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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3:11:58

송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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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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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송병우
宋秉祐 | 宋秉禹
출생 1867년 6월 21일
경상남도 선산군 구미면 선기리
(現 경상남도 구미시 선기동)
사망 1910년 9월 28일 (향년 43세)
경상남도 금릉군 구성면 화원리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본관 은진 송씨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991년)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병우는 1867년 6월 21일 경상남도 선산군 구미면 선기리에서 송경수(宋敬洙)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참찬(參贊) 직을 역임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관직에서 물러난 뒤 1906년 허위와 함께 의병 모집에 나서 소모장(召募將)이 되어 의병을 규합하였다. 1907년 4월 의병장 허위의 부대가 철원으로 이동하자 100여명을 이끌고 뒤따라 상주 함창에 진격하여 적을 무찔렀고, 그해 10월에는 문경군 갈평리 전투에서 이강년, 민긍호 등 여러 의병대와 합세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대를 무찔렀다.

이후 충청북도 단양으로 들어가 매바우에서 예천·원주·충주 방면으로 내습하는 일본군을 맞아 10여 일에 걸쳐 전투를 벌여 타격을 입혔다. 다시 의병진을 속리산으로 돌려 노병대와 합세하여 미원을 거쳐 성주, 거창 등에서 일본군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1910년 9월 금릉군 지례로 이동할 때 적의 기습을 받아 사상자가 많았으며, 송병우도 총상을 입었으나 포위망을 뚫고 금릉군 구성면 화원리 이명균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요양하였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송병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