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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20:45:16

이단(몽골 제국)


원사(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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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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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태조기(太祖紀)」 2권 「태종·정종기(太宗定宗紀)」 3권 「헌종기(憲宗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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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7·8·9·10·11·12·13·14·15·16·17권 「세조기(世祖紀)」 18·19·20·21권 「성종기(成宗紀)」 22·23권 「무종기(武宗紀)」
패아지근 홀필렬 패아지근 철목이 패아지근 해산
24·25·26권 「인종기(仁宗紀)」 27·28권 「영종기(英宗紀)」 29·30권 「태정제기(泰定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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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권 「영종기(寧宗紀)」 38·39·40·41·42·43·44·45·46·47권 「순제기(順帝紀)」
패아지근 의린질반 패아지근 타환첩목이
※ 48권 ~ 105권은 志에 해당. 106권 ~ 113권은 表에 해당. 원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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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4db1> 114·116권 「후비전(后妃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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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권 「특설선등전(特薛禪等傳)」 119권 「목화려등전(木華黎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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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한 · 찰팔아화자 · 출적태 · 진해 · 초내태 · 오야이 · 갈사맥리 속불태(1) · 안축이 · 외답아 · 박라환 · 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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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출아이특적근 · 철매적 · 안찰아 · 암목해 · 풍숙안 · 석리검부 · 삭직돌로화 · 석아길사 · 합산납
123권 「포지아등전(布智兒等傳)」
포지아 · 소열태초올아 · 활활불화 · 배연팔도로 · 아술로 · 소고아 · 아랄와이사 · 초아 · 야포감복 · 조아가반 · 순지해 · 점철발도아 · 겁겁리 · 탑불이아 · 직탈아 · 월리마사 · 날고랄 · 아아사란 · 합팔아독 · 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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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본 · 합랄역합적북로 · 탑탑통아 · 악린첩목이 · 이정(李楨) · 겁렬속가 · 망가산아 · 맹사속
125권 「새전적섬사정등전(賽典赤贍思丁等傳)」 126권 「안동등전(安童等傳)」
새전적섬사정 · 포로해아 · 고지요 · 철가 안동 · 염희헌
127권 「백안전(伯顏等傳)」 128권 「아추등전(阿朮等傳)」
팔린백안 아출 · 아리해아 · 상위 · 토토흡
129권 「내아팔적등전(來阿八赤等傳)」 130권 「철리등전(徹里等傳)」
내아팔적 · 뉴린 · 아랄한 · 아탑해 · 사도 · 이항 연지길태철리 · 불홀목 · 토별연완택 · 아로휘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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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가 · 낭가알 · 망올태 · 오로적 · 완자도(2) · 백첩목아 · 회도 · 역흑미실 · 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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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입도 · 장정진 · 장혜 · 유호례 · 왕국창 · 강욱 · 장초 · 여질 · 담자영 · 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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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권 「하인걸등전(賀仁傑等傳)」
하인걸 · 가석랄 · 유합라팔도로 · 석말명리 · 사중온 · 고휴 · 장구사 · 왕백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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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권 「장규등전(張珪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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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권 「조백계등전(曹伯啟等傳)」
조백계 · 이원례 · 왕수 · 왕의(王倚) · 유정(劉正) · 사양 · 하약우 · 조사로 · 유덕온 · 울지덕성 · 진기종
177권 「장사명등전(張思明等傳)」 178권 「양증등전(梁曾等傳)」 179권 「하승등전(賀勝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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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희량 · 조세연 · 공사회 원명선 · 우집 · 게혜사 · 황진 장기암 · 구양현 · 허유임 · 송본 ·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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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92권 「양리전(良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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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94·195·196권 「충의전(忠義傳)」
이백온 · 석규 · 유합랄발도 · 임지 · 야율특말 · 보바르 · 합랄보화 · 유천부 · 소경무 · 장환 · 이보 · 이제 · 곽가 · 저불화 · 주희동 · 변침 · 교이 · 안유 · 왕사원 · 양박 · 조련 · 손총 · 석보 · 성소 · 양승 · 납속랄정 · 백안불화적근 · 번집경 · 전보암철리 · 주당 · 섭병 · 유경손 · 유술조 · 계완택 · 추려 · 패라첩목아 · 팽정견 · 왕백안 · 유준 · 타리불화 · 조야준대 · 진군용 · 복리아돈 · 조해 · 위중립 · 보안불화 · 민본 · 배주 · 조홍의 · 정옥 · 황후 · 백첩목이 · 질리미실 · 박새인불화 · 정호례
197·198권 「효우전(孝友傳)」
왕윤 · 곽도경 · 소도수 · 곽구구 · 장윤 · 전개주 · 영저구 · 필야속답립 · 번연 · 유덕천 · 곽회 · 공전 · 장자기 · 진걸아 · 양일 · 장본 · 장경 · 원선 · 조육 · 호광원 · 진소손 · 조일덕 · 왕사총 · 철철 · 왕응초 · 정문사 · 왕천 · 곽전 · 양호 · 정문충 · 소경조 · 호탁 · 손수실 · 이자경 · 종기 · 조영 · 오호직 · 여병 · 서옥 · 윤신 · 유정양 · 유통 · 장왕구 · 장사효 · 두우 · 장수 · 손근 · 장공 · 자여도 · 왕용 · 황윤 · 석명삼 · 유기 · 유원 · 축공영 · 진사효 · 강겸 · 호반려 · 왕사홍 · 하종의 · 합도적 · 고필달 · 증덕 · 근병 · 황도현 · 사언빈 · 장소조 · 이명덕 · 장집 · 위경익 · 탕림 · 손억 · 석영 · 왕극기 · 유사경 · 여우 · 주락
199권 「은일전(隱逸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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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권 「열녀전(列女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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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권 「석로전(釋老傳)」 203권 「방기전(方伎傳)」
팔사파 · 구처기 · 전절 전충량 · 근덕진 · 장강 · 이호 · 손위 · 아로와정 · 역사마인 · 아니가
204권 「환자전(宦者傳)」 205권 「간신전(奸臣傳)」
이방녕 · 박불화 아합마 · 노세영 · 상가 · 철목질아 · 합마 · 삭사감
206권 「반신전(叛臣傳)」 207권 「역신전(逆臣傳)」
이단 · 왕문통 · 아로휘첩목아 철실 · 패라첩목아
208·209·210권 「외이전(外夷傳)」
고려 · 탐라 · 일본 · 안남( 진조) · 면국 · 점성 · 섬국 · 유구 · 삼서
(1) 121권의 속불태(速不台)와 122권의 설불태(雪不台)는 동일인물이므로 122권에서는 생략한다.
(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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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초기 생애3. 기만을 거듭하다4. 반란과 최후

