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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2:44:38

동문병

1. 개요2. 생애3. 기타4. 가족관계

1. 개요

董文炳, 1217~1278
몽골 제국 원나라의 저명한 무장으로, 대장 동준(董俊)의 아들이다. 자는 언명(彦明)으로, 고성(藁城)[1] 출신이다. 시호는 충헌(忠献)이다.

2. 생애

1217년 출생으로, 대장 동준의 아들이다. 1233년 아버지가 금나라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뒤 1235년 고성현령에 임명된다. 그러나, 지방호족에 대한 세금 부과 문제로 인하여 관직을 버리고 떠나게 된다.

1253년 쿠빌라이 칸(忽必烈)을 따라 대리국을 정벌한다. 동년 8월 쿠빌라이의 대군이 정벌에 나서, 감숙 임조에 도착한다. 이에 동문병은 즉시 집안의 사내 47명을 이끌고 하북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행군하여 쿠빌라이군에 가담하였다.

1259년 쿠빌라이가 중로군을 이끌고 남송을 공격하자 동생 동문용, 동문충 및 결사병을 이끌고 양라보[2]에서 장강을 건넜다. 용맹하고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260년 쿠빌라이 칸이 제위에 오르자 연남제도(延南諸道)를 위문하라는 명을 받고 이듬해 산동동로(山東東路) 선무사(宣抚使)로 승진하였다.

1262년 2월에는 이단의 난을 토벌하여 만호통군부사를 역임하였다.[3]

1269년에는 행참지정사(行參知政事)를 지냈다.

1274년 원나라가 남송을 대대적으로 공격했고, 이에 군대를 이끌고 안경과 채석 등을 연속적으로 점령한다. 이듬해 진강에 주둔하여 초산의 남송 수군을 대파하고 수많은 군대를 포로로 잡았으며 수백 척의 전선을 확보하여 장세걸(張世杰)과 손호신을 패배시켰다. 같은 해 10월에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강을 건너 해안으로 향했다.

1276년에는 동문병은 임안을 점령한 공로로 중서좌승(中書左丞)에 오른다.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태주와 온주를 점령했다. 남쪽으로 복건 지역으로 이동하여 장주, 천주, 건녕, 소무의 군과 현을 계속 항복시켰다.

지원 14년(1277년), 대도로 옮겨 첨서추밀원사, 중서좌승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병사했다.

3. 기타

4. 가족관계



[1] 하북성 석가장시 고성구 [2] 오늘날 호북성 무한시 신주구 양라진이다. 다른 이름은 무기보이다. [3] 이단의 난을 계기로 한족들은 신임을 잃었다. 사천택을 비롯한 다른 한인 세후들은 권력을 박탈당하였지만 동문병을 위시한 동씨 일가는 예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