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웨스 크레이븐 Wes Crav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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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웨슬리 얼 크레이븐 Wesley Earl Craven |
출생 | 1939년 8월 2일 |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 |
사망 | 2015년 8월 30일 (향년 76세)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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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
데뷔 | 1971년 영화 '투게더' |
신체 | 188cm |
학력 |
휘튼 칼리지 (영문학, 심리학 / 학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 (철학 / 석사) |
종교 | 개신교( 침례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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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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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 각본가, 제작자. 데뷔부터 죽기 전까지 호러 장르만 고집했던 진정한 공포 영화의 거장.
2. 생애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흔히 " 호러영화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무래도 호인 듯. 비슷한 호칭으로 불리는 다른 거물들과의 차이점은, 그와 함께 1970~80년대의 호러영화를 이끈 감독들은 거의 모두 활동의 맥이 끊기거나, 활동은 하지만 묻혔거나, 아니면 다른 장르로 피터 잭슨처럼 전업하거나 샘 레이미처럼 병행하게 되었는데 크레이븐은 1990~2000년대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고 2011년에도 신작을 발표했다. 즉 오직 한 우물만 팠다. 생전에 70세가 넘었는데도 호러 외길 인생이라니 좀 많이 무섭다. 한마디로 인생이 호러. 호러물이라는 한 우물만 파신 분.1939년생으로 휘튼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심리학 학사를,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철학과 창작 석사 학위를 딴 인텔리 출신이다. 생전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독실한 침례회 원리주의자 집안이라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아버지가 어릴적에 병으로 죽고 어머니는 더더욱 종교에 빠져들어 강요하면서 영화를 아예 금지하여 보질 못했다고 한다.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유럽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졸업 후 대학 강사를 하면서 알바로 영화 편집 일을 하다가 뉴욕으로 이사가면서 강사 일을 그만두고 영화 쪽에 투신하게 된다. 택시 운전도 잠깐 했었다고한다. 결혼도 하여 두 아이를 가졌으나 아내는 대학 강사 그만두고 어렵게 영화 알바같은 일을 하는 그에게 실망해 1969년 이혼했다.
그러다가 숀 S. 커닝햄( 13일의 금요일 시리즈 1편 감독)이 감독한 포르노 다큐멘터리 "투게더"를 편집하게 되었는데, 투게더가 재미 좀 보자 영화사에서 5만 달러에 호러영화 한편 만들어보라고 제안한다. 커닝햄이 "야 우리가 직접 다 하면 4만으로 떡친다. 만 달러는 우리가 먹자"고 꼬셨는데 웨스 크레이븐은 그때까지도 호러영화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결국 반 재미삼아 각본 쓰고 감독한 영화가 1972년에 나온 《 왼편 마지막 집》. 정작 만들다 보니 예산이 부족해서 4만은 커녕 9만 달러짜리 영화가 되었다.
유럽 영화 팬이라 그랬는지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처녀의 샘》을 베이스로 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호러라 불릴만큼 요상하게 무심하고 리얼한 폭력씬을 보여주며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큰 화제가 되었다. 이어 1977년 " 공포의 휴가길"(Hills Have Eyes)을 발표하는데, 휴가길을 떠난 가족이 네바다 사막에서 돌연변이 살인마에게 습격당하는 이 영화는 고전 컬트 영화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 2006년 알렉상드로 아야 감독의 연출로 리메이크되어 인기 시리즈가 되기도 했다. 리메이크의 국내 제목은 "힐즈 아이즈". 이 영화의 모티브는 스코틀랜드의 도시전설인 소니 빈이다. 소니 빈의 전설
이렇게 잘 나가던 그는 1982년 만화 스왐프 씽을 영화화한 "늪지의 괴물"을 3백만 달러나 들여 야심차게 내놓지만, 흥행이 쫄딱 망하며 위기에 빠진다. 이 영화는 실험 용액을 뒤집어 써서 녹색 괴물이 된 과학자의 이야기로, 헐크의 호러 버전 같은 영화.
1981년 즈음, 웨스 크레이븐은 "꿈 속의 살인마가 현실의 사람을 죽인다. 잠들면 죽으니까 못 잔다"라는 괜찮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킬링필드에서 탈출해 미국에 건너왔으나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죽은 캄보디아 인들에 대한 기사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며 꿈 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프레디 크루거는 어릴적에 우연히 본 큰 화상을 입은 노숙자의 얼굴에 대한 기억으로 만들었다.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각본을 쓰고 있던 크레이븐은 "늪지의 괴물" 완성 후 곧바로 영화화를 타진하는데,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서 어린이를 위한 내용으로 순화시키면 제작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단번에 거절했다.( #) 결국 메이저 영화사를 잡지 못하고 영화 배급만 하던 중소회사인 뉴라인 시네마에서 독립 영화로 제작하게 된다.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1편인 " 나이트메어"는 110만 달러의 제작비로 미국에서만 26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으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호러영화 프랜차이즈로서 크레이븐의 명성을 확고하게 굳혔다.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는 나이트메어 시리즈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 프레디가 세운 회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현재는 워너 브라더스에 합병되었다.
