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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신은 나라를 멸망시킬 수는 있어도, 나라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인간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어리석은 인간입니다.[1]
킹덤의 등장인물. 진나라의 무장이자 대장군을 배출한 왕 씨 집안 본가의 당주로, 주인공 이신의 라이벌 중 하나인 왕분을 아들로 두고 있다. 같은 왕 씨 집안인 왕기는 분가 출신. 성우는 호리우치 켄유.[2]
말수가 매우 적고 내심조차 거의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속을 알기가 힘든 가면남. 늘 투구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맨 얼굴을 알 수가 없으며, 갑옷 또한 곳곳에 귀신의 일그러진 얼굴이 박혀 있어서 상당한 위압감을 준다. 왕분의 과거 회상에도 가면에 갑옷을 착용한 모습이었고, 단 한 번 투구를 벗었을 때[3]도 뒷모습만 보여서 장발이라는 것을 빼면 가면 속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다.
2. 성격
나는 틀림없이 이기는 전장 외에는 흥미가 없다.[4]
누가 죽든 그 사람에게는 장기판의 말을 하나 잃은 것에 불과해... 섣부른 감상에 전혀 빠지지 않는다는 강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속에서 냉정히 책략을 거듭 짜내어 이기기 위해 전략을 만들어 간다. 그것이 왕전이다. 그리 쉽사리 무너지지 않아![5]
침착하고 냉정하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왕기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어지간하면 눈의 초점을 잃는 것 외에는 신체적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다. 왕전의 눈길은 냉정하다 못해 불길하기까지 하다고 묘사되는데, 산양 함락전 도중 벽의 감상에 의하면 아군도 아군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고 한다. 또한 평가를 내릴 때는 객관적인 모습을 보인다. 업이 함락되기 직전에는 이목이 자신보다 날카로웠다고, 신, 왕분, 몽념이 각성한 덕에 진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인정한다.
처세술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말수가 굉장히 적으며, 작전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업 공방전 도중에는 아광병들이 왕분을 지휘관으로 삼게 허가해 달라고 흐느끼며 빌고 빌어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고, 업 공략의 핵심인 병량 소각은 결사대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최후의 비책인 제나라 군량 수송 작전은 좌승상인 창문군까지 물리고 창평군에게만 부탁했다. 때문에 머리가 특출나서 왕전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거나 대놓고 따지는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휘하의 병력은 자신의 지휘를 묵묵히 따라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철두철미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지녔다. 산양 함락전 도중에 염파는 진군에게 유리한 지형과 자신의 목으로 왕전을 유인하려고 했지만, 왕전은 전황이 불투명하게 변한 것을 보고 미련 없이 철수하며 틀림없이 이기는 싸움 외에는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몽오 밑에서 함께 부관으로 복무한 환기 역시 왕전은 질 싸움에는 절대로 임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업 공방전 도중 이목과 대치할 때는 자신이 지휘하는 중앙군을 전혀 움직이지 않다가, 열이틀째 날에 좌익이 조의 우익을 붙잡고 우익이 조의 좌익을 밀어붙이는 유리한 상황이 되어서야 중앙군을 출진시켰다.
이러한 성격의 일환인지 염파와 이목으로부터 자신을 제일 우선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꺼리며, 다른 장군처럼 일기토에 나서기는커녕 선봉에 나서는 일도 없으며[6] 무기조차 잘 들지 않는다.[7] 또한 정보 수집에 대단히 공을 많이 들인다. 산양 공방전에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산양에 도착해 지형을 조사한 후 강연을 기습할 지점을 정하고 산성을 쌓기까지 했고, 합종군 방어전 때는 미리 지리를 조사해서 산민족보다 산맥을 잘 읽는다는 오르도에게 완벽한 기습을 날리기도 했다. 업 공방전 때는 업 성주가 백성을 끔찍히 아끼는 대인배이기에 차마 난민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며, 도양왕은 막강한 한단군을 한단 방위를 위해 쓰고 업의 위기를 방조할 인물이라는 것까지 파악했다. 또한 왕기처럼 독자적인 첩보망을 지닌 덕에 전장에서도 중요한 소식을 입수한다. 첩보망에 꽤나 신경을 썼는지, 업 공방전 초기에 왕전이 연나라 침공 소식을 들은 타이밍이 이목이 동일한 정보를 들은 타이밍과 똑같을 정도다.[8]
철두철미한 성향과는 달리, 필요할 때는 대담한 면도 보인다. 합종군 방어전 때는 오르도에게 공격당할 위험을 안고서도 함곡관으로 달려가 진을 구원했다. 업 공략전에서는 열미의 비밀이 드러나자 업을 직접 살펴본 후,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에서 즉석으로 군략을 짜 병량 공세로 판도를 바꾼다.[9] 손꼽히는 두뇌파인 창평군마저 업 포위전 소식을 듣자마자 왕전이 그 정도로 거대한 도박에 나서는 성격이었냐며 의문을 품었을 정도. 이목과 대결할 때는 좌익에 낙화대만을 배정하여 이목을 도발하는 강수를 뒀다.
여불위, 갈승상과 함께 야심이 100을 찍은 셋 뿐인 등장인물이다.[10] 저옹 함락전 도중에 영황은 대장군에 다다른 사람은 보통 커다란 야심이나 욕망을 가졌다고 했는데, 다른 모든 대장군과 장군은 물론 중화 통일이라는 목표를 품은 진시황마저 제치고 검은 야망이 100이라고 언급될 정도면 보통 야심이 아닌 듯하다. 자신의 나라 혹은 영토를 꾸준히 언급하는 것을 보면, 진시황의 지휘 하에서 중화를 통일한 공으로 영토를 하사받아 왕이 되어 자신만의 강국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무뚝뚝한 성격과 이신과 알게 모르게 상성이 좋지 않은 점이 아들인 왕분과 같다. 전략가라면 떠올릴 냉철한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감정적인 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략을 위해 난민 무리를 만들던 중 이신이 소리를 지르며 왕전의 전략에 딴지를 걸자,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이신에게 다가갔다. 이후 이신이 물려받은 왕기의 창을 보고 침묵을 지키다가, 진정한 듯이 그제야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이후에는 왕기를 의식한 듯이 이신의 돌발적인 언행을 받아 주며,[12] 심지어는 장군이 되고 참석하는 첫 작전 회의에 늦었어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기까지 했다. 이를 보면 저돌적이고 직선적인 사람과는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이는데, 왕분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국 부전자전.
