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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5:37:15

아브람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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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8754><colcolor=#ee7c1a>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아브람 그랜트
Avram Grant
본명 아브라함 그란트
Avraham Grant
출생 1955년 2월 6일 ([age(1955-02-06)]세)
이스라엘 중부구 페타티크바시
국적
[[이스라엘|]][[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88754> 감독 하포엘 페타티크바 FC (1972~1986 / 유스 감독)
하포엘 페타티크바 FC (1986~1991)
마카비 텔아비브 FC (1991~1995)
하포엘 하이파 FC (1995~1996)
마카비 텔아비브 FC (1996~2000)
마카비 하이파 FC (2000~2002)
이스라엘 대표팀 (2002~2006)
첼시 FC (2007~2008)
포츠머스 FC (2009~2010)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0~2011)
FK 파르티잔 (2012)
가나 대표팀 (2014~2017)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 (2018)
잠비아 대표팀 (2022~ )
기타 BEC 테로 사사나 (2014 / 기술 고문)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 (2018 / 기술 고문)
방글라데시 대표팀 (2021~2022 / 기술 고문)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경력3. 감독으로서의 평가4. 사생활5. 기록
5.1. 대회 기록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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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 축구 감독.

2. 경력

2.1. 첼시 FC 이전

1955년 이스라엘의 도시 페타 티크바에서 태어나 1972년, 불과 18살에 고향팀 하포엘 페타 티크바 유스팀 감독으로써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유스팀 감독을 14년째 맡아오던 1986년 팀의 1군 감독으로 승격되어 팀의 토토컵[1] 2연패(1989-90, 1990-91)를 이끌었다. 이후 1991년 마카비 텔아비브(이하 텔아비브) 감독으로 옮겨 1995년까지 2번의 리그 우승(1991-92, 1994-95)과 1993-94 이스라엘 스테이트 컵 우승, 그리고 1992-93 토토컵 우승을 달성하며 영광의 시절을 보냈다. 1995년 텔아비브를 떠난 후 하포엘 하이파의 감독을 1996년까지 맡다가 다시 텔아비브로 복귀하여 1번의 토토컵 우승(1998-99)을 달성하고 2000년 마카비 하이파로 옮겨 2연속 시즌 제패를 이끈다. 2001-02 시즌에는 팀을 이스라엘 구단 사상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2002년 하이파를 떠나 이스라엘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된다. 5년 동안의 그랜트 체제하의 이스라엘은 유로 2004 예선에서 프랑스와 슬로베니아에 밀려 3위로 탈락하였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에서는 무패를 기록했음에도 프랑스와 스위스에 말려 3위로 탈락하였다. 두 번의 예선 탈락 이후 그랜트는 이스라엘 감독에서 물러난다.

이스라엘 감독직에서 물러난 그랜트는 영국으로 건너가 2006년 7월 포츠머스 FC의 기술고문으로 부임했다. 이후 해리 레드냅을 서포트하며 06-07시즌 포츠머스의 돌풍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

2.2. 첼시 FC

파일:아브람그랜트.jpg
06-07시즌이 끝나고 평소 친분이 있던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부름을 받아 2007년 7월에 첼시 FC의 기술고문에 선임된다. 당시 첼시 감독 주제 무리뉴와 사이가 좋지 않던 프랑크 아르네센 수석 스카우터의 입김이 있었다.

선임 후 두 달가량 지난 2007년 9월, 무리뉴가 구단과의 마찰로 사임하자 후임으로 첼시 감독에 선임됐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경력이 첼시의 감독치고는 너무 빈약하기도 했고, 보드진의 입맛대로 취임한 바지감독이라는 비웃음까지 당하는 등 팬들의 반응과 시선은 심히 좋지 않았다. UEFA가 인정하는 프로 라이센스가 없어 UEFA 챔피언스리그 벤치 출입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고 전술 지시는 대부분 수석코치였던 헹크 텐카터 스티브 클라크의 몫이었다는 설도 돌았으며 그랜트는 그저 가만히 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들 한다. 라이센스를 취득하기 위해 시즌 중간에 고국인 이스라엘을 다녀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첼시 감독 데뷔 경기인 9월 2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0:2 패배를 당한 이후, 첼시는 16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간다. 10월 27일에는 탁신 시나와트라의 구단 인수 이후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 체제에서 신흥 강호로 떠오르던 맨체스터 시티를 6:0으로 대파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런 호재에 그해 12월 첼시는 그와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아스날 원정에서 디디에 드로그바 마이클 에시엔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윌리엄 갈라스에게 일격을 맞아 0:1로 패하며 무패행진이 깨지고, 리그에서도 이따금씩 다 이기던 경기를 어이없게 무승부에 그치는 경기가 임팩트가 정말 커서 그랜트에 대한 첼시팬들의 눈초리는 따가웠다.

