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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7:35:46

경흥군

은덕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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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함경도를 통치하던 행정구역에 대한 내용은 경흥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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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興郡 / Kyŏnghŭng County
경흥군
慶興郡 / Kyŏnghŭng County
국가 북한
광복 당시 면적 1,001㎢
광역시도 함경북도
광복 당시 행정구역 2읍 3면
시간대 UTC+9
1. 개요
1.1. 아오지와 은덕의 관계
2. 기후
2.1. 인근 행정구역
3. 교통편4.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5. 북한 기준 행정구역
5.1. 행정 구역의 변화

[clearfix]

1. 개요

2020년 여름 수해 후 도시를 관통하는 강에 나온 경흥(은덕)군민들 ( 갈렙선교회 영상)
경흥군 출신 탈북자 최금영[1]씨 의 소개
함경북도의 군. 면적 940㎢. 아오지 탄광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기준 한반도 본토의 최동단이나, 북한 정부의 행정구역으로는 라선이 최동단이다.

경원군(慶源郡)과 마찬가지로 조선 왕조가 들어섰던 근원지라 하여 경사 경 자를 써서 경흥군이라는 이름[2]이 붙었다. 다만 경원군이 조선 초기에 정도전에 의해 이름이 붙었다면, 경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5세기 중반. 한 50년 정도 늦은 셈이다.

북한 정권은 북한 땅에 중심지를 두었던 고구려- 발해- 고려를 긍정적으로 부각하고 반면 남한 땅에 중심지가 있었던 신라- 조선왕조를 의도적으로 폄하하는 역사관을 견지했다.[3] 즉, 조선왕조의 길지라는 의미인 이 지명을 가만히 두지 않아 1977년 9월 은덕군(恩德郡)으로 공식적으로 개칭된 바가 있었다. '은덕'에 대해서는 짐작했겠지만, 한자가 좀 심상치 않다. 개칭 이유가 가관인 것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은덕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고장이라고 해서 은덕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씨왕조 은덕으로 아오지 탄광 인구가 나날이 늘어서 그렇다. 다만 2003년 평화문제연구소에서 북한과 공동으로 편찬한 조선향토대백과에서는 항목명은 경흥군인데 지도는 은덕군으로 나와 이 시기에 지명을 원래 이름 경흥으로 환원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만강 국경연선에 있는 시군들 중에서 유일하게 외국으로 통하는 통로가 없다! 하다못해 삼지연시 대홍단군에도 국경통로가 있는데(...) 두만강, 즉 국경과 접한 길이가 워낙 짧은데다가 건너편은 죄다 첩첩산중이라 딱히 다리를 놓을만한 곳이 없다. 원래 원정리에 중국 권하진으로 연결되는 국경다리가 있었는데 1983년에 원정리가 선봉군으로 넘어가면서 이런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신아산리 대안이 훈춘으로 향하는 회랑의 시발점이라 향후 교량 건설을 생각해볼 수 있을 듯.

참고로 라진시 선봉군, 즉 현재의 라선시도 원래는 이 경흥군 땅이었다. 나진이 경흥군에서 분리된 것은 1936년으로서 경흥군 나진읍이 나진부로 승격되었다. 선봉은 옛 경흥군 웅기읍이었으며, 경흥군의 군청소재지였다. 아래의 상세 행정구역 변화에서도 알 수 있지만, 경흥군이면서 아오지를 제외한 경흥군 대부분 지역을 모조리 라선시에 넘겨준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대신 경원군과 지금은 폐지된 종성군, 회령군 일부 지역을 조금씩 편입하면서 군 자체가 북쪽으로 이동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나왔던 은덕군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소달구지가 일상용으로 아직 쓰이며, 길에 나무개비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다 주워가기 때문) 굶주리고 못살고, 심지어는 탈출하려는 생각조차 거의 없는 지역이라고 한다. 같은 탈북자들끼리도 놀랄 정도로 열악한 지역이라는 모양. 북한에는 3~4월에 위생사업 기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온 동네사람들이 청소 및 회칠작업에 동원되는데, 롤러도 없는 모양인지 학생들이 학교 벽에 맨손으로 펴바르는데 석회물이 염기성이다보니 손 피부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그나마도 물기가 마르고 나면 횟가루가 풀풀 날리고 묻어나고 난리였다고 하는데, 은덕군에서는 그냥 자기 집 앞만 청소하는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 하도 열악하고 외진 곳이라서, 상부에서 굳이 거기까지 들어와서 검열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떨어져나간 라선과 비교하면 경제력차가 꽤 크다는것이다.

1.1. 아오지와 은덕의 관계

어째서인지 아오지가 은덕이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 많다. 경흥 출신 탈북자들도 대충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건 굉장히 러프한 서술이다. 북한 행정구역상 현 경흥읍 지역이 과거 아오지읍 소속이었던 것은 맞는데 당시 흔히 아오지라고 불렸던 동네는 철도역이 있던 읍소재지 아오지리와 문제의 아오지탄광이 있던 바로 옆 룡연리이고[4], 과거 읍소재지인 아오지동은 현 학송로동자구 지역이다. 현 경흥읍 지역은 오봉리의 탄광이 개발되면서 마을이 형성된 옛 신아오지리 일대로 아오지를 대표하는 지역이라고 하기에는 꽤 무리가 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시흥군 안양시가 되었다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워낙 산세가 험하고 교통도 안 좋고, 사실상 유배지나 다름 없어 북한 주민들도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결정적으로 두 지역은 직선 거리상 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시흥군과는 달리 저 두 지역은 모두 광복 당시 읍(아오지읍) 단위까지 일치했었다. 때문에 경흥 출신 탈북자들도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엔 이유가 있는 것.

