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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01 06:34:43

1. 1자 한자어
1.1. 규()
2. 한자3. 인물
3.1. 규(樛),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수
3.1.1. 생애3.1.2. 대중매체에서

1. 1자 한자어

1.1. 규()

파일:규와 홀.jpg

사진에서 왕 역할 인물의 손에 들고 있는 위가 뾰족한 하얀색 막대가 규()이다. 옆의 신하 역할 인물이 들고 있는 것은 (笏)이라고 따로 분류한다.

사극에서 임금이 즉위할 때 입는 금관과 조복과 함께 등장한다.

글자를 보면 흙 토()자가 두개를 겹친 모양으로 임금이 제후에게 땅을 하사한다는 뜻으로 이 규()를 주었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쓰여졌다고 하며 직위에 따라 만드는 재질이나 크기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한반도에는 신하들이 사용하는 신라 진덕여왕이 들여왔지만 왕이 사용하는 규는 고려 때 중국의 면복을 수용하면서 함께 들어왔다. 그러나 관련 기록 중 정확한 것은 공민왕 때에 명나라로부터 길이가 아홉 치가 되는 걸 받았다는 것뿐이다.

조선시대에도 태종(조선) 이후 수 차레에 걸쳐 명나라로부터 받아 왔으며 관련 기록이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1] 길례(吉禮) 제복도설(祭服圖說)에 실려 있다. 면복은 명나라 친왕(親王)이 입는 것[2]이었고 규는 명나라 군왕(郡王)이 드는 것이었다. 그 뒤 대한제국 고종이 칭제를 하며 명나라의 황제와 같이 1 2촌(36~40cm)짜리 백옥규를 사용하였다.

개역한글판 성경은 왕의 의장물인 ' 셉터'를 죄다 ""로 번역하는 오역을 범한 바 있다. 그래서 개역개정판은 이를 모두 "규"로 바로잡았다. 홀은 관복과 한 세트로 딸려오는 막대인데, 그 중 옥으로 만든 것만을 규라고 불렀으며 임금과 왕족이 사용했다.

2. 한자

파일:漢.svg 파일:漢_White.svg 한국 한자음 빈도
[1~10위]
32 27 25 20 19
[11~106위]
18 17 16 15 14 13 12 11 10 9 8 7 6
[107~308위]
5 4 3 2
[309~407위]
1
[1~10위] [11~106위] [107~308위] [309~407위]
* 위 숫자는 해당 음절에 배당된 교육용 한자 수이다.

교육용 한자 1800자 중 '규'로 읽는 글자는 아래 3자이다.

그밖에 규소(硅素)의 , 규수(閨秀)의 , 규장각(奎章閣)의 등이 있다.

3. 인물

3.1. 규(樛),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수

생몰연대 미상.

3.1.1. 생애

전국시대 진나라의 장수. 진 소양왕 재위 시절에 활약하였다.

진 소양왕 51년(기원전 256년), 한나라를 공격하여 양성과 부서를 취하고 4만명의 병사의 목을 베고,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여 20여개 현을 점령하고 9만여명의 병사의 목을 베었다. 서주가 진나라와의 동맹을 깨고, 양성을 공격하자 반격에 나서 서주의 항복을 받아냈고, 이듬해 주나라의 백성들이 도망쳐 나라가 자멸하자 서주에 가서 천자의 상징인 구정(九鼎)을 가지고 돌아왔다.

진 소양왕 53년(기원전 254년)에 진나라의 방문 요청을 위나라가 거절하자, 위나라를 공격하여 오성을 빼앗았다.

《열국연의》에서는 구정을 가지고 귀국하는 길에 9개중 한개의 솥을 강물에 떨어뜨려 잃어버리고 꿈속에 나온 주 무왕의 노여움을 사서 등에 채찍을 300대 맞고 일어나보니 등창이 악화되어 죽었다고 나온다. 진나라의 영성 조씨 왕족이었는지 《열국연의》에서는 영규(嬴樛)라고 나온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소양왕 후반기에 활약한 장수이며, 국력을 완전히 소진하고 상징뿐이었지만 중원의 천자였던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천자의 상징을 진나라에 가져왔다는 점에서 주나라에 의한 봉건시대를 상징적으로 종결지은 장수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3.1.2. 대중매체에서

3.1.2.1.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인 킹덤에서의 묘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규(킹덤)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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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2. 만화 달인전 ~ 9만리를 바람에 타고 ~에서의 묘사
동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눈 밑에 상처가 있는 장수로 이름을 떨친다. 조나라의 삼천 결사대를 상대할때 처음 등장하는데, 그동안 치트키 급으로 사용되던 포정의 소잡이 칼을 제어[3]하며, 삼천 결사대의 요점을 알았다며 그들을 몰아붙인다.

삼천 결사대를 이끌던 이담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아붙였고, 초와 위의 연합군이 협공해오자 군을 추스려 후퇴를 담당하는 등 차기 진나라를 이끌 거목으로 언급된다.

실제로 이후 백기, 왕흘이 연달아 죽고 진의 군사를 이끄는 대다수의 역할을 담당했다. 재상인 범저가 백기와 왕흘이 죽고 이제 군을 이끌만한 것은 백기의 군을 물려받은 동규뿐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작중에서는 몇컷과 설명으로 넘어갔지만 소양왕 말년 정복전쟁의 대다수를 이끈 것으로 나오며, 주인공 일행인 붉은 삼협도 그를 아주 경계한다.

진 소양왕과 효문왕의 연달은 사망이후 5국을 이끄는 신릉군과 맞서며 다시 등장하는데, 이때 신릉군의 식객이자 조나라의 객장 조관을 베어버리는 전과를 올린다. 이 조관이라는 인물은 주인공 일행의 첫 전투를 돕기도 했고 일찍이 대장군에 오를만한 실력자였기에 신릉군의 군사인 채요와 붉은 삼협은 크게 분노하고, 동규 일행을 끝까지 추격한다.

포정, 무명과 싸우면서도 우위를 점하지만 완전히 장자와 같은 모습으로 '비검: 절계'를 사용해 들어온 장단의 공격에 흔들리다 결국 채요에 의해 사망한다.

사망 이후에도 진나라를 이끌 거목이 죽었다며 몽무가 크게 분노하기도 하는 등 길진 않지만 성과를 확실히 보여주고 간 인물. 지나가던 훗날의 진시황 정은 진의 장군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었냐고 무시하고 지나갔다.

[1] 국조오례의의 상세 해설집 [2] 문양 9개가 그려진 구장복(九章服). 황제는 12장복을, 황태손과 왕세자는 7장복을 입었다. [3] 수천마리의 우마를 잡은 칼이기에 이 칼을 들이대기만 해도 짐승들은 기겁하며 고개를 돌린다. 기병전에서 말도 안되는 전적을 올리게 하는 사기 아이템인데 동규는 칼을 보자마자 말의 머리를 때려 강제로 고정시키고 이를 격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