2.1. 왕분과의 관계
왕분과는 사이가 영 좋지 않다. 왕전은 왕분이 어렸을 적부터 방치하다시피 할 정도로 왕분과 거리를 두었다. 작중에 왕전이 왕분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번양을 왕분의 보육 담당으로 붙인 것, 어린 시절 왕분이 혼자서 창 가지고 삽질을 하자 기초를 가르쳐주고(396화)[13] 정식 사부를 모실 수 있게 조치한 것, 그리고 관상을 옥봉대로 보낸 것 단 세 번 뿐이다. 왕분은 왕전에게 인정을 받고 왕씨 종가를 이을 재목이 되기 위해 진 제일의 천하대장군을 노리고 고군분투한다. 산양전에서도 왕분이 처음 천인장이 되었을 당시 왕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이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보면, 왕분은 부친을 꽤나 의식한다.주해 평원 열흘째 밤에 번양의 입을 통하여 왕전과 왕분의 개인사가 밝혀진다. 왕전의 처인 관주경이 왕분을 임신한 후에 왕분은 사실 주경이 왕전과의 혼인 직전에 다른 사내와 정을 통하여 잉태한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당연히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질문 공세가 쏟아졌지만, 주경은 관련된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 왕분을 출산하자마자 죽었다. 왕전이 진실을 아는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진실은 저 너머에. 번양의 말마따나 왕분이 정말로 타인의 자식이라면, 왕전에게 있어서 왕분은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타인이 되는 셈이다.
왕전과 왕분의 냉랭한 사이는 타군은 물론이고[14] 자타공인 바보인 이신마저 아는 널리 알려진 화제다. 무리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목표를 이룩하려는 왕분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본 몽념[15]은 왕전이 자신을 측근으로 삼겠다고 제안하자, 자신보다는 왕분에게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냐며 대놓고 면전에서 비아냥거릴 정도다.
주해 평원 마지막 날에 왕분은 몸이 안 좋아도 왕전을 구하고자 무리해서 조나라 군의 포위를 뚫었는데, 정작 왕전은 왕분을 보고 눈의 초점까지 잃으며 왕분을 보고 어리석다고 호되게 질책했다(616화). 언뜻 보면 몽념을 좌익의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이신을 히든 카드로 활용하던 것과는 달리 왕분을 가장 낮게 평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왕전이 있던 곳은 몽념이 나타나기 전에는 왕전 말마따나 사지였다. 까딱하면 왕전, 왕분 부자가 나란히 전사할 수도 있는 사지였기에, 왕전이 화를 낼 만했던 것이다.
주해 평원의 진 우익은 왕분이 활약하기 좋은 판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익에는 대외적으로 왕전이 제일 신뢰한다는 평을 받는 아광이 왕분과 함께 배치되었는데, 아광은 왕분의 책략에 순간적으로 최적의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아광은 스스로 좋은 책략을 내지는 못해도 좋은 책략을 보면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까지 호응하는 유능한 장군이다. 첫날에는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는 왕분을 엄하게 질책하고 이틀째 날에는 왕분의 자질을 확인하고서야 책략 회의에 왕분을 부른 것을 보면, 상관의 아들이자 기대주라고 마냥 오냐오냐할 유형도 아니다. 우익은 옥봉대가 아광군의 예속되는 판세가 아니라, 왕분이 자신의 가치만 입증한다면 위나라 최고의 전략가 오봉명을 격파한 자신의 지략과 아광의 막강한 무력, 병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도 있는 판세였던 것이다. 실제로 아흐레째 날 우익의 전략 회의에서는 아광군, 비신대가 왕분의 지략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신, 왕분, 몽념 셋 중 왕분을 가장 낮게 평가하는 점 자체는 사실일 것으로 보인다. 주해 평원전 시작부터 몽념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신 또한 히든 카드로 이용하기 위해 최후미에서 대기시켰다가 기혜의 목을 따라고 보낸 것과는 달리 왕분은 아광군 뒤에서 대기타고 있다가 아광이 신호를 보내면 돌격하는 역할을 맡겨놨다. 왕전이 처음에 그린 그림으로 볼 때 몽념과 이신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왕분은 별 다른 역할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후로도 이신의 각성은 예측했지만 왕분의 각성은 반쯤 도박이었다거나 왕분이 낸 책략(각개격파를 위해 가장 약한 악영부터 노린다.)을 조아룡부터 노려야 했다고 냉정히 평가한 점을 보면 왕전의 평가에서 왕분은 다른 둘 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583화).
왕분에게는 안타깝게도 주해 평원전은 왕전의 이러한 평가를 보다 확고히하게 될 수 밖에 없는데, 마광이 죽어 붕괴 직전에 놓인 마광군을 부활시키고 주해 평원전이 끝날 때 까지 약세인 진 좌익을 교착상태로 유지시켰으며, 휘하 부대와 함께 위기에 놓인 왕전과 본진을 구하고 마남자에게 중상을 입힌 몽념, 주해평원 최강인 요운군과 대등한 전투를 벌이고, 악영의 목을 쳤으며, 부대를 각성시켜 전세를 뒤집고, 왕분이 쓰러져 다시 열세에 놓이게 된 우익을 이끌어 조아룡을 침으로서 다시 역전해 완전한 우위 상태로 돌려놓고, 그 상태로 조 좌익을 뚫어 협공을 먹임으로서 이목 본진에 대타격을 입혔으며, 일기토에서 삼대천 방난을 쓰러트린 이신 등 어마어마한 활약을 한 둘과는 달리 왕분은 조아룡의 책략을 역이용해 마남자군에 대타격을 입히고, 부대를 각성시켜 전세를 뒤집었으며, 한번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요운을 일기토에서 쓰러트리고, 소수로 왕전을 구하러 가 부저의 공격을 한번 막은 것 밖에 활약이 없다. 심지어 이 왕분의 활약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마남자군에 대타격을 입힌것은 주해 평원전 막바지즈음 되니 대부분의 마남자군이 회복했고, 부대를 각성시킨지 하루만에 요운에게 쓰러졌으며, 요운을 일기토로 쓰러트린 것은 방난을 쓰러트린 이신에게 가려지고, 왕전을 구하러 간 것은 정말로 왕전을 구한 몽념에게 가려 질 수 밖에 없다.
단, 능력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왕분은 대외적으로 왕전의 아들로 대접받고 있으며, 왕전의 꿈(자신의 나라를 세운다)까지도 잘 알고 있는 최측근인 왕전의 부장들이 겉으로든, 속마음인 독백으로든 왕분을 '도련님'이라 칭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생판 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왕분을 왕전의 군에 넣지 않은 것 또한 왕분을 왕전 자신의 그늘로 가리지 않고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게 하려는 안배일 수도 있다.[16] 이를 보면 왕전은 왕분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속으로는 매우 아끼지만, 사별한 아내 관주경이나 다른 모종의 이유로 일부러 왕분에게서 거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3. 능력
공식능력치 | ||||
시기 | 무력 | 지휘력 | 지력 | 검은 야망 |
20권 | ? | ? | ? | 은근히 100 |
가이드북1 | 93 | 93 | 97 | 100 |
가이드북2 | 93 | 94 | 97 | 100 |
가이드북3 | 93 | 95 | 99 | 100 |
강합니다. 산을 이용하는 솜씨가 평지의 인간 같지 않더군요. 천하의 세키족이 눈앞에서 괴멸됐습니다. - 유키이
하라 야스히사, <킹덤> 28권
하라 야스히사, <킹덤> 28권
창평군 : 육대장군 호상은 바로 내 군략의 스승이다. 그 호상이 예전에 내게 말한 적이 잇다. 왕전은... 그 '군략의 재능'만으로도 육대장군 자리에 낄 수 있는 일재라고.
