스톤 서킷 주변에 위치해 있다.
[5]
현재는 가끔씩 F1 중계 방송에 나가거나
탑기어 MC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BBC Four F1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이다.
[6]
에디 조던의 약자.
[7]
굉장히 빠르지만 거친 드라이빙으로 유명했다. 당장 유튜브에 Andrea de Cesaris 만 쳐도 바로 crash 라고 뜬다. 슬프게도 안드레아는 2014년 오토바이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
[8]
담배 광고가 법적으로 금지된 레이스에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고이다.
[9]
원래는 97년부터 조던과의 3년계약이었지만, 힐을 밀어주는 팀 오더와 충돌한 그는 99년 시즌 중 윌리엄스와 2년 계약을 덜컥 맺고 떠나버린다.
[10]
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프렌젠을 방출한 여럿 뒷소문들이 있는데, 폼의 하락도 있고 잦은 사고에 기술 팀과의 불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11]
보도에 따르면, 프렌젠은 팀으로부터 차의 수리비용을 내라고 통보받았다고 하며 이것이 아마도 프렌젠의 조던과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조던이 돈에 쪼들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