덤으로 학송역 문서에서는 학송로동자구가 김학송의 이름값 때문에 어거지로 로동자구가 되었다는 식으로 기술했는데, 오봉탄광과 6.13탄광에서 나오는 석탄들을 처리하는 학송역을 낀 동네가 고작 김학송 이름값 하나로 로동자구가 되었다는 것은 지나친 폄하다. 어차피 북한에서의 로동자구 기준이라는 것은 성인 인구 400명 이상, 그중 65% 이상이 공장, 광산, 임산, 어업 종사이니 한국의 읍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오봉로동자구는 학송구보다도 규모가 현저히 작지만 엄연히 로동자구다.

2. 기후

기후대는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매우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10.6℃로 위도에 비해[5] 매우 추운 편이지만[6] 그래도 북쪽에 있는 온성군, 경원군, 회령시에 비하면 조금 따뜻한 편이다. 물론 남쪽에 있는 라선시 부령군보다는 춥다. 고도가 낮은 곳이라 여름인 8월의 평균기온은 21.4℃로 함경도 지역 내에선 비교적 높은 편이다. 즉, 연교차가 32℃가 나는 셈이다. 연 평균기온은 6.2℃로 주변의 온성군 회령시 등에 비해서는 조금 높은 편이다.

연 평균 강수량은 600mm 정도로 매우 적다. 첫 서리는 9월 중순 또는 10월 초에, 마지막 서리는 5월 초 및 중순에 내리며 땅이 어는 깊이는 70~80cm로 어른의 허벅지 높이까지 정도 언다. 또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특히 5~7월 사이에 기온이 낮아지고 안개가 자주 끼여 일조율이 낮아짐으로서 냉해를 입을 수 있는 불리한 기후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는 내륙지대에서 여름에 일조율이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2.1. 인근 행정구역

경흥군 경흥군 중 국
경흥군
회령시
청진시 라진 선봉군

함경북도 소속  라선시 소속 

3. 교통편

철도 함북선   신아산역 송학역  학송역 
회암선   학송역  회암역  경흥역  오봉역 
도로 7번 국도   온성군 - 경흥군 - 신아산리 - 학송로동자구 - 선봉구역 - 부산광역시
93번 국도  경흥읍 - 선봉군 - 철주리
94번 국도   회령시 - 경원군 - 금송리 - 송상리 - 경흥읍

93번 국도는 경흥읍을 출발해서 ⊃자로 선봉군을 크게 우회한다.

4.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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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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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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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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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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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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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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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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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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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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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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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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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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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기읍
아오지읍 }}}
경흥면 노서면 풍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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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미수복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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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흥군
慶興郡
Kyŏnghŭng C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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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E070D><colcolor=#B28939> 군청 소재지 웅기읍
상위 행정구역 함경북도
하위 행정구역 2 3
면적 1,001km²
인구 81,685명[7]
인구밀도 81.60/㎢
명예군수 박근홍
명예읍·면장 5석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경흥군 소개
파일:경흥군기.png

파일:경흥군.jpg

5. 북한 기준 행정구역

1읍 6구 10리로 이루어져 있다.
경흥군의 행정구역
 경흥읍
로동자구  귀락구 농경구 룡연구 명룡구 오봉구 학송구 
 금송리 록야리 송산리 송학리 신아산리안길리 양덕리 장평리
 태양리 철주리

5.1. 행정 구역의 변화

기록 순서는 구 시/군 - 구 읍/면 - 현재의 읍/동/리/로동자구 (구 동/리) 순서.


[1] 1997년 탈북. [2] 하지만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홈페이지의 '이 땅의 지명 하나를 두시고서도'라는 기사에서는 "일제놈들이 대륙침략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두만강국경일대를 넓혀나가는 《대업》이 흥성하라는 뜻에서 《경흥》이라고 붙인것이였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고 세종대왕 때부터 쓰인 지명이다. [3] 사실 체제선전은 부차적이고 남한에서도 신라와 조선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북한은 그게 공식사관이라는것이다. 오해가 있다면 신라나 조선도 '민족성', 지배층과 무관한 사항 등은 매우 칭찬하고 지배층은 고구려 왕이라도 좀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흥선대원군을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자신들과 비슷해보여서인지 그 부분은 호평하기도 한다. [4] 이 둘이 합쳐져서 1952년에 2차(?) 아오지리를 형성했다. 1961년에 구 룡연리 지역이 룡연로동자구로 분리되면서 아오지탄광의 후신은 6.13탄광은 룡연로동자구에 위치해있다. [5] 경흥군의 위도는 북위 42°31'08"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와(북위 42°38'25")거의 비슷한 위도이다. 참고로 두브로브니크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9.2℃로 북위 33°에 위치한 서귀포시보다 더 따뜻하다. [6] 이 정도 기온은 북미에서도 북위 50° 이상 올라가야 나오고 유럽에서는 60° 이상 올라가야 나온다. 심지어는 북위 69°40'58"에 있는 노르웨이의 트롬쇠보다 경흥군이 압도적으로 더 춥다! 보통 우리가 북극권이라 부르는 곳은 북위 66.5° 이북 지역으로 트롬쇠는 북극권에 속하는 곳인데 난류의 영향으로 1월 평균기온이 겨우 -3.5℃에 불과하고 역사상 최저 기온이 -18.3℃에 불과하다. 반면, 경흥군은 -20℃를 밥 먹듯이 기록하는 곳이다! [7] 1944년 인구총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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