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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1:48:26

이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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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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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
이득촌/이또출 언년
부모
이말룡 춘심
자녀
이기만
(원작)
이기철 이기영 이오덕
애완동물
땡구 }}}}}}}}}
이말룡
파일:external/c1.staticflickr.com/34368144974_d441065a43_o.png
(3기의 모습)
다른 이름 이선달[1]
출생 1928년 (작중 41세)
직업 회사원[2]
가족 할아버지 이00, 할머니, 아버지 이득촌, 어머니 언년, 동생 이육만,[3]
배우자 춘심
장남(원작) 이기만( 1948년생)
차남(원작)/ 장남(애니) 이기철( 1956년생(원작)/ 1954년생(애니))
삼남(원작)/ 차남(애니) 이기영( 1960년생)
장녀 이오덕( 1968년생)
며느리 박경주 (1960년생)
손자 이민기
손녀 이지현
병역 해병대 #
좋아하는 것 가족들, 가족들이 잘 사는 것
싫어하는 것 가족들이 가난한 상태, 기영이 기철이가 거짓말 하거나 속을 썩이는 것, 막걸리가 맹물이 되는 것[4]
성우 오세홍[5][6] (1~3기)
박영재[7] (4기)

1. 개요2. 상세3. 해병대 관련 재현 오류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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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느님, 저는 행복한 남자예요. 저를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씩씩한 아이들이 있고,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 "아빠의 행복"편에서 목도리 파는 사기꾼에게 당한 뒤 받은거나 마찬가지라고 위로해주면서 울고 있는 춘심을 끌어안으면서 되뇌는 기도의 독백. 그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8]
검정 고무신의 등장인물. 이기영, 이기철, 이오덕의 아버지. 1928년생으로, 나이는 만 41세이다. 키는 원작판 기준으로 168cm. 엄할 때가 많지만[9]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의 표본이다.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밥과 먹을 것만 축내는 두 아들과 반대로 입이 짧다. 극장판에서 바뀐 본명은 이선달.

2. 상세

애니에서는 전체적으로 상냥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없고 나잇값 못하는 한심한 행보도 약간 보인다. 할아버지가 새로 산 자전거를 타다가 땡구의 에 의해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할아버지 걱정부터 하지 않아서 욕을 먹는다던지, 기영이와 기철이의 장래가 걱정된다며 만화책을 압수하고는 도리어 자라는 잠은 안자고 그 만화책을 본인이 낄낄대며 읽는다던지, 기철이가 빌린 야전을 몰래 쓰다가 실수로 부숴버리는 사고를 치기도 했으며,[10] 돼지꿈을 꿔서 복권에 당첨되는 단순한 생각만 한다던지...[11] 원작에서는 이게 더 심해서 좀 한심하거나 지나친 면도 많이 보이는 편이다. 도둑이 대놓고 들어와도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해놓고 엄한 땡구에게 화풀이를 한다거나[12] 두 아들에게 밥만 축내는 식충이들이라는 말을 2번 이상은 하는 등 의외로 화도 꽤 잘 내는 편이다.[13]

아내 외에 여자랑도 얽히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애니에 나온 구미호에게 홀린 것이야 요괴니까 둘째 치더라도 원작의 마을 팔씨름 대회 때 다방녀 미스 최와 엮인다던지... 참고로 이 에피소드에서 같이 왔던 아내도 아닌 미스 최의 응원 버프로 우승했다. 그래도 항상 가족을 생각하고 노력하는 좋은 아버지다.

3기 보릿고개 시련기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이 다니던 무역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실직하고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굉장히 고생한다.[14]