벽 : 뭣, 왕전 장군이 그 정도로... 잠깐만, 육대장군 호상이라면 꽤 오래 전의 장군이잖아. 그렇게 예전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면, 지금의 왕전 장군은...
하라 야스히사, <킹덤> 46권, 제499화 손에 넣은 마음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도는 바람에 진나라 제일의 위험 분자로 낙인찍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오와 몽무라는 걸출한 대장군 집안의 자제인 몽념마저 왕전의 능력은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져 기상천외한 전략 전술로 적을 농락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환기가 군말없이 믿고 따를 정도이다. 진나라 조정도 당연히 왕위에 대한 욕심에 대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왕전의 능력을 버려둘 수 없기에 계속 중용했고 결국에는 新 육대장군의 일원으로 임명하여 진나라의 국운과 천하통일의 대업까지 맡길 정도로 특출나다.벽 : 뭣, 왕전 장군이 그 정도로... 잠깐만, 육대장군 호상이라면 꽤 오래 전의 장군이잖아. 그렇게 예전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면, 지금의 왕전 장군은...
하라 야스히사, <킹덤> 46권, 제499화 손에 넣은 마음
진의 대장군급 장수 중에서도 최상급에 드는 두뇌를 지닌 장군이다. 공식능력치에서도 지력이 99이며 지력으로만 따지면 이목(100)외에는 적수가 없다. 육대장군과 동시대를 산 염파는 왕전의 행동에서 육대장군의 필두였던 두뇌파 백기를 떠올렸고, 군략의 깊이와 특이함이라면 백기급이라고 고평가 했다. 육대장군 호양은 왕전을 두고 그 재능만으로 육장의 한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는 인재라고 평했다. 실제로 왕전은 와린, 이목을 비롯한 쟁쟁한 지장들의 전략을 간파하고 맞받아치며 허점을 찔러 승리를 거두는 무서운 솜씨를 보인다. 합종군 전투에서 오르도의 공격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역으로 거의 농락에 가까운 수준으로 패퇴시켰다. 그리고 이 승리들을 바탕으로 심리전에서 완벽히 우위를 점하여 상대방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든 다음, 자신은 병력을 돌려서 위기에 빠졌던 함곡관을 구원하기도 한다. 업 공방전에서는 기후의 변화를 읽고 함성만으로 전황을 읽는 수완을 보인다.
전술에도 일가견이 있다. 업 공방전 도중에는 왕전의 전술 일부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제1무장 아광이 방진을 펼치자, 마남자, 요운, 조아룡이 지휘하는 삼군의 맹공에도 무리없이 막아내고, 이목마저 며칠 동안 관찰해야 파훼법을 알아낼 정도로 강력한 수비를 선보였다. 주해 평야 이틀 째에 마남자의 군을 분쇄시킨 왕분의 기책을 본 관상은 왕전의 전술을 보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업 공방전 마지막 날에 처음으로 이목과 정면으로 대결했을 때는 잠시 관찰한 것만으로 이목의 핵심 전술을 파악하여 받아치다가, 현장에서 명령을 내려 엉망으로 뒤엉킨 이목군의 목전에서 재정비하는 묘기로 불리한 전황을 호각으로 뒤집기도 했다.
포로를 쓸데없이 학살하지 않고 자신의 군세에 편입시켜 꾸준히 세를 불리고, 인재를 감별하는 뛰어난 눈썰미로 재능 있는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쟁의 흐름을 조종한다. 또한 탐이 나는 거물을 발견하면 지위나 출신에 관계 없이 회유하려고 한다. 산양 함락전 도중에는 염파의 사천왕 중 하나인 강연을 회유하려고 하다 실패하자 부하들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했고, 합종군 방어전 도중에는 연군 총대장 오르도를 잡으려고 했다. 업 공방전 첫날에는 자신보다 직책이 높은 대장군 몽무의 아들 몽념을 자신의 측근으로 영입하려고 했으며, 마지막 날에는 조 삼대천의 이목조차 회유하려고까지 했다.
꾸준한 인재 등용의 덕을 봤는지, 왕전군은 정예군의 면모가 강하다. 기습을 걸고 수적 우위까지 있기는 했지만, 왕전의 직속 부대는 초나라 전체에서 1, 2위를 다투는 강군이라는 와린의 직속부대를 순식간에 학살했다. 왕전의 1군장 아광의 군은 아군조차 짓밟으며 돌격할 정도의 비정한 정신으로 무장해 정면에서 한 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고 전쟁을 보는 눈이 높아져 있다는 언급이 있었으며, 아광이 부상을 입어 리타이어해도 이례적으로 군이 와해되지 않고 큰 문제없이 분전할 정도로 단련되었다. 업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군략을 새로 짜는 왕전을 위해 아광과 병사들은 머리수가 두 배쯤 많은 적을 상대로 사투를 벌였다. 아광군에 복무한 경험이 있는 옥봉대의 인원들은 악몽이었다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치를 떨 정도. 2군장 마광군은 맞붙은 마정이 연병을 대체 어떻게 했냐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하고, 마광군 역시 병사 개개인의 힘을 극도로 단련했다며 자신들이야말로 왕전군 내에서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3군장 전리미의 군은 현장에서 스스로 전술을 수정하며 싸울 정도로 현명하게 싸우고, 싸움에 특화된 4군장 창앙의 군은 돌입하자마자 부저에게서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에 투입한 결사대의 경우에는 왕전에게 승리를 바치자며 각오를 다지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후에는 무기에 난도질당하고 꿰뚫렸으면서도 밝은 미소를 띈 채 사망했을 정도로 왕전에게 무서운 충성심을 보였다.
인재 등용에 열을 올리는 만큼,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과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용인술 또한 뛰어나다. 업 공략전 당시 요양에 양단화, 업에 환기를 배치한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고,[17] 주해 평원전에서 몽념, 왕분, 이신의 배치와 활용은 왕전 본인의 말처럼 주해평원전에서 승리한 이유였으며, 왕전 본인은 몽념, 왕분, 이신이란 장기말이 뛰어났다고 말했지만, 3인방이 그렇게 활약할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은 분명 왕전의 공이다.
다른 장군에 비해 요새를 만들고, 방어하며, 공격하는 데 능하다는 묘사가 자주 나온다. 영토를 빼앗아 타국을 멸망시키려는 진시황의 통일 전쟁의 메타[18]에는 최적화 된 장군인 셈이다. 산양 공략전 도중에 몽오와 환기가 성을 각각 셋, 다섯 군데 함락시키는 동안 왕전은 여덟 성을 함락시켰고, 합종군 방어전 후에는 철옹성이라고 알려진 위나라의 경도를 손쉽게 함락시켰다. 업 공방전 도중에는 조의 국문 열미를 잠시 눈으로 가늠한 후 어떻게 해야 함락시킬 수 있을지 맞추었다. 특히 축성에 뛰어나서 왕전이 세운 산성을 본 염파와 오르도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는데, 산양 공략전 도중 염파가 인증했다시피 온갖 괴물이 날뛰는 작중에서도 축성에 뛰어난 장수는 희귀하다. 왕전이 산양에 세운 산성을 본 지력 100의 이목도 오르도는 당분간 왕전의 방어를 뚫지 못한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작중에서 중화 최고의 도시 중 하나라는 업은 왕전의 입을 통해 그 견고함을 입증받았다.
