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울주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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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9a44> 제2-3대 울산광역시 울주군수 엄창섭 嚴昌燮 | Eom Chang-su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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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0년 9월 4일 ([age(1940-09-04)]세) |
경상남도
울산군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
|
학력 |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텍사스 대학교/댈러스 캠퍼스[1] (국제경영학 / 석사)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병역 | 면제(결핵성부고환좌) |
경력 |
영국 런던 무역관장 독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장 노르웨이 오슬로 무역관장 KOTRA 통상정보본부장 숭실대학교 국제통상대학원 교수 울산광역시청 외자통상본부장 제2대 울산광역시 정무부시장( 심완구 시정) 제2-3대 울산광역시 울주군수(민선3-4기)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행정공무원 출신 전직 정치인이다. 울산광역시 정무부시장과 민선 3, 4기 울주군수를 역임했다.2. 일생
1940년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나 부산 동래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11회)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였고, 대학을 졸업한 뒤, KOTRA에 입사하였다. 미국 댈러스 무역관원을 지냈고, 영국, 독일, 노르웨이에서 무역관장을 지냈으며, 수출증대에 기여하여 1984년 수출유공 상공부 장관 표창을, 1993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다.미국 댈러스 무역관원 시절, 텍사스 대학교/댈러스 캠퍼스 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KOTRA 통상정보본부장을 끝으로 KOTRA에서 퇴직한 뒤, 숭실대학교 교수로 잠시 재직하다가, 심완구 울산시장에 의해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되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울산광역시 정무부시장으로 재임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주군수 선거에 한나라당 공천장을 받고 출마하여, 대학 선배이자 현직 군수인 무소속 박진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으며,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7년 부산저축은행과 간접적으로 관련되었는데, 부산저축은행이 수족으로 부리던 특수목적법인을 통한 이른바 ' 영남알프스의 시작' 백운산 일대를 개발하려는데[2] 편의를 봐달라고 부산저축은행의 SPC측에서 건넨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불명예를 안았으며, 이후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고, 2008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면서 군수직을 상실하였다. 재선거로 후임자가 된 사람은 자신의 부군수였던 신장열.
3. 근황
2014년 만기출소한 후 간간히 공식 행사에 초대손님으로 초청받고 있으며, 강연 등을 하고 있다.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울산 울주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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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84 (44.25%) | 당선 (1위) | 초선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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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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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와는 별개의 다른 학교다.
[2]
이 일대는 옛날에 목장이었던 폐 목장과 시골마을이 포함된 지역이었는데, 그걸 떠나서 애초에 개발하는것 자체가 무리수였던 땅이었다. 일단 지형부터가 계획된 사업의 일부였던 골프장 부지로 부적절하거니와 각종 개발제한에 묶여있었고, 개발제한을 풀어준다고 해도 결정적으로 인근에 울주군민의 식수를 책임지는 댐과 불과 10km도 안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당시 울주군민들 사이에서도 반대가 많았고 결과적으로 지방행정 쪽에서는 울산알프스 개발을 거부하는 쪽으로 갔다. 후일
춘천의
고슴도치섬이 사업주의 멀쩡한 말만 믿고(이쪽도
부산저축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 종잣돈이었다) 덜컥 개발제한을 풀어버리면서 멀쩡하던 시민휴식시설을 밀고 10년 넘게 무주공산 상태인것과 비교하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3]
2008년 군수직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