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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4:23:54

오비에도


오비에도
Oviedo
파일:오비에도 주기.svg.png
국가 스페인
지역 아스투리아스
면적 186.65㎢
인구 220,020명
시간대 UTC+1 ( 서머타임: UTC+2)
오비에도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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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지리3. 경제4. 역사5. 랜드마크6. 출신 인물7. 자매도시

1. 개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의 주도이자 이 지역의 행정 및 상업의 중심지이다. 스페인 최초로 성당이 세워진 도시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필수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2. 지리

오비에도는 노라강과 나론 강이 합류하기 마지막 구간에 위치하며 주위는 분지 지형이라 해발 고도 80m부터 709m까지의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의 나란코산맥과 남쪽의 아라모산맥이 바람을 막아 준다.

3. 경제

오비에도의 경제는 서비스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시 중심지는 사무실 건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많은 공공부분 일자리가 존재한다. 또한 제조업도 발전하였는데 교외에는 버스와 장갑차를 제작하는 트루비아 무기 공장이 위치해 있다.

4. 역사

오비에도 일대는 척박해서 사람이 살지않았다. 그러나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하자 기독교인들은 북부 산간지대로 피하였다. 막시모와 프로메스타노라는 두 수도사가 오비에도를 만들었고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초대 왕인 펠라기우스는 이 일대의 기독교인들과 같이 봉기해서 아랍인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오비에도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4번째 왕인 프루엘라 1세는 교회와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알폰소 2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을 조성하였다. 알폰소 2세의 후계자인 라미로 1세는 이전 국왕들보다 더 많은 교회를 건설하였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왕궁과 교회는 크게 지어 이에 불만을 가진 귀족과 농민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알폰소 3세가 서거한 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수도를 레온으로 이전하였다. 이는 오비에도 대주교의 영향력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결국 오비에도는 순례길로서의 역할만 하게 되었고 점차 쇠락하게 되었다.

1934년 10월, 여러 도시에서 보수 정부에 대한 좌파 반란이 발생했다. 1934년 아스투리아스 광부들의 파업은 짧고 짧은 내전으로 발전했고 대부분 광부들로 구성된 5만 명의 노동자들이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하고 격렬한 전투 끝에 오비에도를 점령했다. 그들은 소총 3만 발과 기관총으로 무기고를 장악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육군 참모총장은 3,000명이 사망하고 7,000명이 부상당한 극심한 시가전 끝에 반군을 제압하였다. 이 사건은 사회주의와 좌파에 대한 보수파의 불안감을 조성하였고 이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5. 랜드마크

6. 출신 인물

7. 자매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