2008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니콜라 아넬카,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프랑코 디 산토를 보강하였다. 그러나 그랜트 하에서 기용된 선수는 아넬카 하나에 불과했고 적응문제로 단 1골 밖에 넣지 못했다.

2008년 2월 24일 풋볼 리그 컵 결승에서 토트넘 핫스퍼에 연장까지 간 끝에 1:2로 역전패하면서 준우승하고 2주 뒤에 열렸던 FA컵 8강에서 2부리그 반즐리 FC에 0:1로 패배하며 광탈하자 그랜트 감독에 대한 여론은 더 나빠졌다.
파일:chelsea-trainer-avram-grant.jpg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결승 진출이 확정된 이후

하지만 컵대회 연속 탈락 이후 다행히 분위기를 추스러 리그에서는 우승 경쟁에 합류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첼시를 창단 첫 결승으로 이끌어냈다. 약했던 빅4와의 맞대결에서도 아스날과 맨유를 상대로 홈에서 승리해내며 이를 극복했고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서는 04/05 시즌과 06/07 시즌에 탈락의 아픔을 남겼던 리버풀을 상대로 1차전에서 리세의 자책골 행운이 따르며 1:1 무승부, 2차전에서 연장전까지 간 끝에 드록바의 2골로 3:2 승리를 거두며 복수에 성공하고 결승에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4월의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팬들의 지지도 회복했다. 리그에서는 최종전까지 맨유와 승점 동률을 기록하며 우승 경쟁을 했으나 결국 맨유가 최종전에서 위건에 승리를 거두고 첼시는 종료 직전에 동점골을 허용하며 볼튼에 1:1로 비겨 승점 2점차로 준우승했다.[2]

5월 21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1로 연장전을 마치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존 테리가 미끄러지며 실축하고[3] 아넬카의 슛이 에드빈 판데르사르 골키퍼에게 막히면서 준우승.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밀려 준우승을 달성, 준우승 트레블이라는 기록을 달성한다. 이후 2008년 5월 24일, 챔스 결승 3일 후, 첼시는 그와 계약 해지를 발표하며 그랜트의 첼시 감독 생활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2.3. 포츠머스 FC

파일:Grant Portsmouth.jpg
FA컵 준우승 이후

이후 2009년 10월 포츠머스 FC 풋볼 디렉터에 선임되었으나 1달 뒤 폴 하트 감독이 경질되며 감독을 맡게 되었다. 포츠머스에서의 첫 경기는 첼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맨유를 상대했는데 홈에서 1:4로 대패하였다. 그렇지만 두 번째 경기인 15라운드 번리와의 홈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었고 18라운드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도 부진에 빠져있던 리버풀에게 2:0 승리를 거두며 충격패를 선사하며 좋은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듬해 구단의 경영 악화로 인해 승점 9점 감점과 함께 리그에서 최하위로 강등당했다.

여담으로 이 때 포츠머스가 어느 정도까지 막장이었냐면 선수들의 이적이 감독과의 협의도 없이 마구잡이로 추진되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의 급여도 제대로 못 챙겨줄 정도였다고. 2010년 1월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그랜트는 사직서를 제출하지만 자신마저 떠나면 포츠머스 FC에는 완전한 희망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사표를 철회했다. 이러한 그랜트의 리더십 덕에 FA컵에서는 승승장구하며 준결승에서 토트넘을 2:0으로 누르고 FA컵 결승에 올랐고 FA컵 결승에서 친정팀 첼시를 상대하여 선전했으나 드록바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1:0으로 패배, FA컵 준우승을 남기고 계약을 해지하였다. 떠나면서 그는 팬들에게 포츠머스를 맡은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으며 포츠머스 팬들의 열정과 현신에 감동받았다는 글을 구단 홈페이지에 남겼다.

2.4.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파일:WUFD Grant.jpg
웨스트햄에 부임한 그랜트
그리고 2010년 6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감독에 4년 계약을 맺고 취임하였다.