1. 개요

李璮
(? ~ 1262년 음력 7월 20일)

몽골 제국의 한인(漢人) 군벌이자 반역자이다. 그는 부친 이전의 뒤를 이어 산동(山東)에서 가장 강력한 한인 군벌이 되었으며, 산동과 연수(漣水) 일대를 30여 년 동안 통치하나 말년에 남송에 투항하고 몽골에 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킨 지 반년 만에 토벌당하여 처형되었고, 이로 인해 반역자로 기록이 남게 된다.

2. 초기 생애

이단의 자(字)는 송수(松壽)이며, 출신지는 유주(濰州)이다. 그는 홍오군의 수령 이전의 아들인데, 일설에는 본래 구주(衢州) 사람 서(徐)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서씨가 일찍이 양주(揚州)에서 사리참군(司理參軍)을 지내고 있을 때 이전이 이단을 거두어 기르고 자신의 양자로 삼았다고도 한다.

1227년, 이전은 남송을 배반하고 자신이 다스리던 산동의 주군(州郡)들을 모두 몽골에 바치며 투항해왔다. 이에 태사(太師)이던 국왕(國王) 패로(孛魯)는 이전을 승제(承制)하여 산동회남초주행성(山東淮南楚州行省)으로 삼았고, 그의 형 이복(李福)은 부원수(副元帥)로 삼아서 이전을 보좌하게 하였다.

1231년, 이전은 남송을 침략하여 양주를 공격하였으나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었다. 이단은 이전의 관직이던 익도행성(益都行省)을 습직(襲職)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의 임지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몽골 조정에서는 이단에게 산동 지역의 군대를 징집할 것을 여러차례 명령하였으나, 이단은 번번이 말을 늘어놓아서 조정을 속이고 병사들을 징집하지 않았다.