지형을 활용하는 데도 뛰어나다. 산양에 먼저 들어가 지형을 자세히 살핀 후 가장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고 산성까지 구축했다. 합종군 방어전 때는 요새를 연군을 막거나 기만하는 데 사용하며, 전장이 산맥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오르도를 기만했다. 오르도의 측근 유키이는 왕전이 산을 쓰는 솜씨는 평지인의 그것 같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훌륭하게 만들어낸 산성을 뺏기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이미 계략의 일부였으니 만약 작정하고 방어했다면 오르도 또한 뚫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
종합적으로 작중에서 역대 최강의 삼대천 이목, 육대장군 필두 백기에 버금가는 명장으로 취급받으며, 실제로 이목과 맞붙은 업 공략전에서 조나라 내부라는 배경, 한정된 군량, 뒤떨어지는 군사 수 라는 디메리트를 가지고서도 결국 이목에게 승리하여 업을 포함한 조나라 동남부 일대를 모두 빼앗는데 성공한다. 업 공략전에서 보인 모습을 보면, 이목과 비교시 전술은 이목이 우위, 전략은 왕전이 우위, 용인술은 왕전의 우위로, 왕전이 승리하기 위해 짜놓은 전략에서, 이목이 날카로운 전술로 그 전략을 무너뜨릴뻔 하지만, 왕전이 배치한 인재들로 인해 그 전술이 무위로 돌아가고 결국 왕전의 전략이 완성되어 승리한다.
이러한 군략의 재능, 강력한 직속군과 더불어 불리한 판세는 꺼리는 성향이 왕전을 백기만큼 상대하기 까다로운 난적으로 만든다. 다만 뛰어난 능력과는 별개로, 영황과 함께 진나라의 명장을 논하던 오봉명에게 약점과 결함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19] 이 약점과 결함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염파, 강연, 이목은 입을 모아 왕전에게는 장수로서 치명적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고 평했다.
같은 육대장군급 무장인 환기보다 지력이 2 높다. 또한, 능력치 총합으로 따지면 7위. 왕전보다 총합이 높은 건 양단화, 육대장군인 왕기와 규, 삼대천인 이목과 염파, 그리고 군신 악의다. 규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의 경험치가 S 이상이고 왕전이 A란 점을 생각하면, 저기서 더 강해질 가능성이 남아있단 말이다.[20]
두뇌파라는 면모만 부각되어 놓치기 쉬운데, 가이드북 2를 기준으로 무력이 93이다. 이는 소싯적에는 몽무보다 강했고 현재도 과장하면 몽무급이라는 창평군보다 3 높고, 보정이 없는 신과 바지오, 그리고 이목의 무력보다도 2 높으며, 위나라 제일의 창술사라는 자백을 꺾은 왕분과 동일한 수치다. 육대장군급이라는 평에 걸맞게 일신을 지킬 정도의 수준급 무예도 갖추었다는 말. 창술을 연마하겠다며 삽질하던 어린 왕분에게 기초 자세를 즉석에서 가르쳐 준 것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4. 작중 행적
사실 왕전이 처음 언급된 것은 승상 여불위를 호령 하에 몽오 대장군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한나라 정벌을 했을 때이다. 이때 왕전의 얼굴과 이름이 나오지는 않고 몽오의 부장들이라고만 언급되는데 몽오와 부장들이 한나라 성들을 신나게 빼앗으며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진나라 신하들이 기뻐하는 장면으로 몽오와 부장들이 실력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몽오가 진나라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대규모 원정을 나간 것을 노린 조 도양왕이 방난과 이목을 대장군으로 임명하여 진나라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여 진나라 조정에서는 한나라 원정 중인 몽오의 군대를 회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기각되어 몽오, 왕전, 환기는 한나라 정벌을 그대로 계속하고 대신 육대장군 왕기, 여씨사주 몽무가 조나라 대군을 상대했다.4.1. 산양 함락전
몽오의 부장으로서 처음 등장한다. 몽오가 성 세 군데를, 다른 부장 환기가 성 다섯 군데를 함락할 때 성 여덞 군데를 함락하면서 벽 천인장을 놀라게 한다. 원래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 소왕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나 인정받지 못하고 음지에서만 활약했다고 하는데, 몽념의 설명에 의하면 왕전은 왕이 되고 싶어한다는 소문 때문이다.전투 전에 유리한 거점을 차지하여 염파도 감탄하였고, 벽을 오천인장으로 임명하여 미끼로 쓴다. 강연을 궁지로 몰아넣고 회유하려고 하지만, 염파가 참전하여 전황이 불투명하게 변하자[21] 반드시 이기지 못할 싸움에는 흥미가 없다며 미련없이 퇴각한다. 이후 강연과 염파가 추격하자 사전에 구축해 놓은 산성에 들어가 방어를 굳힌다. 염파는 왕전의 진영을 보고 육장 백기에 필적하는 재능을 가졌지만,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하며 왕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알아채고 음지만 전전한 이유를 알았다며 크게 실망한다.
하지만 왕전이 자신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산양전 최후에 드러난다. 왕전이 요새에 틀어박히고 강연군의 발을 묶음으로서 위군을 파편화하였고, 온전히 보존된 왕전의 군세도 전황을 지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몽오가 염파를 상대로 한 마지막 전투에서 최후의 승자로 등극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셈이다. 학살극을 벌이고 위군의 본진을 함락시킨 환기, 팔까지 잃으며 모루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몽오와는 달리,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기울게 한 책략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라고 서술한 손자병법을 연상케 한다.
뛰어난 전략을 보이고 진군의 손실도 최소화했지만, 임팩트가 적어서 그런지[22] 산양 함락 후에 열린 논공행상에서는 동기였던 환기도 모자라 이신에게까지 밀렸다.
4.2. 합종군 방어전
합종군에 맞설 일곱 지휘관 중 하나로 뽑혀 함양에서 전략을 들은 후, 오르도가 지휘하는 연군에 맞서 함곡관 우측 산악지대를 방어한다. 견고한 산성으로 연군에 맞섰지만, 산성 공략이 주특기인 연군 산악 민족의 기동력에 밀리고 만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미련없이 군대를 철수시키고 자취를 감춰서, 진나라의 수뇌부를 식겁하게 만들었다.연군은 반색하며 함곡관으로 넘어가는 암벽을 타기 시작했지만, 사실 왕전은 연군을 기습하기 위해 개전 전부터 암벽 근처에 내내 군을 매복시켜둔 상태였다. 왕전은 기습으로 오르도의 정예 산악 부족을 전멸시키는 한편, 부장 맹룡을 시켜 오르도를 잡으려고 했지만 오르도가 단칼에 맹룡의 목을 날리고 도주하는 바람에 오르도를 잡는 데는 실패한다. 이어서 군을 둘로 나누어 한쪽 군으로는 연군을 기만하여 발을 묶고,[23] 나머지 1만의 정예병을 함곡관에 투입하여 함곡관을 함락 직전에 와린의 기습으로부터 구원한다.
