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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3:45:44

스루가만 상공 니어미스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2001년 1월 31일
유형 관제사 과실
발생 위치
[[일본|]][[틀:국기|]][[틀:국기|]] 시즈오카현 스루가 만 상공
탑승인원 JAL907 승객:411명, 승무원:16명
JAL958 승객:237명, 승무원:13명
생존자 두 기체 탑승객 677명 전원 생존
부상자
(JAL 907편)
[1]
승객: 88명
승무원: 12명
기종 보잉 747-446D, DC-10-40D
항공사 일본항공
기체 등록번호 JA8904, JA8546
JAL907
출발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 하네다 공항
도착지
[[일본|]][[틀:국기|]][[틀:국기|]] 오키나와현 나하 공항
JAL958
출발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부산광역시 김해국제공항
도착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2]
파일:JA8904.jpg
사고 1개월 뒤인 2001년 2월 25일, 오사카 국제공항에서 찍힌 JA8904 (사고 당시 907편)[3]
파일:dfthge44.png
사고 3일 뒤인 2001년 2월 3일 오사카 국제공항에서 찍힌 JA8546 (사고 당시 958편)[4]

|사고 조사 보고서

1. 개요
1.1. 여객기 두 대
2. 사고 진행3. 니어미스4. 사고 결과5. 사고 이후

1. 개요

2001년 1월 31일, 일본 스루가 상공에서 일본항공 소속 여객기 2대가 관제실수로 사고 발생 범위 3m 차이로 비껴가며[6] 공중 충돌할 뻔했던 사고.

1.1. 여객기 두 대

두 대 중 한 대는 승객 411명, 승무원 16명 도합 427명이 탑승, 하네다를 출발하여 나하로 가는 일본항공 JL907편[7]이였으며, 다른 한 대는 승객 237명, 승무원 13명 도합 250명 탑승, 부산을 출발하여 나리타[8]로 가는 일본항공 JL958편[9]이였다.[10]

운항 계획상 두 여객기는 최소 2,000피트(약 610 m) 고도차로 통과할 예정이였다.

2. 사고 진행

일본항공 907편(이하 JAL907편)은 이륙 20분 후, TCAS로부터 일본항공 958편(이하 JAL958편)을 컨택한다.

JAL907편은 39,000피트 상공으로 상승 중, JAL958편은 37,000피트 상공에서 순항 중이었으며, 두 여객기가 각기 다른 방위에서 서로에게 접근 중이었으므로 당연히 도쿄 항공관제소가 이를 감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상황에는 이러한 사고가 날 일이 없는데, 수습 관제사가 실수를 저지르면서 문제가 생긴다. JAL958편에게 하강을 지시하고 잠시 뒤, JAL907편에게 똑같이 하강 지시를 내려버린다. 이때가 현지시각으로 오후 3시 54분경. 참고로 TCAS상에서는 한쪽에 상승 지시가 내려졌는데, 관제사의 지시를 우선하여 하강하였다.

레이더 화면상에서 두 여객기의 휘점이 급속도로 가까워짐을 발견하고 수습 관제사는 당황하여 JAL958편에게 우선회를 지시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무전은 JAL958편에 전달되지 못했다. 또한 애초에 이 상황은 우선회로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 우선회가 아니라 상하로 고도를 분리시켜 회피 기동을 지시했었어야 했다. 같은 관제소 내 고참 프로바이저 관제사가 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급히 JAL907편에게 상승을 지시하려 했지만 조급한 나머지 콜사인을 당시 공역에 존재 하지 않던 'JAL957[11]'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실패했다.

한편 조종석에는 큰 혼란이 왔는데, 관제사의 지시대로 고도를 조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TCAS가 미친듯이 각 기체에 상승과 하강을 지시했기 때문.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 907편 조종사들이 오른쪽, 958편 조종사들이 왼쪽을 본 순간...

3. 니어미스

파일:external/hannutanskanen22600.puheenvuoro.uusisuomi.fi/image_39.jpg
사고 관련 동영상

두 여객기가 서로를 육안으로 발견했을 때, 서로 간의 거리는 겨우 100m도 채 안되는 상황이었다. JAL907편의 비행기 기장 와타나베 마코토에 따르면 거의 35피트(약 11m) 차이로 간신히 비껴갔다고 한다. JAL907편의 승객이었던 알렉스 터너(Alex Turner)는 회피 기동은 2초간 지속되었다고 회상했다.

