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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8:28:49

우르슬링겐의 베르톨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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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thold I von Urslingen
생몰년도 미상 ~ 1251년
출생지 우르슬링겐
사망지 우르슬링겐
재위 기간 1222년 - 1223년(스폴레토 공작 요구자)

1. 개요2. 행적

1. 개요

스폴레토 공국 공작위 요구자.

2. 행적

스폴레토 전임 공작이었던 우르슬링겐의 콘라트 1세의 아들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시칠리아 왕국 국왕 프리드리히 2세를 섬겼다. 그는 교황청에 스폴레토 공국을 자기 가문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1222년 볼펜뷔텔의 군젤린과 함께 스폴레토로 쳐들어가서 폴리뇨, 구비오, 노케라, 트레비 시를 공략하고 주민들에게 프리드리히 2세를 받들고 자신을 스폴레토 공작으로 섬기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당시 교황과의 마찰을 가능한 한 완화하고 싶었던 그는 베르톨트에게 서신을 보내 자신은 그가 스폴레토 공작이 될 수 있도록 교황과 중재할 의사가 없다며 당장 시칠리아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그는 1223년 초 더 이상의 공세를 벌이지 않고 시칠리아로 향했다.

1226년 토스카나 후작령의 대리인으로 선임되었다. 토스카나 연맹이 제국에 불복종하던 터라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국에 충성하는 몇몇 도시들에서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1226년 7월, 교황 호노리오 3세는 베르톨트가 로마로 가는 여행자들을 괴롭히고 서신을 빼앗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무시했다. 1227년 6월 시에나에서 황실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검찰관을 보냈으며, 1227년 아스콜리 피케노의 치안판사에 선임되었다.

1228년 여름, 베르톨트는 형제이며 제6차 십자군 원정에 착수한 프리드리히 2세를 대신해 시칠리아 왕국의 섭정을 맡고 있던 우르슬링겐의 레이날트 1세로부터 교황령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고 즉시 군대를 이끌고 가서 스폴레토 공국 일부 영역을 공략하고 안코나 공화국에 속한 노케라에 주둔한 채 레이날트 1세가 합류하기를 기다렸다. 이에 분노한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그 해 11월 프리드리히 2세, 레이날트 1세, 베르톨트를 파문하고 구엘프파를 독려해 전쟁을 벌였다. 베르톨트는 조반니 콜론나 추기경이 이끄는 교황군에 패한 뒤 시칠리아 왕국으로 도주했다.

1230년 7월 시칠리아로 귀환한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과 화해한 뒤 자신이 없는 동안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멋대로 전쟁을 벌인 레이날트 1세를 체포했다. 이에 베르톨트는 프리드리히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1231년 5월 안트로도코에 자리를 잡은 뒤 토마스 1세 다퀴노가 이끄는 제국군의 연이은 공세를 물리쳤다. 1233년 4월, 프리드리히 2세는 그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레이날트를 안트로도코로 압송해 그 앞에 보이며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이 자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 이에 베르톨트는 레이날트를 풀어주면 안트로도코를 넘겨주겠다고 약속했고, 프리드리히 2세는 그 말에 따랐다.

그는 레이날트가 석방되자 안트로도코를 프리드리히 2세에게 넘긴 뒤 우르슬링겐으로 귀환하고, 가족 영지에서 여생을 보내다 1251년 사망했다. 두 아들 우르슬링겐의 베르톨트 2세 우르슬링겐의 레이날트 2세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폴레토 공작을 자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