창문군은 왕전을 진나라의 방패로 비유하며, 왕전은 자신의 임무를 기대 이상으로 수행하여 진나라를 구원했다고 평했다.
논공 행상에서는 몽무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장군과 동일한 상을 받았다.
4.3. 저옹 함락전
합종군이 격퇴된 직후에 위나라의 철옹성 경도를 함락시킨 후, 항복한 장졸들에게 죽음과 복종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여 모두 자신의 군세에 흡수시킨다.[24] 함께 몽오의 부장으로 복무했던 환기 또한 성을 공략하며 포로를 화형시킴으로써 나름대로 몽오의 죽음을 애도했지만, 왕전이 몽오를 기렸다는 묘사는 없었다.저옹을 탈취하기 위해 위군과 맞서는 등의 군대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리라고 예상했지만, 예상이 빗나갔으며 왕분이 등군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듣고 침묵을 지킨다(380화).[25]
자백과 싸우는 왕분을 지켜보던 반양의 회상에서 왕분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드러난다. 왕분의 어린 시절부터 왕전이 왕분과 말을 섞는 일 자체가 굉장히 드물었다고 한다. 반양이 조는 와중에 왕분이 창술을 독학하며 삽질하는 광경을 보고, 몸소 왕분에게 창술의 기본 자세를 알려 준 후에 반양에게 창술을 가르치려면 제대로 된 사부를 붙이라고 당부한 후 사라졌다(396화).
4.4. 업 함락전
양단화와 환기라는 쟁쟁한 두 장군이 포함된 업 공략전의 총대장으로 임명된다. 인간성이나 속내가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왕전이 막중한 직무를 맡게 된 이유는 바로 창평군의 스승이자 과거 육대장군 중에서 유일하게 군사였던 호상이 왕전은 전략만으로도 육대장군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일재라고 창평군에게 수십 년 전에 귀뜸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즉 육대장군 현역 시기의 왕전조차도 군략으로만 따져도 육대장군급의 인재였다는 말. 이 말을 들은 벽은 '호상은 꽤 오래 전의 장군일텐데 그때부터 재능을 인정 받았다면 지금의 왕전 장군은...,'이라 말하여 왕전이 육대장군급 이상일 가능성을 은연중에 묘사한다. 업 공략은 상황에 따라 계획의 기본 판도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에 군략에 능한 왕전을 임명한 것이다. 왕전은 출진하기 전에 창평군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만전에 만전을 기한 기만책, 섬세한 계산, 그리고 연의 조 침공이라는 변수 덕에, 왕전은 예정보다 빨리 조의 국문 열미를 산민족과 비신대 만으로 함락시킨다. 하지만 열미는 적군이 멋도 모르고 조의 왕도권에 진입하면 열미에 걸쳐질 적의 보급선을 끊고 포위하여 말려 죽이기 위해 만든, 일부러 함락시키기 쉽게 지어진 덫이었다. 이를 진군의 누구보다 빨리 알아차린 왕전은 군량이 바닥나기 전에 업을 함락시킬 수 있을지 가늠하기 위해 아광을 포함한 소수 병력과 함께 열미를 이탈한다. 이틀 후 업을 목도한 왕전은 업을 분석한 후 결코 무력으로는 공략할 수 없는 완벽한 성이라고 단언하며, 지도를 펼치고 적진에서 즉석으로 작전을 짠다. 다시 이틀 후, 열미로 귀환한 왕전은 열미를 보급선으로 삼는 창평군의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자신의 책략으로 업을 함락시키겠다고 선언한 후 전군을 조나라 왕도권으로 진격시킨다.
왕전은 업으로 가는 길에 양단화에게 공손룡군을 견제하도록 명령해 양단화군과 떨어진 후[26] 뜬금없이 전군으로 업 근처의 소도시 오다를 함락시킨다. 식량을 남김없이 약탈하고 민간인과 포로를 전부 동쪽으로 풀어 준 후에 정성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전략을 가르쳐 달라는 이신의 지적 아닌 지적을 받은 후에는 군을 셋으로 나누어 업성 주변의 남은 일곱 소도시를 차례로 함락하여 모든 민간인과 포로를 업이 위치한 동쪽으로 쫓아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아홉 성의 몫이나 되는 난민을 업으로 들어가게 강제하여[27] 업의 병량을 예정보다 빨리 바닥나게 하려는 작전이었고, 왕전의 노림수는 업의 성주가 업이 포위되기 전에 난민을 전부 받아들임으로서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결국 왕전의 작전대로 20만 대군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진군과 아홉 성의 난민을 받아들인 업의 병량 공세의 판도가 완성된다.
왕전은 업을 해방할 만한 강군은 요양군과 알여군 둘 뿐이라는 점을 밝힌다. 환기에게 업의 포위를 유지하고 모든 소규모 구원군을 격퇴하라는 지령을 내린 후, 요양군은 양단화가 상대하는 공손룡군이라는 말과 함께 벽에게 1만 병력을 하사하여 양단화를 지원하도록 지시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비신대는 양단화 휘하에 들어갔으니 비신대를 양단화가 있는 요양으로 보내는 게 맞으나 왕전은 비신대를 양단화에게 보내지 않고 자기가 데려가고 대신 벽에게 환의군 2,000명을 증원하여 비신대 대신 양단화에게 보냈다. 양단화도 이런 왕전의 결정에 딱히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만...
이어서 남은 모든 병력은 이목이 지휘할 알여군을 영격한다는 호령을 내리고, 주해 평원으로 진격하여 알여군과 교전한다.
첫날에는 진군의 좌익으로 승기를 가져오려고 낙화대의 5천 병력만을 좌익에 배치한다. 왕전의 도발에 걸린 조군의 우익은 낙화대와 교전하지만, 낙화대의 현란한 움직임과 중앙군에 숨어 있던 마광군의 전술에 당해 조의 우익은 큰 위기에 처한다. 이어서 비신대에게 명령하여 기수의 목을 노리지만, 이목이 선수를 쳐 마광과 마광군의 참모진을 전멸시키는 바람에 전황이 뒤집힌다. 다행히 몽념의 기지 덕에 좌익의 전멸은 막았고, 몽념의 그릇을 확인[28]한 왕전은 몽념을 임시 장군으로 임명하여 좌익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다. 이후 좌익은 몽념이 교착 상태를 유지할 것을 알고, 우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우익은 첫날을 무사히 넘기고, 이틀째에는 왕분의 기지 덕에 조 좌익의 장군 중 하나인 마남자의 군세를 무력화시킨다. 사흘째에 왕전은 이목이 좌익에 투입한 요운 때문에 비신대를 우익에 배정하며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못을 박고,[29] 전군의 병량을 줄이기 시작한다. 아흐레째 날에는 아광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지만 열흘째의 전투가 끝나도록 우익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아광군이 왕분을 지휘관으로 임명해 달라는 전령을 보내서야 현 상태를 유지하여 싸우라는 명령을 내린다. 열하루째의 전투가 끝나고 아광군의 전령들이 왕분을 지휘관으로 삼게 해 달라며 통곡하고 재차 빌어도 무반응으로 일관하여, 벼랑 끝에 몰린 옥봉대와 비신대의 각성을 유도한다.