4기 들어서는 비중이 많이 줄었으며, 회사에서 늦게 돌아온 모습이나 회사일 때문에 피곤해하는 모습만 보인다. 아빠의 돼지꿈 편에서는 돼지꿈을 꾼 일로 이번 월급을 받지 않고 복권 10장을 구해 당첨에 대한 자만감에 빠져 마지막에 꽝 크리를 먹고 한동안 몸져 누웠고,[15] 기철이는 차력사 편에서는 회사에서 지쳐 고단된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이지만 기철이가 얻어온 약 덕에[16] 기운을 차리고, 모두 방학숙제 편에서는 3일 안에 숙제를 끝내야 하는 기영이와 기철이에게 나폴레옹의 대사를 읊어주면서 숙제를 할 수 있도록 자극했다. 원작에서는 허세가 심할 때도 종종 있는데, 어떻게 보면 기철이의 특유의 허세끼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할머니가 기철이를 보고 아버지가 어릴 때 성격과 똑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힘이 세다. 극장판에서 팔씨름왕 에피소드 에서 직접 역기를 만들어서 훈련하는데, 나중에 손가락 하나로 역기를 든다. 그리고 팔씨름 대회에서 우승한다.[17] 팔씨름 에피소드 원작 기준으로 초반부에 기철이 아빠한테 시비를 거는 체격 좋은 남성이 '아저씨 힘 좀 써요? 몸무게 백근 넘어요?!' 라고 하자 주눅이 들어서 아마 못 넘을거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체중이 60kg도 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동네의 쟁쟁한 장사들에, 결승전에선 본인보다 배는 되보이는 어마어마한 덩치의 대장간 청년도 이기는걸 보면 체격에 비해 정말 엄청나게 힘이 강한 편.
파일:기영이아빠1.jpg
젊었을 적 모습
원작에서는 기영이가 성인이 된 시점에서는 사망했다고 나온다. 그 이야기가 나온 게 아내가 손녀 지현이한테 이기영 이기철의 어릴 적 얘기를 해 주는 에피소드이며, 마지막 장면에 영정 사진이 나온다. 참고로 기영이는 1960년생이다. 그리고 저 때 당시 성인임이 인정되는 최소한의 나이는 만 20세였다. 즉, 80년대 초에 5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지금은 물론이고 당시 시점으로 봐도 평균 수명도 채우지 못하고 단명한 셈이다.

이에 반해 애니에서는 이보다 좀 더 오래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4기 마지막회에서 이말룡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온 가족이 모였을 당시에 봉숭아 학당에서 연변총각으로 분한 강성범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 이때가 2001년 4월 중순 ~ 2002년 7월 하순이었는데, 보통 제사는 고인이 작고한 다음 해에 치러지기 때문에 이말룡의 사망 시점을 최대한 늦추면 2001년이 된다. 참고로 이 경우를 종합해 보면 이말룡은 74세에 타계한 것이 된다. 장수까지는 아니어도 그 당시 남자 기준으로는 평균 수명을 넘기고 별세한 셈. 다만 해당 회차에서 나온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 첫 제사는 아닌 걸로 보인다. 이를 보아 사망한지 꽤 된 것은 확실하기는 하다. 정황상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에 이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이후에 숨졌다면 기영이네 가족들이 이말룡을 떠나보낸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짧아서 저런 분위기일 수 없다. 게다가 원작의 어두운 이야기를 애니에서까지 구현하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만일 2023년 현재까지 생존했다 하더라도 90대를 훌쩍 넘어간 나이([age(1928-12-31)]세~[age(1928-01-01)]세)라서 송해 같은 특별 케이스가 아니구서야 일반인은 손수 거동이 어려운 나이이다. 2022년 기준 1928년생은 5.1%만 생존해 있다.