이후 호러영화의 전성시대를 타고 1년에 1개 꼴로 빠르게 영화를 발표했으며, "공포의 계단", "영혼의 목걸이" 등 호러팬이라면 봐둘만한 작품도 많다. 80년대에는 TV 호러영화도 여럿 감독했는데 1986년 5월 28일 토요명화로 냉동인간이란 제목으로 더빙 방영한 Chiller(1985)도 그가 감독한 TV 영화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할리우드 호러영화가 틀에 찍은 듯한 졸작만 나오는 답보상태에 빠지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이에 대응하여 크레이븐은 1994년 점점 1편에서부터 속편을 거듭하며 산으로 가고 있는 기존 시리즈를 대놓고 무시하는 새 나이트메어 "뉴 나이트메어"를 만들어 스스로 창조한 프레디 크루거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정리해 완결시키고, 이어서 1996년에는 케빈 윌리암슨의 각본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인 슬래셔 호러영화 스크림을 내놓으면서 호러영화계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인지 스크림 시리즈는 속편 이후 직접 감독을 담당하였으며,[1] 2011년에는 4편인 스크림 4G를 발표했다. 4편은 너무 늦게 개봉해서 약간 망하긴 했다.
스크림 시리즈를 찍으면서도 중간중간에 "커스드", "나이트 플라이트", "마이 소울 투 테이크" 등의 호러/스릴러 작품을 꾸준히 만들었으며, 자신의 옛날 영화인 "힐즈 아이즈", "왼편 마지막 집"의 리메이크 및 "위시마스터", "피스트", "브리드", "펄스" 등의 제작 또는 각본을 맡았다. 물론 다 호러영화. 정말 호러에 몸을 바친 분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그가 손댄 작품 중 호러가 아닌 것은 음악을 소재로 한 휴먼 드라마인 메릴 스트립 주연의 "뮤직 오브 하트"(1999). 2006년 유명 감독들의 단편 모음 "파리, 사랑해"(Paris, Je T'Aime)에도 훈훈한 단편이 하나 있긴 한데, 배경이 공동묘지에 유령이 나온다(...) 나이트 플라이트(2005)도 호러라기보다는 정통 스릴러.
2015년 8월 3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뇌종양 투병 중 향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스타일
초기 작품은 익스플로이테이션, B급 호러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80년대 들어서부터 시각적으로 과장된 표현을 줄이고 분위기와 상황으로 공포를 연출하는 경향이 늘었으며 후기작으로 갈수록 잔인함이 줄고 스릴러/서스펜스에 가까워진다. 아울러 "초월적인 공포 앞에서 쪽도 못쓰는 인간의 무력함" 컨셉을 잘 안쓰고 능동적인 캐릭터가 결국 공포를 이겨내고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적이거나 훈훈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존 카펜터와 달리 대중 친화적인 구석이 많다.현실과 꿈을 오가는 공포라든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라든지 하는 아이디어를 즐겨썼다. 이것으로부터 그의 가장 큰 히트작 2개가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창조성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능력일 듯.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새로운 발상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실제 생활 또는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은유를 깔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심각하고 무겁게 끌고 나가지는 않으며 진지함 속에서 위트가 가미된 센스있는 연출이 특기.
‘스크림’ 시리즈와 그 인기에 편승한 슬래셔 아류작들의 트렌디 & 캐주얼함 때문에 "전형적인 할리우드표 호러 감독"이라는 오해도 있지만 스크림은 그러한 스타일의 원조였을 뿐이고 그의 영화들 중에는 오직 스크림 시리즈 밖에 없기 때문에 부당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4. 필모그래피
4.1. 영화
- 왼편 마지막 집 (The Last House on the Left, 1972) - 공식적 장편 데뷔작. 한국에서는 미개봉하고 분노의 13일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는데 제작자인 숀 S.커닝엄이 13일의 금요일 감독이라는 점과 나이트 메어의 크라벤(비디오 표지에선 이름이 이렇게 나옴)을 어필하고 있다.
- Angela, The Fireworks Woman (1975)
- 힐즈 아이즈 (The Hills Have Eyes, 1977) - 한국에서는 미개봉하고 ‘공포의 휴가길’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다. 알렉상드로 아야 감독이 2006년에 리메이크 하였다.