열이틀째 날에는 이신과 왕분의 활약으로 조군의 좌익이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자, 드디어 중앙군을 출진시켜 조의 중앙군에게 접근한다. 열사흘째 날에는 비신대의 각성은 확실했지만 옥봉대의 각성은 반쯤은 도박이었다고 밝힌다. 또한 우익은 악영 대신 조아룡을 잡았어야 한다며 우익의 고난을 예고한다. 하지만 우익이 고비만 극복한다면 대국은 순식간에 바뀔 것이고, 우익은 능히 그 고비를 넘길 것이기에 중앙군을 출격시켰다며 우익에 대한 신뢰를 표한다. 밤에는 왕분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비신대가 우익의 본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작중 최초로 움찔하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이고 우익의 독단을 묵인하여, 열나흘째 날에는 이신이 조아룡을 베어 조 좌익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나아가 업을 포위하기 전에 아홉 소도시를 함락시키며 상당수의 휘하 병사를 부상자로 변장시켜 난민 무리에 합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 결사대는 업의 식량을 전부 불태우는 데 성공하여 업을 함락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열닷새째 날에는 즉석에서 작전을 바꿔, 진 우익이 조 좌익을 격파하기 전에 조 중앙군을 공격한다. 이후 업의 흉보를 들은 조 중앙군이 급히 공격 태세를 취하자, 자신의 중앙군으로 알여군의 마지막 발악을 막는다. 왕전은 전리미와 창앙을 출진시킨 후 맹공을 여유롭게 막는 조 중앙군을 가만히 관찰하다가, 이목의 핵심 전술[30]을 파악한 후 직속군 1만을 진형, 전술 없이 진격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조 중앙군을 농락하며 서서히 전황을 뒤집기 시작한다. 이후 엉망으로 뒤엉킨 조 중앙군의 목전에서 포진을 재정비한 후, 최전방에 단기로 나가서 이목과 대치한다. 이목은 항복을 권유하지만 왕전은 업은 곧 함락된다고 단언한 후, 무능한 지도층을 위해 무의미한 노력을 하는 것이 허무하지 않느냐며 이목을 회유한다. 이에 이목은 왕전은 나라를 멸망시킬 수는 있어도 나라를 만들 수는 없는 인물이라고,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왕전은 자신의 군에게 이목을 죽이라고 호령하여 교섭을 끝낸다.
이목과의 설전 후에는 자신을 호위할 5천 군사를 제외한 나머지를 진격시켜 이목과 호각의 싸움을 펼치다가, 비신대가 조 좌익을 뚫고 중앙군을 협격하여 자신의 필승전략을 현실로 만들자 작중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이후 이목이 마남자와 부저로 협공을 가하여 본진이 위태로워지자 처음으로 무기를 들어 자신을 공격한 조군 병사들을 죽인 후, 미련없이 본진을 버리고 전리미군, 창앙군과 합류하려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도중에 왕분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소수의 인원을 이끌고 부저 앞으로 뛰어들자, 왕분을 격려하기는 커녕 왕분이 그 정도 병력을 가지고 난입해 봤자 사지는 변하지 않는다고 왕분을 호되게 질책한다. 이후 왕분과 마남자의 오른눈을 벤 몽념과 탈출에 성공하여 전리미군과 합류하고, 이목이 탈출하는 대신 비신대 쪽에 신경을 쓴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목이 탈출하고 신이 강외 덕에 부활한 이후에는 환기에게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사서에 나온 대로 남은 병력 중에서 2할만 추리고 알여군의 후방에 맹공을 날린다. 왕전은 치고 빠지는 것을 거듭하여 알여군의 주력을 위협하는 전술로 알여군이 또다시 하루를 낭비하게 만들고, 알여군이 병력을 분할하여 야습을 가하자 미련없이 후퇴한다. 이후 이목이 이끄는 정예병이 밤을 세워 달려 업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무리 이목이 이끄는 정예병이라도 지치고 시간이 없다면 환기는 못 이긴다고 단언하며 신, 몽념, 왕분 삼인방이 분전한 덕에 이목이 패배하고 업이 함락되었다는 소감을 밝힌다.
이후 왕전은 환기군이 업을 점령하고 약탈을 끝낼 즈음에 업에 도달한다. 식량이 없다는 환기의 말을 듣고도 그럴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업에 입성한 후, 진군이 조군에 포위당한 채 기아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침묵을 지킨다. 왕전의 승보를 받고 황하로 대규모의 군량을 수송하려던 진나라의 작전은 실패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양의 식량이 업으로 보급된다. 조나라 수군이 패배한 진나라 수군을 추격하느라 열미로 이동하는 바람에 업의 포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제나라가 식량을 보급한 것이다. 업으로 출진하기 전에 왕전이 극비리에 창평군에게 부탁한 것은 바로 진나라의 모든 보급 작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제나라에게 식량을 사들여 달라는 주문이었다. 고기가 넉넉하게 포함된 어마어마한 식량을 제왕건의 말에 따르면 두 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사들였다고 한다.[31][32]
삼군의 총대장으로서 업 공략전을 승리로 이끈 공을 인정받아 논공행상에서 제1공의 특별대공을 받으나, 대장군으로 임명되지는 못한다. 이목의 압송 때문에 조나라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조나라를 밀어붙이지만, 도양왕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듣자 태자 조가가 왕위에 올라 묻혀있던 명사들을 기용하면 조나라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며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한단군이 출진한 모습을 보고는 작전을 새로 짠다며 미련없이 후퇴한다. 도양왕의 유언 덕에 막내 왕자 조천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호첩이 증원된 한단군을 이용하여 방어진을 펼치자 기약 없는 대치에 들어간다.
4.5. 십호 함락전~호첩전
호첩과의 대치를 유지하던 중, 육대장군 제도의 부활과 함께 대장군, 나아가 신 육대장군 중에서도 제3장[33]으로 임명되었다.
몽념이 했던 말[34]을 떠올리며 무모하게 싸우는 환기의 전략[35]으로 무엇인지 깨닫고선 자신도 그런 수는 안 쓴다며 환기를 미쳤다고 말한다.