3. 해병대 관련 재현 오류

설정상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 병장 출신이다.[18] 삼척동자 편에서 베트남 전쟁(월남전)에서 훈장을 탔다는 언급이 나오며,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편에서는 도승이네 삼촌인 김달룡 상사가 경례를 하고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기영이 아버지도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러나 검정고무신 3기의 배경은 1969년이다.[19]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해는 1964년이고, 한국군 파병은 이듬해인 1965년에 이루어졌으며, 완전철수는 1973년 3월에 이루어졌다. 김도승의 삼촌이야 그렇다 쳐도 해병대 제대 이후 10년 이상 순수 민간인으로 살아서 군대에 대해서는 이제는 젊었을 적 추억 속에서나 남아있을[20] 기영이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사실 한국군이 실제 역사보다 더 빨리 베트남에서 싸울 뻔 했던 적이 있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막바지인 1954년 1월에 이승만은 한국군 1개 사단을 전투가 벌어지던 베트남 지역에 파병하려고 했으며,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하고 약 1달이 지난 뒤에는 미국과 협의로 3개 사단을 파병하려고 했으나, 각각 미국과 프랑스가 거절한데다가 당해 7월에 월맹과 프랑스군 사이에 맺어진 휴전 협정으로 전쟁이 끝나면서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설령 미국과 프랑스가 이승만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한국군 사단을 파병한다고 해도 이말룡의 베트남행이 불가능한 것이, 당시 해병대는 대한민국 육군과 달리 상비 사단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해병대 제1사단이 창설된 때는 이 제안을 한 이듬해인 1955년이다. 결정적으로 디엔비엔푸 전투의 결과가 실제 역사와 다르게 나오지 않은 이상 프랑스는 그 해에 전의를 잃고 철수했을 것이 뻔했다. 즉, 대한민국은 쓸데없이 괜히 힘만 뺐을 가능성이 높다.[21]

또한, 당시 독재 정권이 제정신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제대 이후 10년 넘게 도 못 들어본 40대 초반의 모집병 출신인 일반인 아저씨를 대부분이 20대인 초급장교와 중사 이하 사병들과 함께 월남의 전쟁터로 보내서 싸우게 한다는 건 미친 짓거리다. 그건 인명 경시 이전에 군사적인 면에서 봐도 비효율적이라는 걸 이미 높으신 분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2] 당시 정권을 잡은 박정희와 그 휘하에서 일하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절대 다수가 1961년 5월까지만 해도 국군 고위 장교로 복무하던 이들이었다. 게다가 한국군은 베트남전이 첫 해외 파병이었던 데다 파병지에서는 베트콩과 북베트남 정규군이라는 강력한 적을 상대해야 했던 만큼 최정예 인원으로 파병부대를 구성하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체력과 전투력이 왕성한 20대 초중반의 현역 군인들도 선발에서 떨어지는 마당에 제대한 지 한참 지난 40대 아저씨가 월남전에 참전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아마도 제작진이 6.25 전쟁과 혼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영이 아버지는 1928년 생이므로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당시에는 만 22세인지라 이미 해병대에서 일반 사병으로 복무 중이었거나 군대에 징병이 될 연령대이기 때문. 나이대나 일반병 전역인 것을 보면 월남전이 아니라 6.25 참전용사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당시 기영이 아버지가 군복무할 당시는 50년대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국군에 병장이라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병장과 상병 계급이 신설된 때는 병진급령이 개정된 1957년이었으며, 그 전까지의 한국군 사병 계급은 미군식 사병 계급체계를 따라 병 계급은 이등병 - 일등병 - 하사, 부사관 계급은 이등중사 - 일등중사 - 이등상사 - 일등상사 - 특무상사였다. 따라서 현대의 병장에 해당하는 계급은 하사로, 이렇게 설정했으면 깔끔했을 것이다. 50년대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의 부사관 명칭은 삼등병조 - 이등병조 - 일등병조 - 병조장이었는데, 이는 구 일본 제국 해군의 하사관 계급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물론 육해공군 모두 1962년이 되면 하사 - 중사 - 상사로 부사관 계급의 이름과 체계가 바뀌게 된다.

한 가지 더 문제가 있는 것이 바로 복무기간이다. 1953년에 정전 협정이 맺어진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복무하는 육군 징집병과 해공군 모집병의 복무기간은 3년으로 정해졌다. 건군기 당시에 제정된 말단 병의 의무복무기간은 육군 2년, 해군 3년이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만기제대하는 사례가 거의 없어졌다가 정전 이후 공식적으로 부활한 것.

따라서 이 아재가 진짜로 건군기나 한국전쟁 당시에 입대해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대한민국 해병대 소속 해병이었다면 하사관이나 장교로 신분 전환하지 않은 이상 빠르면 1953년, 늦어도 1956년까지 제대해야 정확하다. 문제는 한국군에서 병장 계급이 생긴 해는 1957년이라 시기와 불일치한다는 거다. 게다가 이 분이 아내 춘심과 결혼 전에 찍었던 사진의 시점은 1953년 봄, 그것도 3월로 추정되는 이른 봄인데다가 머리숱도 갓 제대한 군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풍성했다. 즉, 이말룡의 제대 시점은 아무리 늦어도 1952년 중후반 정도라는 말인데, 전쟁 당시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건군기 내지 전쟁 초반부터 복무했던지라 나름 짬도 높고 실전경험도 많은 고참병을 쉽사리 제대시켜주었을지는 의문.