그러나 취임 후 야심차게 데려온 히츨스페르거가 부상 크리를 맞았고 개막하자마자 4연패를 당하며 꼴찌로 추락하며 경질설이 돌기 시작했다. 11월까지 2승에 그치며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뜬금없이 칼링컵 8강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4:0으로 꺾고 생명연장에 성공했다. 이 승리는 웨스트 햄이 맨유를 상대로 거둔 첫 4점차 대승이다. 12월 들어 블랙번의 샘 앨러다이스가 뜬금없이 경질당하자 자신도 경질설이 돌았으나 웨스트 햄은 박싱데이를 기점으로 연말연시에 풀럼과 울버햄튼을 꺾으며 강등권에서 탈출하며 경질설을 잠재우는듯 했다. 그러나 곧바로 뉴캐슬에 5:0 대패를 당하며 꼴찌로 추락했다.

4강에 진출했던 칼링컵에서 버밍엄 시티에 아깝게 떨어졌고 리그에서는 히츨스페르거의 부상 복귀와 겨울이적시장에서 합류한 뎀바 바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팀이 안정되며 3월 들어 강등권에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4월 첫 경기였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으로 불러들여 전반전에 2골로 앞서나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러나 후반에 루니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2:4로 대역전패를 당한 경기를 기점으로 7경기에서 1무6패를 기록하는 급격한 하락세를 맞이하며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37라운드 위건 원정에서 2대0으로 이기는 경기를 2대3으로 뒤집히며 강등이 확정되었다. 강등에 대한 책임으로 결국 경질당했으며 2년 연속 EPL 꼴찌팀 감독, 밀월 레전드라는 오명과 불명예를 얻고 말았다. 밀월 레전드라고 불리는 이유는 강등 확정이 되고 나서 웨스트햄과 철천지 원수지간인 라이벌 밀월 서포터들이 "Avram Grant, Millwall Legend"라는 문구를 경기장 상공에 경비행기를 띄워 조롱했기 때문이었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1387348-0C149C2400000578-29_634x286.jpg
위건 원정에서 강등 확정 이후 밀월 팬들이 비행기를 띄워 조롱하는 장면

2.5. 이후 행적

2012년 1월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FK 파르티잔의 지휘봉을 잡았다.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4개월 만에 물러났다[4]. 이후 휴식을 취하다가 2014년에는 태국 리그의 BEC 테로 사사나의 기술 고문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공석이었던 가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가나를 결승까지 올려놓았으나 코트디부아르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7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4강에 머물렀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최종예선에서 가나 대표팀이 조 3위를 하며 탈락하자 사임했다.

2018년 1월부터 현재까지는 인도 리그의 팀인 노스웨스트 유나이티드의 기술고문직을 맡고 있다. 2021년 1월 경험이 적은 프랭크 램파드를 돕기위해 첼시의 코치로 합류한다는 루머가 기사로 나왔다. 이후 방글라데시 축구 국가대표팀의 기술 고문으로 합류하였다. #

2.6.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2022년 12월 22일,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2023년 7월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COSAFA 컵(남아프리카 축구협회 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9월에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통과를 완수하면서 잠비아의 8년만의 네이션스컵 본선 복귀를 이끌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조별 리그에서 2무 1패로 탈락하며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했다.

2024년 COSAFA 컵에서는 전년도와 달리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24년 11월 14일 열린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전 경기에서 케네디 무손다의 결승골에 힘입어 강호 코트디부아르를 1-0으로 제압하며 잠비아를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 진출로 이끌었다.

3. 감독으로서의 평가

첼시 부임 초기부터 바지감독, 낙하산 인사, 무자격증 감독이라는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고, 퇴임 후에는 포츠머스 FC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를 맡아 연속으로 최하위 강등을 당하며 첼시 시절 성과도 헹크 텐카터 스티브 클라크 수석코치가 이뤄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저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이는 가혹한 평가고, 그랜트는 충분히 좋은 감독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랜트 부임 당시 첼시는 무리뉴 사임의 충격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그랜트는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해 첼시를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으로 이끌어냈으며, 리그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무리뉴 때부터 이어온 프리미어리그 홈경기 무패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07-08시즌 첼시는 유난히 부상자가 많아서 페트르 체흐, 미하엘 발락, 파울루 페헤이라, 히카르두 카르발류, 프랭크 램파드, 존 테리, 애슐리 콜, 플로랑 말루다, 디디에 드로그바가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베스트11을 제대로 꾸리기 힘들었으며, 2008년 1월에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차출로 디디에 드로그바, 살로몬 칼루, 마이클 에시엔을 한 달동안 기용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꾸준한 승리로 승점을 쌓은 것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홈구장인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으면서 EPL 홈 무패 경기 신기록을 82경기까지 늘렸다.[5]