- 악령의 리사 (Deadly Blessing, 1981) - 역시 미개봉작이고 당시 삼성그룹 계열이던 스타맥스에서 비디오로 냈다.
- 늪지의 괴물 (Swamp Thing, 1982) - 원작은 스웜프 씽. 미개봉작으로 CIC비디오로 발매했으며 애니로도 만들어져 스윔프맨이라는 제목으로 정우씨네마에서 90년 초반에 더빙되어 비디오가 나온 바 있다.
- 나이트메어 (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한국에서도 개봉하고 흥행성공했다.
- 힐즈 아이즈 2 (The Hills Have Eyes 2, 1985) - 미개봉작으로 세신영상에서 야만의 성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로 냈다.
- 컴퓨터 인간 (Deadly Friend, 1986) 국내 미개봉작으로 SKC 비디오 제목. 크레이븐은 호러를 덜 넣고 사랑한 여자가 죽어서 두뇌와 기억을 로봇에 넣고 되살렸지만 이로 인한 문제로 갈등하는 이야기를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제작사는 역시나 나이트메어 감독으로 홍보하고자 영화 줄거리도 호러로 더 강조하길 요구하여 난데없이 사람 머리를 농구공으로 터뜨리는 등. 호러와 여러가지가 억지로 섞어버렸다는 평으로 흥행과 평은 그리 거두지 못했고 크레이븐도 너무 아쉬운 마무리라고 씁쓸해했다. 요한 일렉트릭 바흐 항목에 언급된 농구공에 머리통이 터지는 영상이 바로 이 영화장면이다.
- 악령의 관 (The Serpent and the Rainbow, 1988) 미개봉작으로 CIC비디오에서 비디오 발매. 민속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웨이드 데이비스가 쓴 실제 부두교 좀비 논란을 다룬 책자 The Serpent and the Rainbow (한국 정발판 책자 제목은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토대로 각색해 만든 영화. 부두교 좀비라서 좀비영화이지만 죽은 시체가 되살아나 사람을 잡아먹는 그 좀비가 아니다. 롭 코헨이 공동제작했으며 호러보다는 권력자와 갑질 누리는 사람이 더 무서운 사회풍자가 돋보이는 수작.
- 영혼의 목걸이 (Shocker, 1989) 국내 개봉 및 1992년 2월 1일 주말의 명화로 삭제판이 더빙 방영했다. 이 영화 주인공 조나단을 맡은 배우 피터 버그는 현재 감독과 제작자로 더 유명하다. 배틀쉽, 론 서바이버, 딥워터 호라이즌, 패트리어트 데이 등등 감독을 맡았다. 나름 여러가지를 담으려고 했지만, 그야말로 호러와 코미디와 여러가지가 섞여서 평은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레이븐은 진지한 사랑과 무거운 이야기를 담으려 했으나 제작사는 호러 집중으로 갈 것을 요구하여 갈등이 많았다. 국내개봉 당시 ‘사랑과 영혼’ 같은 스타일의 영화로 홍보를 했다. 조나단은 손원일, 앨리슨은 성유진, 악역 핑커는 바로 김기현이 성우를 맡았다.
- 공포의 계단 (The People Under the Stairs, 1991): 계단 밑 사람들이란 원제를 봐도 알겠지만 사회적 고발물에 가까운 수작이다. 큼직한 집 계단 밑 지하실 공간에 갇혀있는 온갖 돌연변이들은 순수한 사람들, 즉 을인 사람들이고 멀쩡해 보이던 집주인 사람들은 그야말로 사이코패스라는 진실. 흑인 꼬마아이가 주인공인 것도 특이하다. 한국에서 미개봉작으로 CIC비디오에서 비디오만 나왔다가 1999년 8월 13일 금요일 밤 12시 25분에 MBC에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이선주가 주인공 꼬마 성우를 맡았다. 여담인데 영화 포스터는 90년대 중순에 아이큐 점프 등지에 가득 나오던 공포 전화방송 광고로 무단 도용했다. 조던 필이 감독, 제작으로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1994년에 박찬욱이 쓴 비디오 평론 책자《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비디오드롬》에서 매우 호평한 바 있다. 600만 달러로 만들어져 3130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둬들였다.
- 뉴 나이트메어 (Wes Craven's New Nightmare, 1994) - 국내 개봉. 이후로 크레이븐 영화들은 모두 한국 개봉이 이뤄졌다.
- 브룩클린의 뱀파이어 (Vampire in Brooklyn, 1995): 에디 머피가 흡혈귀로 나오는 괴이한 영화. 흥행과 비평에서 참패. MBC에서 평일 오후에 더빙 방영한 바 있다. 역시나 에디 머피 역은 이인성.
