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ab146> |
상무 농구단 2024-25 시즌 선수단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eab146><colcolor=#2c292a> 감독 | 장창곤 | |
코치 |
코치
김우람 · 손윤석 체력 코치 정상욱
|
||
가드 | 11 박지원 · 22 김동준 · 33 조한진 · # 김준환 · # 김태완 · # 윤원상 · # 이준희 | ||
포워드 | 0 인승찬 · 6 양홍석 · 9 전현우 · 24 신동혁 · # 안정욱 | ||
센터 | 51 한승희 · # 조재우 · # 최주영 | ||
타 한국프로농구 구단 명단 | }}}}}}}}} |
장창곤의 감독 경력 | ||||||||||||||
|
상무 농구단 감독
|
||
SANGMU BASKETBALL TEAM | ||
|
||
장창곤 蔣昌坤 |
||
<colbgcolor=#ebad24> 출생 | 1972년 4월 24일 ([age(1972-04-24)]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94cm | |
직업 |
농구 선수 (
스몰 포워드[1],
파워 포워드 / 은퇴) 농구 감독 |
|
학력 |
휘문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학사) |
|
프로 입단 | 1995년 기업은행 농구단 | |
병역 | 상무 농구단 (1996~1998) | |
소속 | <colbgcolor=#ebad24> 선수 |
기업은행 (1995~1996) 광주 나산-광주/여수 골드뱅크-여수 코리아텐더 (1997~2002) |
코치 | 신협 상무 (2004~2019) | |
감독 | 상무 농구단 (2019~ ) | |
행정 | 대한민국농구협회 (2021~ / 경기력향상위원회 기술위원) |
[clearfix]
1. 개요
이창수-장창곤- 윤영필- 김민수- 김종규로 이어지는 경희대 출신 빅맨 계보의 중간고리에 있는 선수. 당시 빅맨치곤 드물게 정교한 3점을 갖추고 있었으며 탄력도 좋아 농구대잔치 시절엔 경기 중 가끔 덩크슛을 터뜨리기도 했다. 기존 빅맨들보다 장점이 많아 프로에서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였으나 역시나 다른 토종 빅맨들과 마찬가지로 외국인선수들 등쌀에 교체 선수로 주로 뛰었고 말년에는 3점 슈터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부상으로 다소 일찍 은퇴했다.2. 선수 경력
2.1. 고교-대학 시절
장신군단으로 위용을 떨치던 휘문고에도 주전센터를 맡아 1년후배 박준영(195cm)과 더블 포스트를 이루며, 이 당시 전희철의 경복고, 김병철-경희대 입학 후 대학 최고의 센터 이창수의 골밑 파트너로서 탁월한 점프력은 물론, 당시 빅맨으로선 드물었던 3점슛까지 갖추며 이창수와 좋은 조합을 이루었고, 신입 동기생이었던 최명도와 환상의 짝꿍을 이루며 1991년 전국체전 우승을 비롯 당시 대학무대에서 경희대가 연세대, 중앙대와 3강 구도를 이루는데 기여했다. 이창수가 졸업한 뒤엔 구장환(191cm), 윤영필(193cm)등과 짝을 이루어 자줏빛 군단의 포스트를 지켰으며 농구대잔치에서도 실업팀 빅맨들에 밀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면서, 서장훈, 전희철, 현주엽에 몰렸던 실업팀 스카우터들의 시선을 일부 가져오기도 했다. 졸업반이던 1994년 참가한 1994-95 농구대잔치에선 3점슛을 주무기로서 완벽히 장착한 모습을 선보였고 인게임 덩크를 꽂는 등 탄력까지 자랑하며, 현대전자, 한국은행, 기업은행 등 실업팀들을 연파하는 등 자줏빛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2]
2.2. 실업-프로 시절
졸업 후 당시 경희대의 연계 실업팀으로 불리던 기업은행에 최명도와 같이 입단, 첫해부터 주전급 출장시간을 부여받으며 1995년도 기업은행 돌풍을 이끈다. 신입생 포인트가드 최명도를 축으로 김상식- 장일- 이민형-장창곤에 김영주, 김현국, 박상욱 등이 주축이 된 기업은행은 1995년 코리안리그 실업농구 1, 2차대회에서 모두 2위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어 열린 1995-96 농구대잔치에서도 실업 및 대학 강호들과 접전을 벌인 끝에 리그전 7위로 8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3] 당시 기업은행은 "3점슛 쏘는 센터" 이민형, 장창곤과 함께 수비가 필요할때는 장신의 박상욱(200cm)을 적절히 로테이션 시키며 기용했고, 특히 운동능력이 좋았던 장창곤은 상대팀의 기동력 좋은 빅맨 정재근, 김유택을 괴롭히는데 일등공신이었다.농구대잔치 종료 후 상무에 입대한 장창곤은 조동기, 김재훈밖에 없던 상무에 골밑에 힘을 실어주면서 1996-97 농구대잔치에서의 돌풍을 기대케 했으나, 미국에서 돌아온 서장훈의 존재감을 막지 못하고 2년연속 농구대잔치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군 제대 후 최명도와 함께 98-99 시즌에 복귀한 장창곤은, 곧바로 주전 포인트가드를 차지한 최명도와 달리 워렌 로즈그린(190cm)-아킬리 잭슨(202cm)의 빅맨 듀오로 구성된 외국인 조합에 밀려 출장시간을 많이 얻지 못했고, 간간히 식스맨으로 나와도 미미한 골밑 존재감 탓에 황유하 감독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99-00 시즌엔 팀이 에릭 이버츠(198cm)-키이스 그레이(183cm)라는 빅 & 스몰조합을 뽑으면서 기회를 얻을거라 여겼지만, 황유하 감독은 시즌 초반엔 루키 변청운을 주전 4번으로 중용했고, 이후 "크리스마스 빅딜"로 현주엽이 영입되면서 장창곤에겐 역시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00-01 시즌, 새로 부임한 진효준 감독은 팀 내에서 3점슛이 가장 좋았던 장창곤을 아예 슈터로 전환시켰고, 장창곤은 시즌 초반 주전출장 기회를 받아 괜찮은 3 & D 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시즌이 갈수록 슛 성공률이 너무 들쭉날쭉해진데다 스스로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해 많은 찬스를 얻지 못하면서, 공격과 수비 모두 뻑뻑해지는 결과만 나았다. 시즌 내내 현주엽이 부상과 태업 비스무레한 항명을 하며 팀을 들락날락한 덕분에 장창곤은 주전급 출장시간을 받으며 한 시즌을 보냈지만, 여느 평범한 롤플레이어만 못한 스탯만 남기고 말았다.(7.1득점-3.3리바-1.2어시-1.1스틸. 3점슛 27.6%)
이듬해 팀 에이스 현주엽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장창곤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마침 당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장창곤은 01-02 시즌을 허송하고 말았고, 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으나 팀과 협상이 결렬되면서 미련없이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코치연수를 다녀오기도 했으며 2004년부터 상무 농구단 코치를 맡았다.이후 2019년 8월 1일부터 부천 KEB하나은행 감독으로 선임되어 팀을 옮긴 이훈재 전 감독의 후임으로 상무 농구단 감독직에 선임됐다.
2020년 9월 20일부터 9월 27일까지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리는 KBL 컵대회에 아마추어 유일한 대표로 상무를 이끌고 고양 오리온과 부산 kt 프로 두 팀과 C조에 편성되어 경기를 펼쳤으나,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조 최하위로 예선 탈락하였다.
2021-22 시즌 상무를 10전 전승으로 우승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