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실의 세습 친왕 작위에 대한 내용은 아이신기오로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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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습친왕가([ruby(世襲親王家, ruby=せしゅうしんのうけ)])는 당대 천황과의 혈통적 원근과는 관계 없이 친왕 직위를 세습한 일본 황실의 방계 가문 4곳을 가리킨다.2. 역할
원래 천황의 자녀들은 친왕(親王), 친왕의 자녀들은 왕(王)이란 칭호를 받고 왕의 자녀들은 성을 받아 황적에서 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황가의 원칙이었다. 현대 황실전범에서는 손자까지가 친왕이고 증손자부터 왕이며 여자는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다. 증손자가 없어 왕의 봉호를 받은 자는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가 끊어지는 등의 위협이 다가오자 세습친왕이라고 하여 후손 단절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과 같은 성격으로 몇 대를 이어도 친왕의 이름을 잃지 않는 가문들을 만들었는데 이를 세습친왕가라고 하며 기본적으로 후시미노미야(伏見宮)· 가쓰라노미야(桂宮)· 아리스가와노미야(有栖川宮)· 간인노미야(閑院宮)의 4대 세습가문이 있었다.3. 역사
13세기 남북조시대 때 지묘인통(북조) 스코 천황의 황자 요시히토 친왕이 후시미노미야를 창설했다. 이후 쇼코 천황이 후계자 없이 붕어하자, 요시히토 친왕의 아들 사다후사 친왕의 장남인 히코히토 친왕이 고하나조노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후시미노미야 핏줄이 황통을 이어받았다. 후시미노미야는 고하나조노 천황의 동생 사다쓰네 친왕이 계승하여 그 자손으로 이어졌다.16세기 오기마치 천황의 황자 사네히토 친왕의 아들인 도시히토 친왕이 하치조노미야(八条宮)를 세웠다. 이후, 레이겐 천황의 황자 사쿠노미야가 하치조노미야를 이어받으면서 도키와이노미야(常磐井宮)로 개칭했다. 사쿠노미야가 요절하여 그의 형인 아야히토 친왕이 도키와이노미야를 이어받고 이름을 다시 교코쿠노미야(京極宮)로 바꿨다. 그 뒤, 고카쿠 천황의 아들 다케히토 친왕이 교코쿠노미야를 이어받아 가쓰라노미야로 개칭했다.
17세기 고요제이 천황의 황자 요시히토 친왕이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를 세웠다. 요시히토 친왕의 조카인 나가히토 친왕이 다카마쓰노미야를 물려받자, 명칭이 하나마치노미야(花町宮)로 바뀌었다. 나가히토 친왕은 고사이 천황로 즉위하고, 황자 유키히토 친왕은 하나마치노미야를 아리스가와노미야로 바꾸었다.
18세기 에도 시대에 히가시야마 천황은 황통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황자 나오히토 친왕을 시조로 간인노미야를 창설했다. 이렇게 후시미노미야·가쓰라노미야·아리스가와노미야·간인노미야 네 세습친왕가가 생겼다. 이후, 고모모조노 천황이 아들 없이 붕어하면서 나오히토 친왕의 아들인 모로히토 친왕이 고카쿠 천황으로 즉위하고 황통은 간인노미야 혈통으로 넘어갔다. 간인노미야는 고카쿠 천황의 형인 하루히토 친왕이 계승하였다.
한편, 막말 및 메이지 유신기에 이르러 후시미노미야의 제19대 당주 사다요시 친왕의 자손에게서 분가 11곳이 나왔다. 세습친왕가 간인노미야 역사 사다요시 친왕의 손자인 고토히토 친왕이 계승하게 되었다. 후시미노미야와 간인노미야를 포함한 이 13궁가 중에서 고마쓰노미야와 가초노미야가 단절됐고, 나머지 11궁가는 패전 뒤 1947년에 일제히 황적이탈하여 구황족이 되었다.
4. 현황
가쓰라노미야는 메이지 시대에 단절되었고 아리스가와노미야는 다이쇼 시대에 끊겼으며 간인노미야는 방계에서 현 천황 계통인 직황족(直皇族)을 배출한 뒤 직계가 1988년에 단절되었고 현재 유일하게 남은 후시미노미야도 적장자가 없다. 후시미계에서 분가된 구황족들은 남아 있었지만 전후 황적이탈했다.애시당초 1840년대에 이미 간인노미야도 직계가 단절되어 후시미노미야에서 봉사손을 데리고 와서 잇고 있었고 쇼와 시대에 있었던 세습친왕가는 기본적으로 후시미노미야 가문 혈통들로 되어 있었지만 황적이탈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수의 가문들은 대를 이을 후손이 없어서 단절 혹은 단절 예정이다.