물론 해당 문제는 1954년 이후에 입대했다고 하면 해결될 문제이기는 하나, 그러면 제작진이 강조하고 싶었던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설정 역시 폐기해야만 한다. 정전 협정 발효 이후에 입대한 자원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 아니면 전쟁 중 부상으로 전역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작중에서 묘사된 바가 없다.

결론으로 아마 전달하고 싶었던 설정은 전쟁의 아픔을 겪은 해병대 참전용사 였지만 제작진의 부족한 정보력으로 인하여 재현 오류가 발생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가장 말이 되는 설정은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역한 해병대, 그리고 현대 병장계급에 부합하는 하사가 적당할 것이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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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정 고무신 코믹스 15권에서는 이말룡으로 나오지만 극장판 추억의 검정고무신에선 '이선달'로 나온다. [2] 과장이다. [3] 1기 텔레비젼 사는 날에서 텔레비젼을 가족에게 선물하고 TV를 보내왔을 뿐 4기로 완결될 때까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작중 언급에 따르면 서독에 있었다고 한다. [4] 기영이가 친구들과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친구가 강아지 먹이로 주려던 술지게미를 나눠먹게 되는데 거기에 남아있던 소량의 알콜 성분으로 인해 취해서 막걸리를 쏟아버리고 맹물을 섞어다 준 적이 있었다. 나레이션에 의하면 그 일로 기영이를 혼내킨 듯하다. [5] 신형만(신영식)과 더불어 아버지 연기의 대표작이다. 4기가 방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별세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4기가 제작되기 시작한 시점에서도 이미 건강이 악화됐었기 때문에, 4기에서 기존 성우진이 대부분 유지됐다 해도 본인이 이말룡 역을 다시 맡을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6] 오랫동안 이종구 성우가 맡았다고 나와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다. 이종구 성우는 땡구를 맡았다. [7] 아들 역을 맡은 박지윤, 오인실과 동기지만 나이는 박영재가 더 많다. 오세홍 성우의 별세로 인해 교체되었다. 사실 첫 방영 당시에도 오세홍 성우는 대표작인 신형만 역에서 하차(해당 배역은 전임 성우인 김환진이 복귀)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8] 실제로 이말룡의 이 독백 자체는 당시 기준으로 사실이긴하다. 대가족을 지탱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건강상에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당시 시대상 기준으로 정말로 평균보다 행복한 삶이긴 하다. [9] 심지어 엄할때 마저도 자식들이 엇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혼내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10] 그것 때문에 외상을 내서 새 전축을 구매했지만, 한겨울에 찹쌀떡 장사를 하기도 했다. [11] 복권 당첨에 대한 자만감에 빠졌다. 그래서 미리 받은 월급으로 설탕, 카스테라, 고기 등을 사먹고 직원들한테 쏘고 돈을 엄첨 많이 썼다. 물론 마지막에는 다 꽝이어서 한동안 몸져 누워야 했다. 어쩜 그렇게 기철이랑 똑같아요? 심지어 머리스타일도 똑같... [12] 나중에는 도둑이 깨워서 인사까지 한뒤 갈 정도로 호구처럼 당하다 결국 땡구가 쳐서 잡았다. 결국 모든 것이 까발려진 뒤에는 아내에게 어떻게 강아지만도 못하냐는 소리를 들으며 깨갱하기도 했다. [13] 두 아들 기철이 기영이와 다르게 본인은 소식좌이기 때문. [14] 양말을 팔다가 깡패들 때문에 허리를 다쳤고, 액션영화 엑스트라를 하다가 주먹을 생으로 맞아 얼굴이 망가졌다(감독이 맞는 연기를 너무 못한다고 구박하자 그냥 배우가 휘두르는 주먹에 직접 맞기로 한다.). 심지어 사극 엑스트라 때는 엉덩이 보호대를 깜빡하고 하지 않아서 곤장을 생으로 맞았다. 