달리 손 쓸 틈도 없이 두 여객기는 서로를 가로질렀고, 기적적으로 충돌은 면하지만 양측 여객기는 무시무시한 돌풍에 휘말렸다. 여객기가 고고도로 순항할 때 속도는 1000 km/h가 넘는다. 게다가 보잉 747 DC-10 자체가 큰데다 초근접으로 가로질렀으니 당연한 일. 자세한 내용은 베르누이의 정리 문서로.

한 유튜버가 시뮬레이터를 통해 재연한 영상을 보면 두 여객기가 얼마나 가깝게 비행 했는지 알 수 있다. 밑으로 지나갔던 JAL907편, 즉 보잉 747기의 수직꼬리날개가 대략 8m쯤 되니까 3m만 가까웠어도 907편의 꼬리날개가 958편을 관통했을 것이며 958편은 동체가 두 동강으로 처참히 나누어지고, 꼬리날개가 사라진 907편은 그대로 통제불능에 빠져 추락했을 것이다.[12] 가뜩이나 123편 사고로 520명의 희생자를 낸 결과 현재까지 일어난 항공 사고 사망자 수 2위에 랭크되어 이미지가 나락에 빠졌던 일본항공인데 니어미스여서 다행이지, 자칫하다 583명의 희생자를 낸 역사상 가장 최악의 항공참사보다 더 많은, 677명의 희생자를 내며 항공 사고 사망자 수 1위와 3위에 일본항공이 모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사고였다. 특히 이 사고 당사자 중 하나인 JAL958편은 김해국제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로서, 정확한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한국인 승객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므로, 최악의 경우 국내에서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최악의 참사는 면했지만, 아수라장이 된 기내에서 적지 않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4. 사고 결과

JAL907편에서는 총 1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급히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으로 회항하였다. 착륙한 시각은 오후 4시 45분. 부상자는 중상 9명(승객 7명, 객실승무원 2명), 경상 91명(승객 81명, 객실승무원 10명)으로 총 100명이다.[13] 한편 JAL958편은 정상적으로 나리타에 착륙하였으며 이 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파일:1000004289.png
좌석표에 기재된 JAL907편 부상자 현황
파일:nearmiss004.jpg
공식 사고조사보고서에 기재된 JAL907편 부상자 현황

니어미스 직후 항공기는 돌풍에 휘말려 요동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여객기 내부도 당연히 난리가 났다. 하지만 JAL958편의 경우 부상자가 없었던데 반해 JAL907편은 부상자가 100명이나 발생하였는데, 이는 JAL907편의 경우 사고 시점에 음료를 서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료 서빙 중 많은 승객들이 좌석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고, 복도에는 승무원들이 서빙 카트를 밀면서 서 있었다. 이때 JAL907편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강하하면서 -0.55G의 순간 중력가속도가 걸렸고, 이 때문에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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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내상황 재현.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승객과 승무원들이 천장까지 떠올라 부딪치는 순간.[14]

심지어 서빙카트와 여승무원 한 명은 아예 객실 천장을 뚫고 올라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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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내상황 재현. 여승무원 한명이 객실 천장까지 튕겨 올라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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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천장을 뚫고 올라간 서빙 카트 실제 장면.

만약 두 여객기가 서로 공중충돌을 했다면 생존자가 나오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공중충돌 사고 특성상 탑승자 677명이 전원 희생되어 일본 최악의 항공 사고이자 단일 항공기 최악의 사고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520명 사망)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항공사고인 테네리페 참사(583명 사망)을 뛰어넘는 참혹한 사고가 될 뻔했다. 더불어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의 후유증이 남아 있던 시점이었기에 일본에어시스템 합병까지 가지도 못하고 파산했을 수도 있다.[15] 그리고 보잉 747은 말할 것도 없고, 보잉도 회복 불능의 이미지 피해를 입게 되었을 가능성도 높다.[16]