또한 수석코치의 업적이라고 폄하하는것도 어폐가 있는게, 애초에 유능한 코치진을 두고 자신의 지시에 맞게 움직이도록 조련하는 것 역시 감독의 자질이다. 텐카터와 클라크에게 성과가 있다면 감독에게도 성과가 있는 것.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이 3위를 기록한 성과에 대해 수석코치 요아힘 뢰프만의 성과라고 평하지 않고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의 공이라고 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뿐만 아니라 무리뉴 체제에서 몇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발락-램파드의 공존을 이끌어내고, 숀 라이트필립스에게 프리롤을 부여하는 등 전술적으로도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포츠머스 시절도 최하위 강등이라는 이유로 실패로 단정짓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물론 아무리 약체이고 승격팀이라도 팀의 강등은 감독의 실패로 보는 것이 정론이긴 하나, 당시 포츠머스는 선술했듯 심각한 재정난으로 선수단 월급조차 제대로 줄 수 없었으며, 이런 재정 문제로 승점 삭감 징계까지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9개월을 끌고가는 리그에서 잔류한다는 것은 누가 온다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런 포츠머스를 그나마 추스려 FA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끌어 낸 것이 바로 그랜트였다. 어떻게 보면 그랜트는 최악의 상황에서 감독의 역량으로 그나마 최선의 성과를 이끌어 낸 셈. 웨스트햄이 그랜트를 하이재킹까지 하면서 데려간 이유도 그랜트의 포츠머스에서의 성과를 눈여겨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판 역시 존재한다. 일단 그랜트는 처음부터 무리뉴를 견제하기 위한 아르네센의 입김이 들어간 인사였다. 바지감독이라는 평은 다소 과장되고 가혹할 수 있지만, 낙하산 인사라는 평은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 또한 경기 중에 나온 몇 차례 교체 카드 미스나 전술상 오류로 인해 막판에 그르친 경기가 적잖게 있는데다 임팩트도 커서 결국 리그와 칼링컵에서 준우승에 그쳤고, FA컵은 아예 하부리그 팀한테 떨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도 준우승 자체는 좋은 성과긴 하나, 16강과 8강에서 비교적 무게감이 떨어지는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와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SK[6]를 만나는 등 소위 말하는 꿀대진이라는 평가도 있으며, 여기에 8강과 준결승에서 중요한 순간에 상대 자책골을 두 차례 얻어내는[7] 행운까지 제대로 따랐다. 물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 결승전에 올라온 상대팀의 상대이던 샬케 04, 올랭피크 리옹, AS 로마, FC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평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웨스트햄 시절 최하위 강등은 쉴드의 여지가 없는 흑역사다.

이와 같은 사실을 조합해 볼 때 그랜트는 명장으로는 절대 분류할 수는 없으나 단지 누군가의 꼭두각시나 운장 취급을 받기에는 유능한 구석이 존재하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4. 사생활

이스라엘의 유명 배우 추핏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었으나 2014년 이혼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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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의 축구 클럽 토너먼트 대회. [2] 첼시가 최종전에서 이겨서 승점 동률을 기록했더라도 맨유에 득실차에서 크게 뒤쳐졌기 때문에 맨유가 우승하는 상황이었으며, 첼시가 우승하려면 최종전에서 승리하고 맨유가 승리하지 못하거나, 최종전에서 비기고 맨유는 패배해야 했다. [3] 실축 이후 존 테리가 눈물을 흘릴 때 그랜트 감독이 다가가 위로해주는 모습은 첼시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4] 당시 파르티잔에서 이란 투어를 떠났는데, 그랜트의 이스라엘 국적을 이유로 이란 정부는 그의 입국을 막았고, 그러한 것들이 쌓이며 파르티잔 감독직에서도 물러나게 되었다. [5] 이 기록은 후임 감독인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재임 중이었던 2008년 10월 리버풀 FC에 0-1로 패해 86경기에서 중단됐다. [6] 다만 당시의 페네르바체는 인테르를 꺾은 팀이었다. [7] 페네르바체전 데이비드, 리버풀전 욘 아르네 리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