3. 기만을 거듭하다

1257년, 헌종(憲宗)이 직접 남송을 정벌하기 위해 사천(四川) 지역으로 출정하려고 하자 이단은 병사들을 선발한 뒤 그들을 이끌고 헌종이 있는 행재소(行在所)로 달려갔다. 이단은 행재소에 도착하자 직접 헌종을 알현하며 말하였다.
"익도(益都)는 (宋)이 항해를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길목이므로 (사천 정벌을 위하여)군대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헌종은 이단의 말을 옳게 여겼고, 그에게 돌아가서 연해(漣海) 지역의 여러 고을(州)들을 탈취하게 하였다. 이단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서 연수(漣水) 지역과 이어진 네 곳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자신의 공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서 조정에 보고하였다.[1]

중통(中統) 원년(1260), 세조(世祖)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그는 이단에게 강회대도독(江淮大都督)의 관직을 더해주었다. 이에 이단이 사례하며 말하였다.
최근에 신(臣)이 송의 사람들을 붙잡은 일이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송에서 장차 군대를 선발하여 연수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은 첩자를 보내서 허포(許浦)를 염탐하였는데, 허포의 사양호(射陽湖)에서 송의 함선들이 서로 바라보게끔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교서(膠西) 지역으로 진출하여 익도를 공격해오려는 형세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청컨대 신이 성벽을 보수하고 적들을 대비하도록 해주십시오."
세조는 이단을 충실한 사람으로 여기고 조서(詔)를 내려서 그에게 금부(金符) 열 개와 은부(銀符) 다섯 개를 하사하였으며, 이단을 따르는 장사(將士)들 중 공이 있는 자들에게도 은 3백 정(錠)을 하사하고 그들을 장려하고 위로하는 내용의 조서를 내렸다. 이로써 동남쪽 국경지대에 주둔한 몽골군과 한군(漢軍)은 모두 이단의 통제를 따르게 되었다.

이단은 또 세조에게 글을 올렸다.
송의 여문덕은 회남(淮南) 지역의 군대 7만 5천을 모아서 연수를 침범해왔고, 또 직접 보루를 쌓고 그 위에서 신을 내려다보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신은 가사도와 여문덕이 보내온 글들을 얻게 되었는데, 두 사람의 말투가 매우 오만방자하여 신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조정에서 최근의 일을 알게 되면 이를 우환으로 여길 것이고, 저들은 반드시 신의 뜻을 시험해보려고 도발을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신이 익도의 병사들을 징발하도록 해주신다면 신은 마땅히 선봉에 서서 회수(淮水)를 건널 것이고, 가사도와 여문덕을 벌하여 신이 당했던 치욕도 갚아보이겠습니다."
이단의 글은 조정의 집정대신(執政大臣)에게 먼저 전해졌는데, 그는 이단을 타이르며 말하였다.
"조정에서는 방금 저들과 화의(和議)를 맺었는데, 국경을 지키는 장수라면 마땅히 봉토와 국경을 지키는 데에만 전념해야하지 않겠소? 또한 송의 사람들이 속임수를 쓰는 일은 원래부터 비일비재하였으니 저들은 애초부터 연수 지역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오. 그대는 저들의 속임수에 미혹되어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이단은 재차 세조에게 글을 올렸다.
신이 익도를 다스린 뒤로 자리를 비우는(일에서 벗어나 쉬는) 이들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신은 해주(海州)에서 자립하여 여덟 가지의 임무를 맡게 되니 신의 장사들은 일찍부터 갑옷을 벗지 못하였으며, 수레를 끄는 이들도 일을 내려놓고 쉬지 못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나날이 여위어 힘을 잃어갔는데, 그들이 기력을 잃는 것이 지금에 이르러 매우 심해졌습니다.


