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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7:32:36

필리프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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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카페 왕조 제14대 국왕
필리프 5세
Philippe V
파일:Philippe V.jpg
출생 1292년
프랑스 왕국 리옹
사망 1322년 1월 3일 (향년 29세)
프랑스 왕국 롱샹
재위기간 프랑스 국왕
1316년 11월 20일 ~ 1322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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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2395> 가문 카페 가문
아버지 필리프 4세
어머니 호아나 1세
형제자매 마르그리트, 루이 10세, 블랑슈, 샤를 4세, 이자벨, 로베르
배우자 부르고뉴 여백작 잔 2세[1]
자녀 잔, 마르가리트, 이사벨, 블랑슈
종교 가톨릭
별칭 장신왕 (Le Long/The Tall)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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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의 제14대 왕.

'미남왕' 필리프 4세 차남으로 제12대 왕 루이 10세의 동생이자, 나바르(나바라)의 여왕 호아나 2세(잔느)와 제13대 왕인 '유아왕' 장 1세의 숙부였다. 프랑스 왕으로는 '필리프 5세', 나바르 왕으로는 '펠리페 2세'였다.

2. 생애

루이 10세가 테니스를 치다가 포도주를 마시고 3일 만에 사망하면서 필리프가 섭정이 되었는데, 유복자로 태어난 조카 장 1세마저 태어난지 5일 만에 요절하면서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이 전개되었다.

루이 10세에게 남은 호적상 유일한 자녀였던 잔느에게 귀족들의 지지가 몰렸지만 필리프 5세는 그녀의 모후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가 루이 10세에 의해 간통죄로 쫓겨났던 시기에 잔느가 태어났다며 혈통에 의문을 제기했다.[2] 더불어 1317년 파리 대학 법학자들과의 회의를 통해 프랑크 왕국의 토지 상속법이었던 《 살리카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확대 해석했다. 《살리카법》은 모계 계승이 불가능하다고 되어 있었지만 외손자는 계승이 가능했다. 《살리카법》의 본래 의미는 여성의 경우, 기사로서 병역의 의무를 다할 수 없으나 외손자일 경우, 전쟁에 나갈 수 있으니 상속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살리카법》은 몇백년 전에 사문화된 법률이었다. 아들까지 갈 것 없이 남편과 공동 즉위한다면 병역의 의무를 남편이 지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리프 5세는 《살리카법》을 확대 해석하여 외손자는 물론 아예 모계 계승 자체를 막아버렸다. 즉, 여성은 왕위에 오를 수 없는 것으로 못을 박아 잔느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 자신의 정통성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카페 왕조 이후의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에서는 여왕이 즉위하지 못했으며, 프랑스 역사에서 여왕이 한 번도 즉위하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이 어거지 확대 해석은 그 후《살리카법》자체가 없었던 신성 로마 제국[3]으로 점점 퍼져 나가 훗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잔느는 비록 프랑스의 여왕이 되지 못했으나 나바라에서는 《살리카법》이 적용되지 않아, 숙부들인 필리프 5세와 샤를 4세가 죽고, 카페 왕조의 본가가 단절되자 1328년 나바라의 여왕 호아나 2세로 즉위했다.

필리프 5세는 비록 어거지로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이 되었지만 그때 이용한 《살리카법》이 불과 몇년 후 백년전쟁을 발발시켜 프랑스 전역을 기나긴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했을 것이다. 필리프 5세는 즉위한 지 6년 만에 29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딸 넷은 장성했으나, 아들 필리프는 태어난 지 1년 만인 1317년에 사망하여 후계자가 없었다. 장성한 딸이 넷이나 되었으니 후계자는 충분했지만 스스로 이용한 《살리카법》 때문에 그들은 즉위할 수 없었다.

필리프 5세의 후손은 필리프 4세의 아들들의 후손[4]들 중 유일하게 단절되지 않은 혈통이었다. 유일하게 후손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차녀 마르그리트의 후계는[5] 손녀사위인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의 '호담공' 필리프 2세의 후손으로 이어지며, '용담공' 샤를이 로렌(로트링겐, 로타링기아)의 왕이 되어 서프랑크는 아니지만 중프랑크의 왕이 되나 싶었으나 그마저도 실패하고 결국 펠리페 1세 대에서야 에스파냐의 왕위를 획득하게 된다.[6]

[1] 부르고뉴 백작 오토 4세의 장녀이자 샤를 4세의 첫번째 아내 블랑슈의 언니다. [2] 참고로 친아버지로 의심받는 필리프 드 오네이(당연히 필리프 4세에게 마르그리트와의 간통이 걸려 교수척장분지형으로 처형당했다.)는 필리프의 왕자 시절 시종으로 친한 친구 사이였던 것으로 의심된다. [3] 다만 신성 로마 황제의 경우엔 선출직인데다 여성의 출마를 금지하고 있었기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4] 루이 10세의 아들 장 1세는 태어난 지 5일만에 죽었고, 샤를 4세의 외동딸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5] 필리프 5세의 장녀 잔느는 부르고뉴 가문에 시집갔으나 외아들이 22세에 요절해 혈통이 단절되었고, 3녀 이자벨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6] 프랑스 카페 왕조 제14대 왕 필리프 5세- 부르고뉴 백작부인 마르그리트 1세(플랑드르 백작 루이 1세와 혼인)- 플랑드르 백작 루이 2세- 플랑드르의 여백작 마르그리트 3세(카페-부르고뉴 가문의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1세와 초혼, 발루아-부르고뉴 가문의 부르고뉴 공작 '호담공' 필리프 2세와 재혼)- 부르고뉴국의 '용맹공' 장 1세- 부르고뉴국의 '선량공' 필리프 3세- 부르고뉴국의 '용담공' 샤를 1세- 부르고뉴국의 '부귀공' 마리(합스부르크 황실의 막시밀리안 1세와 혼인)- '미남왕' 펠리페 1세를 거쳐 8촌 운손 대에서야 마침내 타국에서나마 왕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참고로 펠리페 1세의 장남이 그 유명한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왕조의 초대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