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ecd21> 袁綝
원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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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도정후(都亭侯) | |||
최종직위 |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 |||
성 | 원(閻) | |||
명 | 침(綝)/림(淋) | |||
생몰연도 | ?년 ~?년 | |||
고향 |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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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 (유선) |
전장군(前將軍)→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 }}}}}}}}} |
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로 《 화양국지》에 따르면 예주 영천군 출신이다.《 화양국지》에는 이름이 원림(袁淋)으로 기록되어있다.
2. 정사 삼국지
제갈량의 4차 북벌 중에 벌어진 노성 전투에서 제갈량이 사마의를 이기고 후방을 기습한 장합을 이겼지만 수송 임무를 맡던 이엄이 장마비로 인해 식량 운반을 지속하지 못하자 사람을 보내 제갈량에게 후퇴하라고 했는데, 이엄은 보급품이 충분하지만 승상(제갈량)이 퇴각했다고 거짓 보고를 올려 제갈량을 모함했다가 제갈량이 편지를 공개해 모든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제갈량이 상서대에 공문을 올리게 되었다.제갈량이 상서대에 올린 공문에서 전장군 도정후로 언급되어 이엄을 해임하고 그의 관록, 절전, 인수, 부책 등을 없애 작위, 봉지 등을 박탈하는 것에 서명한 사람 중 1명이며 촉한장상대신표에 따르면 원침은 이엄의 후임으로 230년부터 233년까지 3년간 전장군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 원침의 후임으로는 등지가 전장군이 되었으며, 제갈량의 공문에 언급된 인물 중에서는 유파[1], 허윤, 정함, 상관옹, 염안, 두의, 성발, 번기 등과 함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전장군은 창업공신 관우가 역임하고 고명대신 이엄이 이어받았으며 거기에 전장군은 원래부터 황제가 이끄는 중앙군의 선봉이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있는 직책에 제갈량이 북벌하던 시기니 엄연히 실무직이었다. 게다가 제갈량의 사후 원침은 정서대장군으로 승진하는데 이 자리는 위연이 맡던 자리이며 후임이 장익이다. 즉 실제로 북벌의 핵심인사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문제는 기록이 없다. 군공은 커녕 뭐하던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진도, 구부 등과 함께 촉서의 기록 부족을 뼈져리게 느끼게 하는 인물.
3. 삼국지연의
제갈량이 유선에게 위나라로 출병하는 북벌을 허락받아 유선의 조서를 받고 승상부로 돌아와 장수들을 불러 명령했는데, 그 명단에서 전장군 도정후로 언급되었다.4. 미디어 믹스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출사표 이후로 북벌 출전 명단에 이름만 언급된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67, 무용 58, 지모 49, 정무 48, 인사 52, 외교 45의 능력치로 184년생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