신은 한 갈래(路)의 군대를 이끌고 적국을 상대해야 하는데, 이끌고 있는 군대가 부족하여 일을 도모할 수가 없으니 사람들이 모두 근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은 폐하의 신무(神武)하심에 의지하여 연(漣), 해(海)의 두 주를 함락시키고 하귀(夏貴)와 손호신(孫虎臣)이 이끄는 십여만의 적군도 격파하였습니다. 그런 신이 어찌 감히 적들이 두번 다시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겠습니까! 또한 지금에 이르러서 송의 사람들은 서쪽 방면의 통제가 없어졌으니 마땅히 힘을 합쳐서 동쪽 방면을 도모할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수군과 육군을 합쳐서 연수를 침범한다면 그들은 먼저 수군을 이끌고 해주의 북쪽으로 가서 교주(膠州), 내주(萊州) 등의 성들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런 후에 저들의 육군이 기주(沂州), 거주(莒州), 등주(滕州), 역주(嶧州)를 침범해 올 것인데, 이렇게 되면 산동은 더 이상 우리의 영토가 아니게 됩니다. 형세가 이러한데 어찌하여 잠깐의 평화만을 믿으면서 훗날에 대한 방비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어제 적을 추격하여 회안(淮安)에 이르렀습니다. 신은 싸움에서 이겼음에도 그 기세를 타고 양주(揚州)와 초주(楚州)까지 점령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집정대신들이 무리를 지어서 신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하여 신은 깊이 들어가서 적들을 유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조양(棗陽), 당주(唐州), 등주(鄧州), 진주(陳州), 채주(蔡州)의 모든 군대로 형산(荊山)을 공격하게 하고 박주(亳州), 숙주(宿州), 서주(徐州), 비주(邳州)의 모든 군대로 수춘(壽春)과 사주(泗州)를 점령하면서 신이 이끄는 군대까지 합하여 양주와 초주까지 공략하신다면 이로써 양회(兩淮) 일대가 평정될 것입니다. 양회가 평정되면 그 즉시 병사들을 선발하여 강남을 취하시되 백성들을 스스로의 너그러움으로 다스리게 하고, 그들이 자리를 옮기지 않도록 하시면 이것이 가장 좋은 상책이 될 것입니다.
이단의 글을 읽은 세조는 이단의 장교 풍태(馮泰) 등의 공을 차례대로 포상하였으며, 또 조서를 내려서 익도의 관리들에게 은을 포상으로 지급하였다.

중통 2년(1261) 1월, 이단은 행중서성(行中書省)을 찾아와서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그는 남송에서 군량 수십만 석(石)을 취하고 1만 3천 척의 전함을 허포에 진열하여 나라의 경내를 침범하려 한다고 말했으며, 이에 따라 선무사(宣撫司)의 업무가 끊기게 되어 육로와 수로가 끊기는 것이 두려우니 자신이 일의 완급을 따지지 않고 급하게 왔음을 밝혔다. 또한 이단은 정예한 기병을 선발하고 길을 더욱 늘려서 지원군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로써 나라의 안과 밖의 모든 국력을 기울여 송을 공격하고 기세를 타서 깊이 진격한다면 강회(江淮) 지역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때는 이미 연수의 승전보가 행중서성에 전해졌으므로 세조는 조서를 내려서 이단을 칭찬하고 타일렀으며, 그에게 금부 17개와 은부 29개를 하사하고 그가 거느릴 수 있는 장사들의 수를 늘려주었다.

1월 28일, 이단은 번번이 병사들을 시켜서 익도의 성벽과 해자를 보수하였으며, 또 남송에서 연수를 침범해왔다고 조정에 알려오니 세조가 아술(阿術), 합랄발도(哈剌拔都), 애선불화(愛仙不花) 등에게 그들이 거느린 모든 병력을 이끌고 연수로 달려가게 하였다. 이로 인해 조정에서는 병사를 추가로 징발하는 일이 필요해졌고, 이단은 마침내 연수로 향하는 모든 갈래의 군대를 자신이 통제하게 해줄 것과 자신이 거느리는 병력과 군마(軍馬)를 늘려줄 것을 청하였다. 또한 자신에게 추가로 병장기를 보급해 줄 것을 청하자 조정에서는 화살 3만 개를 지급하려고 하였으나, 세조가 조서를 내려서 10만 개로 양을 늘렸다.

4. 반란과 최후

이단은 30여 년 동안 산동을 다스리면서 몽골의 황제들에게 주청했던 일들만 수십여 차례에 달했으나 대부분 의심을 사서 꾸짖음을 들었었다. 이에 이단은 앙심을 품고 적국인 남송의 위협을 빌미로 몽골 조정을 동요시켰으며, 황제와 조정 대신들의 불안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병력과 세력을 늘리고 입지를 굳건히 다져왔다. 그러나 이단은 조정에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사람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그의 술수가 워낙 심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제를 비롯한 조정의 사람들은 이단의 본심을 깨닫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단은 그의 아들 이언간(李彥簡)을 경사(京師)에 볼모(質子)로 보냈었다. 그는 남몰래 자신의 아들을 빼내기 위하여 사사롭게 역참을 만들었는데, 그 역참은 익도에서부터 이언간이 소속되어있는 경사의 질자영(質子營)에까지 이어졌다. 지금에 이르러서 이언간이 이단의 역참을 이용하여 경사에서 달아나 익도로 돌아오자 이단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서 몽골에 반란을 일으키니 이 날이 중통 3년(1262) 2월 3일이었다.

