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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1:18

심재철/일생

1. 정치 활동
1.1.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원내대표1.2. 21대 총선 낙선 이후

1. 정치 활동

1995년 12월에 신한국당 부대변인, 안양시 동안구 갑구 지구당 위원장울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1]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양 동안 갑에 출마했으나 가수 출신인 새정치국민회의 최희준에 밀려 낙선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안양 동안구에 출마, 새천년민주당 이석현을 밀어내고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제3정조 위원장, 대외협력 위원장, 국무총리 후보자( 이한동, 장상) 인사청문위원, 공적자금특위위원, 정책위 부의장 등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안양시 동안구 을에서 재선되어 전략기획 위원장, 홍보기획 본부장, 원내수석 부대표를 지냈고,[17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 고지에 올라 국회 윤리위 · 예결위 위원장,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파일:심재철 한나라당 의원.jpg
국회의원 모습
파일:심재철 국회부의장 시절.jpg
국회부의장 모습

1.1.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원내대표

파일:심재철 원내대표.jpg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출

2019년 12월 9일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경선에서 결선 투표 결과 106표 중 52표를 획득하며 나경원의 뒤를 이어 자유한국당의 4대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다. #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던 5선 의원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원내대표가 됐는데, 2004년 17대 국회 초반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 이후 보수정당 최다선 원내대표라고 한다. 보통 5선 정도면 당 대표급이며[8] 국회의장 경선에 나가도 태클 안 걸리는 의원선수[9]다.
파일:심재철 사진.jpg
문희상 의장 여당 같이 찍은 모습

부임하자마자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패스트트랙 정국을 맞이했는데 기껏 원내대표로서 처음 가져온 협상안이 의원 총회에서 부결되는 굴욕[10]을 당하고 황교안 대표와 함께 강경 투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한 4+1 협의체가 이미 과반을 확보한 상황이라 표 대결로는 이를 막기 힘들었으며 2016년 민주당이 진행해 호평을 받았던 필리버스터도 시도했지만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임시국회 기간을 짧게 쪼개는 방식으로 대응한데다가 4+1 협의체 의원들이 오히려 그 기회에 찬성 토론에 나서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20년 2월 18일,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및 보수 시민단체와 미래통합당으로 신설 합당하게됐는데 그 과정에서 지도부는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미래통합당에서도 초대 원내대표를 맡게 됐다.

하지만 4월 15일 열린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초선 비례대표 출신인 이재정 후보에게 무려 12%p 차이로 완패하면서 졸지에 원내대표직을 20대 국회가 끝나는 5월 29일, 취임 6달만에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되어 결국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일단 당장의 원내대표 사퇴를 거부하고 당대표였던 황교안 대표가 총선 패배를 책임지고, 사퇴하면서 당대표 권한대행 직을 맡게 되었다. #

선거 참패 수습을 위해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하려했지만 조경태 최고위원 등 당내 반발과 김종인 전 위원장의 거부로 무산되었고 결국 5월 8일 선출된 후임 원내대표에게 공을 넘겼다. #

1.2. 21대 총선 낙선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캠프에서 지원 유세를 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결국 김은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퇴했고 #, 김은혜는 경선에서 유승민을 꺾고 본선에 진출했지만 결국 낙선했다.[11]

2022년 12월에는 안양시 동안구 을 지역을 떠나 인근지역인 의왕시·과천시 지역구로 옮겨 당협위원장으로 공모했지만 최기식 검사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둔 2023년 12월 다시 안양시 동안구 을로 돌아와 공천을 신청한 뒤 2024년 3월 1일 경선을 거쳐 윤기찬 변호사를 꺾고 공천을 받게 되었지만 본선에서 또 다시 현역인 이재정 의원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행정동 전체를 통들어서 범계동, 갈산동 두 곳에서만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이재정 의원에게 패했다. 출구조사에서만 봐도 무려 20%p 차이로 밀리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 그래도 출구조사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했는지 오히려 4년 전보다 4.4%를 더 득표하며 나름대로 체면치레는 했다. 심재철 본인을 포함해 안양에서 또 국힘이 전멸하며 안양시가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음만 다시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6년 15대 총선부터 동일 지역구에서만 8회 연속으로 공천되는 기록을 세웠다.

2024년 6월 21일, 국민의힘 경기도당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0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하고 다시 한번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

[1] 당시 민주당계에서는 민주정의당의 후신이었던 신한국당에 입당한 것을 배신이라며 비난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한 이후 김영삼이 당을 장악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정계는 외곽으로 밀려나다 YS에 협조적이던 민주계를 제외하면 일부는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하는 등 민주자유당 신한국당으로 개편될 때는 민주정의당의 색채는 꽤 빠진 뒤였다. [17대] 총선에는 한나라당이 경기도에서 거의 궤멸을 당한 선거되도,과반수 넘는 득표율로 살아남았다. [3] 첨언하자면 상대적으로 등뼈나 머리뼈에서 멀리 떨어진 부위는 아무리 광우병 걸린 소의 것이라도 위험성이 낮긴 하다. 그러나 도축장 위생관리나 유통과정에서 위험부위와 섞일 수 있으므로 '절대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 [4] 게다가 부정문이 아니기 때문에 문법상 '절대'가 올 수 없다. [5] 1998년 광주시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신청’을 한 뒤 심사를 거쳐 ‘연행·구금’ 분야 피해자로 인정됐다고 한다. [6] 동시에 이종걸, 이석현, 심재철로 구성되었던 안양 3대장 시대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석현이랑 이종걸은 당내 후보를 정하는데서 떨어졌지만, 심재철은 후보 확정은 되었다는 것이다. [7] 비슷한 케이스로는 경기도 북부지역인 의정부시 인데 갑 지역인 문희상 의원이 6선, 을 지역인 홍문종 의원이 4선 총 안양시(안양시는 이석현 6선+이종걸, 심재철 5선=16선) 못지 않게 10선을 자랑하는데, 이번 21대 총선에서 문희상 의원은 국회의장 끝으로 불출마 및 정계 은퇴 선언했고, 홍문종 의원은 임기 도중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극우정당인 우리공화당을 거쳐, 친박신당을 창당해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출마했으나 낙선해 의정부시도 안양시와 마찬가지로 유력거물 다선의원에서 정치신인 초선의원으로 물갈이 되었다. [8]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의원선수가 5선이다. 그 이전에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지낼 당시 선수도 5선이었으며, 김한길이 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선수는 4선. 황우여,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를 지낼 때도 5선이었다. 예외적으로 문재인초선 시절, 안철수 이재명초·재선 시절, 박근혜재선 시절에 당 대표를 지냈지만 이들은 대권주자였다. [9] 19대 국회 하반기 새누리당 국회의장 경선 당시, 후보자였던 정의화, 황우여 의원 둘 다 5선 의원이었다. [10] 여담이지만 전임 나경원 원내대표도 임기 초반 같은 일을 겪었다. [11] 참고로 그 김은혜를 꺾고 도지사에 당선된 김동연은 후술할 국가 재정정보 무단 유출 논란으로 심재철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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