5. 사고 이후

사고 이후 관제사 2명과 JAL907편 기장은 검찰에 송치되었다. TCAS의 상승 지시를 무시하고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하강 회피기동한 JAL907편 기장의 행위에 대해서 과실이 있는지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당시에는 아직 위버링겐 상공 공중충돌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상황이었기도 했으며, TCAS와 관제사의 지시가 서로 다를 경우 어느 쪽을 우선해야하는지에 대한 규정이나 교육이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JAL907편 기장은 '관제사의 잘못된 지시를 따른 것은 과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한편 관제사 2명은 기소가 이루어져 재판이 진행되었다. 2006년 3월 20일, 1심에서 '관제사의 지시는 부적절했지만 사고의 예측 가능성이 없고, 관제와 해당사고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하지만 2008년 4월 11일, 2심에서 '항공편명을 착각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했고, 기본적인 주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어 책임이 무겁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수습 관제사에게는 ' 금고 1년에 집행유예 3년', 프로바이저 관제사에게는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2010년 10월 20일, 최고재판소 3심에서도 유죄판결이 확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해당 관제사들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실직하게 된다. 그러나 수습 관제사의 실수에 대해서는, 사고 과정에서 수습 관제사가 10대 이상의 비행기를 동시에 관제하는 과다한 업무를 할당받은 것이 확인되면서 일본 언론에서 이 판결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들이 다수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1년 5개월 후, 독일에서 똑같은 원인으로 이번엔 정말로 공중충돌 사고가 일어난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충돌을 면치 못해서 희생자 71명이 발생한다. 거기다가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위버링겐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JTSB[17] 일본 정부가 TCAS 규정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FAA는 이전에도 자국내에서만 무려 4차례의 대형 공중충돌 사고를 목도한 만큼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미 일찌감치 TCAS를 우선적으로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ICAO 규정상으로는 TCAS와 관련된 규정이 없어 결국 FAA규정은 미국항공사들과 몇몇 서방권 항공사들만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일본 정부에서 이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의견제시를 한 것. 그런데 ICAO가 관제과실일 뿐이라며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모든 책임을 일본 정부에게 떠넘겼다. 결국 TCAS의 운영규정을 바꾸지 않았고 그 결과가 1년 5개월 뒤 일어난 사고이다. 만약 ICAO에서 일본 정부와 JTSB의 문제 제기를 들었더라면 해당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고는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2018년 8월 26일 방영)에서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에피소드로 방영되었다.


[1] JAL958편은 부상자 없음. [2] 사고 당시의 명칭은 신도쿄 국제공항. [3] 사고 후, 2010년까지 일본항공에서 운영하다 스크랩 [4] 사고 후, 화물기로 개조되어 아에로플로트와 DETA 항공에서 운영하다 2016년에 스크랩 처리되었다. [5] near miss. 비행 중인 항공기가 공중충돌 또는 공중접촉의 위험이 있을 정도로 접근, 충돌할 뻔한 상태. 준사고(incident)로 분류된다. [6] 아파트 2층도 안되는 높이차이다. [7] B747-400D, JA8904 [8] 당시 명칭은 신도쿄 국제공항 [9] DC-10-40, JA8546 [10] JL958편 출발지가 부산이라 한국인이 많이 있었다. [11] JAL958편의 왕편 [12] 꼬리날개 탈락 외에도 국내선용 보잉 747, 하네다발이 123편과 유사하다. [13] 객실 승무원 12명은 전부 서있거나 이동중이었으므로 전원 부상을 입었다. [14] 천장까지 떠올라 부딪친 사람은 승객 18명, 객실승무원 12명으로 집계되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객실승무원 전원은 이때 부상을 입었다. [15] 당시 일본의 민항시장은 전일본공수와 일본에어시스템의 공격적인 시장 확대가 버블 붕괴와 엔고로 인한 수요 저조와 맞물려 적자에 허덕이며 9.11 테러의 펀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ANA와 JAS가 국제선 확대를 멈추고 파산을 모면하는데 급급했던 상황이어서 JAL의 지위가 위태롭지는 않았으나,(즉 훗날 파산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구제했을 것이라는 뜻) JAL 또한 적자에 몸집을 줄이기 시작한 건 마찬가지이다. [16] 실제로 보잉에게 인수합병당한 당대의 유명 항공기 제작사인 맥도넬 더글라스의 몰락도 1970년대에 발생한 DC-10의 대규모 사고들(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의 여파라는 평가가 있다. [17] 엄밀히 말하자면 JTSB는 2008년에 기존의 '航空・鉄道事故調査委員会'(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 영문 약칭 ARAIC.)를 해양 부문과 합쳐서 생긴 기관이라,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낸 기관은 ARAIC다. ARAIC의 정식 영문 명칭은 Aircraft and Railway Accidents Investigation Com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