- 스크림 (1996) : 케빈 윌리암슨 각본의 메가 히트 슬래셔 호러영화. 주말의 명화로 많이 삭제하고 더빙 방영했다.
- 스크림 2 (1997)
- 뮤직 오브 하트 (1999) - 국내 개봉[2]
- 스크림 3 (2000)
- 커스드 (2005)
- 나이트 플라이트 (2005)
- 사랑해, 파리 (2006)
- 마이 소울 투 테이크 (2010)
- 스크림 4G (2011)
4.2. TV
- 우리집의 이방인 (Stranger in Our House, 1978): NBC에서 방영한 그의 첫 TV 영화이다. 엑소시스트로 알려진 린다 블레어가 엑소시스트 1,2 다음으로 3번째 나온 호러 스릴러. 대우비디오로 80년대에 '여름의 공포'란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온 바 있는데 원작소설 및 유럽 개봉 제목인 Summer of Fear를 그대로 번역한 제목이다.
- Invitation to Hell (1984): ABC 방송국 영화로 1987년에 대우비디오로 '지옥의 초대장'이란 제목으로 출시.
- Chiller (1985) : 1986년 5월 28일 토요명화 더빙 방영 제목은 냉동인간.
- 환상특급 (1985) : 어떤 정적 (A Little Peace and Quiet),도박사의 선택 (Dealer's Choice), 그대 순례자의 영혼 (Her Pilgrim Soul) 연출.
- Casebusters (1986) : 디즈니랜드 장편 영화 시리즈로 개와 아이들 이야기를 다룬 작품. 80년대 KBS1에서 더빙 방영했다.
- 나이트 이글 Night Visions (1990) : 93년에 SKC 비디오에서 이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온 바 있다. 연쇄살인마를 찾고자 애송이 여형사와 베테랑 선배형사가 파트너를 이뤄 추격하는 줄거리.
5. 기타
- 커리어와는 달리, 본인은 딱히 호러 전문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호러 장르에 대한 사명감이 충만하다든가 한 것도 아닌 듯. 음산하면서 뭔가 확 튀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호러영화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계속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그냥 계속하게 되었다고. 다른 호러영화도 잘 안 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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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몰랐지만 내가 뭔가 잘하는 게 있으니까 내 작품이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것 아니겠나. 이 사실에 만족하고 호러영화 감독이란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더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호러영화는 이미 내 이름의 일부가 되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
십자말풀이에 내 이름이 다섯번 나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많은가. 물론 나도 트뤼포 같은 명감독이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어쩌나. 휠씬 못한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만족하기로 했다." (웃음) - 2005년 인터뷰 중에서 -
출처
뉴욕 타임즈 십자말 풀이를 좋아하는구나!
- "왼편 마지막 집" 이전에 포르노 영화 제작 일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포르노 산업을 다룬 2005년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딥 스로트"에 출연하여 가명으로 많은 포르노를 만들었음을 증언한 바 있다. 사실 이 바닥에서는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닌데, 호러물 감독들에서 포르노 감독을 겸업하던 이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악명높은 트롤 2 각본과 제작자이자 여러 호러들을 감독하던 조 다마토는 포르노 홀로코스트, 포르노 타잔, 나치 포르노 시리즈를 여럿 제작, 또는 감독했던 포르노 전문 감독이었다.
- 기획했다가 끝내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도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컷 앤 런(1983). 밀림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고어 모험물인데 바로 웨스 크레이븐이 기획하던 마림바라는 영화였다가 흐지부지된 것을 필링 러브, 카니발 홀로코스트로 알려진 루게로 데오다토가 감독하여 만들어졌다.
- 아들 조너선 크레이븐은 1972년 "왼편 마지막 집"에서 아역으로 출연한 비범한 인물로, 1989년 "영혼의 목걸이"부터 편집, 각본, 공동제작 등으로 아버지의 일을 도왔었다.
- 필모그래피 작품들에서도 자주 언급되는데, 그가 감독한 꽤 많은 영화들이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진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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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를 무서워했는데, 1981년작 "악령의 리사"에서
샤론 스톤의 가슴 위로 거미가 기어다니는 씬을 찍을 때 스톤이 무명 배우임에도 "니가 한번 해봐"라며 개겼다고 한다. 스톤이 대사라는 게 있었던 첫 영화였다. 그 때 웨스 크레이븐이 거미를 팔에 얹어 본 이후로는 거미공포증이 없어졌다고.
출처
보통 배우 심정을 이해하고 거미씬을 안찍는 결말 아닌가
- 영화 배우로도 활동하기는 했는데 거의 카메오이다. 자신이 감독한 영화에서도 카메오로 여럿 나왔다.
- 그와 함께 일한 제작자들과 배우들에 따르면 굉장히 신사적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