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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22:46:25

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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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인 일라
1.1. 개요1.2. 일본서기 기록1.3. 기타
2. 신라인 일라
2.1. 개요2.2. 기록

1. 백제인 일라

이름 일라(日羅)
생몰년도 ? ~ 583년 음력 12월 30일
관직 달솔(達率)
국적 탁순국 백제

가야 탁순국의 마지막 왕 아리사등의 아들. 일본 큐슈에서 살다가 백제로 가서 벼슬을 받아 달솔로 있었다.

선산인 위북국에 묻혔다. 위북국은 일본에 있다.
그는 셋쓰(攝津)의 겐미산(劍尾山)에 살았고 일본인들로부터 성인으로 추앙을 받았다.

1.1. 개요

한국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고 《 일본서기》에서만 등장한다. 일본서기의 서술이 대체로 그렇지만 일종의 신화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있으며 일본 측 중심적으로 조금씩 고쳐 썼기 때문에 실제 아들인지, 그리고 상세한 행적이 모두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탁순국 멸망 후 백제에 머물며 달솔이라는 관등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그의 생애를 요약하면 신라에게 멸망한 임나(가야)를 일본 측이 부활시키기 위해[1] 임나의 일원이었던 탁순국 왕자인 일라를 찾아 데려오려 했으나, 일라가 일하고 있던 시기 백제의 위덕왕은 일본서기 기록상 일본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해 보내주지 않다가 일본 사신이 천황의 어명을 전하자 쫄아서 내주었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이후 천황에게 조언했다가 이를 본 백제 신하들이 죽이려 하자 몸에서 스스로 불을 내서 겁을 준 후 죽었다가 살아났다 다시 죽었다고 한다.

프로파간다 등을 빼고 정황을 분석해본다면, 결국 백제인들이 백제에 붙었던 멸망한 가야 소국의 왕자를 호송해서 왜국에 파견했다가 그가 다시 왜국 측에 붙으려 하자 죽여버렸다는 내용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성왕 대에 백제가 신라에 무참히 깨지고 난 후 위상이 크게 실추되어 가야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고 동맹이었던 일본과도 갈등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다.

1.2. 일본서기 기록

아래 내용은 일본서기 권20 비다츠 덴노 中.

1.3. 기타

이 때 일본서기 기록을 그대로 본다면 위덕왕 규슈 진출을 노린 것처럼 묘사되지만 별다른 군사 활동이 기록된 바가 없는 점을 보면 시도로만 끝났거나, 일라의 과장으로 추정된다.

2. 신라인 일라

난중잡록》, 《 간양록》, 《 성호사설》 등에서 나타나는 신라의 인물.

2.1. 개요

문헌마다 조금씩 기록이 다르지만 신라에서 왜국으로 건너가 죽은 후에 애탕산(愛宕山)의 권현수신(權現守神)이 되었다는 것은 같다. 1번 항목의 일라와 한자가 똑같으며 권현(權現)이 불교 용어라는 점에서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2.2. 기록

有天照皇大神宮者。其始祖女神也。有熊野山權現守神者。徐福之神也。愛宕山權現守神者。新羅人日羅之神也。又有春日大明神八幡大菩薩大朗房小郞房等神。其麗不億。其約盟禁戒。必引此等神以爲誓。間有燃臂斷筯 而不忍破盟者。必曰畏天道畏雷霆云。

천조황대신(天照皇大神)은 그이들의 시조가 여신(女神)이요, 웅야산권현수신(熊野山權現守神)[10] 서복(徐福)의 신이며, 애탕산권현수신(愛宕山權現守神)[11]은 신라 사람 일라(日羅)의 신이요, 또 ‘춘일대명신(春日大明神)’[12] · ‘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13] · ‘대랑방(大郞房)’[14] · ‘소랑방(小郞房)’[15] 등의 신이 있는데 그 수효는 한없이 많습니다. 그이들이 맹세를 하거나 금계(禁戒)를 할 때에는 반드시 이런 신들을 끌어대어 맹세를 하는데 이따금 팔을 지지고 힘줄이 잘려도 차마 맹세를 깨뜨리지 않는 것은 반드시 천도(天道)와 천둥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난중잡록
新羅人日羅。入倭中。倭人尊事之。爲大郞房。及其死也。尊祠爲愛宕山權現守神。擲餞米求福者。至今輻輳。神門塡咽如市。淸正等。尤爲尙鬼。蓋其風俗。小黠大癡。衆所尊譽如是矣。