이단은 자신이 다스리는 연, 해의 세 성을 남송에 바치고 그 일대를 지키던 몽골의 수비군들을 섬멸하였다. 그 직후에 이단은 자신의 전함들을 이끌고 북상하여 익도를 공격하였고, 2월 8일에는 익도에 입성한다. 이단은 익도의 관청과 창고를 털어서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자신의 무리들을 배불리 먹였으며,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포대(蒲臺)를 노략질하였다. 산동의 백성들은 이단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자 모병에 응해 병사가 되어서 성벽을 지키거나 산골짜기로 달아나 숨어서 집을 비우게 되니 익도에서부터 임치(臨淄)에 이르는 수백 리의 지역이 적막해져서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2월 17일, 이단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세조에게도 전해지자 세조는 조서를 내려서 전국에 이단의 죄상을 공포하였다. 그 다음날에는 세조가 산동에 주둔한 모든 군대에게 명령을 내려서 이단을 토벌하게 하였다.

2월 23일, 조정의 대신인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 왕문통(王文統)은 이단의 장인이었으므로 세조가 그를 주살(誅殺)하였다.

2월 26일, 이단이 제남(濟南)을 함락시키고 그곳을 새 거점으로 삼아서 웅거(雄據)하였다.

3월 17일, 세조가 사추(史樞)와 아술에게 관군을 이끌고 제남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이단은 무리들을 이끌고 제남성 밖으로 나와서 토벌군의 치중(輜重)을 약탈하려고 하였으나 관군의 요새에 다다랐을 때 아술의 요격(邀擊)을 받고 크게 패배하였다. 이 싸움에서 아술이 얻은 반란군의 수급만 4천여 개에 달했으며, 이단은 그대로 달아나서 제남성으로 돌아갔다.

5월 5일, 관군은 사천택(史天澤)의 지휘 아래 제남성 주변에 환성(環城)을 축조하여 제남성을 포위하려고 하였다. 그로부터 2주 뒤에 환성이 완공되어 제남의 포위망이 완성되니 이때부터 이단은 다시는 성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으며, 오직 밤낮으로 성을 굳게 지키기만 하게 되었다. 이단은 성 안의 자녀들을 거두어서 장사들에게 상으로 내려주어 그들의 환심을 사서 사기를 진작시키려고 했으며, 또 군대를 나누어서 제남성 안의 민가를 약탈하여 백성들의 식량을 갈취하였다. 백성들은 그들이 먹을 식량을 다른 물건으로 덮어서 감추었지만 이단의 무리들은 숨겨진 식량들도 모두 찾아내어 약탈해갔다. 그럼에도 식량이 부족하자 이단은 백성들의 세금을 소금으로 거두었으며, 인육을 먹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제남의 사람들은 마음이 궤산(潰散)되어 투지를 잃으니 이단은 그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열 명에서 백 명씩 무리를 짓고 그들 서로를 밧줄로 묶은 다음에 성 밖으로 줄을 대고 그 줄에 매달려서 제남성 밖으로 빠져나왔고, 그들은 성을 나오는 족족 관군에게 투항하였다.

7월, 이단은 제남성이 곧 함락될 것임을 깨닫고 그의 애첩을 베어 죽였으며, 작은 배를 타고 성 안의 대명호(大明湖)로 간 뒤에 그곳에 몸을 던져서 자살하려고 했지만 호수의 수심이 얕아서 실패하였다. 때마침 사천택이 제남성을 함락시키니 관군들이 성 안으로 들이닥쳤고, 이단은 관군에게 붙잡히고 몸이 포박되어 제왕(諸王) 합필적(合必赤)의 앞으로 끌려갔다. 합필적이 사천택에게 이단의 처분에 대하여 묻자 사천택이 답하였다.
마땅히 지금 당장 주살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이에 이단은 그를 따르던 몽골의 군관 낭가(囊家)와 함께 사천택에게 죽임을 당하니, 이 날이 7월 20일이었다.
[1] 재밌게도 이단의 부친 이전 역시 남송에 있을때 군(金軍)을 격파한 공적을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서 남송 조정으로부터 관찰사(觀察使)의 관직을 받아냈던 전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