4.6. 비하대전 - 제1차 의안 공략전
환기가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되고 창앙이 5만의 지원군을 보내자 하는데 낭맹과 번오의 군을 먼저 쳐야 된다며 그 전까지는 안된다고 말한다. 조북부에 펼쳐진 책략이 너무 깊다며 불온한 건 알았지만 이목을 너무 얕봤다고 한다. 결국 끝내 지원군을 보내지 못해 환기가 죽지만 창앙이 포위망 밖에서 구출작전을 통해 비신대와 낙화대를 비롯한 환기의 패잔병을 수습한걸 감안하면 옳은 판단이었다.4.7. 번오대전 - 제2차 의안 공략전
양단화, 비신대, 옥봉대를 데리고 번오로 진군했으나 비신대와 옥봉대를 전선에서 이탈시키고 상대해 본적이 없는 청가 사마상의 부대와 정면으로 붙인 이목의 계획에 말려 대패한다. 아광과 전리미등 창앙정도를 제외한 부장들도 이번 전투에서 모두 잃어 부대의 타격이 매우 클듯. 그럼에도 대전후 802화에서 이목의 약점을 운운하며 그 남자의 목을 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발언했다.5. 기타
명문가의 당주라서 상당히 부유한 듯하다. 산양 함락전 도중에 왕분이 (아마도) 자비로 투입한 정란차를 본 명문가의 자손 몽념이 역시 왕 씨 종가라며 감탄했고, 왕전이 결혼했을 때는 천 단위의 하객이 사흘 밤낮 동안 잔치를 즐겼다고 한다. 왕전과 관주경의 신분을 감안하면, 귀사족 수천이 만족할 정도로 화려한 연회를 사흘 밤낮으로 제공할 재력이 있다는 말이다.오랜 기간 동안 몽오의 부관으로서 호흡을 맞춘 환기와는 궁합이 꽤나 좋다. 환기는 왕전에게 별로 관심은 없지만 한때 같은 몽오 밑에서 일한 자인만큼 지는 싸움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둘은 산양 함락전에서는 의견을 교환했다는 묘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염파의 군세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택해서 산양 함락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업 함락전 도중에 환기는 왕전의 행방과 전략을 별다른 언질 없이 파악했으며, 오만한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왕전의 지시를 군말 없이 따르고 다른 사람들이 사지로 끌려들어가는 게 아니냐며 걱정할 때도 왕전은 지는 싸움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며 그의 재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왕전도 어느 의미로는 가장 중요한 임무 업의 포위를 환기에게 맡겼다. 왕전의 특공대가 업의 식량을 전소시킬 때도, 왕전이 업에 도달할 때도 생각보다 늦었다며 이죽거렸을 정도.
같은 가문 출신이지만 자기보다 인정받았던 분가 출신 왕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불명. 이신이 가진 왕기의 창을 의식하고 진정한 이후에는 무례한 지적을 받고 핏발까지 세우던 때와는 달리, 이신의 언행을 받아 주며 이신의 능력을 인정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신대를 최후의 카드로 아끼다 악영, 마남자, 요운, 조아룡을 상대하는 우익에 투입하고, 자신의 아들은 몰라도 이신은 확실히 비신대를 각성시키리라고 예상했으며, 비신대가 이끄는 우익이 조 좌익을 뚫는다는 전제 하에 아끼고 아끼던 자신의 중앙군을 출진시킨 것을 보면, 왕기(와 그가 인정한 이신)을 꽤나 높이 평가하는 듯하다.
사실 이신은 실 역사에서 활약이 적은 편이고 왕전은 통일전쟁의 주역이라 평할정도로 활약이 많기 때문에, 만화의 업 함락전이나 비하대전처럼 이신이 왕전의 부장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울 것이라는 추측이 존재한다. 마침 '강력한 무력'이 부재한 왕전군의 특성상[36] 몽무 다음가는 맹장으로 성장한 이신은 약점을 매꿔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장수이기 때문.
킹덤 공식문제집에서 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왕전의 얼굴에 가면을 씌운 것은 환기의 캐릭터[37]와 정반대로 잡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608화, 주해평원 전투 최후의 날에 왕전과 설전을 벌이던 이목의 왕전에 대한 평가.
[2]
제갈량 전담 성우로 유명하다.
[3]
289화. 합종군 방어전의 첫날 밤.
[4]
산양 공략전 도중 염파의 도발을 무시하고 철수하며 왕전이 한 말.
[5]
535화. 주해평원 첫날의 전투 후 마광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왕전도 정신적으로 받은 상처가 크겠다고 말한 관상에게 왕분이 던진 말.
[6]
주해 평원 전투의 마지막 날, 직속 군의 선봉에 선 왕전을 보고 왕전군이 경악하고, 창앙도 놀랍다고 했다.
[7]
작중 무기를 들어 직접 적을 죽이는 것도 딱 한번, 부저와
마남자의 기습에서 탈출하려 했을 때 뿐이다. 사실 대장이 죽으면 군 자체가 와해되는 킹덤 세계관을 감안하면, 자진해서 불구덩이로 뛰어들지 않는 왕전의 처신은 매우 합리적이다.
[8]
거리 상으로 왕전이 이목보다 거리가 멀었기에, 왕전의 첩보망이 조나라의 첩보망보다 더 빠르게 기능한 셈이다.
[9]
심지어 이 때는 적군이 지척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아찔한 상황이기까지 했다. 호위병이 아광과 아광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왕전이 안심해도 될 정도의 막강한 소수 정예이긴 하지만, 세간의 왕전에 대한 평가와는 동떨어진 위험한 행동인 건 마찬가지.
[10]
가이드북에 나온 왕전의 오리지널 특성으로, '검은 야망(黑野望) 100'이라 표기되어 있다. 참고로 갈승상의 경우에는 그냥 '야망(野望) 100'이며, 여불위의 경우 20권에서만 도박운과 함께 야망이 100이라 나와있다.
[11]
정사에 따르면 왕전은 초나라 공략에 대한 자신의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하고 낙향하는데, 이후 진시황이 간청하여 진나라 군대의 지휘권을 받고 자신에게 야심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진시황에게 여러 번 사자를 보내 포상을 요구한다. 출진하기 전에는 진시황에게 자신이 공을 세웠어도 끝내 후로 봉해지지 못했다며 불만을 표시하는데, 왕이 아니라
이십등작의 최고위에 속하는 후를 요구한 것을 보면 모종의 계기로 초나라 공략즈음에는 왕이 되고 싶다는 야심을 포기할 수 있다. 아니면 애초에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이 거짓이거나.
[12]
515화.
[13]
작중 묘사를 보면 왕분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 것으로 보인다.
[14]
저옹 함락전 도중에 왕분이 왕전만은 부르지 말라고 하자, 융국은 대번에 사정이 아니냐고 지적했다(380화).
[15]
업 공략 전략을 들은 왕분은 우책이라고 단언했는데, 왕전이 보급을 끊는 초강수를 두며 업 공략을 밀어붙이자 자신의 생각을 억누르고 총대장의 명을 따를 뿐이라며 자신을 억눌렀다. 몽념은 이를 보고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513화).