신라 사람 일라(日羅)가 왜국에 들어가니 왜인들이 존대하고 섬기어 대랑방(大郞房)로 삼았습니다. 일라가 죽자 그 사당을 높여 ‘애탕산권현수신(愛宕山權現守神)’이라 하였는데, 돈과 쌀을 놓고 복을 비는 사람이 지금도 폭주하여 신사의 문전이 막혀 시장과 같았습니다. 청정(淸正) 등이 더욱 귀신을 숭상하니 대개 그 풍속이 작은 것에는 영리하되 큰 것에는 어리석어 군중이 존대하고 영예로 여기는 것에는 그 시말(始末)을 살피지 않고 한결같이 추종하여 한번 빠지면 종신토록 헤어나오지 못하니 오랑캐의 고루함이 이와 같았습니다.
간양록
日本之俗尤甚熊野徐福最古如新羅人日羅為愛宕權現神求福者輻輳神門如市云

일본의 풍속에서는 더욱 심하니 웅야(熊野)의 서복(徐福)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신라 사람 일라(日羅) 같은 이는 애탕(愛宕)의 권현신(權現神)이 되었는데 복을 구하는 자들이 몰려들어 그 신문(神門)이 저자와 같다고 한다.
성호사설

안정복은 《 동사강목》을 지으며 일라를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 연오랑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하였으나 근거가 빈약하여 분명하지 않다고 하였다.
고려사》 지지(地志)에 따르면 고려 초기에 임정(臨汀)을 영일(迎日)이라 고쳤다 하였으니, 영일은 신라 때에 시작된 명칭이 아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말하기를 “이 고을이 해가 뜨는 양곡(陽谷)에 있기 때문에 영일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속담에 전하는 영오(迎烏)의 일이 어찌 그처럼 터무니없을 수 있으랴? 신라 사람들이 괴이함을 좋아하는 까닭이 이러하니 고증할 수 없다.” 하였으니, 그 말이 타당하다. 《 동국통감》 및 《 동사찬요》도 정사(正史)라 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그 사실을 취하였을까. 강항(姜沆)의 《간양록》에 “신라 사람 일라(日羅)가 왜국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죽어 애탕산신(愛宕山神)이 되었는데, 왜인들은 그를 높이 받든다.” 하였는데, 지금 혹자는 이를 영오의 일이라 하나 이를 분명한 사실이라고 부회하여 근거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사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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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백제나 왜국은 신라와는 사이가 나쁘고 백제-가야-왜 연합으로 신라에 대응하려 했기 때문에, 6세기 후반까지는 신라에 흡수합병당한 가야를 부활시키려고 했었다. 결국 다 실패하고 7세기쯤 되면 가야 지방민들이 신라 사회에 동화되어 이런 가야 부흥 시도도 끝나게 된다. [2] 일본의 속국이라는 뜻이다. 가야를 자신의 속국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일본서기의 프로파간다가 담긴 단어이다. [3] '도쿠니'라는 음이 달려있다. [4] '요누'라는 음이 달려있다. [5] '가누치'라는 음이 달려있다. [6] '시칸토쿠'라는 음이 달려있다. [7] 원문에는 가코(水手)라고 되어있는데 이름이 아니라 딸려온 뱃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8] 현재의 오사카에 위치했던 사신 접대 장소. [9] 이웃나라 사신. [10] 구마노야마노곤겐노카미. 곤겐은 일본 신토에서 부처가 신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 것을 가리킨다. [11] 일본어로 읽으면 아타고야마노 곤겐노카미이다. [12] 가스가 대명신. [13] 하치만 다이보사쓰. [14] 타로보 [15] 고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