그래도 결국에는 기철이와 같이 신문 배달을 하던 어느 회사 사장 덕분에 취직했다. [15] 일 가능성도 있다. [16] 4기에서 기철이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 몇 안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17] 이때 상대는 대장간집 아들 '배동석' 이라는 인물인데, 거의 사실상 상대도 안될 정도로 능력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잠깐 방심한 사이에 기철이 아버지가 바로 힘을 줘서 소를 빼앗기게 된다. [18] '삼척동자'편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면서.... [19] 1999년에 첫 방송된 1기 1회차 도입부 내레이션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라고 언급하였다. 이후 시리즈에서 애니메이션의 배경년도가 바뀌었다는 소리가 따로 없었으니 3기의 배경도 1969년이 맞다고 볼 수 있다. [20] 이 서술이 단순한 농담이 절대로 아닌 것이, 한국의 예비군은 1968년에 발생한 1.21 사태 이후에야 창설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예비군에 해당하는 조직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다. 사실 건군기에 비슷한 역할을 맡아줄 호국군 국민방위군이 존재하긴 했으나 얼마 안 가 사라졌고, 1961년 11월에야 설치 근거가 법적으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한동안은 유명무실 했으나, 1968년 1월에 일어난 1.21 사태, 그리고 동년 10월에 일어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인해 예비군 조직의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한 것. 따라서 1950년대에 군복무를 마친 이들은 말 그대로 순수한 민간인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21] 그리고 모든 부대들이 그렇듯이 창설한다고 장땡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실질적인 전투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당연히 해당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창설하자마자 바로 파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다 정치권과 군 수뇌부가 파병에 관한 여러가지 절차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약에 제1해병사단이 베트남으로 파병되었다면 그 시기는 아무리 빨라야 1956년까지는 기다려야 했으며, 넉넉하게는 1957년 아니면 1958년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프랑스가 패배하고 물러나기는 했지만... [22] 군대 조직에서 30대 후반 내지 40대 초반이라는 나이의 군인이라면 장교의 경우는 소령~중령, 그 이하라면 짬중사~상사의 부사관 혹은 준위나 준위 진급 예정자이다. 어느 쪽이든 기본 10년 넘게 복무한 베테랑 자원들이며, 특히 상사급 이상의 부사관과 소령급 이상의 장교라면 초급장교와 초급부사관 및 일반병들처럼 최일선에서 거의 싸우지 않고 후방에서 지휘관나 참모, 교관으로 빠지는 것이 당연한 자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기본적인 직접 전투 능력이 없냐면 그것도 아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서 이전만큼 싸우지는 못 하겠지만, 이들 전원이 총기와 같은 개인화기를 다루는 기술을 배운데다 진급이나 비상시 자기방어 등을 목적으로 무술과 체력도 뛰어난 이들이 다수인지라 이말룡처럼 이들과 같은 나잇대의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젊은 나이의 후배 군인들조차 직접적인 전투력에서 밀리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본 만화의 배경인 1969년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짧았는데다가 군사독재시절이었던 지라 군인들의 진급도 잘 되었던 만큼 비슷한 나잇대의 현대의 군인들보다 훨씬 더 계급이 높은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40대 중반~50대 초반의 장교는 현대 국군에서는 중령~물소장급이지만 월남파병 당시의 국군에서는 대장이었다. 물론 이런 경는 한국전/월남전 참전용사나 대간첩 작전 참여자, 육사 출신(특히 하나회 소속이라면 고속 진급은 보장되었다.)들이 다수였지만 당시 한국군의 장교단 연령이 지금보다 젊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따라서 월남파병 당시 이말룡의 나잇대의 군인이라면 대령도 가능했다. [23] 기영이와 기철이가 만화책을 보다가 혼나자 우연히 가져가서 만화책을 볼 때 재미있게 웃으면서 본다. [24] 특히 4기에서는 더 망가졌고 작중인물의 설정 붕괴가 제일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