[16]
비슷한 경우로 몽무가 있다. 몽무는 몽념을 나름대로 아끼고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지휘 하에 넣지 않았으며, 몽념을 과보호하던 몽오에게 몽념을 믿고 활약할 기회를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17]
양단화는 요양에 있는 견융족과 비슷한 산민족이었기에 견융왕 로조를 죽이고 요양을 복속시키는 것이 용이했으며, 환기는 특유의 악명으로 인해 업의 민심이 떨어지는 것에 기여했다.
[18]
저옹 함락전 도중에 위의 대장군 영황은 출진하기 전에 자신은 전쟁이란 영토를 빼앗기보다는 무장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라며, 작중에서 전쟁의 초점은 무장을 죽여 현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영토를 지키거나 빼앗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암시했다. 영황처럼 구시대의 인물인 염파는 왕전의 토성을 보다가 싸움이란 대장을 죽이면 끝난다고 생각한 바 있다. 반대로 왕전은 염파의 목에 집착하지 않고 위군을 분산시켜 산양 함락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
왕전만 염두에 둔 평가는 아니다. 오봉명은 진나라를 대표하는 명장 몽무, 환기, 왕전 등을 논하면서, 등을 제외한 나머지 셋에게는 전부 큰 약점과 결함이 있다고 언급했다.
[20]
참고로 와린, 등, 창평군은 왕전과 능력치 총합이 같다.
[21]
염파 때문에 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오르고 진군은 선 상태로 실금을 할 병사가 있을 정도로 사기가 떨어졌기에, 진군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2]
잠재적 반역자라는 낙인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23]
왕전의 유인으로 오르도의 정예병 8천이 몰살당했는데, 얼마 안 있어 똑같은 유인책이 나오자 오르도는 홀연히 사라진 또 다른 병력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산성에서 나오지 않았다.
[24]
포로들을 향해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주겠다는 부분에서 왕전이 야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시절에는 사병을 거느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기에 포로를 죽이지 않고 자신의 사병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야심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을 일은 아니다. 육대장군 왕기 또한 사병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25]
왕분은 왕전의 군대를 빼낼 경우에는 왕전이 견제하던 조나라가 참전하여 전선 전체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왕전에게 원군 요청을 하지 않도록 했다. 왕분은 끝에 가서 사사로운 감정도 있다고 인정하기는 했지만, 등마저 왕분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했다.
[26]
원래 비신대는 양단화 휘하에 배속되었는데 왕전은 양단화를 공손룡과 상대하라고 보내며 비신대를 같이 보내지 않고 자기가 데려갔다.
[27]
서쪽은 진격하는 진군, 북쪽은 공손룡과 양단화군의 15만 군세가 뒤엉켜 싸우는 전장, 남쪽은 황하여서 갈 곳은 동쪽의 업밖에 없다. 나아가 왕전은 양단화에게 자신들과 보조를 맞추게 하여, 난민들이 북쪽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강제했다.
[28]
몽념은 첫날의 개전 전에도 마광군의 전술과 낙화대의 역할을 단번에 꿰뚫어 봤고, 왕전이 업에서 떠나기 전에 전략을 설명할 때도 왕전의 의도를 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왕전은 참모 장교로 삼겠다며 몽념을 등용하려고 했지만, 몽념은 자신보다도 왕분을 그 자리에 넣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단호히 거절했다.
[29]
왕전과 이목은 군을 셋으로 나누어, 좌익과 우익으로 서로의 군세를 줄이다 중앙군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을 택했다. 개전 당시에 알여군은 합 12만에 중앙군은 6만이며, 왕전군은 합 8만8천에 중앙군은 5만 8천이었다. 비신대가 투입된 시점을 기준으로 알여군과 진군의 중앙군은 각각 5만(기존의 6만에서 요운군 1만 이탈)과 3만(기존의 5만 8천에서 비신대 8천, 마광군 2만 이탈)이다. 지는 싸움은 꺼리는 왕전이 홈그라운드의 이점까지 업은 이목을 상대로 싸우려면 5:3이라는 비율도 너무 빠듯하다.
[30]
이목은 합종군 방어전 도중 표공과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지략형이었던 자신의 군대에 본능형의 행동 방식까지 주입했다고 한다. 때문에 상대가 어떤 전술을 택하든 큰 문제 없이 받아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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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B destination 방식의 국제무역을 통해 식량을 해결한 셈이다.이정도면 거의 DAP... 진조동맹, 합종군, 최 방어전에서 보였듯이 이목은 국제 관계의 변수에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목은 진왕이 이목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직전에 제왕과 밀담을 나누었다는 걸 알았지만, 일이 돌이킬 수 없도록 어긋날 때까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32]
타국과의 전투의 연합만 머릿속에 있지, 전투를 배제한 무역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은 분명 작중 이목이 불세출의 천재로 그려지는데 비해서 매우 허술한 생각을 한 것이다. 왕전 스스로 인정했듯이 국지전에서의 전술은 이목이 더 날카로운 면도 있었지만, 인재의 활용에 대해서 왕전에 미치지 못했고(왕전은 단순히 장기말의 차이라 평했지만 엄연히 인재의 성장까지 감안한 폭넓은 인사운용이었다), 거기에 국제관계와 무역의 활용까지 더 큰 스케일에서 이목은 명백히 왕전에 미치지 못했다.
[33]
제1장은 몽무이고 제2장은 등인데, 저 둘은 왕전이 대장군으로 임명되기 전에 이미 대장군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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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는 그냥 호첩의 목을 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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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과거
손빈이 마릉 전투에서
방연을 상대로 쓴 계책이 언급되는데 아궁이 수를 줄여가며 병사의 숫자를 오인시키는 작전으로 환기 역시 병사들이 탈주한 것처럼 속여 병사들의 숫자를 오인하게 만들어 방심하고 있는 호첩의 본진에 쳐들어간 것. 이후 호첩에 의해 환기의 전략의 상세 내용이 밝혀지는데, 탈주병들은 진짜로 탈주한 게 맞았다. 애초에 호첩군이 바보가 아니라서 제대로 깊이 추격하여 탈주병들이 전선에 복귀할 수 없을 정도로 줄행랑을 쳤다는 걸 보고 병력에서 제외시켰으며, 환기도 그들에겐 전략을 전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살기 위해 도망쳤을 뿐이었다. 환기의 전략의 핵심은 탈주병들의 탈주 경로에 환기군 천 명을 수십, 수백 명으로 쪼개 숨겨놓았던 것. 거기에 환기군은 숨는 것에 특화된 이들로 시체로 위장하거나 땅속에 숨어있었을 것이라고 호첩군은 추측한다. 호첩군은 만 명의 탈주병들에 환혹되어 만 명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십, 수백 명의 환기군을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도적떼 출신인 환기군이 아니라면 감히 시도조차도 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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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이 가장 높은게 아광과 사릉의 91이다. 결코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우 높은 것도 아닌 애매한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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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나쁜 미남 or 섹시한 다크 히어로의 외모에 도적출신이라는 신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